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창세기42:1-36

<題目> 요셉의 형들의 애굽 방문

 

<序言>

  요셉은 17세 때 가나안 땅 도단에서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온 후 보디발 집에서 종살이 10, 친위대 감옥에서 2년을 지내고 30세 때 바로 왕에 의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풍년 기간인 7년이 지나고 흉년이 들었을 때에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온 형들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약 20년 만에 형들을 재회하게 됩니다. 본장의 내용구조는 야곱의 가족들을 위한 결정(1-5), 요셉의 형들의 애굽행(6-17), 요셉의 형들의 뉘우침(18-28), 야곱의 근심(29-38)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文>

       1. 야곱의 가족들을 위한 결정(1-5)

 

  1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된 이후 7년 동안 풍년이 들었으나 8년째부터는 흉년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흉년으로 인한 기근은 애굽뿐 아니라 애굽의 주변국가지 있었습니다. 당연히 야곱의 가족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있었습니다. 이 때 야곱의 나이는 129세였습니다. 야곱과 함께 살고 있는 식솔은 모두 75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아들은 요셉을 제외하고 11명이었습니다. 야곱이 기근으로 양식이 없어지자 근심합니다. 그런데 애굽에는 양식이 풍족히 있다는 말을 듣고 아들들에게 애굽으로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명합니다. 야곱이 자신의 가족들의 살 길을 모색하고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낸 것은 가족을 책임지려는 지도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11아들 가운데 막내인 베냐민은 두고 10아들만 보냅니다. 4절에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야곱에게는 아내와 첩이 4명이 있었습니다. 레아와 라헬과 실바와 빌하였습니다. 그 중에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라헬에게 낳은 아들은 요셉과 베냐민이었습니다. 그는 아들들 가운데 요셉만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린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은 다음 요셉의 동생 베냐민만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애굽에 보냈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안되겠기 때문에 베냐민은 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야곱의 그런 편애는 결국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고 자신도 고통을 당했습니다. 요셉은 심리적으로 편애와 불신과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편애하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가정은 형은 아버지 이삭이 사랑하고 동생인 자기는 어머니 리브가가 사랑하는 역기능 가정이었습니다. 야곱은 남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인 어머니의 편애와 보호 가운데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편애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둘째, 많은 사람에게 속으며 살았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해 하란의 밧단아람으로 도망하여 외삼촌 댁에서 14년 동안 그의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그때 라반으로부터 아내 레아와 라헬을 얻은 문제에서 속았고 품삯에 대해서도 여러 번 속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셋째, 많은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도망할 때, 밧단아람에서 외삼촌으로부터 도망할 때, 얍복강 근처에서 형 에서를 만날 때, 세겜 성에서 아들들이 세겜 성 사람들을 도륙한 사건으로 세겜을 떠날 때 큰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그런 경험들 속에서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먼저 생각하고 두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배경은 그에게 내재되어 인격적 결함이 되었습니다. 그 결함이 평생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고 고통을 당하게 했습니다. 야곱이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시일이 지나면서 해결을 해나갔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지식이나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배경과 경험은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성장했을 때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치유되도록 해야합니다.

 

 

       2. 요셉의 형들의 애굽 행 (6-17)

 

  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1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기 위해 애굽으로 찾아와 애굽의 총리인 요셉에게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았지만 그들은 요셉이 자기 동생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20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난 데다가 요셉이 그런 높은 지위에 올랐으리라 상상자체를 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애굽의 총리인 요셉을 똑바로 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고 더욱이 요셉이 통역관을 세워 애굽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알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요셉은 그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회개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 세웠습니다. 당시 애굽에만 양식이 있으므로 인해 아시아 계통의 민족들로부터 침략 위협을 받고 있어서 외국인에 대해 예민하게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은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요셉의 추궁에 형들은 자신들의 가족사를 말하며 정탐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해명했습니다. 자신들은 가나안 땅에서 왔고 한 모두 한 사람의 아들들인데 하나는 없어졌고 막내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그들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려면 막내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와서 보여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이 자기에게 형들이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어렸을 때 꾼 꿈을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9). 요셉은 어렸을 때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 곡식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고 부모형제의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를 둘러서 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그 꿈이 성취될 것이라 믿고 형들에게 이야기 했고 그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렸던 것입니다 (37:5-28). 요셉은 그 꿈 때문에 힘든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며 인내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꿈을 꾼 때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현재 자신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형들이 찾아와 절을 하는 상황을 보면서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 곧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진 비전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기간이 오래 걸리고 과정에서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그 비전은 이루어집니다. 그 비전을 가진 자는 어떤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이 비전을 이루실 것을 바라봅니다. 비전을 가지고 그 비전을 푯대로 삼고 살아야합니다. 그것이 행복인 것입니다.

