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하박국3:1-19
<題目> 하박국의 기도
<序言>
유다 나라는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총체적인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유다 내에서는 왕으로부터 백성들까지 변론과 분쟁과 강포와 겁탈과 간악과 패역을 행했습니다. 악인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의인들을 핍박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런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시행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의문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1:2-4). 그리고는 성루에 올라 묵상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벨론 군대를 통해 유다를 멸망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박국은 마음에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1:5-11). 그래서 또 다시 기도했습니다. 어찌 우상을 섬기는 악한 바벨론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켜 압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행하시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었습니다 (1:12-17). 그래서 하나님이 또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군대를 통해 유다를 징계하겠지만 바벨론 군대가 더욱 지나치게 악행한 죄를 물어 심판하고 유다를 그들 가운데서 구원하여 회복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으로 가득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2:1-20). 이제 본장에서는 하박국이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하게 된 기도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부흥을 위한 기도(1-2절), 하나님의 나타나심(3-15절),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 고백(16-19절)으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부흥을 위한 기도 (1-2절)
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해 가지신 생각을 깨닫고 심히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해 가지신 의지와 계획을 듣고 하나님이 얼마나 유다를 사랑하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완전한 지혜로 섭리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능력으로 계획을 이루시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감동되어 흥분된 어조로 기도했습니다. 1절에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시기오놋’(שגינות)은 ‘열광적인 시’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감격하여 열광적인 시로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2절 상반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께 대한 소문을’에 해당하는 ‘쉬므아가’(שמעך)는 ‘당신으로부터 들은 것’입니다. ‘놀랐나이다’에 해당하는 기본형 ‘야레’(ירא)는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놀라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습니다. 1-2장에 나온 내용대로 유다가 타락해서 바벨론을 통해 징계하고, 그 다음에 바벨론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허락한 것 이상으로 잔인하게 행한 죄를 물어 심판하여 멸망시키고, 유다는 반드시 회복시켜 번영하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미처 그런 분인 줄 알지 못했다가 그 계획을 듣고 하나님에 대해 놀랐습니다. 두려움과 경외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2절 중반절에는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하나님께 대해 경외심을 가진데 이어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주는 ~부흥하게 하옵소서’는 기본형 ‘하야’(חיה)가 ‘살다’ ‘소성하다’ ‘회복하다’의 뜻으로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유다를 다시 회복시켜 생명력이 넘치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목적어인 ‘주의 일을’은 유다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합니다. ‘이 수년 내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님의 정한 때에 속히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나타내시옵소서’는 기본형 ‘야다’(ידע)는 ‘알다’의 뜻인바 하나님이 계획을 이루시므로 하나님에 대해 직접 경험하여 알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2절 하반절에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유다가 범죄하여 타락하므로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여 징계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일은 궁극적으로 바벨론을 심판하여 멸망시키고 유다를 회복시켜 번영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선민인 유다 백성들이 불가불 큰 고통을 당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땅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거나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깨닫게 된다면 하나님에 대해 경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92:4-5에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부흥은 우리에게 부흥의 소망을 줍니다. 우리나라가 서양종교를 받아들이는 자는 사형에 처하던 때에 스코틀랜드에서 파송된 중국 선교사 로스(John Ross)와 맥킨타이어(John McIntyre)가 중국에 머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중국 고려게이트에 장사를 갔던 이응찬, 서상윤, 김진기, 백홍기 등이 로스와 맥킨타이어를 만나 복음을 접하고 세례를 받고 성서 번역에 참여하여 우리나라에 들여와 책을 팔러 다니면서 '예수젼'이라는 쪽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고향인 의주와 평양을 중심으로 믿는 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서울에까지 전해졌습니다. 후에 미국에서 파송된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아펜젤러(Heny G. Appenzeller)가 일본에서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들어오므로 공적인 교회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성장해오던 한국 교회는 일제를 맞으면서 내적으로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되었습니다. 많은 애국지사와 애국청년들이 미국의 힘을 빌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핫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독교의 교회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에서 독립운동에 관한 일들을 했습니다. 선교사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선교의 실패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원산에 모여 선교회의를 했습니다. 그때 의사였던 한 선교사가 죄를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한국 사람들을 짐승으로 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 보지 않고 돼지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손만 대면 낳을 수 있는 데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어가는 자들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함께 하던 선교사들이 자신들도 그랬다고 자백하면서 밤새도록 통회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한국 조사(전도사)들에 의해 소문이 평양에 들렸습니다. 당시 평양 장대재에 장대현교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만수대 김일성 동상이 들어서 있습니다. 2,000명 수용이 가능한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 장로는 길선주였습니다. 그 의료 선교사를 초청하여 부흥 집회를 했습니다. 길선주 장로가 자신은 아간 같은 죄인이라고 공개 자백을 했습니다. 한 아저씨가 나와 친구의 씨암닭 잡아먹은 것 자백하고 그 친구가 나와 감 서리한 것 자백하고 얼싸 안고 뛰었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간음한 것을 자백하고 아저씨가 간음한 것을 자백했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그들이 자백한 것은 영원히 용서받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여파로 한국 교회 전체에 통회 자복하는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그 사건 전후로 교회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이 떠나므로 한국 교인 수가 줄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한국 교인 수가 이후 3배로 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믿는 자가 늘어서 가는 곳마다 십자가가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삼부요인의 70%가 기독교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계 10대교회 가운데 우리나라 교회들이 들어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음식점을 만드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웁니다. 선교사 파송과 선교비 후원이 세계 1위입니다. 선교대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대해 가지신 계획을 생각하며 한국의 교회들이 부흥하기를 기도해야합니다.
