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다니엘1:1-21

<題目> 포로된 다니엘

 


<序言>

  본서의 역사적 배경은 유다의 바벨론유수 사건입니다. 유다는 바벨론(바빌로니아)으로 3차에 걸쳐 포로 잡혀 갑습니다. 1차는 유다왕 여호야김 때(왕하24:1-4), 2차는 여호야긴 때(왕하24:10-14), 3차는 시드기야 때(왕하25:8-16)입니다. 본서는 1차 때의 일입니다. 유다의 18대왕이 여호야김왕  3년에 왕족과 귀족들의 일부가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갔습니다 (B.C.605). 그 사건은 유다 백성에게 엄청난 좌절을 안겨다 줍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므로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과연 하나님이 역사를 섭리하는 주권자인가' 하는 회의에 빠집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부각시키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변함없이 진행되어 간다는 확신을 중점적으로 강조합니다. 그러면서도 종말적으로 완성될 나라를 기대하며 종말에 이루어질 내용을 예언합니다. 그 예언은 다중구조 곧 당시 성취, 신약 성취, 종말 성취의 의미를 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계시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 장의 내용 구조는 포로 잡혀 간 다니엘(1-7절), 신앙을 지키는 다니엘(8-16절), 지혜를 얻는 다니엘(17-21절)로 이루어졌습니다.

   

<本論>

          1. 포로 잡혀 간 다니엘 (1-7절)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본 절의 사건 배경은 유다왕 여호야김 즉위 3년째 되던 해의 일입니다 (왕하24:1-2, 대하36:6). 당시 유다의 주변 패권 국가는 애굽(이집트)과 바벨론(바벨로니아)이었습니다. 애굽의 바로느고는 유다왕 여호아하스에 이어 그 아들 여호야김을 유다왕으로 등극시켰습니다. 여호야김은 당연히 친애굽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왕 바로느고를 격퇴시키고 애굽의 동맹국이었던 유다까지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다왕 여호야김을 사로잡고 왕족과 귀족들의 일부를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 갑습니다. 그 때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 중 얼마를 가져다가 바벨론 시날 땅 신전의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습니다. 당시 바벨론 주신은 벨(Bel)이었습니다. 그들이 성전 기명을 벨의 진전 창고에 둔 것은 승리의 영광을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 돌리고 그 신이 유다 백성이 섬기는 여호와 보다 우승하다는 것을 선포하는 의미에서 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2절에는 유다왕이 바벨론왕에게 사로잡히고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들이 바벨론 군대에 약탈 당한 사건은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넘겼기 때문이라고 기술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바벨론에 붙이신 것입니다. 이것이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간 이유입니다. 그것이 유다가 포로 잡혀 간 원인입니다. 그것은 유다 백성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하시기 위해서 행한 일이었습니다. 그 죄는 첫째, 우상을 섬긴 죄입니다 (렘25:6-9, 2:13, 15:6, 12-14). 둘째, 안식일을 범한 죄입니다 (느13:15-18). 셋째, 물질을 의지한 죄입니다 (왕하20:12-18, 사39:16-18, 렘17:5-6). 하나님이 유다 백성의 죄행에 대해 징계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범죄할 때 온전케 하려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합니다 (삼하7:14). 하나님이 유다를 징계하신 목적은 그들을 회개시키고 하나님만 섬기는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을 연단시켜 더욱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레미야29:10-11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출애굽시대에도 애굽왕 바로를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나와 40년 동안 연단을 시켰는데 그것은 그들로 더욱 온전케 하여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얻을 자격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7:3, 신8:16). 오늘날 성도가 범죄할 때에 징계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약1:2-4, 벧전1:6-7).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히12:6-8). 그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성도는 어떤 상황도 유익한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로마서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환관장'은 왕궁의 내시(시종)들의 책임자를 말합니다.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흠이 없는 자 곧 학문을 이해 할 수 있는 지식과 학문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혜를 가진 젊은이들을 말합니다. '갈대아'는 바벨론 제국을 세운 지배 세력을 말합니다. '갈대아 학문'은 당시 바벨론에서 발달했던 점성술과 천문학을 말할 것이고 '언어'는 바벨론에서 사용했던 아람어를 말할 것입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포로로 잡혀 온 왕족과 귀족 중 육체적으로 준수하고 정신적으로 지적 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을 차출하여 바벨론 지배층의 학술과 언어와 문화를 배워 익히도록 하게 했습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예루살렘을 정령하고 왕족과 귀족들을 사로 잡아간 목적은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큰 지를 열방에 알리는 목적이 있습니다. 둘째는 유다 백성이 자신에게 충성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왕족이나 귀족을 볼모로 잡아 두면 유다 본토에서 바벨론에 대항할 의지를 갖지 않게 됩니다. 또 유다 본토에는 유다 백성의 힘을 집결시켜 바벨론에 대항하도록 할 지도 세력이 없어서 바벨론에 대항할 힘을 얻지 못합니다. 셋째는 유다의 신앙과 문화를 바벨론화시키기 위함입니다. 본문에 나온 대로 유다에서 지도적 자질이 있는 유능한 젊은이들에게 바벨론의 종교와 학술과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서 차후에 유다가 바벨론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바벨론왕은 유다와의 문화적 합병을 위해 그와 같은 전략을 사용한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리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다를 더욱 온전케 하는 일에 쓰임 받은 준비를 시키기 위해 그런 섭리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유능한 젊은이들을 장차 구원 역사를 이루는 데에 사용하려고 세속 역사의 중심부인 최고의 나라에서 최고의 학술과 언어를 구비하게 한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팔레스틴에서 흉년으로 고전한 이스라엘 족속을 구하기 위해 요셉을 애굽에서 기르셨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애굽에서 학대를 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모세를 애굽의 바로궁에서 자라게 했습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바벨론에서 생명의 위기를 당한 유다 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에스더를 왕궁에서 살게 했습니다. 신약의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서들에 보면 바울을 이방선교에 사용하시기 위해 유대 학자 가말리엘에게 율법을 배우게 하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게 하고 헬라의 철학을 습득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울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좀더 알기 위해 방해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여 버리려는 노력을 했지만 그가 가진 출신과 신분과 학식과 언어는 이방선교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들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런 구조 속에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세속적인 학문과 언어로 우리를 세속화 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교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세속적인 신분과 학문과 언어 등이 절대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다만 신앙적 목적이 분명하다면 그것들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사역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준비시키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바른 신앙적 비전이 분명하다면 세속적인 학문과 언어가 복음 전도 사역에 유익을 가져오게 할 수단이 될 것입니다.    

