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예레미야49:1-39

<題目> 열국에 대한 예언


<序言>

  본 장은 이스라엘 주변에 위치해 있으면서 전통적으로 이스라엘과 정치적 사회적 관계를 맺어 왔던 소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간접적으로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난에 대해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보응자가 되어 그들에 대해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내용구조는 암몬에 대한 심판(1-6절), 에돔에 대한 심판(7-22절), 다메섹에 대한 심판(23-27절), 게달과 하솔에 대한 심판(28-33절), 엘람에 대한 심판(34-39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암몬에 대한 심판 (1-6절)

 

  1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 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폐허더미 언덕이 되겠고 그 마을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헤스본아 슬피 울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가리로다

  4 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

  5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니 너희 각 사람이 앞으로 쫓겨 나갈 것이요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가 없으리라

  6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몬은 이스라엘 동편, 요단강 동편, 모압의 바로 위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헤스본' '아이' '랍바'는 암몬의 주요 도시들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 군대로 하여금 암몬을 치게 하여 암몬 성읍들이 황폐화 되고 백성들이 어쩔 줄 몰라 허둥대고 사로잡혀 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암몬은 아므라함의 조카 롯이 자기 딸에게서 낳은 벤암미의 후손들입니다 (창19:38). 그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후부터 왕국 분열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적대감을 가진 나라입니다 (신2:37. 삿11:4-33, 삼상11:1-11, 삼하10장, 암1:13-15). 암몬은 바벨론이 세운 유다의 총독 그다랴 암살을 사주하여 (40:13-41)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52:30).

 

  첫째,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3절에 "헤스본아 슬피 울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가리로다."고 했습니다. '말감'(Malcam)은 암몬 족속의 왕에 대한 별명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KJV)에서는 '왕'(king)으로 번역했습니다. '말감'은 '밀곰'(Milcowm)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밀곰'(Milcowm)은 그들이 섬기던 민족신으로 '몰록'(Moloch) '몰렉'(Molech)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밀곰은 형상이 머리는 소의 형상이었고 목 아래로는 사람의 형상이었습니다. 그 두 팔과 손은 앞으로 내밀고 있는 형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밀곰을 섬기면서 이 우상은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섬겼는데 그들은 인신제사까지 행했습니다 (7:31, 왕하16:3, 21:6, 23:10). 이 우상이 유다 예루살렘에까지 들어와 유다 백성들로 그 우상을 섬겼습니다. 예루살렘 남동쪽 힌놈 골짜기에서 행해졌습니다 (32:35). 그 곳을 '힌놈 골짜기'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밀곰이 우상이 아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준다고 믿고 그의 마음을 풀어 드리기 위해 짐승을 드리기도 했지만 아이를 선정하여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 우상은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 팔 아래 불을 피워 달군 다음 뜨거워진 팔에 아이를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그 이글거리는 팔 위에서 죽었습니다. 그 바쳐진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처참했습니다. 그 광경 때문에 그 곳을  ‘애곡의 아들들의 골짜기’(히. 게 뻰 힌놈 םנה ןב איג)이라고 한 것입니다 (수15:8, 18:16, 왕하23:10, 대하28:3, 33:6, 렘7:31-32, 19:2,6, 렘32:35). 그것을 줄여서 ‘애곡의 골짜기’ 혹은 '힌놈 골짜기'(히. 게 힌놈 םנה איג)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가공스러운 희생제사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 의해 폐지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후에도 그 곳을 심히 혐오하여 (왕하23:10) 그 곳에 죽은 동물이나 범죄자들의 시체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시체들로 인한 오염을 막기 위해 불을 태웠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곳을 자연스럽게 심판의 장소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렘7:32,19:6). 그래서 최후심판에서 정죄받은 자들이 영원히 형벌받을 곳을 묘사할 때 ‘불이 타는 곳’ ‘유황 불못’ 등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지옥'으로 번역된 헬라어 '게엔나'(γεεννα)가 바로 히브리어 '게 힌놈'(םנה איג)에서 온 말입니다. 암몬의 멸망은 그 우상이 그들의 안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4절에 "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고 했습니다. 암몬은 요단 동편에 위치해서 수원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되므로 부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쪽 경계는 요단강이고 북쪽 경계는 얍복강이고 동쪽은 아라비아 사막을 접하고 있고 남쪽은 형제국 모압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하고 자만했습니다 (겔21:18:23). 그들의 멸망은 스스로 안녕이 지켜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스라엘의 영토를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1-2절에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 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폐허더미 언덕이 되겠고 그 마을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감'은 암몬의 왕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북왕국인 이스라엘이 B.C.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로 사로잡혀 가고 열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암몬은 그 때 이스라엘의 영토를 점령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갓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차지하고 그 성읍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영토가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돌아가게 하고 랍바를 폐허가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랍바'는 암몬의 수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언약의 땅을 다른 이방 백성이 차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암몬의 멸망은 하나님 나라에 손해를 준자에게 보응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2. 에돔에 대한 심판 (7-22절) 

