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룻기 2:1-23

<題目> 보아스와 룻의 만남


<序言>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유대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룻은 생계를 위해 이삭줍기를 했는데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됩니다. 그 곳에서 보아스의 선대를 받게 됩니다. 결국 룻이 보아스 밭에서 이삭줍는 것이 보아스를 만나는 계기가 되고 그 계기는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여 엘리멜렉의 계대를 잇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그 계기를 우연한 일로 여기겠지만 본장의 흐름은 그 계기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에 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상 생활 속에서 섭리하신다는 메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1-7절은 룻이 보아스를 만남에 대해, 8-16절은 보아스가 룻을 선대함에 대해, 17-23절은 룻이 나오미에게 보아스에 대해 보고함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本論>

          1. 룻이 보아스를 만남 (1-7절)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①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1-3절).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부터 유다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룻이 생계 유지를 위해 나오미에게 허락을 받아 이삭 줍기를 했습니다. 때는 보리 추수를 할 때였으므로 보리를 벤 다음 땅에 떨어진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한 사람인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보아스(Boaz)는 나오미와 룻의 가정을 회복해 줄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첫째는 엘리멜렉(룻의 시아버지)의 계대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고엘 제도'가 있었습니다. '고엘'(גאל)은 히브리어 음역으로서 '보상할 자' '회복할 자' '구속할 자'(redeemer)라는 뜻입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근족' '기업 무를 자' '보수자'(報讐者) 등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즉 '고엘'은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서 어려움 당한 자를 구해줄 의무와 권리가 있는 자를 말합니다 '고엘제도'에는 동해 보복법과 기업 무르는 법과 계대 혼인법이 이 있습니다. '계대 혼인법(繼代婚姻法)'은 맏아들이 결혼했다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 주어 그 아들이 형의 후사가 되도록 하는 법입니다. 만일 동생도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척이 그 의무를 이행하는 법입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카일(Keil)과 카셀(Cassel)에 의하면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조카였다고 합니다. 보아스는 가까운 친족으로서 엘리멜렉의 계대를 잇기 위해 룻과 결혼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엘리멜렉 가정의 잃었던 재산을 회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엘 제도'에는 '계대혼인법'도 있지만 '기업 무르는 법'도 있습니다. '기업 무르는 법'은 가난하여 땅을 팔았을 경우 가장 가까운 친족이 대신 땅값을 지불하고 그 땅을 되찾아 주도록 하는 법입니다. 보아스는 이름의 뜻도 그렇지만 실제로 '유력한 자'였습니다. '유력한 자'에 해당하는 '이쉬 깁보르 하일'(היל גבור איש)은 기본적으로 재물이 많은 자를 의미합니다. 보아스는 당시에 많은 밭과 일꾼들을 소유한 거부(巨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기업 무르는 법'의 의무를 이행하려 할 때 그 의무를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는 나오미와 룻을 심리적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가 '유력한 자'(היל גבור איש)라고 하는 것은 그가 재물만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지위를 가진 영향력 있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고 덕망이 있어 호응을 얻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보아스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인품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신앙심도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곡식 베는 일꾼들에게 인사하는 장면과 룻을 배려하여 일꾼들에게 한 줌씩 흘려 버리라고 한 장면과 나오미를 위해 보리를 더 싸준 장면과 룻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기 전에 룻이 발치에 누울 때 그를 보호한 장면과  다른 근족에게 의무이행 의사를 묻는 장면과 성읍 장로들 앞에서 법적 확인을 하는 장면들은 그가 얼마나 좋은 인격과 좋은 신앙적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가족의 죽음과 가난과 역경을 경험하므로 상처 가운데 있는 나오미와 룻을 따뜻한 배려와 위로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룻이 우연(偶然)히 그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된 것은 행운입니다. 그리고 보아스가 이삭 줍는 룻을 발견하고 사환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었다는 사실과 그가 엘리멜렉 가정의 나오미를 따라 모압에서부터 올라온 자라는 사실을 안 것은 큰 행운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섭리의 은혜였습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난 것은 사람의 편에서 보면 우연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가지시는 섭리에 해당합니다. 전도서9:11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했습니다 (시127:1-5, 신8:18, 계9:15)

 

     ② 보아스와 곡식 베는 자들은 서로 존중해 주는 관계였습니다 (4절).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했습니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자였습니다. 밭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일꾼들도 많이 두었고 그 일꾼들을 관리할 사환도 두었습니다. 그런데 추수 때에 사환과 일군들이 보리를 베고 있을 때 보아스가 추수하는 밭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인사했고 일군들은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보아스의 자상한 인사와 일꾼들의 친밀한 화답은 감동적입니다. 고용주와 노동자간의 모범적인 모습입니다.