2. 하나님의 나타나심 찬양 (3-15절)
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4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5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
6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7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는도다
8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9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10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11 날아가는 주의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12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
13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14 그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15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①하나님의 현현과 그 영광 (3-7절)
3-7절은 심판자로 오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3절에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고 했습니다. ‘셀라’(סלה)는 휴지부 곧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 잠깐 쉬라는 지시어라는 견해도 있고,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 음을 높이라는 지시어로 보는 견해도 있고, 심벌즈와 같은 악기를 이 부분에서 연주하여 더욱 두드러지게 하라는 지시어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떤 견해가 맞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셀라가 ‘들어올리다’의 뜻인 ‘살랄’(סלל)에서 파생된 단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도 음악에서 노래의 음을 높이라는 지시어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Calvin). ‘데만’(Teman)은 에서의 후손들이 사는 에돔 땅 곧 사해 동남쪽 지역입니다. ‘바란 산’(Paran. mt)은 가데스바네아와 시내산 사이에 있는 바란 광야의 동편 산지입니다. 이 두 곳은 모두 유다 남쪽에 있으며 시내산이 가까이 있는 곳입니다. 시내산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한 후 하나님이 임재하여 언약을 맺은 곳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곳으로부터 오고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언약민을 구원하기 위해 바벨론을 심판하려고 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 모습은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현현(顯現)하여 이동해 오심의 모습이 온 땅에 위엄과 찬양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4절에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현현 모습에서 하나님이 밝은 광채로 보였고 그 손으로부터 빛이 나오는데 그 안에 강한 능력과 위엄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5절에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고 했습니다. ‘역병’(דבר)은 전염병을 가리키고 ‘불덩이’(רשף)는 전염병으로 인해 생기는 고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질병을 앞세우고 오는 것은 질병으로 심판하실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6절에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서실 때 땅이 진동하고 나라가 전율하고 산들이 엎드러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하기 위해 서실 때 영원무궁할 것 같은 땅과 나라와 산들이 떨고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견고한 대상이라도 모두 결렬하게 떨면서 엎드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7절에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는도다”고 했습니다. ‘장막’은 집 역할을 하는 장막을 가리키고 ‘휘장’은 그 장막을 덮은 천을 가리킵니다. ‘구산’(Cushan)은 사사기에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과 같은 이름으로 그가 속한 민족으로 여겨집니다 (삿3:8,10, Calvin). ‘미디안’(Midian)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이 이룬 민족입니다. 구산과 미디안은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괴롭히던 족속들인데 하나님이 세운 사사들에 의해 세력을 잃었습니다. 구산 리사다임은 사사 옷니엘에 의해 패했고 (삿3:8-11), 미디안은 기드온에 의해 패했습니다 (삿6:2,12, 7:25). 그래서 구산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 휘장이 흔들린다는 것은 유다의 대적을 심판하므로 그들이 파괴될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②하나님의 대적 심판과 그 목적 (8-15절)
8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과 구원의 병거에 오르셨느냐는 말입니다. ‘말’과 ‘병거’는 군사력의 상징으로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의미합니다.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는 강들과 바다를 행해 분노하셨느냐는 말입니다. ‘강들’과 ‘바다’는 세상 나라들을 말하는데 특히 유다를 압제한 바벨론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그래서 본절은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기 위해 강력한 능력으로 전쟁준비를 하신 것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9절에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활’과 ‘화살’은 전투에서 적을 죽이는 도구입니다. 용사가 활을 꺼내어 바로 화살을 쏜 것처럼 하나님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므로 땅이 강물에 의해 갈라지는 것처럼 바벨론이 파괴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0절에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는 두려움으로 요동하고 무기력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산’과 ‘창수’와 ‘바다’는 유다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Smith).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세력도 두려움에 덜게 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11절에 “날아가는 주의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광된 화살 빛과 창의 광채로 해와 달이 놀라 그 처소에 숨었다는 것입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해와 달이 떴다가 지는 것과 관련하여 해와 달이 집에 있다가 나오고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한데서 기인한 표현입니다 (시19:4-6). 여기에서 ‘해’와 ‘달’은 유다의 대적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권능으로 심판할 때 대적들이 하나님의 행하시는 위엄에 두려워 각 처소에 숨을 것을 의미합니다.