     

  7 에돔에 대한 말씀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명철한 자에게 책략이 끊어졌느냐 그들의 지혜가 없어졌느냐

  8 드단 주민아 돌이켜 도망할지어다 깊은 곳에 숨을지어다 내가 에서의 재난을 그에게 닥치게 하여 그를 벌할 때가 이르게 하리로다

  9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 이르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아니하겠고 밤에 도둑이 오면 그 욕심이 차기까지 멸하느니라

  10 그러나 내가 에서의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그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멸망하였은즉 그가 없어졌느니라

  11 네 고아들을 버려도 내가 그들을 살리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술잔을 마시는 습관이 없는 자도 반드시 마시겠거든 네가 형벌을 온전히 면하겠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너는 반드시 마시리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보스라가 놀램과 치욕 거리와 황폐함과 저줏거리가 될 것이요 그 모든 성읍이 영원히 황폐하리라 하시니라

  14 내가 여호와에게서부터 오는 소식을 들었노라 사절을 여러 나라 가운데 보내어 이르시되 너희는 모여와서 그를 치며 일어나서 싸우라

  15 보라 내가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작아지게 하였고 사람들 가운데에서 멸시를 받게 하였느니라

  16 바위 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었을지라도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에돔이 공포의 대상이 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리로다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이 멸망한 것 같이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으며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살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19 보라 사자가 요단 강의 깊은 숲에서 나타나듯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에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와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20 그런즉 에돔에 대한 여호와의 의도와 데만 주민에 대하여 결심하신 여호와의 계획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고 다니며 괴롭히고 그 처소로 황폐하게 하지 않으랴

  21 그들이 넘어지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그가 부르짖는 소리는 홍해에 들리리라

  22 보라 원수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그의 날개를 보스라 위에 펴는 그 날에 에돔 용사의 마음이 진통하는 여인 같이 되리라 하시니라

 

 '에돔'은 사해 동쪽 모압의 아래에 자리한 국가로서 아브라함의 아들 에서의 후손들이 이룬 나라입니다. '데만'은 에돔의 도시로서 지혜자와 명철자들이 많이 거하는 곳입니다. '드단'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손자의 후손들이 이룬 곳입니다. 그들은 후에 에돔 족속에 동화되어 에돔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보스라'는 에돔의 수도로서 3면이 가파른 암석으로 된 계곡이 있어서 어떠한 외세의 침입에도 잘 견딜 수 있는 가장 견고한 요새입니다.

 

  하나님은 독수리로 표현한 바벨론 군대를 통해 에돔을 심판하여 그 도시들을 황폐화시키겠다고 했습니다. 대적이 포도 따는 자보다 더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 농부가 익은 포로를 딸 때에 몇 송이는 남겨 둡니다. 가난한 자를 생각하고 짐승을 생각함입니다 (신24:21). 하지만 에돔을 멸하는 대적은 그런 긍휼도 없이 포도를 다 따듯이 멸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대적이 도둑보다 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 도둑이 집에 도둑질을 할 때 모두 가져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에돔을 멸망시키는 대적은 하나도 남김없이 멸한다는 것입니다. 또 대적이 옷을 벗기듯이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0절). 아무리 요새에 숨을지라도 대적은 그들을 잡아내어 붙잡는다는 것입니다. 또 소돔 고모라처럼 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8절). 고대에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유황불로 멸망한 도시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대표적 도시로 상징되었습니다. 에돔의 도시들이 그처럼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고통하는 소리가 홍해까지 들리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1절). 홍해는 에돔 남쪽으로 광야를 지나 애굽에 가까운 바다입니다. 에돔에서 홍해까지는 20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그들의 멸망과 고통의 소식이 먼 데까지 이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국제적인 충격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용사들이 진통하는 여인 같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2절). 에돔을 지키는 용사들이 대적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임산과 해산으로 인하여 고통하는 여인 같이 고통한다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라 술잔을 마시는 습관이 없는 자도 반드시 마시겠거든 네가 형벌을 온전히 면하겠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너는 반드시 마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잘못할 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는데 하물며 이방인 에돔이 어찌 심판을 받지 않겠느냐는 표현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이 심판 받는 것보다 더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에돔은 바벨론에 의해 B.C.582년에 멸망하게 됩니다.