 

  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환관장에게 유다 포로 중 외모가 준수하고 학문의 이해력이 있는 자를 선택하여 3년간 교육하게 했습니다. 바벨론의 학술과 언어를 배우고 바벨론의 문화를 습득하여 왕께 보인 후 점성가나 박수 집단의 하위직으로 임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3년 동안 왕의 진미를 먹이게 했습니다. 왕의 진미는 아마도 우상과 관련된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우상 섬기는 나라에서는 통상적으로 우상숭배와 관련한 음식을 특별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뒤에 다니엘이 큰 불이익을 느끼면서도 그 음식을 거부하게 되는데 바벨론 학술과 언어는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그 음식만을 거부한 것을 보아 그렇게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이 제공하는 왕궁 음식을 먹게 한 것은 특별한 배려로 왕에 대해 충성하는 신복으로 만들려는 의도였을 것이고 바벨론 문화와 신앙에 동화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한편 환관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유대식 이름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뜻이고, '하나냐'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는 뜻이고 '미사엘'은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 누구인가'라는 뜻이고, '아사랴'는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들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환관장은 그 이름들이 바벨론 문화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바벨론식 이름인 벨드사살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로 고쳤습니다. '벨드사살'은 '바알의 아들'라는 뜻이고, '사드락'은 '나의 태양신'이라는 뜻이고, '메삭'은 '지(地)신 같은 분'는 뜻이고, '아벳느고'는 '수(水)신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그 뜻은 모두 바벨론 신들에 대한 신앙과 관련있는 이름들입니다.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그렇게 바꾼 것은 바벨론 풍습과 습관과 사상과 신앙에 동화시키려는 일환이었을 것입니다.

 

  유다 포로에 대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호의는 유다를 문화와 종교적으로 동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학문과 언어 등이 구원 사역에 유익하게 상용할 수 있는 도구로 여기면서도 그 뒤에 숨어 있는 음모를 주의해야 합니다. 사단은 세속적인 문화와 문명의 좋은 것들을 이용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인 정체성을 흔들려 합니다.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을 통해 신앙적 사고를 물질적 육체적 세상적 우상적 사고로 바꾸려 합니다. 요한계시록12:15-16에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2. 신앙을 지키는 다니엘 (8-16절)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지시에 의해 환관장 아스부나스는 유다 포로 중 훈련받을 자로 선택된 자들에게 3년 동안 왕의 음식과 음료를 먹게 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는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하고 환관장에게 그 왕의 진미를 먹지 않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뜻을 정하여'(히. 야셈 알 리보)는 문자적으로 '마음을 결정하여'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마음을 인격의 좌소로 보고 있습니다. '더럽히지'(히. 가알)는 문자적으로 '더럽히지'라는 말이지만 신성을 더럽히거나 모독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다니엘이 마음에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단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음식과 음료들은 율법에 어긋난 것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피가 들어간 음식이거나 (신12:23-25) 부정한 짐승의 고기이거나 (레11:2-12)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일 것입니다 (호9:3, 고전10:27-29).   

