성경강해

<聖經> 아가4:1-16

<題目> 신부의 아름다움 찬미


<序言>   

  전 장에서 신랑인 솔로몬 왕과 신부인 술람미 여인의 예루살렘 입성과 결혼 축제가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본 장은 신부인 술람미 여인을 칭송하는 내용입니다. 신랑인 솔로몬 왕은 결혼식이 거행된 시점에서 신부의 아름다움을 공중 앞에서 극찬하고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숨김없이 토로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신부에 대한 칭송(1-5절), 신부와 동행하고픈 감정(6-8절), 신부와 내밀한 교제에서 느낀 감정(9-16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신부에 대한 칭송 (1-5절)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3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4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을 어여쁘고 어여쁘다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칭송했습니다. 첫째, 눈은 비둘기 같다고 했습니다 (1절). 너울 속의 눈은 비둘기 같다고 했는데 '너울'의 히브리어 '차마'(צמה)는 면박(面拍) 즉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말합니다. 눈뿐 아니라 3절에 나오는 뺨도 너울 속에 뺨이라고 한 것을 보면 얼굴 전체를 가리는 투명 너울로 생각됩니다. 당시 결혼 때에 신랑은 관을 썼던 것 같고 (3:11), 신부는 면사포 같은 너울을 쓴 것 같습니다 (1,3절). 리브가도 이삭을 만날 때 면박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창24:65). 솔로몬 왕은 신부 술람미 여인의 너울 속에 보이는 눈이 비둘기 눈 같다고 했는데 그녀의 눈에서 순결함과 순수함이 나타난 것을 칭송한 것 같습니다. 둘째,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다고 했습니다 (1절). '길르앗 산'은 넓게는 요단강 동편 헤르몬 산 남쪽 지역을 가리키나 (창37:25), 좁게는 요단강 동편 북쪽 야르묵 강에서 남쪽 헤스본 사이의 거대한 초원을 가리킵니다 (수13:11,13). 이 곳은 구약시대에 푸른 초지로 인해 양과 염소 등 가축을 방목하는 목초지로 유명합니다 (민32:1-5,26). 술람미 여인의 머리털을 그 곳의 염소에 비한 것은 술람미 여인의 검은 머리털의 숱이 많고 고운 것을 칭송한 것 같습니다. 셋째,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탈 깎인 암양 곧 새끼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다고 했습니다 (2절). 일반적으로 이 지역에서 기르는 양은 제사의 제물로도 쓰였지만 (레1:2, 3:6), 고기나 젖이나 털을 얻기 위해 길렀습니다. 특히 양의 색깔이 흰색으로서 주요한 모직물로 사용되었는데 양은 양털을 깎은 후에 며칠 있다가 청결을 위해 목욕물로 씻겼습니다. 목욕장에서 나온 양의 이미지는 건강과 활력과 풍성입니다. 쌍태 새끼를 낳은 양의 이미지도 그와 같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이가 하얗고 고르며 건강함이 그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넷째, 입술은 홍색실 같고 입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3절). '입술'은 좁은 의미이고 '입'은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결국 동의어로 생각됩니다. '홍색실'은 실에 심홍(深紅) 물감을 들인 실로서 성막의 휘장이나 제사장의 의복 등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출25:4, 26:1, 28:5). 술람미 여인의 입술이 젊고 혈색이 좋음을 칭송한 것일 것입니다. 다섯째, 뺨은 석류 한쪽 같다고 했습니다 (3절). '석류'는 옷이나 건물 장식 문양으로 많이 쓰이기도 했는데 기본적으로 식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출28:33-34, 왕상7:18). 익은 석류는 반으로 쪼개 보면 그 안에 촉촉하면서도 탱글 탱글한 빨간 빛깔의 알맹이들이 촘촘하게 포개진 채 들어 있습니다. 이는 술람이 여인의 뺨의 수줍은 듯 하면서도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을 칭송한 것 같습니다. 여섯째,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1000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다고 했습니다 (4절). '망대'는 포도원의 가장자리 또는 성벽 벽 모퉁이에 높게 세운 탑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성벽에 세워진 망대를 말합니다. 이 망대는 무기를 보관하는 장소로도 사용하고 성읍을 침입하는 도적이나 적군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집니다. 그런 고로 그런 망대는 높이 세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같은 망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망대가 다윗이 세운 망대이고 그 망대에는 다윗의 방패를 걸어 놓았을 것입니다. 이는 술람미 여인의 긴 목에 보석으로 장식한 모습을 칭송한 것일 것입니다. 일곱째,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다고 했습니다 (5절). 들판에 아름답게 핀 백합화 가운데 어린 사슴 2마리가 있는 모습입니다. '백합화'는 아름다움과 향기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순결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는 술람미 여인의 순결함을 드러내는 유방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것 같습니다.


