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혜의 근본과 결과
본문 : 잠언19:1-29
<序言>
전 장에서는 공동체 속에서의 삶의 방식을 두고 의인과 악인의 가치관을 대조적으로 구분했습니다. 본 장에서는 구체적인 삶에서 드러나는 의인과 악인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모든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유하고 겸손하게 행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성실히 행함, 노하기를 더디 함,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김, 자녀를 인자하게 징계함 등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관용적인 태도의 중요성(1-17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18-29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관용적인 태도의 중요성 (1-17절)
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2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4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5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
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7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8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9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10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12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13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6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1절). 가난해도 신념과 지조를 굽히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리석고 고집 부리고 완고하게 살아가는 사람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가난하더라도 정직을 따라야 합니다. 물질적 부요보다 정직과 성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2절에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른 생각없이 열정을 가지거나 급한 행동을 하는 자는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빠른 행동과 열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과 방법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열정을 낸 만큼 더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열심히 중요하지만 잘못된 깨달음을 가지고 열심을 낸다면 열심을 낸 만큼 하나님의 의도와는 멀어지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잘못된 지식은 열심을 낸 만큼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했다고 항변하지만 하나님이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책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로 깨닫고 바른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3절에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신의 미련함 때문에 잘못된 길을 들어서 놓고서는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 하나님을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잘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서 행동합니다. 잘못된 동기와 방법과 목적 때문에 망하는 길로 갑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욕망에 의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고도 하나님께 원인을 돌리는 것은 더욱 패역한 자입니다.
4절에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친구가 생기지만 가난한 자는 오히려 친구들이 외면합니다. 7절에는 "가난한 자는 그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는 심지어 형제들까지도 멀리한다는 것입니다. 부요한 자에게는 자신들이 뭔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가까이 하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오히려 자신이 도와야 할 상황이 올 것 같아서 피합니다. 심지어는 형제라도 자신이 도와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꺼리게 됩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해서 스스로 먹을 것이 있게 해야 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0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소극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주님을 돕는 것은 주님을 돕는 것이라고 했고 가난한 자를 돕지 않는 것은 주님을 돕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하는 것이 주님께 행한 것이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하지 않는 것이 주님께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25:35-45). 야고보서1:27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5절에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도 피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9절에도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은 무죄한 자가 형벌을 받게 하기도 하고 죄인을 무죄한 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거짓말은 다른 사람의 인격에 엄청난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거짓말은 자신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사단의 주장에 이용당하게 됩니다. 사단은 거짓말장이이고 거짓의 아비입니다 (롬8:44). 생명의 관한 일 외에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5:37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6절에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관대한 사람과 선물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따릅니다. 예리하게 지적하는 자보다 아량을 베푸는 자를 좋아하고 받기만 바라는 자보다 주기를 좋아하는 자를 좋아합니다. 대인관계에서 성공하려면 그런 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8절에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명철을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자이고 복을 얻는 자입니다. 10절에는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치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고 했습니다. 종이 권세를 얻는 것은 미련한 자가 재물을 얻는 것보다 위험합니다. 미련한 자는 재물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재물을 가지면 과시하게 되고 사치하게 되고 방탕하게 되고 더욱 진리에서 떠납니다. 종은 권세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권세자에게 학대받은 것에 대한 상처와 분노가 있어서 악을 행사하는 데 사용합니다. 종이 권세를 가지면 더욱 잔인하게 억압하게 됩니다. 부와 권세는 지혜있는 자가 가져야 하며 인성이 건강한 사람이 가져야 합니다. 곧 부와 권세보다 중요한 것이 지혜이고 자유로운 인성입니다.
11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고 했습니다. 12절에는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에 이슬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하고 (약1:20), 마귀로 틈타게 하고 (엡4:27) 다툼을 일으킵니다 (잠15:18). 15:18절에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특히 왕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분노하면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기까지 합니다. 왕이 내적 평안을 유지하면 백성들이 그 은택을 입지만 분노하면 해를 당합니다. 그러므로 왕처럼 공동체를 책임진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분노를 줄여야 합니다. 분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면에 상처와 울분 등 부정적인 감정이 내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훈련을 통해 화내는 것을 줄이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나아가 심령의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13절에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고 했습니다. 14절에는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아들은 아비로 하여금 근심과 고통이 되게 합니다. 다투는 아내는 남편에게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입니다. 27:15에도 "다투는 부녀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고 했습니다. 연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은 근심과 고통이 됩니다. 25:24에는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을 평안과 기쁨이 되게 합니다. 지혜있는 아비가일을 미련하여 죽게 된 남편 나발의 생명과 온 가족의 생명을 건졌습니다. 분노한 다윗의 마음을 평정시킨 여인입니다 (삼상25:1-35). 잠언16:14에 "왕의 진노는 살륙의 사자와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15절에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해태'(懈怠, 히.타르뎀마)는 '깊은 잠'을 의미합니다. 개혁개정판에서는 '태만'으로 개정했습니다. 게으르고 태만한 사람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육신의 안일만 추구하므로 굶주리게 됩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자는 굶주리지 않습니다.
