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레위기17:1-16

<題目> 피(血)에 대한 규례


<序言>

  본 장은 피의 문제와 관련된  규례가 제시되었습니다. 1-9절은 짐승을 식용으로 삼기 위해 잠을 경우 지킬 규례, 10-16절은 피 자체에 대한 금기 규정이 나와 있습니다.  만일 그 규례를 어길 경우에는 백성 중에서 끊쳐진다고 했습니다. 백성 중에서 끊쳐진다는 의미가 직접적인 사형을 말하는지 백성의 진영에서의 축출을 말하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둘 중 어느 의미이든지 하나님과의 복된 계약 관계에서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민35:32-34). 그런 사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규례를 어기는 것을 싫어하시는지 알게 해줍니다.  

  

<本論>

        1. 짐승을 식용으로 잡을 경우 지킬 규례 (1-9절)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시다 하라

  3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4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5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그들의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고 가서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

  6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 문 여호와의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

  7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8 너는 또 그들에게 이르라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은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번제나 제물을 드리되

  9 회막 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① 짐승을 식용으로 잡을 때는 회막문에서 잡아야 합니다.

 

  당시에 소나 양이나 염소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잡아먹도록 허락된 짐승들로서 (레11:1-8), 당시 근동지방에서 노동력과 식용을 목적으로 많이 사육했습니다. 그런 짐승들을  잡을 때는 제사용이 아닌 식용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회막문에서 잡아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성막 뜰에 있는 성소 입구(5-6절) 곧 성막 뜰에 위치한 번제단 북편 희생제물을 잡는 곳을 말합니다 (1:11). 회막문에서 잡아 먼저 피와 기름은 여호와께 화목제물로 드리고 그 다음에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상숭배를 막기 위함입니다. 7절에 "그들은 전에 음란히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있을 때 애굽인들을 본받아 수많은 짐승 형상을 우상으로 섬겨 왔습니다. 당시 애굽의 주요도시이자 이스라엘 민족의 거주지에서 가까운 '트무이스'(Thmuis) 지역에는 '판'(Pan)이라 불리는 수염소 신을 섬기는 거대한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우상은 풍요와 다산(多産)의 신(神)으로서 그 신을 섬기는 자들은 그 우상을 위해 숫염소를 드리고 피를 마시며 음란한 행위를 행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굽에서 우상을 섬기던 습관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환경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우상을 섬길 수 있는 소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시내산 아래서 아론을 위시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던 사실이 증명해 줍니다. 그래서 만일 짐승을 아무 데서나 자유롭게 잡게 하다가는 과거의 습관 때문에 우상숭배의 죄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죄행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회막문에서 잡게 한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복음으로 자유케 된 우리에게도 율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에베소서2;2-3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육체의 부패성이 있고 믿기 전에 행하던 습관이 있습니다. 세속적인 환경은 그 습관과 일치합니다. 악영들은 끊임없이 그 욕망을 자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는 은혜 가운데 가능하지만 후에는 변질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늘 은혜 가운데 살지 못합니다. 죄의 욕망은 선한 욕망보다 강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제재할 율법적 규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규례가 은혜보다 앞서서는 안되지만 그 규례가 은혜를 느끼지 못할 때에도 우리를 타락하지 않게 해 줍니다. 교회 안에서 아역을 할 때에도 나름대로 규범을 정 놓는 것이 유익합니다.   

 

   ② 제사용으로 사용하는 짐승도 회막문에서 잡아야 합니다.

 

  짐승을 제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잡을 때도 회막문에서 제사장의 지도하에 잡아야 했습니다. 그 규례를 조금도 어겨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역사 초기 족장시대에는 개인이 아무데서나 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었고, 개인이 짐승을 잡아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부족이 이방 족속과 교제를 하면서 이방 종교와 접하게 되면서부터 개인 제사의 허용이 우상숭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애굽에서 430년 노예생활을 하면서 우상숭배의 성향이 심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제사를 허용할 경우 지식이 없어서 우상숭배의 죄행에 빠질 우려가 있기에 성막에서 제사장의 입회 하에만 드리게 한 것입니다. 열왕시대에 북왕조의 왕이었던 여로보암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북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하지 못하게 하므로 북 이스라엘 백성이 벧엘과 단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남 유다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가 힘들어서 각 처소에 산당을 짓고 그 곳에서 제사하는 것을 허용했는데 결국 그 산당이 우상숭배하는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지역교회에서도 교회 중심 예배 중심의 신앙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좀저 풍성한 사역의 은혜를 나누기 위해 셀 모임들을 활성화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교회 전체의 예배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영적으로 모든 성도가 제사장적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예배 활동은 성경과 신학과 행정적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목회자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사역에 있어서도 목회자의 제재를 받는 것이 전체 사역의 통일성을 가질 수 있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시험 들지 않게 됩니다.  

