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학개 2:1-23
<題目> 성전재건에 대한 격려
<序言>
유다 백성이 성전재건에 힘쓰지 못한 이유는 당시 재건하려는 스룹바벨성전이 포로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솔로몬성전에 비해 초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보다는 과거에 화려했던 성전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반응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성전재건을 다시 촉구합니다. 외형적인 상황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이 나타낼 영광을 바라보고 다시 일어설 것을 권면합니다. 내용구조는 실망에 대한 위로(1-9절), 순종에 대한 축복(10-23절)으로 되어있습니다.
<本論>
1. 실망에 대한 위로 (1-9절)
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1절).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은 7월 21일로서, 성전재건 공사를 시작한 6월 24일로부터 27일 정도 지난 때입니다 (1:15). 그 때는 구약의 3대 절기 중 하나였던 초막절(장막절,수장절) 마지막 날에 해당하는 날이었습니다. 초막절은 7월 10일 대속죄일을 지킨 후 7월 15일부터 7일간 지켰던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키는 시기는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으로서 추수를 마친 후에 지켰습니다. 이 절기에는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과거 애굽에서 나올 때에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초막을 짓고 지냈습니다 (레23:34-43, 출34:22). 그래서 아마 그들은 초막에 거하면서 성전재건 공사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Haggai)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에게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2절). 스룹바벨(Zerubbabel)과 여호수아(Joshua)는 1차 포로귀환 때 백성들을 인도해온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입니다.
3절에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남아 있는 자’는 2절에서 언급한 ‘남은 백성’과 달리 과거 솔로몬성전을 직접 본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남아 있는 자’로 표현한 것은 유다 예루살렘의 멸망 와중에도 포로로 사로잡혀 가서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 귀환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언약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남겨 두신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사로잡혀 가기 전에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자들이 있었습니다.
유다 예루살렘은 B.C.586년에 바벨론(Babylonia)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고 그때 많은 사람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습니다. 그리고 B.C.538년에 바사(Persia) 제국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B.C.536년에 성전재건을 취해 지대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성전재건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중단한 이후 16년이나 흘렀습니다. 그들이 성전재건을 중단한 이유는 주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성전지대가 놓인 것을 보고 실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지대를 놓았을 때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지 약 50년 이상 지난 때였기 때문에 이전에 있었던 솔로몬 성전을 본 사람들도 있었고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비해 새로 재건하려는 스룹바벨성전의 지대가 너무 작고 초라했기 때문에 실망하여 의욕을 상실한 것입니다 (스3:12). 솔로몬 성전은 다윗이 전리품으로 모아둔 금과 은 등의 보물이 많이 있었고 외국에서 수입한 대리석, 백향목 등의 고급 재료로 지었기 때문에 크고 웅장하고 화려했습니다 (대상22:2-4, 14-16). 반면에 새로 지으려는 스룹바벨성전은 지대부터가 작아서 보잘 것 없이 초라했습니다. 거기에다가 탈무드(Talmud)에 의하면 법궤와 그룹이 없었고 우림과 둠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망한 나머지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고는 성전재건에 힘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14에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라고 했었습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중심한 백성들이 학개 선지자의 권면을 듣고 성전재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솔로몬성전의 영광을 본 자들에게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것은 학개 선지자가 그것을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고 그들이 새로 재건하려는 스룹바벨성전이 솔로몬성전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져 재건의욕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 생각을 떨쳐버리게 하기 위해 물은 것입니다. 과거에 그 생각 때문에 성전재건을 중단했었기 때문에 이제 재건공사를 시작하는 마당에 용기를 북돋아주어 그들의 생각을 전환시켜 주려는 것입니다.
