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말라기1:1-14
<題目> 하나님의 사랑
<序言>
본 서는 12소선지서의 마지막 선지서이며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입니다. 본 서가 기록될 당시는 포로기 이후 느헤미야에 의해 성전과 도시들이 재건되고 백성들은 포로시대의 고통을 잊고 인간적인 안락과 희망에 사로잡혀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점차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때에 말라기 선지자는 백성들의 무지와 무감각을 각성시켜 신앙적인 회복을 할 수 있도록 설교합니다. 본 장의 내용구조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논쟁(1-5절), 제사장들의 죄에 대한 고발(6-14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논쟁 (1-5절)
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귀환과 함께 성전 재건하고 성벽을 중건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성전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준수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언약인 축복인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신7:12-15, 28:1-7, 사54:1-17, 학2:6-9), 기대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율법을 준수하지 않는 침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에서가 형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서부터 내려오는 언약적 축복이 장자 에서에게 가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서에게 가지 않고 야곱에게 가게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적 계대로 복중에서부터 야곱을 택한 것입니다 (창25:23). 처음부터 야곱을 선택(選擇.Election)하고 에서는 유기(遺棄.Reprobation)했다는 것입니다 (사43:4-5, 롬9:13). 그래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애굽에서 구원해주고 (신7:8) 광야에서 인도해주고 (신8:4,16, 렘31:3) 가나안 땅을 주고 성전과 제사와 율법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 때문에 바벨론(바빌로니아)에 사로잡혀 가기는 했지만 아주 버리지 않고 언약적 백성으로서의 가격을 갖추게 하려고 회개와 연단의 과정을 거쳐 돌아오게 했고 (렘29:11,17, 겔11:16), 성전을 건축하게 하고 성벽을 중건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미래에 그 후손 가운데서 메시야(그리스도)를 보내 주고 그 후손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어 온 땅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창13:15-16, 갈3:16). 하지만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에돔'은 '붉음'의 뜻으로 에서의 별명이었음)은 그와 같은 사랑을 쏟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육신적인 목적으로 살아갈 때 유다 백성에게 쏟은 사랑을 주지 않아서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인간적인 의지와 노력으로 다시 일어나려 할지라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푼 은혜와 같은 은혜를 베풀지 않아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언약적 축복의 대상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 죄를 짓다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족속이 에돔 족속의 결국을 보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족속만이 아닌 다른 모든 족속에게도 관여하신 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 대해서도 야곱 족속인 유다 백성에게 베푼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자연인으로 본다면 우리는 사단을 섬기던 자들이고 세상 풍속을 좇아 살던 자들이고 욕심을 따라 살다가 죽어 지옥에 갈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세 전에 사랑의 대상자로 여겨 무조건적으로 선택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대속해 주셨고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믿어지게 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고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엡1:4-5, 2:1-7, 롬5:8, 8:32). 살아가면서 범죄할 때에도 징계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 회개와 연단을 위한 조치입니다 (히12:6,8). 징계 중에도 죄대로 다 징계하지 않고 긍휼을 베풉니다. 능히 이겨 나갈 수 있도록 피할 길을 주십니다 (고전10:13). 상황에 대해 섭리를 해 주시기도 하고 성령의 감동과 말씀의 은혜를 주어 이기게 해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목적을 가지고 인도해 갑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중보기도를 하시고 (요일2:1), 성령님이 탄식으로 간구합니다 (롬8:26).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변치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2. 제사장들의 죄에 대한 고발 (6-14절)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사장들의 타락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습니다. 제사장 직분 특히 하나님께 제사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습니다. 십계명중 제 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입니다 (출20:7).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은 헛되이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성 없이 제사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①공경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6절).
6절에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함이나 두려워함이 없이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들들은 아버지들을 공경함이 마땅하고 종들은 주인들을 두려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함이나 두려워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창조하고 인도하였기 때문에 유다 백성의 아버지이며 (출4:22-23, 신32:6, 사1:2, 호11:1-2), 유다 백성을 주권을 다스리기 때문에 유다 백성의 주인입니다 (민12:8, 시116:16, 사42:1, 53:11, 마24:46, 25:21).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마땅히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다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은 공경함도 두려워함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직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진정성이 없이 행한 것입니다. 그러니 유다 백성들도 당연히 신앙생활에서 진정성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사야 선지자 때 백성들과 같이 행한 것입니다. 이사야29:13에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때에 바리새인들도 그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제나 기도를 할 때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했습니다 (마6:1-5).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예배를 통해 나타납니다. 예배 드리는데 있어서, 찬양하는데 있어서, 기도하는데 있어서, 말씀 순종하는데 있어서, 사역하는데 있어서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그런 모든 영역에서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줄 알고 범죄하지 않으려 해야 하며 범죄했을 때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②흠있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7-8절).
7-8절에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 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고 했습니다. 13-14절에도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단에 더러운 떡을 드렸습니다. 곧 제물로 훔친 물건과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 등 흠있는 것들을 드린 것입니다. 흠없는 제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흠없는 것들이 있으면서도 흠있는 것을 드린 것입니다. 율법에 제물은 흠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했는데 (레22:20,25, 신15:21), 그들은 흠없는 것은 자기들이 취하고 하나님께는 흠있는 것만 드린 것입니다. 흠있는 것들은 총독들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지방 통치자에게 주는 선물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더 못하게 여긴 것입니다. 우리는 흠있는 것을 드려서는 안됩니다. 좋은 것은 자기가 다 사용하고 쓸모 없는 것만 드린다면 하나님을 더럽힌 것입니다. 성미를 드릴 때 마당쌀(싸래기)를 드리거나 헌금을 드릴 때 자신이 쓸데 다 쓰고 남은 것을 드리거나 봉사를 할 때 자신이 다 쓰고 남은 시간에 하면 안됩니다. 로마서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활 자체가 제물로 드려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온전치 못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더럽힌 것입니다. 주일성수에 있어서 예배에 한 번만 참석하고 나머지는 자기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흠있는 신앙생활입니다 (사58:13). 자신의 상태를 보지 못하는 것, 회개나 열의가 없는 것, 인격적 균형을 갖지 못한 것 등이 흠있는 생활입니다 (요9:39-41, 계3:17-18, 19, 벧후1:5-9).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어서 온전한 제물이 된 것을 생각하고 그를 본받아야 합니다.
③제사를 번거롭게 여겼습니다 (13절).
1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사장 직분과 제사 사역을 싫어했습니다. 귀찮게 생각하고 번거롭게 생각하고 코웃음쳤습니다. 마지못해 했고 멸시했습니다. 3:14-15에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잘된다고 하더니 잘 된 것은 없고 도리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복을 받는다고 하더니 도리어 재앙만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무성의하게 형식적으로만 제사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기도하는 것, 봉사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히브리서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행2:46). 예배와 헌물을 드림에 있어서도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고후9:7).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6,12절). 그래서 하나님이 저주를 한다고 했습니다. 14절에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9-11절에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첫째, 제사와 제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8, 10, 12절). 둘째, 긍휼을 구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9절). 셋째, 성전 문을 닫겠다고 했습니다 (10절). 넷째, 이방 백성을 통해 영광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11절).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와 기도와 헌금과 봉사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에게 긍휼을 구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어 다른 사람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結言>
사무엘상2:30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자신을 멸시하는 다를 멸시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 민족을 통해 영광을 받고 있는 현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와 기도와 헌금과 봉사에서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거두시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영광받을 것입니다 (에4:14, 계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