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말라기3:1-18

<題目> 심판의 임박과 회복 약속

 

<序言>

  지금까지는 제사장과 백성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언급했습니다 (2:1-16). 본 장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며 악의로 가득찬 질문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조롱하는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선언합니다 (2:17-3:6). 또한 이 심판은 백성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했기 때문에 내려진 것임을 밝히면서 동시에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회복의 소망이 주어짐을 밝힙니다. 내용구조는 심판주로 오실 메시야(1-6절), 불성실한 십일조(7-12절), 기념책에 기록될 의인(13-18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심판주로 오실 메시야 (1-6절)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니라'는 메시야(그리스도)가 임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가 임하여 구원해 줄 것을 고대했는데 그대로 메시야가 임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언약의 사자'로 언급된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특히 새 언약의 중보자 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렘31:31-33, 히12:24). 그런데 그리스도의 임하심에 대한 이 예언은 이중성을 가진 예언입니다. 먼저는 그리스도의 초림을,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한꺼번에 예언한 것입니다.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는 그리스도가 임하기 전에 그 길을 준비하는 선지자가 올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초림을 준비시키기 위해 회개 운동을 일으킨 선지자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는 바 이사야 선지자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예언했던 세례 요한을 말합니다 (사40:3, 마11:10, 막1:2, 눅7:27).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와 사역을 할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세례 요한처럼 사역할 자들이 나올 것입니다 (계11:3-6).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리스도가 임할 때에 두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의로운 자들을 구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구원과 심판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초림 때에도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그를 부인하는 자는 심판이 선언 되었습니다. 재림 때에도 택자를 구원하고 불택자를 심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택자에게는 구원자가 되는 것이고 불택자에게는 심판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말라기 당시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해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고 하며 또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힐문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예언한 말씀입니다 (2:17). 우리의 삶에서도 부분적이나마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를 반드시 보존하고 죄악으로 살아가는 자를 벌하시므로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임을 드러내십니다.


 

          2. 불성실한 십일조 (7-12절)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주와 재앙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말씀에 대해 의심만했습니다 (1:2, 2:17, 3:14-15). 그러나 선지자는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곧 십일조와 봉헌물을 온전히 드리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십일조를 하여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면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메뚜기를 막아 주어 곡식과 포도 농사가 잘되게 하고 땅이 소원하던 대로 기쁨이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방인들도 그들을 향해 복되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봉헌물은 성전 곳간이 제사장들의 방에 두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먹게 됩니다 (느13:12, 대하31:11).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리지 않으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그 직분을 떠나게 되고 (느13:10), 그렇게 되면 성전 제사와 율법 교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국가의 신앙 정체성이 바로 서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와 헌물은 국가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유일 신앙을 유지시켜 주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십일조를 하는 것을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근거가 되므로 오늘날에도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명령 때문입니다. 신명기14:22에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본문 10절에도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십일조 제도가 구약시대의 제도이기 때문에 신약에는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물론 구약의 율법은 신약시대에 폐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도 유효한 율법이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폐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기준은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그것을 인정했느냐 인정하지 않았느냐에 있습니다. 구약의 십일조 제도는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인정한 제도입니다. 마태복음23:23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 재료들까지도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면서도 십일조의 정신은 지키지 않은데 대해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일조의 정신을 지키지 않은데 대해 책망한 것은 구약의 십일조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십일조 제도를 온전히 지킬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요14:21).

 

