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레위기 10:1-20

<題目> 제사장의 죽음


<序言>

  10장에는 두 제사장의 죽음과 제사장이 회막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 주의할 점이 나와 있습니다. 1-7절에는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 8-11절에는 제사장의 금주 명령이, 12-20절에는 제사장의 화목제 응식(應食) 먹는 법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제사장입니다 (벧전2:5,9, 계1:6). 우리의 영적인 예배 생활이 어떤 정신으로 드려져야 할지 깨닫게 하는 부분입니다 (롬12:1).

 

<本論>

        1.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1-7절)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3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4 모세가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 하매

  5 그들이 나와 모세가 말한 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내니

  6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

  7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그리하면 죽음을 면하리라 그들이 모세의 말대로 하니라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께서 명하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여호와께서 내린 징계의 불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임재의 표상으로 속죄소에 임한 불이 급작스럽게 죽게 했습니다 (1-3절).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소 안의 등불을 키게 되어 있는데 그 불은 여호와께서 직접 내린 번제단의 불을 사용해야 합니다. 분향단에 분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이 아침 저녁으로 분향을 하게 되어 있는데 그 때도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다가 분향해야 합니다 (레16:12, 민16:46).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로 분향을 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제사장은 제사장 옷을 회막 밖으로 입고 나갈 수 없었는데 그들은 옷을 입힌 채로 진 밖으로 메어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다른 아들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그 죽음으로 인하여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거나 애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시체와 함께 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5-7절).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는지를 알게 하는 부분입니다. 제사 규례를 어긴 나답과 아비후의 인격과 그들이 하는 사역과 그들이 사용한 옷까지도 부정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아들들에게 인정 때문에 영향 받지 않도록 엄히 경계시키는 것입니다.

 

     ※ 나답과 아비후가 죽게 된 원인

 

   ①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지시한 불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내린 번제단 불이 아닌, 자기 스스로 만들거나 고기를 삶을 때 사용한 불로 추측되는 다른 불로 드린 것입니다. 오늘날 드리는 예배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불로 드려야 하고 모든 사역도 하나님이 지시하는 불로 해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은 성령입니다. 예배가 성령에 의해 되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에 의해 구속 사역을 감당하셨고, 친히 우리에게 성령으로 예배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요한복음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신령' ( εν πνευμα, in Spirit)은 성령의 임재로 인한 영적 감동을 말합니다. '진정' ( εν αληθεια, in truth)은 말씀으로 해석하는 자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자도 있고  앞에 나온 신령에 대한 반복적 표현으로서 성령이라고 해석하는 자도 있습니다. 모두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해석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주님께서 예배가 성령으로 혹은 성령 안에서 드려져야 할 것을 강조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배가 성령에 의해 드려져야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바로 증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 잘 증거되고 그가 전한 모든 진리가 바로 증거됩니다.  말씀이 바로 해석되고 바로 선포되고 바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찬양, 기도, 교제,   봉사의 모든 사역에 있어서도 성령에 의해 하려고 해야 합니다. 바울도 모든 제사장적 사역에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고전2;3-4).

 

  그러므로 예배와 전 신앙 생활에서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요한일서4:1에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참람되게 말하거나 (계13:5-6, 살후2:4)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거나 (요일4:1-3, 갈1:7-9)  말씀을 혼미하게 하는 영은 거짓 영의 역사로 알아야 합니다 (살후2:11-12). 거짓 영들이 자신들의 말을 믿게 하기 위해 이적을 행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표적과 기사를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신13:1-5, 행19:13, 겔 13:6-7, 마7:22, 살후2:9, 계13:13).

 

  우리는 악령의 역사뿐 아니라 인본주의(人本主義)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거나 사람의 의지대로 하려거나 사람의 능력을 나타내려 하거나 사람이 영광받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로 제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도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의 말을 듣는 것 보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을 더 옳게 생각했고 (행4:19), 바울도 사람의 아름다운 말과 지혜로 전하는 것보다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고전2;1). 우리는 모든 예배와 사역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② 하나님을 경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를 죽인 불은 '여호와 앞'으로 묘사된 지성소 안의 속죄소 위에 표상으로 임한 불입니다. 그 불이 초자연적인 역사로 나와 성소 안에서 분향하는 그들을 죽인 것입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도록 휘장이 드리워진 지성소의 속죄소에서 불이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적 권위을 침해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출19:24, 민4:15, 수3:4, 삼상6:19, 삼하6:6-7).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린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긴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긴 것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사장이 된 후에 마음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광을 얻게 되면 마음이 교만해지고 마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게 됩니다. 사울도 왕된 다음에 길갈에서 블레셋과 전쟁할 때 사무엘 제사장이 약속한 기간에 오지 않는다고 해서 율법을 어기고 자신이 제사를 드렸다가 버림받았습니다 (삼상13:8-15), 웃시야도 왕된 다음에 아사랴 제사장의 책망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분내면서 율법을 어기고 자신이 분향하려다가 문둥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대하26:16-19).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와 모든 사역에서 마음이 높아지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조금만 잘하고 조금만 칭찬받는 자리에 있으면 교만해집니다. 고린도전서10:12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항상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빌2:3, 고전9:27). 그것이 우리의 평생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고후10:3-5). 그럴 때에 하나님께 대해서도 절대 복종할 수 있게 됩니다.