 

  첫째,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7절에 "에돔에 대한 말씀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명철한 자에게 책략이 끊어졌느냐 그들의 지혜가 없어졌느냐"고 했습니다. 16절에는 "바위 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었을지라도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에돔의 데만에는 지혜자와 명철자들이 많은 성읍입니다. 그러면서도 데만은 에돔의 전역을 대표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에돔의 특징은 자기들의 지혜를 의지하고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지혜로 인하여 교만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에돔의 지형은 험합니다. 특히 보스라 같은 성읍은 천연적으로 가파른 암석으로 된 골짜기가 있어서 대적들이 점령하기 힘든 곳입니다. 그들은 지형적으로 외세의 공격에 안전한 지형을 가지므로 교만해졌습니다. 어느 철학자가 나룻배를 탔습니다. 그가 뱃사공에게 철학을 배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뱃사공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한심한 사람이군. 자넨 인생의 삼 분의 일을 헛 살았구먼. 그렇다면 문학에 대해서는 공부를 했나? 역시 뱃사공은 배우지 않았다고 하자, 철학자는 다시 뱃사공에게 인생의 삼 분의 이를 헛 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의 절반을 건너갈 무렵, 갑자기 배에 물이 들어와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뱃사공이 그 철학자에게 수영을 배웠냐고 물었습니다. 철학자는 수영을 못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뱃사공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인생 전체를 헛 살았군요." 지식이나 지혜가 환난에서 지켜 주는 것은 아닙니다. 환난 때에 잠잠히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편62:1에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애가3:26에도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25:12-14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돔이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았고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손을 에돔 위에 펴서 사람과 짐승을 그 가운데서 끊어 데만에서부터 황무하게 하리니 드단까지 칼에 엎드러지리라"고 했습니다. 시편137:7에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과 형제국이면서도 언제나 이스라엘의 적대적이었습니다. 모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한 다음 가나안 땅으로 향할 때 가데스에서 요단 동편으로 에돔 땅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에돔 땅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에돔 땅을 지날 때에 어떤 해도 입히지 않고 곧장 지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 땅을 지날 때 물이알도 먹게 되면 그 값까지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에돔 왕은 허락하지 않았고 군사들로 가로막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돌이켜 에돔 땅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에돔 땅을 돌아가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의 험함으로 인하여 피곤했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 뱀을 보내어 징계했습니다 (민20:14-21, 21:4-6).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에 들어가 왕국을 세운 후에도 아하스왕 때에 에돔이 유다를 치고 백성들을 사로잡아 가기도 했습니다 (대하28:17). 유다 예루살렘이 환난을 당해 망하게 되었을 때 기뻐하고 조롱했습니다 (시137:7).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도움을 준 자는 비록 냉수 한 그릇을 주었어도 하나님이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마10:42). 하지만 손해를 주거나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벌하십니다 (삼상2:10, 나1:2).  


 

          3. 아람에 대한 심판 (23-27절)

 

  23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24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잡고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았도다

  25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26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그 날에 그의 장정들은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27 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지르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리라

 

  '다메섹'과 '하맛'과 '아르밧'은 아람(수리아) 나라의 도시들입니다. 그 중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로서 아람 전체에 대한 대표적인 도시였고 하맛과 아르밧에는 자체 왕이 있었습니다. 아람은 가나안 땅 북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벤하닷'은 다메섹의 왕들의 왕호였습니다. 하나님은 다메섹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성과 궁전이 불타고 장정들이 죽고 군사들이 멸절고 남은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암1:4-5). 그 소문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낙담하고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선언대로 아람은 B.C.605년 경에 바벨론에 의해 망하여 바벨론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를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아람은 국력이 강했습니다. 통일왕국 시대 때부터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경쟁 관계에 있었고 (왕하5:12). 북왕국 이스라엘과 동맹하여 남 왕국을 침략했습니다 (사7:1, 암1:3-5). 앞에서 언급했던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 등의 나라에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던 죄목입니다.  

 

  둘째, 향락을 즐겼기 때문입니다. 25절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고 했습니다. 아람은 광대한 땅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땅은 기름졌고 강과 운하로 수원이 풍부했습니다. 또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부요했고 그것을 근거로 온갖 쾌락을 탐닉하며 즐겼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합니다 (딤후3:4). 디모데전서5:6에 "향락(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향락을 추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영적 생명력이 없어집니다.  

