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혜로운 삶
본문 : 잠언18:1-24
<序言>
전 장에서는 지혜의 실천적인 면을 언급했습니다. 본 장에서는 지혜를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틀을 염두에 두고 삶의 방식과 관련된 지혜를 조리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미련한 자의 실상(1-9절), 지혜로운 자의 삶의 방식(10-24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미련한 자의 실상 (1-9절)
1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2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3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
4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구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5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6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8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9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1절에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고 했습니다. '무리에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공동체와 일원들에 대해 적의를 품고 분리한 자들을 말합니다. 공동체가 잘못되었거나 타인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성품적으로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파괴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사람은 언제든지 다툼을 일으키게 됩니다. 자기 소욕 곧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나 명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주장만 펴다가 다툼을 일으킵니다. 자기 의사만 관철시키려 하다가 다툼을 일으킵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능욕하므로 관계를 파괴합니다. 결국 편당을 가르고 공동체를 대결 국면으로 몰고 가고 결국 공동체를 파괴하거나 심한 상처를 남겨 놓은 채 분리하게 됩니다. 더 나은 것을 얻거나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4절에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참신한 사상은 깊은 물과 지혜의 샘과 흐르는 시내와 같이 심오하며 소진함이 없습니다. 언제나 신중하고 적절한 말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기쁨과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6-8절에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시비를 일으키는 말을 하므로 다툼을 일으키고 스스로 소외당하고 제재를 받게 됩니다. 순간 감정적으로 내뱉는 말이 덫이 되어 파멸에 이르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특히 남에 대해 중상모략하는 말을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마치 허기진 자가 맛있는 음식을 먹듯이 타인에 대해 중상모략하는 것을 즐거워 합니다. 에베소서4:29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5절에 "악인을 두호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두호하는 것'은 문자적으로 '얼굴을 보고 편들어 주는 것'을 뜻합니다. 가문이나 재산 등 외적 요소를 보고 악인을 변호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반대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17:15에는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고 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간의 판단을 뒤집어 놓아 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혐오하는 일입니다 (24:24, 출23:7, 사5:23). 이사야5:20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고 했습니다. 마태복음5:37에는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9절에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 하는 자의 형제니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일하기를 싫어할 뿐아니라 방탕한 생활로 기울어지고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육체적인 삶을 위해서도 부지런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4:28에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므나 장사와 달란트 장사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주인은 1므나 가진 자와 1달란트 가진 자에게 악하고 게으른 자라고 책망했습니다. 고린도전서4:1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2. 지혜로운 자의 삶의 방식 (10-24절)
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1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14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15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16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17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18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22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23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10-11절에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세력이 자기 백성을 해하려 할 때 권능으로 보호해 주시며 물리쳐 주십니다. 시편23:1-5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게 됩니다. 그러나 미련한 부자는 재물을 견고한 성과 높은 성벽으로 여깁니다. 제물이 환난과 고난에서 건져 줄 수 있고 모든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상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물은 순식간에 없어집니다. 또한 환난에서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에스겔7:19에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죄에 빠지게 하고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디모데전서6:9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인 것입니다 (딤전6:10). 성도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마태복음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재물을 따라가면 둘 다 잃는 것이 되고 하나님을 따라가면 둘 다 얻게 됩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재물에 대해서는 내려 놓아야 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6:7-8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16:18에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싫어하여 물리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하여 은혜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벧전5:5). 교만은 사단의 속성이고 세속적인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 존재와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해 참람되게 합니다.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줄 압니다. 자기를 다른 사람보다 낫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싫어하고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그 인생의 결국이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빌2:5-8, 히5:8).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겨야 합니다 (빌2:5).