 


        2. 제사장의 금주(禁酒) 명령 (8-11절)

 

  8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11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제사장들이 제사 사역을 하기 위해 성막에 들어 올 때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그것을 어길 경우는 죽임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8-11절).

 

     ※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한 이유

 

  술은 알코올 성분이 있어서 먹으면 취하게 하는 모든 음료수를 통틀어 한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일반 민중에게는 취하지 말라고 했으나 성별되어야 할 나실인이나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아예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민6;3, 잠31:4-5, 사28:7, 레10:9). 나실인에게는 생포도든 건포도든 포도 씨든 포도 껍질이든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민6:3-4).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술은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잠23:31). 술에 즐기는 자와는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23:20). 그 결과가 패망이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23:21, 사5:11). 신약성경에도 감독(목사)나 집사 등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들은 술을 즐기거나 인 박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딛1:7,   딤전3:8). 누구든지 술에 취하는 자와는 사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고전5:11, 15:33).

 

  오늘날 우리가 음주의 동기와 목적과 방법과 양 등에 대한 논란을 벌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 이유를 알게 되면 자연히 변론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영적 타락을 가져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술은 분별력이 없어지게 합니다. 10절에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분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제사장이 술을 마시게 되면 하나님 앞에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술에 취하여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죽임을 당했는지도 모릅니다 (10절). 혹 왕이 마시게 되면 하나님의 율법을 잊어 버리고 재판을 공의롭게 할 수 없게 됩니다 (잠31:4-5). 선지자가 먹게 되면 하나님의 이상을 바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사28:7). 호세아서에는 술이 마음을 빼앗아 음행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했다고 했습니다 (호4:11-13). 결국 술이 분별력을 없이 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만듭니다.

 

   ② 정신적 타락을 가져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술은 방탕하게 하고 덕을 상실하게 합니다. 로마서13:13에는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라고 했고 에베소서 5:18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술에 취하여 장막에서 벌거벗고 있게 되었고,  아들 함이 그것을 보고 누설했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9:20-23). 롯은 소돔성에서 나와 굴에 있을 때 술 취한 것 때문에 두 딸과 행음하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대적인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창19:30-38). 술이 도덕적으로 타락을 가져오게 한 예입니다. 술로 인한 타락은 종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마24:38-39).

 

   ③ 육체적 패망을 가져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술은 한번 먹게 되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물질을 탕진하게 하고 몸이 병들게 하고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합니다. 잠언21:17에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고 했고, 23:21에는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라고 했고 호세아7:5에는 "우리 왕의 날에 방백들이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나며"라고 했습니다. 술 취하는 생활은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많은 손해를 보게 합니다.

 

  술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해악을 가져오게 하는 매개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술에 취하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5:12). 그런데도 불구하고 술은 한번 입에 대기 시작하면 절제하기가 힘들고 마침내는 습관화 되게 됩니다. 김유신 장군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아예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23:31-35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 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무엇이든지 세상 문화와 문명에 관한 것들을 사랑하거나 그것에 도취되면 술 취하는 것과 같은 결과에 빠지게 됩니다 (계17:2, 18:3). 그러므로 무엇에든지 그것들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취하려거든 성령께 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삼상1:12-15, 행2:13-15, 엡5:18)

 


        3. 제사장의 화목제 응식 (12-20절)

 

  12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와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드린 화제물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제단 곁에서 먹되

  13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

  14 흔든 가슴과 들어올린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15 그 들어올린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물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소득이니라

  16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이르되

  17 이 속죄제물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18 그 피는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는 것이었으니 그 제물은 너희가 내가 명령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을 것이니라

  19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20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하나님께 제사로 드린 제물 중 제사장의 응식으로 주어진 곳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한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응식을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않고 하나님께 불로 태워 화제로 드렸습니다. 아마 나답과 아미후의 죽음을 보고 두려운 나머지 화제로 드린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은데 대해 심히 노하고 책망했습니다. 그 때 아론은 그들의 심경을 말하면서 그들의 하나님께 향한 순수한 중심을 피력했습니다. 모세는 그 말을 듣고 그 말을 좋게 여겼습니다 (12-20절).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돌아갈 제물의 몫을 정해 주었습니다. 제물 중 제사장들이 먹을 부분과 제물을 먹을 장소를 알려 주었습니다. 속죄제물은 정한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아들들은 그것을 먹지 않고 태웠습니다. 그것은 규례를 어긴 것이나 그 중심이 하나님께 드리려는 중심이었습니다. 아마 형들의 죽음을 보고 자신들이 거룩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고, 불안한 마음으로 먹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모세는 그 중심을 좋게 여겼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구약시대에도 율법적 규례에만 얽매인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중심이 잘못되어 의식적으로 범죄한 것과 실수로 범죄한 것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하나님께 잘 하려고 하다가 실수한 허물은 하나님께서도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때에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외부적인 규례를 지킨다 해도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기뻐하지 않으시고,  중심이 하나님께 향해 있으면 무지하여 실수한 것은 용납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부족하여 늘 실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자세라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의 마음이 늘 하나님께 향해 있기를 바랍니다.     

 

<結言>

   우리는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왜 죽었는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죽음과 관련하여 무엇을 주지시켰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다른 것들에 취하여 하나님께 대한 소명과 사명 의식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기울여져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실수 투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서 외부적인 규례를 지키는 것보다 중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