12절에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고 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여러 나라를 정복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입니다. 하나님이 선민인 유다의 대적을 물리치신 것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두르셨으며’에 해당하는 기본형 ‘차아드’(צעד)는 ‘걷다’ ‘행진하다’의 뜻이고, ‘밟으셨나이다’에 해당하는 기본형 ‘두쉬’(דוש)은 ‘내리밟다’ ‘타작하다’ ‘부수다’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분노를 발하여 군대가 적을 공격하기 위해 진행하는 것처럼 진행하여 유다의 대적들을 쳐부순다는 것입니다.
13절에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악인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출정하여 악인의 건축물의 지붕을 때려 부수고 그 기초까지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곧 건축물들의 지붕 꼭대기에서부터 땅속 기초까지 완전히 파괴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다의 대적을 공격하여 물리치신 것은 주의 백성 곧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기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에 해당하는 ‘예솨으’(ישע)는 ‘구원’ ‘해방’ ‘번영’ 등의 뜻이 있습니다. ‘주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고 ‘기름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이 구별하여 선택한 자라는 뜻입니다. 곧 주의 백성과 기름부음 받은 자는 유다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유다의 대적을 치신 것은 선민인 유다를 구원하여 번영케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14절에 “그들이 회오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유다의 대적을 가리킵니다. ‘나’는 하박국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자신과 유다를 동일시하여 표현한 말로서 유다를 암시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의 원어 ‘아니’(עני)는 ‘억압된’ ‘고통 받는’ ‘비천한’ ‘가난한’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 대적에 압제받는 유다를 암시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다의 대적은 유다를 회오리바람처럼 흩으려하고 삼키기를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파괴하고 살육하기를 몹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벨론은 유다를 침략하여 파괴하고 살육하고 사로잡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전사의 머리’는 대적의 우두머리를 가리킵니다. ‘창’의 원어 ‘마테’(מטה)는 ‘가지’ ‘막대기’ ‘종족’ 등을 뜻하는 단어로서 여기에서는 막대기(홀)이나 종족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들의 창’이란 그들과 같은 이방 민족의 왕을 가리킨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벨론은 바사(Persia)의 장수(왕)에 의해 멸망하여 흡수되었습니다.
15절에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고 했습니다. 고대 전쟁에서 말은 강한 군사력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권능으로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다고 했습니다. ‘밟으셨나이다’에 해당하는 원형 ‘다라크’(דרך)는 ‘밟다’ ‘걷다’ ‘건너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절은 과거 출애굽 때에 홍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로 건너게 하시고 애굽 추병들을 수장시킨 사건을 연상하면서 하나님이 바벨론도 그와 같이 멸망시킬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민인 유다를 구원하기 위해 바벨론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인 성도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반드시 대적을 멸하시고 환경을 개선하여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담대해야합니다. 시편16:8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16:33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 고백 (16-19절)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16절에서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유다가 심히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징벌하여 바로세우기 위해 당대에 가장 강력했던 바벨론(Babylonia)을 통해 심판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극한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시를 느꼈습니다. 그 바벨론 군대는 어떤 나라의 왕이나 성이나 군대도 막을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기동력이 표범처럼 빠르고 공격력이 독수리처럼 효과적이고 잔인성이 저녁 이리떼 같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주변 나라들을 점령하고 잔인하게 행했습니다. 하박국이 생각할 때 이제 그들이 유다에도 침략해올 것이고 유다에 대해서도 그처럼 잔인하게 행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유다를 점령하여 보화들과 농작물들과 가축들을 약탈하고 성을 파괴하고 성전과 궁궐과 집을 불태우고 백성을 살육하고 수많은 백성을 사로잡아갈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썩이는 것이 뼈에 들어오고 몸이 떨렸다는 것입니다. ‘썩이는 것이 뼈에 들어오고’는 뼈에 썩게 하는 것이 들어와 뼈가 썩는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운 지를 알 수 있는 표현들입니다.