 

 

       3. 요셉의 형들의 뉘우침 (18-28)

 

   ①요셉은 시므온을 억류시키고 형들을 돌려 보냈습니다 (18-20).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요셉이 형들을 가둔 다음 3일만에 그들에게 가서 인정을 가지고 긍휼을 베푸는 제안을 했습니다. 형제 중 한 사람만 인질로 남아 있고 나머지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가족들을 굶주림으로부터 구하고 막내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해하지 않고 살려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가나안 땅에 있는 가족들의 생존을 염려하고 형들을 긍휼히 여겼지만 동생 베냐민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어했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미워하여 구덩이 빠뜨리고 애굽에 판 것처럼 동생 베냐민에 대해서도 해를 가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동생 베냐민을 실제로 보기 전에는 그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에게 진실을 말한 것이지만 요셉은 형들의 과거 행동 때문에 그들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 번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장사나 사업적 거래에서 신뢰할만한 행동을 했다면 지속적으로 신뢰를 얻기도 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면 신뢰를 얻기 힘듭니다. 특히 신뢰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했다면 다시는 회복하기 힘듭니다. 모든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잘못된 행동 때문에 신뢰를 잃었다면 처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처음부터 신뢰를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진실과 성실과 책임과 사과입니다.

 

   ②요셉의 형들이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21-23).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요셉이 형들에게 한 사람이 인질로 남아 있고 돌아가서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조처를 보면서 일이 힘들게 꼬였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형들은 서로 자기들이 전에 요셉에게 범죄한 사실을 이야기 하면서 잘못을 후회했습니다. 요셉이 괴로워 애걸할 때에 그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도 그의 애걸을 들어주지 않고 죽이려 하고 애굽에 팔았기 때문에 자기들이 그 괴로움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장자인 르우벤은 그때 요셉을 해하지 말자고 했는데 동생들이 듣지 않아서 그 죄 값을 받는 거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신실한 대답이 받아들여 지지 않고 여전히 어려움에 빠지게 되자 과거에 요셉에게 악행을 저질렀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늦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뉘우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잘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어려운 결과가 미치지 않으면 자기의 잘못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 때서야 잘못을 생각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회개를 시키기 위해서 어려운 환경과 상황을 허락하기도 합니다. 그 때에라도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은 좋은 반응입니다. 모든 어려움이 우리에 잘못 때문에 온 것만은 아니지만 어려움이 올 때 하나님이 회개시키려는 의도로 허락한 것이라 생각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는 사람입니다. 시편49:20"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곧 환경, 감동, 가책을 주실 때 회개해야 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신앙에서 떠났는지 찾아 일깨워 돌이켜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③요셉이 형들을 선대했습니다 (24-28).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26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27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요셉은 형들과 대화를 하면서 통역을 세워서 대화를 했습니다 (23). 그래서 형들은 요셉이 자기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줄 알고 요셉 이야기를 하며 회개를 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히브리 말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판 것을 후회하며 회개하는 말을 듣고 감정이 북받쳐 그 장소를 떠나 혼자 울었습니다. 20년 동안 참았던 고통이 씻기는 울음이었을 것입니다. 형들이 회개한 것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기도 했고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혼자서 운 다음 다시 돌아와 명령하여 시므온을 결박하게 하여 인질로 억류시켰습니다. 요셉이 여러 형들 중에 시므온을 인질로 잡은 것은 아마도 시므온이 가장 잔인한 성품과 행동을 드러내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34:25, 49:5-7). 시므온이 세겜 성에서 세겜 사람들을 도륙한 데 앞장섰던 것처럼 (34) 도단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데에도 앞장을 섰을 것입니다 (Furst, Rosenmuller). 곧 시므온을 특별히 교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억류시킨 것 같습니다. 요셉이 시므온을 억류시키고 다른 형들은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신하들에게 명하여 곡물을 자루에 가득 채워 주게 하고, 곡식 값도 도로 자루에 넣어 주게 하고, 길을 가다가 먹을 음식도 챙겨 주게 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곡물을 나귀에 싣고 돌아갔습니다. 곡물 자루에 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뒤에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자루를 풀어 보고서야 알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고 구덩이에 빠트리고 애굽에 종으로 팔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이제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니 그들에 대해 울분과 분노를 가지고 그들에게 보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동생 베냐민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시므온을 억류시키기는 했지만 형들에게 여전히 정감 넘치는 선대를 했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우리를 미워하고 비방하고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분노가 일어나고 복수를 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분을 내거나 화를 내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다툼을 일으키는 것이지 다툼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15:18"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면서 외식하기 싫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외식은 단순히 속과 겉이 다른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은 그렇지 않은데 자신이 높임을 받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수단들을 이용하여 가장하는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분이 일어나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외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경건인 것입니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실도 단순히 사실대로 말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옳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를 내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은 죄성대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나타내야 할 성품과 행동이 아닙니다. 야고보서1:19-20"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4:7-8"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5:22-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속에서 분이 일어날 때 그 분 자체를 없애면 좋겠거니와 속에서 분이 일어나는 것을 없애지 못하지 라고 그분을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분을 감추고 선대해야 합니다. 로마서12:17-21"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도 더 큰 고통에 빠지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과 공동체도 힘들지 않게 됩니다. 감정을 억제하고 선을 베풀려고 해야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고 공동체가 살고 상대가 변하고 자기가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4. 야곱의 근심 (29-38)

