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민수기 25:1-18

<題目> 바알브올의 사건


<序言>

   브돌 술사 발람은 모압왕 발락의 강청에 의해 하나님의 동의를 얻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으나 네 번이나 하나님의 강권하는 역사로 오히려 축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23-24장).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하려는 방책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우상숭배 죄에 빠지게 합니다. 25장은 발람의 꾀에 의해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1-5절은 우상숭배자에 대한 처단에 대해, 6-15절은 비느하스의 의분에 대해, 16-18절은 미디안에 대한 정복 명령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本論>     

          1. 우상숭배자에 대한 처단 (1-5절)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 북단 싯딤에 거할 때에 모압 여인들과 음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이 청하는 음식을 먹고 그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절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속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모세에게 명하여 그들의 두령을 잡아 태양을 향해 목을 매달라고 했습니다. 태양을 향해 매다는 것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밝은 대낮에 처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재판관들에게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모압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멸하기 위해 미디안 장로(족장, 왕)들과 모의한 끝에 선지자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의 신의 주장을 받아 이스라엘을 네 번이나 축복했습니다 (23-24장). 발람을 통해 저주하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모압왕 발람과 미디안 장로들이 연합하여 모의하고 모압 여인들로 하여금 음식을 제공하게 하고 바알 신전에까지 유혹하여 바알 제사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브올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바알브올'(Baal Peor)은 '브올 지방의 바알'로서 요단 강 동편 모압 지방에 있는 브올 산에서 섬긴 바알이라는 뜻입니다. '바알'은 다산(多産) 신(神)입니다. 바알 숭배자들은 농산물의 풍성한 생산을 기원하는 관념을 가지고 바알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바알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제사 의식을 행했는데 그 의식은 바알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고 절을 하고 음행을 했습니다. 그 음행은 우상숭배자들과 신전 여인들과의 혼음(Group Sex)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의식에 참여한 것은 영적 심각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두령은 교수형을 시키게 했고 백성들에게는 염병이 돌게 했습니다 (9절).   


  이 바알브올 사건은 모압 여인들이 미혹하여 일어난 사건이지만 배후에서 모압 왕과 미디안 왕들의 지도했고 발람이 정보를 제공한 것입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한 직후 모압왕 발락이 발람에게 돌아가라고 했으나 (24:11,25) 발람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디안 성읍에 거하며 미디안 왕들과 연합하였습니다 (31:8). 그리고 그들에게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는 방책(꾀)을 제공했습니다 (31:16). 결국 미디안 장로들이 모압 왕 발락과 결탁하여 발람의 꾀대로 이스라엘을 우상숭배 죄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31장 8절에서 미디안 성읍을 멸할 때 그들 가운데 거하는 발람도 함께 죽였다고 했고 16절에는 모압 여인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 앞에 범죄케 했다고 했습니다. 발람이 바알 산당과 비스가 산과 비올 산에서는 하나님의 신의 주장을 받아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신이 주장하지 않을 때 그들 세력에게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는 방책을 제시하므로 이스라엘을 범죄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결국 그로 인하여 분별력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죄에 빠지고 그 결과 처형당해 죽기도 하고 전염병이 돌아 죽기도 했습니다.   


  바알브올 사건은 도덕적 타락의 차원 이상으로 영적 타락을 보여 준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여인들과 음행한 것도 잘못한 것이긴 하지만 그보다도 우상숭배에 참여한 것이 더 큰 죄였습니다. 바알브올 사건의 음행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함께 우상에 대한 헌신적인 숭배 의식의 한 단면입니다. 곧 이스라엘이 육신으로 기울어져 분별력을 상실하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한 것을 행한 것입니다. 더 근본적으로 신앙의 정체성을 잃은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고린도교회는 우상에 대한 제사에 참여하는 일과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과 음행하는 일로 신앙의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죄들을 신랄하게 책망하고 바알브올 사건 같은 구약 이스라엘의 범죄 결과를 전감 삼아 그런 죄에서 떠나라고 지도했습니다. 고린도전서10:7-8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빌어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좇은 니골라당 교훈이 들어온 것을 책망했고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 교훈이 들어온 것을 책망했습니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 교훈과 이세벨 교훈은 모두 같은 교훈인데 그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계2:14, 20). 속히 회개하여 일깨지 않으면 주께서 그 행위대로 갚아 준다고 경고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와 같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2. 비느하스의 의분 (6-15절)


  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3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14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니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인의 조상의 가문 중 한 지도자이며

  15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이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의 한 조상의 가문의 수령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여인들의 유혹을 받아 바알 신전에 가서 바알숭배 의식에 참여하고 행음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우상숭배에 참여한 수령들을 죽이라고 했고 (4-5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염병을 보내었습니다. 그 염병으로 인하여 죽은 자가 24,000명이나 되었습니다 (9절). '염병'(מגפה)은 무서운 전염병을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10:8에는 음행하다가 하루에 23,000명이 죽었다고 했는데 본 절에서는 전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명이라고 했습니다. 그 차이에 대해 바알브올 사건으로 하루에 죽은 자 수가 23,000명이고 재앙의 기간동안 전체 죽은 자의 수가 24,000명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알브올 사건으로 전염병에 의해 죽은 자가 23,000명이고 재판관들에 의해 죽은 자 1,000명으로 전염병과 재판관들에게 죽은 자의 전체 수가 24,000명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Keil & Delitzsch).       