 


          4. 게달과 하솔에 대한 심판 (28-33절)

 

  28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을 받은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29 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지니라

  3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세웠음이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32 그들의 낙타들은 노략물이 되겠고 그들의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살쩍을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여러 곳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거기 사는 사람이나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리라 하시니라

 

  '게달'은 아스마엘 후손으로서 다메섹 남동쪽 곧 팔레스틴 동부의 아라비아 사막에 거주한 유목민족입니다 (창25:13, 사21:16, 겔27:21). 그들은 대규모로 양을 치고   인접한 항구 도시인 두로와 시돈과 교역하여 많은 부를 축적했습니다 (사6:7). 뿐만 아니라 능숙한 궁수들을 많이 보유하여 작은 민족이면서도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사21:16-17). '하솔'은 별로 알려진 바 없으며 팔레스틴 남부 아랍 족속에 대한 명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호수아11:1-3에 나오는 북부 팔레스틴의 요새였던 하솔과는 다른 지역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군대를 통해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장막과 기구와 양과 낙타를 탈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거처를 황폐화 시켜 뱀들의 처소가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B.C.598년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첫째,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32절에 "그들의 낙타들은 노략물이 되겠고 그들의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살쩍을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여러 곳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살쩍을 깎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머리털을 깎는 것과 함께 우상숭배자들의 풍습을 말합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우상을 섬겼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우상을 섬긴 것을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판이 경고된 모든 나라의 공통적인 죄목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그들의 우상이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우상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지배받는 모든 것이 우상적 존재입니다. 가장 큰 우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사무엘상15:23에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고 했고, 골로새서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특히 돈을 사랑하는 것과 쾌락을 사랑하는 것은 그 주요 현상들입니다. 디모데전서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고, 디모데후서3:4에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고 했습니다.

 

  둘째,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3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라비아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의 점령하기 어려웠고 궁수들이 많아 군사적으로 강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들을 점령할 자들이 없을 것이라고 자만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지형과 군사력이 그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심판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성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울왕도 겸손할 때 쓰임 받았지만 교만할 때 버림받았습니다 (삼상15:23). 느부갓네살왕도 교만할 때 버림받았고 겸손해질 때 회복되었습니다 (단4:28-37). 그래서 잠언18:12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했고, 베드로전서5:5-6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사단의 속성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죄성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소극적으로는 고집으로 나타납니다. 사울왕이 교만해졌을 때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말렉 족속을 남녀노소 무론하고 짐승까지 진멸하라고 했는데 사울왕의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아각왕과 살찐 짐승들을 살려 왔습니다. 선지자가 책망하자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살려 왔다고 변명했습니다. 사울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처리하면서 변명한 것입니다. 그 때에 선지자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했습니다 (삼상15:23). 사울왕이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 생각대로 완고한 고집을 부린 것입니다. 고집 뿐 아니라 열등감을 가지고 시기와 질투와 험담과 비난을 하는 행위도 교만이 소극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실력과 능력이 없을 때는 그런 소극적이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실력과 능력이 생기면 적극적인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거만과 자랑과 무시와 멸시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교만이 실력을 배경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고 무엇인가 잘될 때 조심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0:12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5. 엘람에 대한 심판 (34-39절)

 

  34 유다 왕 시드기야가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5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

  36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가 가지 않는 나라가 없으리라

  3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엘람으로 그의 원수의 앞,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의 앞에서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재앙 곧 나의 진노를 그들 위에 내릴 것이며 내가 또 그 뒤로 칼을 보내어 그들을 멸망시키리라

  38 내가 나의 보좌를 엘람에 주고 왕과 고관들을 그 곳에서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 그러나 말일에 이르러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엘람'은 페르시아만 북방 곧 바벨론 동부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족속이었습니다. 그들은 능한 궁수들을 많이 두어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였습니다 (사22:6). 하나님은 엘람의 왕과 고관들을 치고 백성들을 사방으로 흩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엘람은 B.C640년 경에 앗수르(앗시리아)에 의해 정복 당한 후 약소 국으로 전락하게 되고 그 후에 메데 바사(페르시아)에 병합되고 엘람의 수도 수산은 바사 제국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됩니다 (느1:1, 단8:2).

 

  첫째, 무기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35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엘람은 능숙한 궁수(弓手)를 많이 두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는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무기와 군사력이 안녕과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해 그들을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왕은 한 때 군사를 의지하고 인구조사를 했다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삼하24:10). 히스기야왕도 무기를 의지하고 바벨론 사신에게 무기고와 보물고를 다 보여 주었다가 바벨론의 침략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왕하20:12). 신명기17:16-17에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를 침략했기 때문입니다. 엘람은 병거와 마병과 궁수들로 인해 군사력이 대단했습니다. 그 군사력으로 앗수르(앗시리아)와 동맹하여 유다 예루살렘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사22:6-7).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와 백성을 해한 죄를 반드시 기억하시고 벌하십니다. 역사적으로 국가이든 개인이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거나 하나님 나라와 백성에게 해를 가한 대상을 반드시 벌하였습니다 (삼상15:23).

      

<結言>

  하나님은 열국을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죄는 대부분 우상을 숭배하거나 교만하거나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방해한 죄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면서도 긍휼을 잊지 않았습니다 (6, 39절). 궁극적으로는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언제나 징계 중에도 긍휼을 베푸십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지는 남겨 두십니다. 그것이 환경적인 것이든 신앙적인 것이든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