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민수기 22:1-41

<題目> 발락의 발람 초청


<序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에돔과 모압과 암몬 족속들의 땅을 지나 요단 동편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서 선제공격을 가해온 아모리와 바산 족속을 물리치고 모압 평지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요단 강만 넘으면 요단 서편 여리고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낀 모압왕 발락과 동조자 발람의 어리석은 행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22-2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한 꾀를 헛되게 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이용하시는 모습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언약 백성에 대해 가지시는 목적과 행하시는 섭리의 역사가 어떤 것인가를 엿보게 됩니다. 본장의 구성은 모압왕 발락의 초청(1-6), 선지자 발람의 거절(7-14), 모압왕 발락의 두번째 초청(15-20), 선지자 발람의 응함과 나귀의 책망(21-30), 여호와 사자의 책망(31-35), 모압왕 발락의 발람 환대(36-41)입니다.

 

<本論>

         1. 모압왕 발락의 초청 (1-6)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2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5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동편에서 아모리왕 시혼(Sihon)과 바산왕 옥(Og)의 공격을 물리친 후 모압 평지에 진(陣)을 쳤습니다. 그 곳은 요단 서편에 있는 여리고 성의 맞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모압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두려워 하여 심히 번민했습니다. 그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모리 족속을 정복한 일을 보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심히 많은 연고로 그들을 쫓아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압도 이스라엘에게 정복 당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소가 밭의 풀을 뜯는 것처럼 자신들의 사면을 탈취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디안 장로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모압 주변 족속의 족장들과 동맹을 하고 그들과 연합으로 이스라엘을 물리칠 계획을 수립하려는 것입니다. 그 결론은 이스라엘은 강하므로 신(神)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물리치자는 것입니다. 그 일에 발람이라는 선지자를 기용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모압은 이스라엘에 대한 위험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지리적으로 아모리 보다 아래 위치로서 이스라엘이 이미 통과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압 족속은 롯의 후손이기에 (신2:9, 창19:37), 하나님이 모세에게 공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에돔 족속이 에서의 후손이기 때문에 공격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와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인근 아모리 족속을 멸한 것을 보고 자신들도 공격하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니 전쟁에서 승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 내용을 접한 주변국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사실 아랏 왕과 아모리 왕과 바산 왕이 선재 공격을 해 온 것도 심리적으로 이스라엘을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21:1-3, 21-35). 이스라엘을 이들만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요단 서편 족속들도 두려워 했습니다 (수2:8-11).

 

  이스라엘의 주변국들이 이스라엘이 두려워 질 때 세가지 형태로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군사적으로 선재 공격을 합니다. 아랏 왕과 아모리 왕과 바산 왕이 이에 속합니다. 두번째는, 충돌하지 않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공격합니다. 모압왕이 이에 속합니다. 세번째는, 방어하는 자세로 성문을 굳게 닫습니다. 여리고성이 이에 속합니다. 영적 전쟁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리고 승리할 때마다 원수들은 두려워 합니다. 그들은 두려워 하므로 선제 공격을 합니다. 거꾸로 그들의 공격이 있는 것은 우리를 두려워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두려워 한다는 것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계12:12). 그러므로 공격이 있을 때 두려워 말고 오히려 힘을 얻어 담대히 목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2. 선지자 발람의 거절 (7-14)

 

  7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8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숙하니라

  9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10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11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12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13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전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모압왕 발락은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 지 의논하고, 상당한 신적 권위를 가진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을 신(神)의 이름으로 저주하게 하기로 했습니다. '발람(Balaam)'은 복술자로서 혼합 종교주의자입니다 (신23:4, 수13:22).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족장)들은 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므로 복술의 힘을 이용하려 했을 것이고 복술에 뛰어난 발람을 추천했을 것입니다. 모압왕  발락은 그 방책을 좋게 여시고 발람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강변 브돌에 사는 발람에게 예물을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브돌은 모압 평지에서 640km 정도 떨어진 메소포타미아 지방 유브라데 강변 곧 지금의 이라크 유프라테스 강 유역입니다.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발람에게 발락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 내용은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였습니다 (5-6, 10-11절).