  그런데 한창 전염병이 돌고 있을 때 백성들은 회막문 앞에서 울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진노는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시므온지파에 속한 종족의 한 족장이었던 시므리(Zimri)가 미디안 종족의 한 족장의 딸 고스비(Gozbi)를 자기 장막으로 데려가 행음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회막 앞에서 하나님께 통회하며 부르짖는 백성들이 다 보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이스라엘 레위지파에 속한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Phinehas)가 있었습니다 (이 비느하스는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의 아들 비느하스와 다른 인물임). 그가 백성들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장막에 들어가 두 사람의 찔러 죽였습니다. 시므리와 고스비는 비느하스의 창에 배가 꿰뚫어져 죽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전염병이 그치게 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막 앞에 모여 울면서 부르짖을 때에도 전염병이 그치지 않았는데 비느하스가 시므리와 고스비를 처단한 직후에 전염병이 그친 것입니다.

 

  11절에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참여하여 행음한 바알브올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은 질투심을 가지고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전염병으로 모두 소멸시키려 했는데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는 행동을 보이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소멸하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 ‘질투심’에 해당하는 ‘키네아’(קנאה)는 ‘질투’ ‘열심’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대상을 좇아 숭배할 때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열심 때문에 질투를 하셔서 진노하십니다 (출20:5). 그래서 하나님은 바알숭배와 행음에 참여한 자들을 죽이게 했고 전염병을 보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의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비느하스가 바알브올 사건 연장으로 행음하는 시므리와 고스비를 처단한 것입니다. 비느하스가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의로운 분노를 느끼고 그들을 처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느하스가 시므리와 고스비를 처단하는 것을 보고 진노가 풀려 전염병을 그치게 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13절下에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위해 질투함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했다고 했습니다. ‘속죄하였음이니라’에 해당하는 기본형 ‘카파르’(כפר)는 ‘덮다’ ‘제거하다’ ‘속죄하다’의 뜻입니다. 비느하스의 행동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덮어 가리었고 제거하여 속했다는 것입니다. 비느하스가 시므리와 고스비를 처단한 행동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12-13절上에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하나님의 평안의 언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평화의 언약’(בריתי שלום)은 ‘평안의 약속’ ‘안전한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의미상 변하지 않을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와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에 관한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비느하스와 그 후손에게 제사장 직분이 영구히 지속되게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레위지파의 고핫자손인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삼고 그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제사장들로 세웠습니다 (출28:1-3, 40:13-16, 레8:1-36). 아론의 아들들 가운데 나답과 아비후는 율법을 어기므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레10:1-2). 하나님은 아론을 이어 엘르아살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20:23-29, 신10:6). 그런데 그의 아들 비느하스를 대제사장으로 세우고 그 후손에게 대제사장을 계속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주관하는 자입니다. 대속죄일에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아 살게 해 주는 직분입니다. 비느하스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와 행음 죄를 지어 하나님이 내린 재앙으로 다 죽게 되었을 때 공개적으로 행음을 한 시므리와 고스비를 처단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재앙의 죽음에서 건졌습니다. 실질적인 대제사장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대제사장으로 세우고 그 후손 가운데서 대제사장을 세우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의 가문에서 대제사장직이 영구히 지속되게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비느하스가 대제사장이 되고 그 후손들에서 계속 대제사장이 나오게 한 것은 레위지파가 성전 봉사자들로 선택받은 이유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막 봉사를 전무할 지파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레위 지파가 선택된 것은 야곱의 축복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지만 (창49:7), 직접적인 계기는 레위 지파가 금송아지 우상 사건 때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모세가 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백성들은 애굽에서 우상을 섬기던 방식을 따라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자기들의 신이라고 하며 그 신상을 돌며 제전 의식을 행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두 율법판(십계명)을 받아 내려와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율법판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우상 숭배에 참여한 자들을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때 대부분의 사람이 그 일에 참여했거나 참여한 자들과 관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이 칼을 차고 나와 그들을 모두 진멸했습니다. 그 때에 도륙한 수가 3,000명 가량 되었습니다 (출32:26-29). 금송아지 사건은 레위인들의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 모세에 대한 순종심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지파에게 맡기지 않고 레위지파에게 성막수호와 봉사직무를 맡기신 것입니다 (민18:1-32).