 

  29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30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31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32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33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34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 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 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서 양식을 싣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애굽에서 애굽 총리가 자기들을 정탐꾼으로 의심했고 자기들은 가족사를 이야기 하며 결백을 주장한 사실, 애굽 총리가 시므온을 인질로 억류시키고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면 정탐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어 주고 거래를 할 수 있다고 한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각기 곡식 자루를 쏟고 보니 곡식 값으로 주었어야 할 돈 뭉치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오는 도중에 한 사람의 곡식 자루에서 돈 뭉치가 있는 것을 발견했었으나 (28) 이제 모든 곡식 자루에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과 요셉의 형들은 심히 두려워 했습니다. 이제 결과적으로 도둑질한 것이 되어 인질로 억류된 시므온이 해를 당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도 잃었는데 시므온도 잃게 되었는데 또 베냐민까지 빼앗아 가고자 한다고 절망적인 한탄을 했습니다. 장자 베냐민이 아버지 야곱에게 만일 베냐민을 데리고 갔다가 다시 데려오지 못할 경우엔 자기 두 아들을 죽이라고까지 하면서 반드시 베냐민을 다시 데리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요셉을 잃고 그 아우 베냐민만 남았는데 베냐민이 무슨 재난을 당할 경우 자식들이 자기 흰머리로 슬퍼하고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고 하면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스올'(שאול)은 죽음, 무덤, 음부, 지옥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여기에서는 죽음에 대한 표현일 것입니다. 만일 베냐민이 무슨 일을 당하게 되면 비참한 슬픔과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절망적인 고통 가운데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표현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베냐민의 안전을 확인하고 형들을 회개시키고 가족을 도와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사안을 미리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이미 시므온을 잃었다고 판단했고 베냐민도 보낼 경우 돌아올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과거 요셉 사건의 상처가 이 사건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 것입니다. 사무엘하10:1-18에 보면 이스라엘왕 다윗왕 때 암몬 족속의 왕 나하스가 죽고 하눈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왕이 암몬 족속의 왕 나하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에 나하스와의 좋았던 관계를 생각하여 신하들을 조문객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암몬 족속의 왕 하눈의 신하들이 다윗왕이 보낸 조문객들을 정탐하러 온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눈은 그들을 정탐꾼으로 판단하고 그들의 수염을 절반으로 자르고 옷을 중동볼기까지 잘라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주변 족속들과 연합하여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다윗왕이 분노하여 요압 장군과 군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정복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선대하려 했으나 하눈은 부정적으로 판단하여 많은 손해와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인성이 건강하지 못하면 어떤 사건을 당했을 때 미리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의 고통을 당할 뿐 아니라 결국 부정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므로 더 큰 손해를 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평소에 가진 영적 상태와 인성의 상태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것에도 그런 영향이 상당히 많습니다. 성도들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에 그런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상처를 치유받아 건강한 인성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인 사고를 가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結言>

  어떤 사건이나 사안에 대해 이해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신앙과 심리와 사고의 반영입니다. 어떤 사건과 사안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느냐는 그 사람의 영적 상태와 심리적 상태의 수준을 나타내 줍니다. 민수기13:1-33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거쳐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습니다. 그 정탐군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다닌 후에 돌아와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10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여호와와와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를 더 옳게 생각하고 밤새 울면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광야로 들어가 38년을 더 유리했고 누구도 여호와수와 갈렙 외에는 누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들은 광야에서 새로 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믿음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