17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고 했습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는 유다 지역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유실수들이었습니다 (신6:11, 호2:12, 욜1:7). 그 나무들에서 나는 열매들은 일상 식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들이 무성하지 못하고 열매가 없고 소출이 없다면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밭에 먹을 것’과 ‘우리에 양’과 ‘외양간에 소’는 농경생활이나 유목생활을 하는 유다백성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작물들과 가축들입니다. 그것들은 생존과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이 없어진다면 그야말로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유다를 점령한다면 그것들이 약탈당하거나 파괴되므로 그것들이 다 없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생활이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18절을 다시 보면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유다가 당할 환난에 대한 예시를 느끼고 극한 고통 가운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하며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을 했듯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יהוה)는 존재에 있어서 스스로 있는 자존자를 가리키지만, 언약에 있어서는 변하지 않는 불변자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선택한 백성에게 함께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하나님’에서 ‘하나님’(אלהים)은 전능자라는 뜻입니다. ‘구원’(ישע)은 ‘자유’ ‘해방’ ‘구원’ ‘번영’ 등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선택한 백성을 반드시 환난에서 건져 회복시키시고 번영케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징벌하지만 결국은 결국은 바벨론에 선민에 대해 허락한 것 이상으로 지나치게 악을 행한 죄를 물어 바벨론을 심판하고 반드시 유다를 회복시켜 번영케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땅에 가득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2:14).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성품으로 반드시 그 목적을 이룰 것이라고 했습니다. 2:4에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וצדיק באמונתו יחיה)고 했습니다. 이는 유다는 하나님이 언약백성에 대해 가진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성품에 의해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고 성실하게 그 목적을 이루시는 분임을 신뢰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기 위해 임재하셔서 유다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그 권능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3:4-5에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고 했습니다. 그분 앞에서 땅도 요동하고 산도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3:6). 하박국은 그런 능력으로 바벨론을 심판하여 멸망시키고 반드시 유다를 회복시킬 수 있는 분임을 신뢰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19절에 보면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고 한 것입니다.
19절에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슴처럼 민첩하고도 신속하게 높은 곳으로 올라 다니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竪琴)에 맞춘 것이니라’는 성가 지휘자를 위해 현악기에 맞춘 시(詩)라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뱀잡이수리'라는 특이한 새가 있다고 합니다. 이 새는 평소에는 잘 날아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고통을 감지하거나 위험한 것을 느끼면 갑자기 날 수 있는 능력을 망각하고 만다고 합니다. 날 수 있는 능력을 망각한 새는 땅을 기어 다니다가 다치게 되거나 끝내는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거나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것이 느껴지면 두려워하며 마음의 심한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81년 미국 수상스키 선수였던 타스허스트라는 사람은 배의 프로펠러에 끼어 다리를 잘랐습니다. 아들까지 다이빙 사고로 다쳐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7개월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다 나아서 기쁨으로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여하기를 원했지만 아들은 낫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 몇 번이고 하박국의 본문 말씀을 읽었습니다. 믿음으로 온 맘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그날 밤 다시 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평안과 기쁨이 찾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結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시글락에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시편16:8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삼상27:5-12). 바울은 로마서8:36-37에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에 대해 가진 신실한 의지, 언약 백성에 대해 가진 목적과 계획, 온 세상에 대해 가진 목적을 알게 되면 평안과 기쁨과 힘을 얻게 됩니다 (빌4:11-13). 고린도후서4:8-9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6:9-10에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외부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있어도 심지어 두렵고 떨리는 상황에 있어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묵상하면서 어떤 상황에도 굴복하지 말고 힘을 얻어 승리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