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학개 1:1-15

<題目> 성전재건 명령과 순종

 

<序言>

  유다 예루살렘이 B.C.586년에 바벨론(Babylonia) 제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유다 예루살렘의 성벽을 훼파하고 성전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사로잡아갔습니다.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유다 백성은 바사(Persia) 제국 왕 고레스의 칙령(B.C.538)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의 인도아래 42,360명이 유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들은 불타버린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지대를 놓았습니다 (B.C536). 그러나 고레스왕이 죽은 후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와 주변 총독들의 상소에 의해 중단되었습니다. 그 후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들의 생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재건이 중단된 지 약 16년이나 지나도록 재건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학개 선지자는 성전을 재건해야 할 것을 촉구하게 됩니다. 본장의 내용구조는 성전재건에 대한 명령(1-11), 성전재건에 대한 명령 순종(12-15)으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성전재건에 대한 명령 (1-11)

 

  1 다리오 왕 제 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다리오왕 26월 초하루에 학개 선지자로 말미암아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1). ‘다리오(Darius)B.C.522~486년 동안 통치했던 히스타스페스(Hystaspes)입니다. ‘다리오왕 2은 다리오왕 원년인 B.C.522보다 2년이 지난 B.C.520입니다. 그러므로 바사의 초대 왕이었던 고레스(Cyrus)왕이 B.C.538년에 칙령을 내리고 B.C.536년에 성전재건을 위한 지대를 놓았기 때문에 이 때는 성전재건 중단할 때로부터 약 16년이나 지난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학개(Haggai) 선지자를 통해 종교적 대표자인 대제사장 여호수아(Joshua)와 정치적 대표자인 총독 스룹바벨(Zerubbabel)에게 성전재건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①유다 백성은 성전건축을 중단하고 있었습니다 (1-4).

 

  구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하고 율법을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언약신앙의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성전건축 문제는 하나님과 유다 백성 사이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침략하여 예루살렘 성을 훼파하고 성전을 불태우고 백성들을 사로잡아갔습니다 (B.C.586). 그런데 사로잡혀간 자들이 50~70년 후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불타버린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습니다 (3:1-13). 그러나 여러 이유로 인해 성전건축을 중단하였고 성전건축은 16년 동안이나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솔로몬 성전에 비해 열등했기 때문입니다 (3:12-13).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불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성전지대를 놓았을 때 바벨론에 잡혀가기 전에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노인들은 통곡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비해 스룹바벨 성전의 지대는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이 초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다윗 왕 때부터 준비되었고 이방 왕까지 협조하여 각양 고급 재료가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이 스룹바벨 성전은 포로에서 갓 돌아와 황폐한 땅 위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축하려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 같은 대선지자들이 예언하기를 재건될 두 번째 성전은 처음 성전보다 더 영광스럽다고 했기 때문에 (60:15-22, 3:16-17, 40:1-43:27) 재건되는 성전의 기초의 미약함을 보고 실망한 것입니다. 그 예언들을 외부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었던 그들은 성전재건을 스스로 작은 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스스로 작은 일로 여기고 성전건축을 중단한 것입니다.

 

  둘째, 사마리아인의 방해공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1-24). 사마리아인들이 성전건축을 조롱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사의 다리오왕이 즉위하기 전까지 왕의 자문을 맡은 고위공직자들에게 뇌물을 주어 행정적으로 방해를 했습니다.

 

  셋째,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 2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하고 사마리아인들이 적극적으로 방해를 하고 지배국이었던 바사 제국의 왕들이 성전건축 중단을 명령하니까 스스로 성전재건을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상황에 대해 소극적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원수들의 공격보다 그 공격 때문에 아직 때가 아니라고 결론내리는 것이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넷째, 자기 육체의 평안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4,9). 4절에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은 황무했으나 자기들은 판벽한 집에 거했습니다. ‘판벽한 집은 벽과 지붕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집을 말합니다 (왕상6:9, 7:7, 22;14).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하여 짐승이 거하고 이방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데도 자기들을 위해 고급목재로 집을 짓고 사치와 연락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9절에는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고 했습니다. 성전은 황폐하여 있는데 성전을 짓는 일을 미루면서 자기들 집을 짓는 데는 빨랐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포로에서 돌아온 직후 성전의 중요성을 알고 가장 먼저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방해가 있고 내적으로 낙심이 되자 중단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전재건의 필요성을 잊어버리고 자기들 삶에만 바빴습니다.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 신앙적인 면을 우선시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을 때 중단하고 시일이 오래가면 완전히 자기 삶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언제나 신앙적인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과거 다윗왕은 나단 선지자에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무엘하7:2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고 했습니다.

