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잠언20:1-30
<題目> 여호와를 의뢰하는 마음
<序言>
20장은 다양한 교훈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만 의뢰하면서 신중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를 따라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툼을 멀리하고 나태와 속임을 금하고 의롭게 살며 술을 멀리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지혜와 개인의 경건생활(1-19절), 참된 지혜에서 비롯된 가치관(20-30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지혜와 개인의 경건생활 (1-19절)
1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2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3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5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6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7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8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10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11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12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13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14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16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17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18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지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1절에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왕과 제사장과 나실인은 술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잠31:4-5, 민6:1-4). 일반인들은 포도주를 먹었지만 레갑 족속 같은 경건을 힘쓴 사람들은 먹지 않았습니다 (렘35:6-11).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고 범죄하여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분별력을 상실하고 하나님이 말씀에서 벗어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23:31-35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 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고 했습니다. 술 자체가 죄라 하기 보다는 술은 분별력을 상실하고 방탕한 삶을 살게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게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사야5:11-12에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 하는도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5:17-18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롬13:12-14). 그런 맥락에서 보면 술 뿐 아니라 취하게 하여 분별력이 없게 하고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서 떠난 생활을 하게 하는 모든 대상이 술과 같은 것입니다.
2절에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왕은 생사권을 쥐고 있는 권세자입니다. 왕의 분노에는 잔인한 처벌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권좌에 있는 자가 노를 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로마서13:1-2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했습니다.
3절에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고 했습니다. 다툼은 피상적으로 보면 태도나 말에서 오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시각이나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차이에서 오기도 하고, 부정적인 성격이나 내면의 감정 때문에 오기도 하고, 죄성 때문에 오기도 하고, 악령들의 역사로 오기도 합니다. 어떤 원이든지 간에 다투게 되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상처와 분노를 더하게 되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다투는 것을 피합니다. 가치관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고 감정과 죄성에 대해서는 의지를 가지고 자제해야 하며 악령의 역사에 대해서는 기도로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화평을 추구합니다. 마태복음5:9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화평케 하는 직책이 주어졌습니다. 고린도후서5:18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4절에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 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생각만 하고 행하지 않으므로 인해 기회를 놓칩니다. 팔레스틴은 가을에 파종을 하고 봄에 거둡니다. 가을에 파종할 수 있도록 이른비가 내리는데 게을러서 그 시기를 놓치면 거둘 것이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13절에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고 했습니다. 남들이 일할 때 일하지 않으므로 거둘 것이 없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긍휼을 베풀지 않습니다. 만사가 다 적기가 있습니다. 시편126:5-6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5절에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행동은 그 마음에 생각에 의해 나타납니다. 그 생각은 깊은 물과 같아서 헤아리기 힘듭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행동만으로 판단하고 대응합니다. 하지만 명철한 사람은 마음의 동기까지도 식별하여 판단하고 대응합니다.
6절에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충성됨과 인자함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충성되고 인자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는 충성하고 인자하게 하지만 잘되지 않을 때까지도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충성된 자는 어려울 때 알 수 있습니다. '국난지충신 가빈지현부'(國難知忠臣 家貧知賢婦)라는 말이 있습니다. 충성스런 신하는 나라가 어려움을 당할 때 알게 되고 현숙한 아내는 가정이 가난해 질 때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7절에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완전'은 정직이나 성숙의 의미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본질적으로 완벽할 수 없고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완전한 것입니다. '의인'(히.차디크)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하는 자는 자녀들도 그 영향을 받아 바르게 살려고 하고 그 결과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받게 됩니다. 시편37:25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고 했습니다.
8절에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문맥상 의로운 통치자를 말합니다. 의로운 통치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대행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공의를 실현하려고 합니다. 그런 왕은 모든 악을 근절시켜 갑니다. 물론 악이 완전히 제거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 뜻을 따르려는 권세자는 죄악을 제하는데 많은 영향력을 미칩니다. 26절에는 "지혜로운 왕은 악인을 키질하며 타작하는 바퀴로 그 위에 굴리느니라"고 했습니다. 28절에는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고 했습니다. 인자와 진리는 주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관련된 말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통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스릴 때 그 권위가 세워집니다.
9절에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뇨"고 했습니다. 16:2에는 "사람의 행위가 자기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깨끗하다고 말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시면 깨끗하다고 말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히4:12-13). 예레미야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인간의 본성을 알게 되고 인간의 본성을 아는 자는 우리에게 죄뿐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했습니다 (딤전1:15).
10절에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23절에도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상거래 행위에서 저울과 말(斗)을 사용했습니다. 당시에 저울을 속이기도 하고 말을 속이기도 했습니다. 곡물을 살 때는 많이 들어가는 말을 사용하고 팔 때는 적게 들어가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부정직한 상거래 행위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행위입니다 (신25:13-16).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 공동체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못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적극적으로 속이지 않는다 해도 상거래 행위에서 보편적으로 이중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14절에 "사는 자가 물건이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물건을 살 때는 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흠을 말하다가 일단 그것을 사게 되면 자랑을 합니다. 그런 행위도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범사에 신앙 양심을 따라 정직하게 행해야 합니다.