 

  보아스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사할 때 일꾼들이 하나님 이름으로 축복한 것은 평소 보아스가 일꾼들에게 얼마나 신앙적으로 대했는지, 얼마나 인격적으로 대했는지 가늠해 볼만 합니다. 보아스는 평소 일꾼들을 부리는데 있어서 진실하게 대했을 것이고 인격적으로 존중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합니다. 고용주는 자신 위에 하나님이 상전으로 계신 줄 알아야 합니다 (골4:1). 고용인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격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들로 인하여 자신이 이윤을 얻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며 진실하게 대해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노동력을 착취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자와의 관계를 주종관계로 보지 말고 협력관계로 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5:4에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용된  노동자는 일꾼들이 보아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축복한 것처럼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노동자는 고용주인 사업주를 귀해 여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개인의 생활을 그들을 이용하여 유지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로 인하여 생계가 유지된다고 하는 사실을 염두에 주어야 합니다. 그의 자본과 능력과 지혜를 통해 자신의 노동력이 가치를 인정받게 되고 품삯을 받게 된다는 점, 그 품삯으로 가정이 유지되고 개인의 생활이 유지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업주를 견제관계에서 보지 말고 협력관계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가 잘되어야 자신이 잘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체가 잘 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오늘날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유지되지 않고 조합 간부의 유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는 면이 있어서 우리 마음을 씁쓸하게 합니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기독교인은 그에 못지  않게 노동자의 의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골로새서3:22-23에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했고, 디도서2:9-10에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주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협력하여 모두가 함께 잘되도록 해야 합니다. 서로 물고 찢으면 함께 망합니다 (갈5:15).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생각하여 충성되게 행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6:1-2에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고 했습니다. 그 원리는 교회 공동체나 가정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③ 룻이 곡식 베는 자를 따라 종일 이삭줍기를 했습니다 (5-7절).

 

  룻이 시어머니를 공궤하고 자신의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의 밭에 보리 이삭을 주으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 성읍에서부터 밭에 나왔다가 이삭 줍는 룻을 보게 됩니다. 보아스는 룻을 처음보기 때문에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일꾼들을 책임지는 사환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었고 사환으로부터 그가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서부터 올라온 여자라는 사실을 듣게 되고 아침부터 계속 줍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던 대로 보아스는 법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나오미와 룻을 구해 주시기에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룻이 보아스를 만나서 하나님의 언약적 계대에 참여하는 복을 얻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룻이 보아스 밭에서 이삭줍기를 한 계기를 통해 보아스를 만나게 되고, 룻이 우연히 보아스 밭에서 이삭줍기를 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신학에서 예정론(豫定論)이 있습니다. 조직신학에서 '하나님의 작정(作定)' 안에 '하나님의 예정(豫定)'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이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계획하셨다는 의미라면  '하나님의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도덕적 피조물에 관한 일을 미리 계획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곧 좁게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인간에게 대한 영원한 목적을 가지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예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특성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 특성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예정은 목적을 정하셨으면 반드시 그 목적에 따른 방편도 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룻을 언약적 축복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셨다면 그에 따른 방편들도 함께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어느 정도 알지라도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까지 알기 힘듭니다. 우리가 어떤 방편을 택해야 목적을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한 방편을 원하시고 그 선한 방편은 성경을 통해 주신 계시의 말씀을 통해 제시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모를지라도 성경 말씀과 그 정신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룻은 말씀의 원리에 맞게 시어머니를 공경하려는 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생계가 어려울 때 자신의 체면을 생각지 않고 남의 밭에 가서 이삭줍기를 했습니다. 그 옳은 정신과 행동이 자신은 어떤 결과를 이루어 낼지 몰랐으나 보아스를 만나게 되고 언약적 축복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애굽 보디발 집에서 종으로 있을 때 맡은 일에 충성했던 것과 시위대 감옥에 갇혔을 때 감옥살이에 충실했던 것이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 족속을 구하는 계기가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늘 현재에 충실해야 합니다. 현재는 별 일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실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충성해야 합니다. 비록 이삭을 줍는 일이라도 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0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양식을 얻는 데에도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마15:27).

 


          2. 보아스가 룻을 선대함 (8-16절)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① 보아스가 룻에게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8-9, 11-16절).