  둘째, 하나님과 관계 때문입니다. 십일조의 근본정신은 에덴동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각종 나무 실과는 임의로 먹을 수 있게 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 나무 실과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는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창2:16-17).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동산 어디에 있든지 동산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하고 동산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고 허락한 모든 실과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함입니다. 십일조 제도도 같은 원리입니다. 시편24:1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게 한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기업이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소득은 하나님이 얻게 하신 것이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십일조는 '10'이라는 소득이 하나님 것이고 하나님이 주셨음을 인정하고 그 예표로 '1'을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현재에 얻은 모든 소득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정하고 소득을 얻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며 미래에도 소득을 주실 것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입니다. 곧 십일조 제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지속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역 때문입니다. 신명기14:22-29에 보면 십일조 규례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당시 십일조의 실제적 목적과 관련된 종류는 3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였고 (22절), 둘째는 감사제를 위한 십일조였고 (23-27절), 셋째는 구제를 위한 십일조였습니다 (28-29절). 매년 소득의 십분의 일을 떼어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로 드렸고 또 십분의 일을 떼어 3년을 주기로 해서 1-2년째의 것은 감사제를 위한 십일조를 드렸고 3년째의 것은 구제를 위한 십일조로 드렸던 것입니다. 결국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의이조를 드리게 된 셈입니다.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생활비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전 사역에 전무하도록 기업(토지)을 주지 않았고 대신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드리는 십일조로 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민18:21-24). 이는 성전 제도가 지속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감사제를 위한 십일조는 하나님께 감사제로 드리고 음식으로 가족과 레위인과 함께 먹는데 사용하게 했습니다. 감사제의 식탁교제는 하나님 앞에서 가정의 의미와 사명을 생각하며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유익했을 것입니다. 구제를 위한 십일조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과 레위인과 함께 배부르게 먹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전체가 하나님의 공동체라는 전제 하에 공동체의 일원 가운데 소외받을 만한 사람들과 식탁교제를 하며 돕는 것이었습니다. 객과 고아와 과부도 하나님의 언약을 가진 자로서 언약적 축복 안에 들어있는 일원임을 확인시켜 주는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곧 십일조 제도는 성전과 제사 사역이 잘 유지되고, 가정과 국가 공동체가 잘 유지되게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신약시대에 드리는 십일조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개인이 구원받고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성장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우고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회를 세계에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성전과 예배와 구제와 전도와 선교가 필요합니다. 현대의 십일조는 교회 유지와 성장을 위해 사용되고 예배와 심방을 위해 사용되고 구제와 전도와 선교에 사용됩니다. 십일조가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런 모든 사역이 위축을 받거나 사역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원시적으로 볼 때 십일조를 하지 않는 교회는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현대에 스스로 지성적이라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배반한 사람들은 십일조 제도를 부정합니다. 유럽이나 미주 지역의 목회자들은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는데 유난히 한국 목회자들만 십일조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주일성수와 함께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으니까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교회가 텅 비고 관광명소로 전락한 것 아닙니까? 미주 지역의 교회들은 십일조를 우리처럼 강조하지 않아도 교회가 유지됩니다. 미국인들은 기부문화가 발달하여 자신이 죽을 때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 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두 교회에 헌납합니다. 그래서 재정이 유지됩니다. 한국인은 유교적 문화 배경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죽을 때 모든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줍니다. 매달 소득의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 조차도 땅이나 집을 팔면 그에 대한 십일조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매월 소득의 십일조가 드려지지 않는다면 교회가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 교회들도 점점 쇠퇴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부흥하는 교회들은 주일성수와 함께 십일조를 강조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많이 소개된 미국 LA에 있는 새들백교회(릭워런)같은 부흥하고 있는 많은 교회들은 주일성수와 함께 십일조를 강조하고 있고 심지어는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은 회원(등록교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한국교회는 기독교 역사 100년 밖에 안되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흥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두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고 선교비는 제일 많이 보냅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주일성수와 함께 십일조 제도를 철저히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했습니다.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신다'는 말은 필요를 더 이상 느끼지 않을 정도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에 이어지는 11~12절에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신명기28:1-13에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향하면 성민으로 삼아 복을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과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적들이 일어나 치려 하면 그들을 이기게 해주고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일곱 길로 도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부어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게 하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9:7-9에는 하나님께 드리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은혜를 넘치게 받게 되며 더욱 넘치는 물질을 얻게 되며 그 의가 영원히 남게 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28장에 보면 야곱이 나옵니다. 야곱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형의 낯을 피해 아버지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홀로 외삼촌이 사는 하란 지방의 밧단아람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마음 속에 무섭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가다가 무슨 일을 만날런지 외삼촌 집에는 무사히 도착할는지 외삼촌이 반갑게 맞아줄런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런지 고독함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그는 길을 가다가 루스(벧엘)라는 지역에서 한 데서 돌 베개를 하고 잤습니다. 하나님이 꿈에서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 주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의 대표자가 되게 하겠다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었던 언약적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깬 다음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해 주신다면 이 곳에 제단을 쌓아 성전이 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창28:21-22). 하나님은 야곱을 외삼촌 댁에 무사히 도착하게 하고 그 곳에서 사는 동안에 거부가 되게 하여 다시 돌아오게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철저히 해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짧은 기간에 세계 10위 권에 드는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G20을 유치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들 때 십일조 헌금이 무슨 말입니까? 하는 질문을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힘들 때일수록 더욱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힘든 상황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고 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일수록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주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피로 값 주고 세운 교회운영과 교회사역과 복음사역과 선교사역에 최고의 가치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대주제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환난에서 벗어나 평안케 해 달라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수 밖에 없는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암담한 미래의 암시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복되게 해 달라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밖에 없는 근거를 보여야 합니다.


 

          3. 기념책에 기록될 의인 (13-18절)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완악하고 강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익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 헛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위해 금식하며 회개하는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행자가 번성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오히려 잘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악인이 잘되고 의인이 못 된다는 것은 피상적인 안목으로 본 우매한 결론입니다.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매한 힐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들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의롭게 사는 것이 헛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심판의 날에 의롭게 사는 자들을 소유로 삼고 아들처럼 아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인과 악인의 결과를 분명히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소유로 삼는다는 것은 감추어 둔 보화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지만 심판의 날에 반드시 하나님만 섬긴 자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의인의 의로운 행위를 기념책에 기록해 두었다가 그대로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여러 책이 있습니다. 구원계획서(계5:1), 생명책(계3:5, 13:8, 17:8, 20:12,15, 21:27), 기념책(말3:16), 행위의 책(계20:12)이 있습니다. 구원계획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기록된 책이고, 생명책은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고, 기념책은 구원받은 자들의 의로운 행위가 기록된 책이고, 행위의 책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과 악한 행위가 기록된 책입니다. 대부분의 하나님 말씀대로 의롭게 사는 것이 헛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킨 소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의로운 행위를 기념책에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 말씀대로 산 사람들의 의로운 행위를 반드시 기억해 두었다가 그대로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結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인들의 잘됨과 의인들의 못됨을 보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말씀을 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회 현상을 보면 마치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반드시 의인은 구원하고 악인은 심판합니다. 우리가 능히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심판합니다. 그리고 의인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산 것을 반드시 보상해 줍니다. 하나님 나라에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책이 있겠습니까 마는 마치 책에 기록한 것처럼 의로운 행위를 반드시 기록했다가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므나 비유에서 말해주듯이 신앙인격이 자라난 만큼 상을 주시고(눅19:12-26) 달란트 비유에서 말해주듯이 사명감당을 한만큼 상을 주십니다 (마25:14-30). 요한계시록7:17에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8:18에는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