 

  다니엘이 왜 왕의 진미를 거부하기로 결심했는지 서술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더럽히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신앙적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 정체성에 회의를 가질만 하고 왕이 배려하는 풍요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단호하게 거절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신앙적 정조를 지키려는 결단입니다. 육체의 호화로운 생활보다 하나님 앞에 정결한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명예나 생명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 양심을 지키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왕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양심의 자유를 누리는 편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계14:4).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거부해야 합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레갑 족속의 결단을 본받을 만합니다 (렘35:5-10). 특히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된 계명은 생명을 내놓고라도 양보하지 않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히11:35-38).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음식과 음료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환관장에게 자신들은 그것들을 먹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환관장은 만일 그렇게 해 주었다가 얼굴이 더 초췌해지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왕의 음식과 음료는 느부갓네살왕이 내린 음식인데 만일 그것을 먹지 않아서 얼굴이 더 초췌해진 것을 보면 책임자인 자신을 문책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환관장에게 다니엘과 세 친구에 동정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환관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를 관리하는 감독에게 말하기를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10일 동안 왕의 음식과 음료를 주지 말고 채소와 물만 주어서 왕의 음식과 음료를 먹은 자들과 비교해 보아서 그 결과에 따라 행하라고 했습니다. 감독자가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10일 동안 채소와 물만 주어 먹게 하고 10일 후에 왕의 음식과 음료를 먹은 자들과 비교를 해 보니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그들보다 더욱 얼굴이 아름답고 윤택했습니다. 그래서 감독자가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는 왕의 음식과 음료를 제하고 채식만 하도록 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살기를 작정했고 그럴 때에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돕게 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위험이 올지 예상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바로 하는 결단이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고 하나님이 섭리해 주시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환관장의 마음을 감동시켜 감독자에게 다니엘의 요구를 들어주게 했고 시험기간을 거쳐 다니엘의 요구대로 되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말씀을 지키려는 자에게 좋은 결과가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분입니다. 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예수 믿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마침내 승리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14:21에는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했고, 요한계시록20:4에는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라고 했습니다.


 

          3. 지혜를 얻는 다니엘 (17-21절)    

 

  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기를 결심하고 왕의 음식과 음료를 먹지 않기를 환관장에게 청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환관장과 감독자의 동정을 받아 10일 동안 채식만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들이 10일 동안 채식만 한 결과 다른 소년들보다 얼굴이 윤택하여 훈련기간인 3년 내내 채소와 물만 먹도록 허락받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소년들보다 학문에 더욱 뛰어나게 하시고 지혜에 뛰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 다니엘에게는 환상과 꿈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있게 했습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 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제 때 신사참배를 하지 않기 위해 감옥에 갔다가 해방되어 나온 이기선 목사님이 북한 신의주 제육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교회에 심을철 목사님이 부목사로 있었고 그 아래 심 목사님과 연령이 비슷한 홍 조사(전도사)님이 있었습니다. 홍 조사님은 머리가 좋았고 기억력은 비상했습니다. 몇 천명 되는 교인과 주일학교 학생들의 이름을 거의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심 목사님이 강도(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으나 홍 조사님이 강도를 하면 그다지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홍 조사님은 자주 은혜를 구하는 기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심 목사님은 홍 조사님에게 없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수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다가 나왔습니다. 말씀을 지키다가 고난 속에서 연단을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영적 지혜와 권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홍 조사님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부분을 따라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홍 조사님은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이 시험을 당해 감옥에라도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병규 다니엘 강해서 p487).    

 

  18 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

  19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21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3년 동안의 훈련 기간이 다 되자 환관장이 훈련받은 자들을 느부갓네살왕에게 데려갔습니다. 왕이 그들에게 말을 시켜 보니 다니엘과 세 친구가 가장 뛰어났습니다. 바벨론의 모든 박수나 술객보다 뛰어났습니다. '박수와 술객'은 문자적으로 마술사나 점성술사를 말하나 당시 바벨론에서는 그런 자들이 국정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학문과 지혜를 가진 특별한 관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관료들보다 지혜가 뛰어난 것은 타고난 것이거나 교육받은 것이라고 하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하나님이 세속적인 지식과 지혜에 비할 수 없는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잠1:7, 고전1:7, 2:6-7). 하나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로운 것보다 지혜로운 것입니다 (고전1:25).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자에게 영적 지혜를 주십니다.  

 

  한편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왕으로부터 바벨론 관료로 임명했다는 뜻입니다. 70인역(LXX)에서는 '그리고 왕이 그들을 영화롭게 하고 통치자로 임명하였다'라는 부가적인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는 말은 다니엘이 유다왕 여호야김 3년(B.C.605년)부터 바사(페르시아)의 초대왕 고레스가 즉위한 해(B.C.536년)까지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정부 관료로 지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귀환 때까지 왕으로부터 인정받는 관리로 봉직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 지킨 자에게 대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結言>  

  우리는 힘든 일이 생길 때 하나님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신앙적으로 해이해지거나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 역사한 하나님은 오늘날도 살아서 우리 가운데 역사합니다. 영적인 영역뿐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과 육체적인 영역과 물질적인 영역에까지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상황의 어려움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 주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손해가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을 팔지 않아야 되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지키느라고 물질을 손해 본 것보다 하나님 앞에 신앙정조를 지킨 것을 더 가치있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지키느라고 육체적으로 손해 본 것보다 영혼이 사는 것을 더 큰 기쁨과 행복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국가의 인간 역사를 주관하시는 살아 계신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신앙을 포기한 사람보다 물질과 육체를 윤택하게 하고 지혜와 총명과 영성을 10배나 뛰어나게 할 것입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와 권위를 얻게 할 것입니다. 평생에 명예를 잃지 않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