4절에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비롯한 백성들에게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하라고 했습니다. 성전재건은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알고 스스로 일어나 굳은 의지를 가지고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13에도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고 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마도 그들에게 재건 공사가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또 다시 중단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걱정과 염려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것이니 하나님으로 인하여 의지를 굳게 하여 재건공사를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영적 성전의 개념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입니다. 하늘보좌가 있는 천국이 성전입니다. 그 성전은 우리가 짓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신앙고백과 예배와 사역을 하는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공동체는 예수님이 기초가 되어 세워진 것이며 그 공동체의 모임에는 성령님이 임재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영적인 성전입니다. 에베소서2:22에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엡2:20-22). 셋째는 성도의 개개인이 영적인 성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성도는 성령님이 내주해계십니다. 고린도전서3:16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고후6:16). 그런데 우리가 영적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있어서도 여러 인간적인 생각들 때문에 의욕을 갖지 못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과거에 잘되었던 것 이상으로 잘될 것 같지 않아서 의욕이 일어나는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전도서7:10에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과거보다 못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외부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것에 더 큰 의미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실망한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니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했습니다 (4절).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5절).
①하나님이 언약대로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절).
5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언약한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이 거할 것이니 두려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해낼 때 하나님이 성막 가운데 임재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신12:5,11,21, 14:23, 26:2).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했습니다. 그와 같이 이제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에게도 임재하여 보호하고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②하나님이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6-7절).
6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킨다는 것은 온 세상을 놀라게 한다는 의미합니다. 이는 다리오왕이 왕이 되어 성전건축을 허락하게 되는 정치적 대변혁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포로 귀환자들이 성전을 재건하려할 때 사마리아인들을 중심한 반대세력들의 거짓고소가 있었습니다 (스4:1-24). 그로인해 바사(Persia)왕 아닥사스다(Artaxexes) 때에 성전건축을 중단하라는 조서가 내려졌습니다. 이 이닥사스다는 고레스 2세의 아들로서 캄비세스 2세(CambysesⅡ)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아닥사스다의 죽음 후 제국의 왕위계승 문제로 혼란이 있었습니다. 결국 다리오(Darius)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그가 성전건축을 허락했습니다. 이 예언은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을 포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눅2:13-15, 마24:29-31, 벧후3:10).
7절에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는 영원히 중단될 것 같았던 성전재건이 다시 이루어져 완공되게 하므로 모든 나라들이 놀라게 할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는 이방인들이 성전으로 보배로운 예물들을 가지고 올 것을 가리킵니다 (사60:5).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교회공동체를 이룰 것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는 솔로몬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던 것처럼 스룹바벨성전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왕상8:10-11).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므로 이루어진 교회공동체에 성령님의 임재와 이방인들의 편입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할 것에 대한 예언이 포함되어있기도 합니다.
③하나님이 은과 금에 대한 주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8절).
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어려운 삶으로 인해 성전건축이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성전이 금이나 은 같은 것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주로서 세상의 모든 금은보화에 대한 주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성전에 필요한 금은보화를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재원을 조달하여 완공되도록 역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④하나님이 나중 영광을 더 크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9절).
9절에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이전에 있었던 솔로몬성전에 비해 새로 재건하려는 스룹바벨성전은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여 실망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전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클 것이라고 했고 평강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전 영광’은 이전에 있었던 솔로몬성전의 영광을 가리키고 ‘나중 영광’은 새로지어질 스룹바벨성전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평강’(שלום)은 하나님이 스룹바벨 성전에 주실 안전과 평안과 기쁨을 가리킵니다. 사실 외부적으로 보면 솔로몬성전의 영광이 훨씬 컸습니다. 크기도 컸지만 재료도 최고급재료로 지었습니다. 두로에서 가져온 대리석과 레바논에서 가져온 백향목으로 지었습니다.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금,은,놋,철,보화로 장식했습니다 (대상29:2-7). 스룹바벨성전은 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하나님이 임재하여 영광을 충만히 나타내므로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더욱 많이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로 세워질 교회공동체들도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로 구원과 영생에 관한 영적인 은혜가 충만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적 의미도 있습니다 (요14:27).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순종하려하거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 할 때 의욕을 상실케 하는 요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외적인 방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적인 실망과 두려움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사야41: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분으로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시편24:1에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계4:11).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3에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했고, 갈라디아서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2. 순종에 대한 축복 (10-23절)
10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6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20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1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바사(Persia) 왕 다리오 2년 9월 24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10절). 이는 유다 백성들이 학개의 선포를 듣고 성전재건 공사를 시작한 6월 24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때입니다 (1:15).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로 하여금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해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11절). 언약민의 타락을 의식적 부정규례를 통해 알려주기 위해 제사장에게 그와 관련한 율법에 대해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물으라고 한 것은 율법에 대해서는 제사장들만큼 잘 아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사장’(הכהנים)은 복수로서 이는 당시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던 어떤 제사장들이라도 능히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게 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부정했다고 했습니다 (12-14절).