  신랑 솔로몬 왕은 신부되는 술람미 여인의 눈, 머리털, 이, 입술, 뺨, 목, 유방에 대해 칭송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외모로 보지는 않습니다 (삼상16:7, 롬2:11, 약2:1, 벧전3:3-4). 다소 풍유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시각,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세,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믿음,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찬양하며 전하는 열정, 속에 만들어진 순수한 인격이 나타나는 행동, 영적 대적을 경계하고 굽히지 않고 물리치는 백전불굴의 신앙, 영적 생명을 낳고 양육하는 사역 등을 아름답게 보실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너울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모습을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하나 솔로몬 왕은 보았듯이, 그런 모습을 사람들은 보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2. 신부와 동행하고픈 감정 (6-8절)

 

  6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솔로몬 왕은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고 했습니다 (6절). 몰약과 유향은 이스라엘에서 나지 않는 수입된 향품들이라는 점에서 몰약 산과 유향 산은 실제 존재한 산을 말하지 않고 신부와 함께 있을 곳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입니다. 신랑은 저녁이 되어 갈 때에 신부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갈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신부에 대해 어여쁘고 흠이 없다고 했습니다 (7절). 이는 사랑하는 눈에 비친 모습에 대한 표현입니다. 솔로몬 왕은 신부에게 레바논에서부터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함께 가자고 하면서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8절). '레바논'(Lebanon)은 팔레스틴 북부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산맥지역입니다. 이는 북쪽으로는 시리아 서쪽으로는 지중해 남쪽으로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수넴 곧 술람미 여인의 거주지를 암시하는 시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레바논에서 함께 가자고 한 것은 신부에게 이전에 살던 산악지대를 더 이상 그리워 하지 말고 왕도인 예루살렘에서 함께 거하자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아마나'(Amana)와 '스닐'(Shenir) '헤르몬'(Hermon)은 레마논 산맥에 있는 산들입니다. 그 중 '헤르몬'은 레바논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서 사시사철 하얀 눈으로 덮여 있으며 그것은 요단강 물의 수원이 됩니다. '사자 굴'과 '표범 산'은 앞에서 언급한 산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사자와 표범은 자주 볼 수 있었고 표범은 현재에서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레바논 산맥의 높은 산들을 언급하고 맹수들이 있는 곳으로 표현한 것은 신부가 먼 곳에 살 뿐 아니라 그만큼 위험한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곧 신부를 한시라도 빨리 안전한 곳으로 데려오고 싶은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험한 고향을 떠나 당신이 준비한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창세기12:1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Calvin)은 당시 아브람이 갈대우 우르(Ur)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말합니다. 아마도 창세기15:7, 느헤미야9:7, 사도행전7:2-4 등을 근거로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당시에 하란(Haran)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살다가 우르로 이사를 했고 우르에서 다시 하란으로 이사를 해서 당시에 아브람은 하란에 살고 있었습니다 (11:31). 본장 4절에도 보면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하란에서 떠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는 하란에서 떠난 것인데 일반적인 표현을 할 때 아버지가 살던 지역부터 표현하여 우르에서 떠난 것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여튼 아브람은 75세에 하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옳지 못한 상황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났습니다 (히11:8). '고향'은 세속적인 문화와 문명에 젖어 살던 곳을 말합니다. 이방 풍속과 습관에 젖어 살던 곳입니다. 우상적이고 세속적이고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던 곳입니다.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살던 것입니다. 무엇을 먹고 살 자에 대해서만 궁구하면서 사는 곳입니다 (마6:25, 31).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순전히 세속적 목적으로만 살아가는 이방인들이 가진 가치입니다 (엡2:2-3, 빌3:4-8).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요5:8). '친척'이 있는 곳은 인정이 있는 곳입니다. 인정에 얽매야 살던 곳을 떠나야 합니다. 인정은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인정에 얽매이는 자는 변화를 시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사람에게 얽매여 떠나지 못합니다. 세속적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는 하나님이 주실 언약적인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고후15:33, 렘17:5, 눅9:60-62). 아버지 집은 우상을 섬기는 곳입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숭배하던 자였습니다. 아브람이 혹시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곳에서는 현실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 수 없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도 삶의 영역에서는 하나님을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에 얽매여 살던 환경을 떠나야 합니다. 돈이나 쾌락이나 명예 등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보다 더 주장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적인 존재입니다. 그것들을 떠나야 합니다 (마19:16-22).