 

  룻이 우연히 보아스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지극히 선대했습니다. 첫째, 일꾼들에게 건드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룻이 낯선 곳에서 혼자 이삭을 줍는 일은 위험 부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자기 권위를 이용하여 룻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둘째,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게 했습니다. 룻에게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고 목마를 땐 일꾼들이 떠다 놓은 물을 마시며 주우라고 했습니다. 곡식 베는 일꾼들에게 룻이 이삭을 주울 때 꾸짖지 말고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곡식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든지 힘들지 않고 많이 줍게 하려는 인격적 처사입니다. 셋째, 식사 때에 함께 먹게 했습니다. 일꾼들과 식사를 할 때 룻을 불러 떡을 초(신포도주)에 찍어 먹게 했고 볶은 곡식을 배불리 먹게 했습니다. 넷째,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빌었습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이 룻의 행한 대로 갚아 주기를 원한다고 했고 하나님이 상주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대접입니다.

 

 보아스의 룻에 대한 배려와 호의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라 하기보다 신앙적인 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처럼 배려한 것은 룻이 모압에서부터 남편이 죽은 후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공경한 사실을 들었고, 자기 나라와 자기 백성을 떠나 하나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겠다 온 사실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11-12절, 3:7-15참조). 다윗은 요나단의 신앙을 생각하여 그 아들 므비보셋을 자기 아들처럼 자기 아들처럼 선대했습니다 (삼하9:6-13, 21:7).

 

  의로운 사람은 항상 가난한 자를 마음에 두고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줍니다 (잠29:7, 약1:27).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희생한 자들을 기억하고 알아주고 축복해 줍니다 (고전16:17-18). 그리스도인은 믿음 지킨 사람들을 서로 위로하고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마25:35, 약2:15-16). 

 

      ② 룻이 보아스의 호의에 감사했습니다 (10절).

 

  보아스는 룻이 행한 일에 대한 소문을 듣고 룻에 대한 좋은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을 보고는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물질적인 호의뿐 아니라 심리적인 배려까지 했습니다 (8-16절). 룻은 자신이 이방여인인데 그처럼 선대해 주신 것에 감격하였고 보아스에게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며 감사했습니다. 자신에게 극진한 대우를 해준 것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습니다.

 

  룻은 신앙적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자기 조국을 떠나온 것과 보아스가 빈 하나님의 축복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을 보면 믿음의 위인이라 할 수 습니다 (11절). 그리고 덕행에 있어서도 현숙한 여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을 잃은 후 시어머니를 모셔 왔고 시어머니를 공궤하기 위해 이삭줍기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아스의 친절과 배려에 잊지 않고 겸손히 절을 하며 감사 표시를 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다면 잊지 말고 보답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의 낳아 주신 은혜에, 고용주의 일할 기회를 준 은혜에, 스승의 가르쳐 준 은혜에, 목회자의 신앙으로 인도해 준 은혜에 감사할 줄 알라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됨됨이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구원적 은혜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생활 가운데 조그마한 은혜를 느꼈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한 촌에 들린 때가 있었습니다. 문둥병자 10명이 긍휼히 여겨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자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다가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 나은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시 돌아와 예수님께 발 아래 엎드려 사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았는데 아홉 사람은 어디 갔느냐며 어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사람이 한 사람 뿐이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눅17:11-19). 주님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를 원하시고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3. 룻이 나오미에게 보아스에 대해 보고함 (17-23절)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룻이 보아스의 배려로 보아스의 밭에서 종일 보리 이삭을 주웠는데 그것을 떠니 한 에바(23ℓ)쯤 되었습니다. 그 주운 보리를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보이고 식사로 남긴 먹을 것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라고 하는 사람이 선대(善待)해 준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를 이미 알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가 남편과 아들들을 생각하고 자기와 며느리를 생각하여 선대해 준 것에 고마했습니다. 그리고 룻에게 당부하기를 보아스는 근족(近族)으로서  '기업무를 자'(גאל.까알) 중 한 사람이니 다른 밭에 나가 다른 소녀들과 함께 하지 말고 그의 밭에만 가서 그의 소녀들만 만나라고 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말대로 보아스의 밭에서만 이삭을 주었고 그리하여 보리와 밀 추수가 마칠 때까지 이삭을 주워 나오미를 공궤했습니다.

 

      ※ 고엘제도와 기업무르는 법

 

  구약시대에는 '고엘 제도'가 있었습니다. '고엘'(גאל)은 히브리어 음역으로서 기본적으로 '무르다' '되찾다' '구속하다' 는 의미를 가진 어원에서 온 말입니다. 곧 '고엘'은 '보상할 자' '회복할 자' '구속할 자'(redeemer)라는 뜻입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근족(近族)' '기업(基業)무를 자' '보수자'(報讐者) 등으로 번역된 말입니다 (레25:25, 룻2:20, 3:9,12, 4:3, 민35:12). 즉 '고엘'은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서 어려움 당한 자를 구해줄 의무와 권리가 있는 자를 말합니다.