 

   ②학개 선지자는 성전 재건을 독촉했습니다 (5-11).

 

  학개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에게 그들의 행위를 살피라고 했습니다. 5절에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면밀히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7절에도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고 했습니다. 지나온 삶의 행적들을 자세히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10절에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라고 했습니다. 파종한 곡식이 싹을 내고 잘 자라고 열매를 잘 익게 되려면 농부의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비가 내려야 할 시기엔 비가 내려야 하고 비가 내리지 않는 시기에는 이슬이 내려야 합니다. 당시 팔레스틴은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데다가 관개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이슬은 식물에 수분을 제공하는 유일한 공급원이었습니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다습한 바람이 차가운 밤공기와 만나 지면에 이슬로 내렸습니다. 그로인해 들에 곡식과 과일나무가 잘 자라므로 농사가 잘될 수 있었고, 산에 풀과 나무가 잘 자라 목축이 잘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슬이 내리지 않아서 제대로 된 수확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11절에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농사와 목축이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한재를 들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재’(旱災)은 가뭄재앙을 말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호레브’(חרב)는 가뭄, , 황무 등의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고 이슬이 내리지 않는 가뭄을 말합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때에 이슬도 내리지 않으면 모든 식물이 수분을 흡수하지 못하므로 뜨거운 태양열에 말라비틀어지고 맙니다. 2:17에 보면 가뭄재앙에 깜부기 재앙과 우박재앙도 있었습니다. 가뭄에 말라 들어가는데 병충해까지 있었고 재해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농사도 안 되고 목축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으로 하는 모든 노동이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당시에 이러한 천재(天災)에는 어떤 노력과 수고도 헛되게 되는 것입니다.

 

  9절에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소득을 바라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열심히 땅을 기경하여 씨를 뿌려 경작했고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도리어 소득은 적었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얻은 소득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거둔 곡식도 벌레가 먹거나 썩거나 해서 먹을 수 없게 되고 번 돈도 몸이 아프거나 사고가 일어나서 생각지 않은 곳으로 다 빠져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상생활에서의 물질적인 압박은 육체적 심리적 영적으로도 곤고했을 것입니다.

 

  6절에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전 재건을 중단하여 성전은 황무한 상태에 있는데 자기들을 위한 집중한 삶의 상태와 결과를 말한 것입니다. 모든 노력과 수고가 다 헛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첫째,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었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봄에 땅을 기경하고 많은 씨를 파종했지만 추수 때에 얼마 거두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먹고 마시고 입을지라도 흡족하지 못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삯을 받아도 다 없어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멍 뚫어진 전대는 밑이 뚫려 돈을 넣어도 다 빠져나가는 자루를 말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번 돈으로는 생활비용을 감당하기다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져 평소처럼 일한 만큼 급료를 받지 못하고 일상생활에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받은 것으로는 충당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고생하여 벌어도 남는 것이 없어 허망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5:8-10, 127:1, 128:1-2).

 