11절에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고 했습니다. 아이라 해도 마음에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아이에 대한 교육을 시킬 때 행동에 대한 습관도 잘 길러 주어야 하는 동시에 마음에 바른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른은 당연히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합니다 (마15:11).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마음입니다 (렘17:9). 그러므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잠4:23). 선한 것을 쌓으면 선이 나오고 악한 것을 쌓으면 악한 것이 나오게 됩니다. 누가복음6:45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12절에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의 지으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만물과 인간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인간의 귀와 눈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귀와 눈도 필요에 의해서 내셨고 당신의 뜻에 맞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출애굽에 대한 사명을 줄 때 모세가 말할 줄 모르는 자기가 어떻게 바로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느냐고 거부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라고 했습니다 (출4:11-12). 하나님이 우리의 귀와 눈을 사용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귀와 눈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세속적이고 죄적인 말에만 집중하고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항상 우리의 모든 지체를 하나님이 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13:16에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15절에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고 했습니다. 3:14에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고 했고 8:11에도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금이나 진주가 귀하게 취급받지만 그보다 지혜로운 입술이 더 귀한 보배인 것입니다. 지혜있는 말을 하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반대로 미련한 입술을 가진 자는 가치가 없는 자입니다. 19절에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를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 험담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유언비어나 중상모략 등 해로운 말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들을 가까이 하면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인간관계에서 많은 손해와 고통을 받게 됩니다.
16절에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잡힐지니라"고 했습니다. 보증을 서지 말라는 말은 많이 나왔습니다 (6:1-2, 11:15, 17:18, 22:26, 27:13). '타인'과 '외인'은 낮선 자(a stranger-KJV,RSV, 행실이 나쁜 여자(a wayward woman-NIV)를 말합니다.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확인되지 않은 자에게 빚 보증을 서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과 분별력이 없는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17절에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수고도 하지 않고 속임수로 얻은 빵은 처음에는 맛이 있는 듯 하나 결국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한 것처럼 해독을 끼칩니다. 부정직한 방법으로 얻은 물질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21절에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부정직하고 무절제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은 행복이 되지 못합니다.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속히 재물을 모으기 위해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실제적인 유익이 되지 못하고 만족을 주지 못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낳습니다 (눅15:12).
2. 참된 지혜에서 비롯된 가치관 (20-30절)
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21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22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23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25 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
26 지혜로운 왕은 악인들을 키질하며 타작하는 바퀴를 그들 위에 굴리느니라
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28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의 왕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29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30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20절에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부모를 저주한 자를 사형에 처했습니다 (출21:17, 레20:9). 유암'(幽暗)은 흑암을 말합니다. 흑암 가운데 등불은 유일한 빛이지만 그것마저도 꺼지면 절망입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자가 당하게 될 끔찍한 결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부모와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을 공경하고 기쁘게 해 드리는 자가 좋은 생애를 경험할 것입니다.
22절에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의인을 악인에게 직접 심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로마서12:19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했고, 히브리서10:30에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고 했습니다. 원수에 대한 미움 때문에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원수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24절에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고 했습니다16:9절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했고, 16:33에는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의지를 따라 행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의 행동원리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유의지를 침해 하지 않고도 그의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당신의 경륜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는 사람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게 됩니다.
25에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결심하고 결단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서원하는 것과 맹세하는 것도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급하게 경솔하게 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급하게 서원하고 맹세하는 것은 그것을 지키지 못할 경우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5:34-37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맹세는 자신이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킨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맹세에 사용하는 하늘, 땅, 예루살렘 등은 우리가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머리라 해도 우리가 스스로 마음 먹은 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해야 할뿐 그 이상의 것으로 맹세하는 것은 오히려 악에 속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27에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영이 여호와의 등불로서 사람의 깊은 속을 살핍니다. 영어성경에는 사람의 영은 주의 등불로서 그의 마음 깊은 곳의 모든 것을 살핀다고 했습니다 (The spirit of a man is the lamp of the LORD, Searching all the inner depths of his heart. -NKJV).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기운으로 된 것입니다. 본문의 '영혼'(히.네솨마)은 창세기2:7의 '생기'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고유의 영, 예수를 믿어 거듭난 영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영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영이 하나님과 영교를 통해 힘을 얻어야 마음 속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고 마음 속의 생각들이 통제되어야 행동이 통제되는 것입니다.
29절에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고 했습니다. 노인의 흰 머리는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16:31). 의를 행하고 믿음을 지키며 고난을 통해 연단된 지식과 지혜는 젊은 사람이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젊은이는 능력을 통해 인정을 받고 늙은이는 경험과 경륜있는 분별력을 통해 존중받습니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모두 영광을 얻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이나 어른, 젊은이나 늙은이, 여자나 남자, 가난한 자나 부자 그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고 존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30절에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 하나니 매는 사람의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체벌이 악한 곳으로 빠지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13:24). 하나님의 징계도 그 고난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고 뉘우치고 그치게 하는 목적을 가집니다.
<結言>
참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의 원리를 깨달아 순종하므로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 신앙적 지혜로 살아갈 때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것이 당시에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성공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