  에베소서4:22-24에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골3:5-8). 옛 사람'은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죄적 성품과 습관을 따라 살던 생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곧 거듭나기 전에 죄적 본성 따라 살던 삶을 말합니다. 죄적 본성은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아가는 성향이 있습니다. 불신앙인들이 추구하는 삶은 아무리 좋게 여겨지는 것이라도 그 결과는 허무와 허망한 뿐입니다. 그 삶은 생명을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썩어져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구습을 좇는 것은 유혹의 욕심을 따른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 우상을 따라가는 것은 그 우상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상을 따라가는 근본 원인은 욕심 곧 탐심 때문입니다 (골3:5). 우상 숭배자들은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하여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혹합니다. 초대교회 때 거짓 선지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로 유혹을 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진리를 근거하지 않고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미혹합니다.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것이고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고 옛 사람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새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거듭난 영적 속성을 따라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그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εν δικαιοσυνη και οσιοτητι τηs αληθεωs-GTS, in righteousness and true holiness-KJV). '의'는 하나님 앞에 옳게 행하는 것이고 '거룩함'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옳은 것을 선택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신부와 내밀한 교제에서 느낀 감정 (9-16절)

 

  9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10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솔로몬 왕은 신부가 자기 마음을 빼앗는다고 하면서 신부가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마음을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9절). 솔로몬 왕이 신부를 '누이'라고도 칭했는데 고대에는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친근한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신부의 매력에 압도되어 그녀가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녀가 차고 있는 하찮은 목걸이 하나에도 마음이 설렌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신부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진하고 신부의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다고 했습니다 (10절). '포도주'는 포도를 틀에 밟아 받은 포도즙을 발효시킨 것을 1:2로 물을 타서 마시곤 했는데 그것은 달콤했습니다 (삿9:13, 시104:15). '기름'은 감람(olive) 열매를 찧어 짜서 받은 기름으로서 당시 식용과 등불용과 관유용과 의료용으로도 사용했지만 향유용으로도 사용했습니다 (출29:2,23, 출30:24-25, 사1:6, 시23:5). 신랑에게는 신부가 바른 감람유가 그 어떤 값비싼 향유보다 향기롭게 느껴진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신부의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 향기 같다고 했습니다 (11절). '꿀 방울'로 번역된 '노페트'(נפת)는 벌집에서 떨어지는 꿀로서 자연산 꿀 송이를 말합니다 (시19:10, 아4:11). 뒤에 나오는 '꿀'로 번역된 '떼바쉬'(דבש)는 대추야자나 쥐엄열매나 무화과나 포도 등으로 만든 꿀(시럽)을 말합니다. 이 꿀은 젖과 함께 가나안 땅의 풍요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출3:8, 13:5, 레20:24, 민13:27, 신26:9,15). '레바논 향기'는 레바논에서 자라는 백향목이나 잣나무 등에서 발산되는 향기를 말합니다. 이는 신부와의 내밀한 교제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과 혀, 기름, 의복에 관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깨닫고 그 말씀대로 살고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을 주님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시편19:9-10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양심에 감동시키는 바를 따라 사는 것은 주님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요한일서2:27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만들어진 인격이 모든 말과 행동과 삶에 나타나는 것은 주님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요한계시록19:8에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고후2:15, 고후3:3).