 

  발람은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 하루를 머물게 하고 하나님께 모압왕 발락의 청을 들어주어야 할지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왕 발락에게 가지도 말고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에 대해 가진 목적을 생각할 때에 이스라엘은 이미 복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고 복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백성입니다. 발람이 그 말씀을 듣고 다음날 아침에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에게 가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그들은 발락에게 돌아가 그대로 전했습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참 선지자라면 발락의 요청은 하나님께 물어 볼 이유도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물은 것은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엇기 때문입니다. 그는 발락이 보낸 '복술의 예물'(복술의 대가)을 가지고 왔을 때 그 예물에 마음이 흔들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대적이 물질이나 명예나 영광으로 미혹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미혹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4:1-11). 이에 대한 바울의 경고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입니다 (딤전6:9-10).

 


          3. 모압왕 발락의 두번째 초청 (15-20)

 

  15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16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하건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17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모압왕 발락은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 한 나머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선지자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신의 힘으로 저주해 달라고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발람에게 사신들을 보냈습니다. 그 사신들은 복술의 댓가를 가지고 발람에게 가서 발락 왕의 요청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발람 선지자는 그 말을 듣고 하나님께 물렀습니다. 하나님은 발락 왕에게 가지도 말고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12절). 그래서 발람 선지자는 사신들을 그대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발락 왕이 발람 선지자에게 재차 사신들을 보냈습니다. 두번째 보낼 때에는 더 높은 사신들을 더 많이 보내어 더욱 귀한 대가를 약속했습니다. "아무 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고 했습니다 (16-17절). 발람 선지자는 다시 하나님께 물어 보고 대답하겠다고 하고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발락 왕에게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가서 하나님이 이르는 말만 하라고 했습니다.

 

  발람이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12절) 하나님께 또다시 묻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고 싶어했던 것은 발락 왕이 제시하는 물질과 명예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후서2:15-16에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유다서1:11에도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가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발람이 가는 것을 기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풍자적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Calvin). 발람이  가기를 소원하고 거듭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자유 의지대로 하도록 방임한 것입니다. 이미 마음의 소원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의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가는 것을 허락한 것이고 차선책으로 그 곳에 가서도 하나님이 지시하는 말만 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사무엘상에서 사사시대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세워 달라고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바가 아니지만 허락하시고 차선책으로 왕의 제도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려고 했던 의도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발람의 기도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발람처럼 욕심으로 기울어지면 분별력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풍자를 잘못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잘못 행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오류를 범합니다. 성령 운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중보기도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그 사역의 훈련을 세 단계로 나눈다면 첫째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것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것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느끼는 것과 해석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 상태에 좌우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해주는 표현도 영향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 하더라도 그 성경 활용과 해석도 마음 상태에 영향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알기 위해서는 욕심을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선한 양심을 따라 찾아야 합니다.   

 


          4. 선지자 발람의 응함과 나귀의 책망 (21-30)

 

  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4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6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청하기 위해 사신들을 보냈으나 발람이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더 많은 약속과 함께 더 높은 지위를 가진 귀족을 보냈습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가라고 했습니다. 발람은 아침 일찍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모압을 향해 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길에 칼을 빼 들고 서 있었습니다. 나귀가 그 모습을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 갔습니다.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게 하려고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호와의 사자가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서서 막자 나귀가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담에 비벼 상하게 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길에 서자 나귀가 엎렸습니다. 발람은 화가 나서 지팡이로 나귀를 세번 때렸습니다. 그러자 나귀가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라고 했습니다. 발람이 자신을 거역한 연고라고 하자 나귀는 다시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고 했습니다. 발람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나귀는 말은 하나님의 책망이었습니다. 베드로후서2:15-16에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은 길로 행하는 발람을 나귀를 통해 책망했으나 발람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욕망에 사로잡히면 이처럼 분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욕망에 끌려 그릇된 길을 갈 때에 믿음없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있을 때 돌이키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5. 여호와 사자의 책망 (31-35)

 

  3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32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33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34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35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발람이 나귀를 타고 모압에 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길을 가로 막자 나귀가 밭으로 가기도 하고 몸을 담에 비비기도 하고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때문에 발람은 나귀를 지팡이로 때렸습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는데 발람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발람도 보게 하자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머리를 숙여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패역한 길을 막으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만일 나귀가 피하지 않았으면 발람을 죽였으리라고 했습니다. 발람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이 범죄했다고 고백하고 기뻐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압왕 발람에게 가되 지시하는 대로만 하라고 했습니다.  