  신약시대에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는 영적으로 제사장 신분을 가진 자입니다. 베드로전서2:9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신분상 제사장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이제 실제로 그 제사장 역할을 감당할 자가 되어야 합니다. 비느하스 같은 정신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신약시대로서 해당 국가의 법의 제재를 받아야 하고 예수님과 사도들이 가르친 대로 사회에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해치는 자들을 직접 처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그 정신은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성을 해치는 것에 대해 의분을 가지고 그런 자들을 정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성경 말씀을 왜곡하고 교회를 이용하는 자들을 거부해야 합니다. 로마서16:17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비느하스처럼 단호하게 그런 자들의 가르침을 거절하고 그들에게서 떠나고 그들에게 호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에 사용하십니다.

 



          3. 미디안에 대한 정복 명령 (16-18절)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 미디안인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치라

  18 이는 그들이 속임수로 너희를 대적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지휘관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인들의 유혹으로 우상숭배와 음행죄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로 많은 사람이 교수형을 당하고 염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이 사건을 바알브올 사건이라고 합니다. 브올에 있는 바알을 숭배했다는 의미에서 따온 말입니다 (1-5절). 그런 와중에 미디안 왕의 딸이 이스라엘 족장과 음행죄를 짓게 하므로 하나님 분노하게 했습니다. 미디안 왕의 딸이 이스라엘 영내에서 공개적으로 음행했다는 것은 다른 미디안의 여인들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했는지 추측케  하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심정을 가진 비느하스가 창으로 그들을 처단했습니다. 그 사건을 고스비 사건이라고 합니다. 죽임 당한 미디안 여인 이름을 딴 것입니다 (6-15절).

 

  고스비 사건 직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미디안을 정복하라고 명했습니다. 그것은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모압과 연합하여 바알브올 사건을 주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범죄하게 했고 고스비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18절). 결과적으로 미디안은 이스라엘 백성을 범죄케 하고 죽게 한 족속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관계가 단절되게 한 족속입니다. 이 명령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은 미디안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 때 그들 가운데 함께 있던 발람도 죽임을 당합니다 (31:1-54).

 

  하나님이 미디안을 공격하여 정복하라고 명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범죄로부터 지키기 위함입니다. 언약 백성 백성을 사랑하는 의지의 발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백성을 박해하므로 구원사역에 지대한 손해를 주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이방 족속에 대한 공의를 실현 시키시는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백성을 괴롭힌 만큼 괴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을 괴롭게 자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아말렉 족속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 괴롭혔다는 죄목으로 450여년 후 사울이 이스라엘 왕이 되었을 때 아말렉 족속을 남녀노유 무론하고 모두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민14:45, 삼상5:2-3).

 

  한편 바알브올 사건을 일으킨 모압 족속에 대해서는 정복 명령이 없습니다. 모압 족속에게 긍휼을 베푼 것은 본문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마 하나님이 에돔 족속에 대하심과 같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네아 근처 호르산에서부터 요간강 동편 모압 지경까지 진행하기 위해 에돔 족속의 땅 '왕의 대로'로 행할려고 할 때 에돔 왕이 그 길로 지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에돔과 싸우지 말고 돌아가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에돔이 형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야곱의 후손이기 때문에 형제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에돔 족속이 손해를 주었지만 같은 이삭의 아들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전쟁을 피하게 한 것입니다 (민20:14-21, 신2:4-5, 23:7).     모압 족속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롯이 소돔성에서 멸망하게 되었을 때도 아브라함이 마음 아파할 것을 생각하여 구원해 주셨던 것처럼 모압 족속이 정복 당하는 것을 이스라엘이 기뻐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모압 족속에게 긍휼을 베푼 것 같습니다 (창19:29,37, 신2:9).

 

  하여튼 하나님께서 고스비 사건을 통해 보여 준 의지는, 하나님 백성을 괴롭게 한   족속은 반드시 심판하되 하나님이 백성이 마음 아파할 대상에게는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범죄할 때는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 징계하시되 범죄하여 고통 당하게 한 대상은 분노로 보수하십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 백성을 생각하여 긍휼을 베풀기도 합니다. 오늘날 언약 백성에게도 동일한 의지를 가지고 인도하십니다.       

 

<結言>

  바알브올 사건과 고스비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범죄하는 것을 얼마나 마음 아파 하시는지 보여 준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할 때 질투하는 심정으로 징계하십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을 근거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이 놓지 않으시고 붙들어 인도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