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잠언21:1-31
<題目> 정직한 행위를 위한 추구
<序言>
전 장에서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실망치 말고 오직 선행과 의를 계속적으로 추구해 나가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 자에서는 악인과 의인의 행실의 특징을 대조적으로 비교함으로서 실제적인 삶 속에서 지혜자가 취해야할 삶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악인들의 형태와 특징(1-12절), 지혜자가 추구해야할 사실(13-31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악인들의 형태와 특징 (1-12절)
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
7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8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10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11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12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1절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직역하면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 안에 있다. 그는 수로처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것을 조정한다" 입니다. 개혁 개정판에는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보(저수지)의 물은 수로를 따라 흐르기 때문에 농부가 농사를 위해 물을 의도대로 댑니다. 제철소나 제련소의 고로에서 흐르는 봇물도 일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흐르게 합니다. 그와 같이 왕의 마음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의 결정을 통제하고 원하는 대로 조정합니다.
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외모로 판단합니다. 인간은 외부로 드러나는 행위와 결과를 보고 옳고 그름을 평가합니다. 인간은 행위 자체만 보고 의인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령을 감찰하는 분입니다. 행위의 동기와 의도와 목적까지 평가합니다.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3절에 "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정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을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예배 행위와 같은 의식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정직하고 공평한 삶없이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바른 삶의 결과로 예배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부적인 의식으로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인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상15:22-23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4절에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눈과 교만한 마음과 교만한 번영은 죄라는 것입니다. 교만은 사단의 속성이고 사단은 교만한 마음을 자극하고 하나님을 거부하게 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야고보서4:6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사울왕은 교만하므로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느부갓네살왕은 교만하므로 왕위에서 쫓겨났고. 헤롯왕은 교만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행12:23). 그래서 잠언18:12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5절에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한 자는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대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기 때문에 결국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빨리 재물을 모으려는 생각만 가지고 욕심만 가지고 계획을 세우고 조급하게 실행하기 때문에 실패하게 됩니다. 6절에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급하게 재물을 모으려 하는 자는 불려 다니는 안개와 같아서 언제 실패하여 망하게 될지 모릅니다. 디모데전서6:9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7-8절에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공의 행하기를 싫어함이니라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고 했고, 10-12절에는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는 경성하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악인은 공의롭게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원하고 이웃을 긍휼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죄시하지 않고 심판합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분별력없는 자들도 깨닫고 경성하게 됩니다. 에스겔25:2에 "인자야 암몬 족속을 향하여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를 더럽힐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무할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9절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움막'은 '지붕 꼭대기의 한 구석'(a corner of the housetop -KJV)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평평한 지붕 위의 한 구석에 손님을 위한 자그마한 침실을 짓는데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왕상17:19, 왕하4:10). 아무리 큰 집이라 해도 다투는 여인과 살 바에는 지붕의 한 구석의 손님 방에서 사는 것이 낫습니다. 19절에는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17:1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만큼 외부적 풍요보다 내적인 화목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2. 지혜자가 추구해야 할 사실 (13-31절)
13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14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15 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16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
17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18 악인은 의인의 속전이 되고 사악한 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이 되느니라
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20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21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22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이 의지하는 방벽을 허느니라
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25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26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
27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28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
29 악인은 자기의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느니라
30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13-16절에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신분이 낮은 가난한 자에게는 긍휼을 베풀지 않으면서 신분이 높은 부자나 권세있는 자에게는 노물을 바치는 관행적인 행위를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5:4-5에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2:13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25:31-46에 주의 종말적 심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목자되는 주께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세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은 의인 혹은 믿는 자, 염소는 악인 혹은 불신자를 비유한 단어입니다.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언제 그렇게 했느냐고 질문합니다. 그 때 임금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시사하는 것은 주님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의를 행하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을 주님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믿는 자, 하나님의 자녀, 의인의 속성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의를 행한다는 것이고 악인의 속성은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5-16절의 내용대로 공의가 실행될 때 의인은 좋아하나 악인은 두려워 합니다. 진리와 지혜를 거부하는 자는 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무리 가운데 속하게 됩니다.
17절에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육체적인 향락과 안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인생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으로 살아가는 자는 영적으로도 실패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습니다.