13절에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합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대화를 자신이 주도하려 하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데 몰입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기도 전에 자신의 주장을 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인간관계는 파괴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 (약1:19). 15절에는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에게서 교훈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17절에는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고 했습니다. 법정 논쟁에서 피고의 말만 들으면 안 됩니다. 원고의 말도 들어야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한 쪽만 듣고 판결을 한다면 그 판결은 분명 잘못된 판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자신의 유리한 쪽으로만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개인 생활에서도 남의 말을 한 쪽만 들은 생태에서 판단하거나 정죄하면 안 됩니다. 한 쪽 말만 들은 내용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면 대인관계도 깨어질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범죄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고 했습니다. 육체가 병들어도 심령이 건강하면 쉽게 회복합니다. 실제로 병을 낫게도 하고 병이 지속될지라도 견디게 합니다. 그러나 심령이 병들면 육체가 건강할지라도 회복하기 힘듭니다. 육체가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낙심하고 절망하면 육체가 상하고 인생을 포기하게 됩니다.
16절에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선물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뇌물로서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존경과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표시라면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받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기도 합니다.
18절에 "제비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제비뽑기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사용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판결에 대한 근거가 불확실하여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없을 때나 힘의 우세에 의해서 결정될 우려가 있을 때에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제비뽑기가 옳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신약성경에도 제비뽑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유다가 죽어서 사도 수의 결손이 생겼을 때 수를 보충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행1:26). 하지만 그 이후에는 사용된 예가 없습니다. 사도들은 문제가 생길 때에 말씀과 기도로 해결할 것을 권면합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 말씀이 충분히 계시 되었기 때문에 말씀으로 해결해야 하며 기도로 해결해야 하며 영적 지도자들의 중재로 해결해야 합니다. 물론 제비뽑기도 할 수 있지만 제비뽑기 제도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역사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며 어떤 기도와 말씀과 지도자들의 권면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때에만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요행수가 될 수 있습니다.
19절에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 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다툼'에 해당하는 '미드와님(מדונים)은 법정 소송을 의미합니다. 형제 사이의 불화가 반목되어 법정에 까지 가게 되면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는 것보다, 산성 문빗장을 여는 것처럼 힘듭니다. 그러므로 법정에 가기 전에 사화해야 합니다. 마태복음5:23-26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의미가 있지만 실제적으로도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간 다음에는 나오기 힘듭니다. 불화한 자가 송사하기 전에 화해를 해야 합니다. 성도는 본질적으로 불신법정에 고소하지 않아야 하며 불신 법정에 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가 교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불의한 법정에 송사하는 것을 책망했습니다. 세상을 심판하고 천사를 판단할 자들이 어찌 믿지 않는 자들에게 판단을 받기를 청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고전6:1-7).
20-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열매'는 결과를 말합니다. 선한 말을 하든지 악한 말을 하든지 그 말대로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과 혀를 통해 나오는 말(言)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쉬지 않는 악이 나오고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 혀를 통해 나오는 말은 지옥에서 나오는 불 같아서 온 몸을 더럽히기도 하고 온 몸을 굴레 씌우기도 하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게도 합니다. 마치 말(馬)을 제어하는 재갈처럼, 배(船)의 향방을 가르는 키처럼, 많은 나무숲을 사르는 작은 불처럼 미치는 영향력이 큽니다 (약3:2-8). 그러므로 우리의 입과 혀를 잘 다스려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무심코 한 말들이 하나님을 참람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평생 상처가 되게 하고 자신의 생애를 망치게 하기도 합니다. 입으로 하는 말은 마음에 생각이 나온 것으로서 뱉은 말이 인격의 평가가 되어 호감을 얻지 못합니다. 스스로 자신이 버림받고 고립되고 망하는 길로 가게 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말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12:36-37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22절에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70인역(헬.γυναικα αγαθην)의 의미대로 좋은 아내를 의미합니다. 명철하고 지혜로운 아내를 얻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미련한 나발은 지혜로운 아비가일을 얻은 것이 생명을 보존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삼상25:1-35).
23-24절에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선택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늘 자비를 구하는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지만 부자들은 무자비하고 냉혹한 요구를 합니다. 재물의 많고 적음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회적 비참함입니다. 그리고 무분별하게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재산을 다 허비하므로 망하고 그런 다음에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와 상관없이 진정한 친구를 사귀면 어려운 때에 형제보다 낫습니다. 다윗과 요나단 같은 친구 관계는 진실된 관계입니다.
<結言>
일상적인 생활에서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 성공된 생애를 사는 길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섭리 원리를 알아 갈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