12절에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곧 고기 자체가 본질적으로 거룩한 고기라는 의미가 아니라 제사의식을 통해 거룩한 것으로 인정한 고기를 의미합니다. 사람의 옷자락에 싼 고기에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나 기름 등의 다른 음식물이 닿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거룩한 고기’(בשר קדש)는 제사의식을 통해 거룩해진 고기를 가리킵니다. ‘떡, 국, 포도주, 기름’ 등의 음식물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물들입니다. ‘성물’(קדש)은 의식적으로 거룩해진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학개 선지자의 질문은 제사의식을 통해 의식적으로 거룩한 고기에 음식물들이 접촉되었다고 해서 그 음식물들이 거룩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제사장들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학개 선지자의 질문을 듣고 결코 그렇게 될 수는 없다고 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이 다른 것에 닿았다고 해서 그 닿은 것들이 거룩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은 다른 것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다 백성이 언약백성으로서 거룩한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생활까지 거룩하게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3절에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시체를 접촉하여 의식적으로 부정해진 자가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나 기름 등의 다른 음식물을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시체’는 의식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그것을 접촉한 사람도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레22:4-6, 민19:11-16). 그래서 시체를 접촉한 자는 부정한 자인데 그 부정한 자가 떡, 국, 포도주, 기름 등의 음식물을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느냐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당연히 부정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부정한 것은 그것이 다른 것에 닿으면 부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것은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다 백성이 성전재건에 대한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에 그 모든 생활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4절에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거룩한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그들의 잘못된 생활까지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고,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은 그들의 생활까지 부정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보다 자기들만 위했습니다. 하나님을 성전재건 명령을 순종하지 못했고 자기들 집을 꾸미는 데만 열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기에 부정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때에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삼상15:22, 요14:21, 요일5:3). 특히 시대마다 개인마다 요구하는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하는 명령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②전에는 재앙을 내렸으나 이제는 복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15-19절).
학개는 이어서 성전재건을 중단했던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는지 말합니다. 15절에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18절에는 "오늘부터 이전(以前)을 기억하라 9월 24일 곧 여호와의 성전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개역성경에는 '9월 24일'과 '여호와의 성전지대를 쌓던 날'을 동격인 것처럼 나와 있으나, 사실은 '오늘부터'와 '9월 24일'이 동격을 이루는 문장입니다 (from this day onward, from the twenty-fourth day of the ninth month -RSV, From this day on, from this twenty-fourth day of the ninth month -NIV). 다시 말하면 오늘부터 곧 9월 24일인 오늘부터 바사(페르시아)에서 귀환하여 성전 재건을 하기 위해 성전 터의 기초를 놓았던 때(B.C.537년) 이후를 기억해 보라는 것입니다. 성전 터만 잡고 16년 동안 성전재건을 중단하고 있던 때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16절에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성전재건을 중단하고 있을 때는 20고르 곡식더미에 이른즉 10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50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20고르뿐이었었다고 했습니다. ‘고르’(cor)는 고체나 액체의 부피를 재는 측정단위로서 호멜과 동일한 단위로 추정됩니다 (레27:16, 겔45:11-14). 1고르는 약 220리터로서 약 12말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원어에는 ‘고르’가 없고 ‘곡식더미’(ערמת)로만 나와있습니다. 추수를 한 다음에 20개의 곡식더미를 쌓았지만 그것을 탈곡해보니 겨우 10개의 곡식더미에서 나오는 곡식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절반밖에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포도즙 틀’(יקב)은 포도를 짓이겨 즙을 짜기 위해 파서 만든 통(구덩이)를 말합니다. 50통이 나와야 할 포도즙이 20통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절반도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17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소출을 얻지 못한 것은 그들이 성전재건을 중단하고 자기들 일에만 열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재앙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곡식이 마르게 하는 재앙이었습니다.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שדפה)은 식물이 마르는 마름병을 말합니다. 둘째는 깜부기 재앙이었습니다. ‘깜부기 재앙’(ירקון)은 식물이 썩어 곰팡이가 피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우박 재앙이었습니다. ‘우박’(ברד)은 하늘에서 떨어진 얼음덩어리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같은 재앙을 내린 것은 그들이 정전재건을 중단하고 자기들 삶에만 몰두하면서도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신11:17, 왕상17:1).