18절에 "악인은 의인의 대속이 되고 궤사한 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대속'(히.코페르)는 일반적으로 죄수를 방면하기 위하여 지불하는 몸값을 말합니다. 악인은 의인의 대속이 되고 불의한 자는 정직한 자를 대신하게 됩니다. 11:8에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받으나 악인은 환난에서 망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의인을 구하고 악인을 그 자리에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악인은 의인을 위해 활용하십니다. 16:4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의 악행을 허용하신 것은 의인의 구원하는데 사용하기 위함이고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데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악인은 하나님을 위해 있는 것이고 믿는 자를 위해 있는 것이 됩니다.
20절에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미래를 예비하는 자이기 때문에 검소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미래를 생각지 않고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좋은 것들을 탕진해 버립니다.
21절에 "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의와 인자를 추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 영광을 얻습니다. 마태복음5:6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의'(義)는 옳은 것을 말합니다. 주리고 목마른 것은 갈급해 하는 것을 말합니다. 메마른 사막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서 전신이 탈진되어 빈사상태에서 느끼는 아픔과 갈급함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배부를 것이라는 것은 채울 것이라는 말입니다. 가축이 꼴과 곡물을 풍족히 먹고 만족한 상태를 말하거나 혹은 사람이 음식을 풍성히 먹고 만족한 상태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 것은 먹을 것 없는 산에서 풍성히 먹고 12광주리나 남은 상태입니다.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의를 얻기 위해 갈급해야 합니다. 의를 이루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윤리적인 의뿐 아니라 신앙적인 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신앙적인 절대적 의는 하나님이며, 하나님 말씀이며, 하나님 뜻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닮기를 사모해야 하며, 하나님 말씀을 이루길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사명)을 성취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치관이 되고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22절에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의 견고히 의뢰하는 것을 파하느니라"고 했습니다.성을 정복할 때 군사들이 성을 기어올라 정복을 합니다. 그런데 견고한 성을 정복하는 것은 용맹하게 기어오르는 용사들의 공이 크지만 정작 성을 정복하는 주 요인은 정복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던 전략가의 지혜입니다. 화력이나 용맹보다 중요한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23절에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혀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해서는 안될 말은 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은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부정적인 말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공동체에 덕을 세우는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말은 하지 않고 영광이 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24절에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무례히 행하고 하나님께 대해 망령된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하고 부인하는 말들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사역에 손해를 끼치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25절에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정욕'은 바라는 욕망과 소원을 말합니다. 게으른 자는 욕심만 앞서서 목표는 크게 가지지만 일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것은 일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수고와 고난과 역경과 시련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목표를 이루는 데에 반드시 지불해야할 수고와 헌신이 있습니다. 바라만 보지 말고 발로 밟아 가기를 바랍니다. 비전만 바라보지 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실천을 하시기 바랍니다.
26절에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시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시제(施濟)하느니라'는 개혁개정판에서는 '베푸느니라'로 번역한 것처럼 구제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일 물질을 탐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를 힘씁니다. 이는 가치관의 문제이며 신앙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므로 어떻게든지 물질만 모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인정 받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하나님 나라의 균등함과 일원들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썩어져 없어질 물질을 투자하여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나옵니다. 애굽에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짐승을 기를 초장이 부족했습니다. 그로 인해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다투는 일이 발생합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나누어지기로 합니다. 롯은 물과 초장이 많은 소알 땅을 택했고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여 팔로가 좋은 소돔성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택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소알 땅이나 소돔성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택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11:11-12에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27절에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고 했습니다. 악인의 제사는 가증하고 악인이 악한 뜻으로 드리는 제물은 더욱 가증합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말씀에 반하는 죄악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가증된 일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자기 욕망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자기 욕망에 이용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전을 망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미가6:7에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15:22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가증된 제사와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시편51:17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범죄했을 때 그것을 감추고 욕망만 발설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는 심령으로 나가는 자가 말씀을 못 지켰을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믿는 자입니다.
28절에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개역 개정판에서는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고 번역했습니다. 확실하게 목도한 사람은 말의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된 증인은 자신이 목도한 그 진실을 목에 칼이 들어와도 끝까지 본 것을 증언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공회에 붙들려 심문을 받을 때 도무지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준 공회원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행4:19-20).
29절에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악인이 표정을 굳게 한 것은 속이기 위함입니다. 정직한 자는 행동을 신중하게 행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겉치레가 아닌 실제적인 근실한 행위입니다.
30-31절에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명철과 모략이 하나님의 의지를 앞서지 못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병을 많이 준비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수나 무기의 수나 화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삼상17:47). 신명기17:16에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도 우리의 실력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좋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도서9:11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부합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結言>
우리는 모든 생각과 생활이 하나님의 의지에 부합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6:33-34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했습니다. 구한다는 것은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