 

 '고엘'에 해당하는 근족(近族)이 가지는 의무와 권리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람이 가난하여 땅을 팔았을 경우 그 땅값을 물어주고 그 땅을 다시 되찾아 주는 것, 혹은 사람이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 갔을 경우 그 몸값을 물어주고 그 사람을 자유케 해주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어 계대(繼代)를 잇지 못하게 될 경우 미망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 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람이 피살되었을 때 살인자를 죽이므로 원한을 값아 주는 것입니다 (레25:25-28, 47-49, 민35:12). 물론 세 가지 모두 가속 회의와 장로들의 공개 재판을 거쳐서 행해야 했습니다 (룻4:8-10, 민35:12).

 

  고엘 제도에는 '고엘'로서 가진 의무와 권리를 세부적으로 규정한 법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업(基業)무르는법(法)'이 있습니다 (레25:25-26). '기업 무르는 법'은 가난하여 땅을 팔았을 경우 가장 가까운 친족이 대신 땅값을 지불하고 그 땅을 되찾아 주도록 하는 법입니다. 둘째는 '계대혼인법(繼代婚姻法)'이 있습니다 (신25:5-6). 계대혼입법은 맏아들이 결혼했다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 주어 그 아들이 형의 후사가 되도록 하는 법입니다. 만일 동생도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척이 그 의무를 이행하는 법입니다. 셋째는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입니다 (레24:17-22, 출21:23-25, 민35:12,19,21, 신19:21). 생명은 생명으로 갚는다는 보수 원리에 의해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이는 법입니다. 사람이 피살되었을 경우 살인자를 피살자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살인자를 죽이므로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한을 갚아 줄 권리를 갖는 것입니다. 물론 그 권리는 합법적인 재판을 통해 허락되었습니다. 합법적인 재판이 이루어질 때까지 살인자를 구금하는 동시에 살인자를 죽이려 하는 보수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도피성(逃避城)제도' 입니다.

 

  그런데 그 의무와 권리가 행사할 수 있는 '고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혈연적으로 근족(近族)이어야 합니다 (신25:5-7). 가장 가까운 친척이 의무와 권리를 이행할 수 없게 되면 그 다음으로 가까운 친척이 우선권을 가지게 됩니다 (룻4:3-4). 둘째는 본인이 자원해야 합니다 (룻3:13). 그 의무와 권리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가져야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셋째는 능력을 구비해야 합니다 (룻2:1). 기업을 무르고 싶어도 경제적인 상황이 허락되지 않으면 원해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룻4:5-6).  

 

  나오미가 룻에게 보아스에 대해 '기업 무를 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보아스가 고엘의 의무와 권리를 이행할 위치에 있는 근친(近親)이기 때문입니다. 카일(Keil)과 카셀(Cassel)에 의하면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조카였다고 합니다. 나오미가 한 말 속에는 엘리멜렉의 계대를 이를 수 있고 모압으로 이주할 때 팔았던 땅을 되찾아 줄 수 있는 자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룻4:8-10). 1절에서 보아스는 '유력한 자'라고 했습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력한 자'(היל גבור איש)는 기본적으로 재물이 많은 자를 의미합니다. 보아스는 당시에 많은 밭과 일꾼들을 소유한 거부(巨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기업 무르는 법'의 의무를 이행하려 할 때 그 의무를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룻은 나오미가 한 말의 의미를 알고 나오미의 말을 순종했습니다. 룻은 도덕적으로도 현숙한 여인이었지만 언약적 신앙이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잘 알아 말씀으로 인도해 주는 영적 스승을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를 순종하는 것은 그가 가진 경험을 얻게 하고 그가 가진 신앙을 얻게 합니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를 순종하는 것은 스승이 받는 받을 은혜와 복을 함께 누리게 되는 비결입니다.  

 

<結言>

  하나님은 룻을 택하여 보아스를 만나 언약적 계대를 이어 가려 하는 목적을 가지셨습니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나 호의를 얻게 됩니다. 그 만남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게기가 된 것입니다. 당시 룻과 보아스는 그 첫 대면이 어떤 결과를 이룰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전개되는 많은 상황들이 어떤 좋은 결과를 이루어 낼지 말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라 해도 그 상황이 선한 목적을 이루어 낼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을지라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낙심하지 말고 그 날 그 날에 충성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