 

  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솔로몬 왕은 신부 술람미 여인은 잠근 동산과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이라고 했습니다 (12절). '동산'(גן)은 정원을 말합니다. 동산은 일반적으로 포도같은 과실이 자라고 주변에 물 공급원이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민22:24, 왕하25:4, 느3:15). 그러나 본문에서 말한 동산은 왕의 휴양지로서 유실수와 샘들이 있는 곳입니다 (느3:15, 에7:7-8). 열왕기상 21장에 수록된 나봇과 아합의 기사는 왕이 왕궁 인근에 동산이나 공원들을 확보했던 것을 시사합니다. 솔로몬 왕은 자신의 업적 소개에서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전2:4-7, 대상27:27). '동산'과 '우물'과 '샘'은 안식과 활력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솔로몬 왕에게 있어서 술람미 여인은 그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잠근'과 '덮은'과 '봉한'은 그 안식과 활력이 다른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고 오직 솔로몬 왕에게만 제공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 왕은 또 술람미 여인에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라고 했습니다 (13-14절). '네게서 나는 것은'에 해당하는 기본형 '쉘라흐'(שלח)는 '싹' '가지' '식물'이라는 뜻입니다. 앞 절에서 술람미 여인을 동산에 비유했는데 그 동산에 각종 나무와 과일과 향신료 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석류나무'는 낙엽교목인데 주먹만한 열매가 맺히고 그 안에 붉은색 씨들이 차있는데 그것을 씹으면 단맛과 신맛이 함께 어울려 납니다. '고벨화'는 흰 꽃을 피우는 관목인데 그 잎은 적갈색 염료로 쓰입니다. '나도초'와 '나도'는 같은 것을 말하는데 시적 기교로 반복한 것으로서 다년초 식물입니다. 그 뿌리와 잎에서 채취한 기름이 감미로운 향기를 냅니다. '번홍화'는 다년초 식물로서 붓꽃과에 속합니다. 꽃줄기는 맛이나 염색으로도 쓰이고 방향약으로도 쓰입니다. '창포'는 야생초로서 생강같은 맛과 향을 냅니다. '계수'는 녹나무과 상록수인데 그 꽃은 향기가 좋고 나무껍질은 말려 음식향료나 방향재료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유향목'은 감람과의 방향성 나무인데 수피에서 흠집을 내 흐르는 수액을 방향제로 사용했습니다. '몰약'은 방향성 나무에서 채취한 액체 또는 응고한 고체의 방향 물질입니다. '침향'은 팔꽃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로서 그 수지나 목재는 약재나 방향재료로 사용됩니다. 술람미 여인에 대해 각종 향기 나는 나무와 과실과 풀에 비한 것은 술람미 여인과 결부된 즐거움의 풍성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에 대해 동산의 샘과 생수의 우물과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라고 했습니다 (15절). '샘'과 '우물'과 '시내'는 동산의 각종 식물들에 물을 공급하고 동산에서 쉬는 사람에게 물을 공급하기도 합니다. 특히 '레바논 시내'는 헤르몬 산에서 흐르는 시내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시내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동산에 물을 공급한다는 이미지를 부각한 것입니다. 이는 술람미 여인의 새롭고 지속적인 사랑의 풍성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에 대해 동산을 비유로 표현했는데 그에 대한 술람미 여인이 반응하여 답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16절). 신부 술람미 여인은 북풍에게 일어나라고 하고 남풍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북풍'은 구름을 몰아내는 찬바람이고 '남풍'은 온화하고 따뜻한 바람입니다. 서풍이나 동풍은 비나 폭풍우를 몰고 오기 때문에 신랑과 동산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좋은 날씨가 되길 바란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동산에 들어가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 자신의 아름다운 사랑을 신랑이 취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발하는 향기를 기뻐하십니다. 고린도후서2:15에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열매를 얻기 원하십니다. 갈라디아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1:5-8에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신앙인격을 만들어 주님이 보시에 합당한 열매가 맺혀야 하고 그 향기가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結言>

  신랑되시는 주님은 신부되는 우리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우리와의 교제를 통해 기쁨을 얻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가 맡을 만한 향기를 내야 하고 그가 먹을 만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신앙인격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새로운 인격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