 

  발람이 모압왕 발락에게 가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12절). 그러나 하나님이 가라고 했습니다 (20절). 그것은 발람이 자기 소욕대로 하는 것을 방임하는 차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더라도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만 하라고 했습니다.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에 끌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발람은 하나님의 응답으로 알고 모압으로 향했었습니다 (유1:11). 하나님은 나귀를 통해 책망했습니다 (벧후2:15-16). 나귀가 책망할 때 깨달을 기회였으나 깨닫지 못하자 또 여호와의 사자가 책망했습니다. 선지자가 나귀만도 못한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나귀가 피하지 않았으면 발람을 죽였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패역한 길을 가는 것 때문이라고  책망했습니다. 발람이 범죄했다고 고백했지만 여호와 사자 앞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고 불가항력적으로 범죄에 대해 인정한 것일뿐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사자도 하나님이 두번째 말씀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했습니다.

 

  결국 발람은 발락왕에게 가고 그의 강압에 의해 자신의 꾀를 알려 주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범죄하여 멸망당하게 하고 맙니다 (31:16). 하나님이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많이 주었으나 그는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마치 사울왕과 같습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쫓아다니다가 엔게디 황무지 굴에서 다윗이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낮잠을 잔 일이 있습니다. 다윗이 가만히 가서 사울왕의 옷깃을 잘라와서 고함치며 사울왕의 신하를 책망했습니다. 그 때 사울왕이 눈물을 흘리면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하고 후에도 계속 다윗을 죽이려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회개를 하고 바른 길로 돌이키는 자가 복있는 자입니다.  

 


         6. 모압왕 발락의 발람 환대 (36-41)

 

  36 발락은 발람이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고

  37 발락은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

  38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39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

  40 발락이 소와 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 한 고관들을 대접하였더라

  41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발락은 발람이 모압에 온다는 말을 듣고 국경 지역에까지 마중을 나가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발람을 존귀케 하겠다는 인사를 나눈 후 발람을 데리고 기럇후솟에 가서 우양(牛羊)을 잡아 대접하고 이스라엘 진(陣)이 보이는 바알의 산당에 올랐습니다. 기럇후솟에서 우양을 잡은 것은 신(神)에 대한 기원 제물로서(Keil) 발람의 신(여호와)의 마음 을 돌려 보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바알'은 모압과 아모리인들이 섬기는 남신(男神)으로서 태양신을 말합니다. 당시 바알 신당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진이 끝까지 보이는 바알 신당으로 데려간 것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기 위함인데 고대인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듯이 저주의 대상을 바라보고 저주해야 효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Hengstenberg).

 

 발람은 발락이 환대할 때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나귀 사건에서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축복한 족속이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따라야 하는 위치에 있음만을 말한 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람은 결국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는 꾀를 알려 주므로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망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세속적인 물질도 얻고 여호와 하나님 말씀도 지키려는 사람의 결과입니다. 물질을 따라가면 아무리 말씀대로 살려고 해도 결국 둘 다 잃고 맙니다. 디모데전서6:9-10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는 자세를 가질 때에 둘 다 얻게 됩니다. 혹 하나님 떠나서 물질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곤고와 사망 길이고 하나님만 섬기다가 물질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길은 평안과 생명의 길입니다.  

 

  <結言>

  발람은 신적 권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길을 갔습니다. 그것은 물질에 대한 욕망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육적 탐욕에 눈이 멀어지면 분별력을 상실하고 양심이 둔해지게 되어 하나님의 간섭도 거부합니다. 그래서 사단은 자주 물질 문제로 시험합니다. 그래서 늘 마음 속에 있는 육체적 욕망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요한일서2:16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고, 골로새서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