 


        2. 피 자체에 대한 금기 규정 (10-16절)

 

  10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13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것의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15 또 스스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은 모든 자는 본토인이거나 거류민이거나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는 정하려니와

  16 그가 빨지 아니하거나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가 죄를 담당하리라   

 

  이스라엘이든지 그 중에 거하는 타국인이든지 피를 먹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백성 중에서 끊는다고 했습니다 (10절). 그러기에 산 짐승을 사냥하여 잡을 경우에는 반드시 목의 정맥을 베어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어야 합니다 (12-13절). 만일 스스로 죽었든지 짐승에게 찢겨 죽었든지 이미 죽은 짐승을 먹은 경우에는 몸을 씻고 옷을 빨아야 합니다 (15-16절). 죽은 짐승을 먹은 경우에 부정하게 되는 것은 주검의 상징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안에 피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15:29에서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라고 한 것도  짐승을 목매달아 죽일 경우 그 속에 피가 내재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를 먹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① 피를 먹는 행위는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잡을 때는 회막문 앞에서 제사장 입회 하에 잡으라고 했습니다 (3-4절).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 섬기는 습관이 있어서 우상숭배에 참여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7절에 "그들은 전에 음란히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이방인들은 '숫염소' 우상을 섬겼는데 그들은 제사 의식에서 피를 마셨습니다. 우상숭배의 습관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무분별하게 피를 마실 경우 우상숭배 죄에 참여하게 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신약의 초대교회 때 예루살렘 공회에서 사도(요한 베드로 야고보)들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행15:28-29). 당시 믿지 않는 이방 사람들이 우상숭배 의식에서 제물을 먹고 피를 마시고 음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교회를 우상숭배자들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그와 같은 규례를 지시한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지 못하게 하고 행음을 멀리하라고 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도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전10:6-9,18).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내는 메세지에서도 우상의 제물과 음행을 멀리하게 한 것도 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유지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계2:14-15, 20).

 

  그런 관점에서 우리도 불신 사회의 풍속과 습관에서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특히 우상숭배와 같은 하나님과 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습관은 본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 자체가 죄는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쉽게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것들은 주의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② 피는 그 자체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11절에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느니라~"고 했고, 14절에는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고 했습니다. 피에 생명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피와 생명을 동일시 한 것입니다. 본 장에서 피를 먹지 말라고 한 주된 이유는 제사와 관련되어 제시되고 있지만 창세기9:4에서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고 한 것을 보면 생명에 대한 귀중성을 알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 주권에 달린 것이므로 인간이 임의로 처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귀히 여길 수 있는 규례를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증인들은 '피를 먹지 말라'고 한 말씀을 오해하여 수혈을 거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출혈이 심한 위급한 환자의 수혈을 금하는 것은 오히려 생명을 존중하지 못한 행위로서 피에 관한  규례를 주신 목적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되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타살이든 자살이든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육체적 생명을 함부로 해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한 인격을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고 증오하고 정죄하는 것도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③ 피는 속죄 사역에 주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자세히 보면 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은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고 피에 생명이 있다고 강조한 것은 피가 죄를 속(贖)하고 생명을 보존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제사의 일반적인 규례는 범죄자가 짐승을 끌고와 짐승에게 안수한 다음 잡아서 화제(火祭)로 드릴 부분은 번제단에서 불사르고 그 피는 제단 아래 쏟거나 제단 사면에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전 장에 나오는 대속죄일에는 성소 휘장과 지성소 안 속죄소에도 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제사 규례를 주신 것은 이런 원리 때문입니다. 범죄자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롬6;23). 범죄자가 죽지 않고는 죄가 사(赦)해지지 않습니다. 그 죽음은 피에 생명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피를 흘림으로 확인됩니다. 그 흘린 피를 하나님께 보여 드리므로 죄를 사함받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죄 값도 치루고 생명도 사는 방법으로 짐승을 대신 피흘려 죽게 하는 제사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런 제사 의식(儀式)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 죄값으로 대신 피 흘려 죽을 것, 그래서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될  것을 예표합니다. 골로새서2:17에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원리에 대해 대표원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그 후손인 모든 인간도 죄인으로 정죄받았습니다 (롬5:12). 그래서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짐승의 피는 일시적으로 죄를 정하게 하기는 하지만 아담의 범죄로 전가받은 원죄는 영원히 없앨 수 없습니다 (히10:4). 원죄로 인하여 전 인류에게 임한 죽음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짐승 뿐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죽는다 해도 죄값을 지불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 공의의 법을 만족시킬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의 발로와 언약적 약속에 의해 하나님 자신이라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대신 피흘려 죽게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기에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결국 그는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하여 그를 믿는 자는 모두 살게 되었습니다 (롬3:23-24).   

 

  곧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제사와 관련하여 피에 대한 규례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속죄 계획을 바라보게 하기 위한 언약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아담에게 짐승 가죽으로 옷 입혀 주고 (창3:21), 아벨에게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게 하고 (창4:3-4), 아브라함에게 이삭 대신 짐승을 드리게 하고 (창22:13),  이스라엘 백성에게 짐승의 피로 제사하게 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바라보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결국 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존중히 여기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곧 언약적 상징성을 생각하여 함부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방인들처럼 피채 먹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피를 먹지 말라'고 한 규례를 생각하여 피가 일반적인 음식 안에 공재(共在)된 경우나 피를 약용(藥用)으로 사용하는 경우 외에 피 자체를 즐기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생활을 하는 게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마26:28, 요6:53-56).  

 

<結言> 

   구약의 규례를 적용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규례는 외적 의식과 내적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외적 의식보다 내적 목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내적 목적을 위해 외적 의식을 지키는 것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23:23참조). 오늘날 우리는 성경에서 피채 먹지 못하게 한 영적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피를 먹지 않는 것은 존중되어야 할 신앙입니다 (히10:29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