16절에는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그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계명'은 하나님 말씀을, '행실'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영혼이 살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부인하거나 멸시하거나 순종치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킵니다. 요한복음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했고, 14:21에는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아는 자이고 진리에 속한 자입니다 (요일2:3-5).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18-29절)
18 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19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22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24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25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으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26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27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28 망령된 증인은 정의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29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18절에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26절에 보면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유기하거나 학대하거나 모욕하는 자식은 능욕을 당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30:17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21:17에는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부모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않는 불효자는 죽이기까지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는 그런 자식이 되지 않도록 아들에게 소망을 두고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옛말에 연아다여봉(憐兒多與捧)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일수록 매를 많이 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13:24에도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근실히 징계하느니라'(히.시카로 무살)는 일찍이 '때 맞춰 부지런히 징계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자는 자녀가 어렸을 때 바른 사고와 행동과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자녀가 다 자란 다음에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이미 사고와 행동이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고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 사고와 행동 습관에 의해 살아가기 때문에 만일 자녀가 나쁜 습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자녀는 많은 실패와 고통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징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목적이지 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노로 다스리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그렇게 되면 외부적인 습관은 고쳐서 어른들이 보기에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부정적인 인성을 갖게 되어 오히려 자녀의 인생을 망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이가 성인처럼 처신하는 것은 이미 인성에 문제가 생긴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나중에 성인아이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녀 입장에 있는 사람은 부모의 권고와 훈계를 잘 들어야 합니다. 20절에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지적으로 떨어질 수는 있으나 부모가 직간접으로 가진 경험지식이 있기 때문에 잘 따라야 합니다. 특히 부모가 신앙인이라면 신앙적인 권면을 잘 들어야 합니다.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지도해 주는 신앙적인 지도자의 권면을 잘 들어야 신앙적으로 지혜로워지게 됩니다.
19절에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건져 주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분노는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내재한 죄성이기도 하지만 상처나 열등감이나 울분 등의 부정적 감정에 내재되어 굳어진 인성에 의한 발로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행동은 일시적으로 절제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반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도와주면 또 다시 도와야 할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분노를 제재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16:32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맹렬한 분노를 발하는 것은 자기에게나 자기에게 도움을 주려 하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해를 준다는 것입니다.
21절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잘 계획하고 최선을 다해 행한다고 할지라도 그 계획대로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속사를 계획하시고 그를 이루기 위해 세속사에도 섭리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환경과 사람의 행위와 악령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계획을 경륜 가운데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계획과 행위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로마서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는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 뜻 중심으로 행하는 자는 재앙을 만나지 않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가 인생을 성공합니다. 22절에는 "사람은 그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인자'(히.헤세드)는 끊임없는 사랑 변치않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언약의 하나님과 언약의 백성 간의 친밀한 관계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에 불성실한 부자보다 나은 것입니다.
24절에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게으른 나머지 음식을 먹기 위해 손을 그릇에 넣었다가 그것을 다시 들어 올리기도 싫어하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옛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내가 멀리 출타하면서 게으른 남편이 음식을 차려 먹지 않아 죽을 것이 염려되어 떡을 만들어서 철사꿰미에 꿰어 남편의 목에 걸어주고 떠났습니다. 걸어준 떡을 입으로 먹고 있으면 굶어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돌아와 보니 굶어 죽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입이 닿는 곳만 먹고 입을 돌리기 싫어서 굶어 죽은 것이었습니다. 게으른 자는 밖에 사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밖에 나가면 찢겨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22:13, 26:13). 게으른 자는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도는 것처럼 침상에서 군다고 했습니다 (26:14). 게으른 자는 아무 데도 쓸 떼가 없습니다. 게으른 것은 악한 것입니다.
25절에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경성하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거만한 자는 바른 교훈을 거부합니다. 거만한 자는 바로 세울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만한 자를 처벌하면 분별력 없이 세류에 끌려 다니던 어리석은 자가 깨이게 됩니다. 명철한 자는 교훈을 잘 받아 들이기 때문에 그는 견책하면 그가 지식을 얻게 됩니다. 공동체에서도 긍정적인 부류와 부정적인 부류와 중간 부류가 있습니다. 중간 부류는 어느 쪽이든 헤게모니를 잡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사람들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하며 부정적인 사람들은 처벌해야 합니다.
27절에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내 아들아 교훈에 귀 기울이기를 중단하라 그러면 잡다한 지식에서 벗어나리라"고 번역했습니다 (Stop listening to instruction, my son, and you will stray from the words of knowledge.-NIV). 잘못된 교훈을 받아 들이지 않아야 할 것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을 혼란케 하는 그릇된 이단 교훈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말세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고 그들에게 미혹된 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24:2-4,11, 요이1:7). 요한이서1:10에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릇된 교훈을 가진 자와는 신앙적인 교제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리 외에도 세속적인 교훈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철학적인 내용이나 이성적인 내용이나 과학적인 내용 가운데 진리에 배치되는 이론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교훈에 몰입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리를 부정하거나 회의를 품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면서 (딤전4:7) 많은 사람들이 그런 허탄한 지식을 좇을 것을 경고했습니다. 디모데후서4:3에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했습니다.
28-29절에 "망령된 증인은 공의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법정에서 위증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업신여기는 자이고, 일상 생활에서 거짓말을 일삼는 악인은 죄를 쉽게 받아들이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만한 어리석은 자로서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교리로나 행위로나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과 진리를 거부하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공의를 세우려는 열심히 심판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結言>
인생에서 평탄하고 성공된 사람을 살아가려면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 말씀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물질적, 육체적, 세속적, 우상적 시각에서 보면 미련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