19절에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곡식 종자’(זרע)는 씨나 열매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는 말은 곡식열매와 과일열매가 창고에 남아있지 않지 않느냐는 의입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 가뭄과 병충해와 재해로 인해 곡식을 평소처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부족하여 곡식창고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각종 과일나무들도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해 수확이 적었기 때문에 과일들도 과일창고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복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מן היום הזה)은 직역하면 ‘이 날로부터는’ 혹은 ‘그 날로부터는’입니다. 곧 성전재건 공사를 다시 시작한 때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은 성전재건 공사를 다시 시작한 때부터 복을 주시기 시작했고 앞으로는 계속 복을 주실 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명령을 거역하고 자기 생활에 급급할 때는 하나님이 징계를 내려 더욱 힘들게 했지만 돌이켜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을 자기생활에 몰두할 때 자기생활이 풍족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궁핍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므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므로 더욱 풍성하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28:1-2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고 했습니다.
③하나님이 스룹바벨을 붙들어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20-23절).
20절에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그 달 이십사일’은 다리오왕 2년 9월 24일을 가리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또 임한 것입니다. 이 날짜는 10절에 나온 날짜와 같으나 그때 말씀은 유다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고, 본절 20절은 유다총독 스룹바벨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21절에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엄청난 변혁을 일으켜 온 세상을 떨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 절에 나옵니다. 22절에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방 제국의 왕권과 권세를 멸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학개 선지자 당시 패권을 가진 제국은 바사((Persia)였습니다. 아닥사스다(Artaxexes)왕이 죽은 후 왕실에서는 권력장악을 위한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그에 따라 바사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속국들에서도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결국 다리오(Darius)가 왕이 되어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다리오왕이 내분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권세자들과 군사들이 죽임을 당했고 속국들에서도 통치자가 교체되면서 많은 권세자들가 군사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2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 총독 스룹바벨을 택하여 세우고 인장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장’(חותם)은 소유자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말합니다. 당시 왕들은 자기 이름을 새긴 인장을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다녔습니다. 그 인장반지는 왕의 권세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스룹바벨을 인장으로 삼을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스룹바벨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대상으로 삼을 뿐 아니라 그를 권세있게 붙들어 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스룹바벨의 조부 여호야긴왕에게 저주를 선언했었습니다. 예레미야22:24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스룹바벨에게는 그 반대로 축복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대적들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스룹바벨을 통해 성전재건 사역을 완성하여 유다를 온전히 회복시키려는 의도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구속사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나라를 세우실 것을 예언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종말에 완성적으로 이루실 내용이기도 합니다.
<結言>
학개 선지자 시대의 유다 백성들은 성전건축이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어 있었는데도 성전재건에는 신경을 안 쓰고 자기 생활에만 바빴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로 생활을 더욱 곤고해졌습니다. 하지만 학개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성전 재건을 시작하자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미래에 열국을 파하고 유다를 높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사명을 감당할 때 심령의 만족을 얻고 하나님이 강하게 하므로 권세가 생기는 것입니다. 철장으로 만국을 심판하는 권세가 나타납니다 (계12:5,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