  아무리 많은 소득을 위해 열심히 일할지라도 농사와 목축과 노동으로 인한 소득이 없어 핍절과 곤고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한재로 소득이 없게 하고 적은 소득도 생각지 않은 곳에 허비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11절에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고 했고, 9절에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전재건은 중단하고 자기들 삶에만 바빴기 때문이었습니다. 9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고 했습니다. ‘내 집은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성전은 황폐해 있는데 자기들 집을 짓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4절에도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고 했습니다. ‘판벽한 집은 벽과 지붕이 있는 집으로서 안전하고 화려한 집을 의미합니다. 성전은 황폐해 있는데 자기들은 좋은 집을 짓고 사는 데만 도취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 곤고한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알고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라고 했습니다. 8절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성전건축을 위해서는 산에 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건축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 때처럼 많은 비용이 드는 레바논 백향목을 가져다가 건축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당시에 포로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기였기 때문에 주변 가까운 산에서 나무를 가져다가 건축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물질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에 돌아오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בו)는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그것 안에서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축할 성전 안에서 기쁨과 영광을 얻을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Hitzig, Mitchell, Elliger). 이는 유다 백성이 성전을 건축하면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여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통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는 그것을 통하여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다백성의 성전건축을 통해 기쁨과 영광을 얻을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Budde, Halevy, Gelin). 이는 유다 백성이 성전을 건축하며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고 온 유다 백성과 열방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두 견해 다 일리가 있습니다. 당시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곳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전은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기쁨과 영광을 받는 곳이기도 하고, 성전건축은 열방에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지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전이 파괴된 상태로 혹은 성전재건이 중단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과 유다 백성간의 영적 교제가 없게 되고 열방으로부터 조롱과 모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건축해야 하나님과 유다 백성간의 언약적 관계가 회복되어 언약신앙이 유지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만민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언약백성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은혜를 받게 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성전재건을 할 때 모든 소유에 복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2:18-19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지 않고 있을 때는 창고에 곡식 종자가 없고,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땅과 곡물과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가뭄재앙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가뭄재앙을 거두고 은혜를 베풀어 수고한대로 풍성히 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수들을 멸해주신다고 했습니다. 2:22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강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2:9“~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평강’(שלום)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안전, 평안, 번영 등을 의미합니다. 부족함이 없는 행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영적 성전은 첫째는 하늘입니다. 하나님이의 보좌가 있는 천국입니다. 이 성전은 우리가 건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는 교회공동체입니다. 성경은 교회공동체를 하나님의 처소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2: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2:20-2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신앙고백과 예배와 사역을 하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 공동체는 예수님이 기초가 되어 세워진 것이며 그 공동체의 모임에는 성령님이 임재하여 역사하십니다. 셋째는 성도의 개인입니다. 성경은 성도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고후6:16).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성도는 성령님이 내주해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우신 교회 공동체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에 젖어있는 상태에서 신앙정체성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인 우리 개인의 신앙인격과 삶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와 기복주의에 젖어있던 상태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성령님의 감동을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물질적 욕망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신앙인격이 만들어져야 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2:12, 4:13, 1:20).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여기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육간의 모든 좋은 은혜를 아낌없이 주실 것입니다. 로마서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의 심정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영적 성전을 건축해가야 합니다.

 

 

       2. 성전재건에 대한 명령 순종 (12-15)

 

  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15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학개 선지자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유다 백성들에게 18년 동안 중단하고 있는 성전재건을 권면했습니다 (1-11). 그런데 그들이 학개 선지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줄 알고 학개 선지자의 성전재건 명령에 대한 말씀을 진지하게 청종했습니다 (12).

 

  학개 선지자는 청종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또 전했습니다. 그 내용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였습니다 (13). 성전재건 명령을 순종할 때 성전이 잘 재건되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4: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 전도 사명을 주시면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28:19-20). 하나님은 사역에 대한 명령을 순종할 때 일이 이루어지도록 반드시 함께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잣대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고 안 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니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14). ‘마음으로 번역된 루아흐’(רוח)는 영, 영혼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각성되어 일어나도록 감동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전재건에 대한 강한 의지가 일어나 성전공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성전재건 사역을 시작하게 된 때는 다리오왕 제 2624일이었습니다 (15). 하나님 말씀을 첫 번째로 전할 때가 다리오왕 261일이라고 했기 때문에 (1) 그 때로부터 23(3)만에 재건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3주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 성전건축을 방치해둔 것에 대해 회개하며 성전재건을 결정하며 성전공사를 준비하는 기간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짧은 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7월에는 나팔절과 대속죄일과 초막절이 있어서 그것들을 준비하는 때였으므로 매우 바쁜 때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비장한 결심으로 즉시 공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結言>

  유다 백성들은 귀환했을 때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안일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재건에 대한 사명감을 잃어버리고 자기 생활에 몰두만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영육간에 곤고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학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 그 말씀을 즉시 순종하여 성전재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즉시 순종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2:13“~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119:5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