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잠언22:1-29
<題目> 가치있는 선택을 향한 추구
<序言>
본 장은 21:13 이하에서 언급한 지혜자가 생각해야 할 사실들의 내용을 최종적으로 종합하고 있는 동시에 계속 이어지는 대목의 주된 관심사인 참된 가치에 대한 방향을 연속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지혜자가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지식을 근거로 올바른 판단을 함으로써 보다 영적인 결과를 드러내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바른 선택 추구(1-16절), 주의해야 할 사실들(17-29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바른 선택 추구 (1-16절)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10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12 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14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16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1절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재물보다 명예와 은총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명예'에 해당하는 '쉠'(שם)는 문자적으로 평판, 명예 등에 에의 뜻입니다 (A good name -KJV). '은총'에 해당하는 '헨'(חן)은 호의, 은혜 등을 뜻합니다 (loving favour -KJV). 인격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호의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富)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에만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2절에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개역 개정판에는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니라"고 번역했습니다 (The rich and poor meet together: the LORD is the maker of them all. -KJV). 사회적인 신분적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동등합니다. 그것은 어떤 자이든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자기 목적대로 지었기 때문에 우열 관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시각입니다.
3절에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에 재앙의 암시를 느끼게 되고 그 암시가 느껴지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준비를 해서 그 재앙을 당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고난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준비하여 극복하게 됩니다. 미련한 자는 미래의 재앙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준비하지 못하므로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에만 만족하는 근시안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장차 올 고난을 느끼지도 못하고 준비하지도 못하다가 망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며 사는 자는 지난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보면 미래에 어떤 어려움이 올지 능히 예상하고 그것을 준비합니다.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4-5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인정하며 삽니다. 베드로전서5:6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입니다. 자신의 연약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완고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 여정이 순탄한 듯 보이지만 결국 파멸로 몰고 가는 각종 고통의 함정들을 만나게 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포기하고 맙니다.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아이'에 해당하는 '나아르'(נער)는 젖먹이로서 어린 아이를 합니다. '행할 길'는 '그 아이의 행할 길'입니다 (in the way he should go -KJV). 아이의 기질과 성격과 적성과 능력과 잠재력 등을 고려하라는 의미이고,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에 맞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라'에 해당하는 '하노크'(חנך)는 문자적으로 '가르쳐라' '훈련시키라' '봉헌하라'는 뜻으로서(train), 하나님께 일생을 바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훈련시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우리의 욕망에 따라 교육하지 말고 하나님이 아이에게 가진 뜻을 생각하여 아이의 성향에 맞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에 아이가 그 아이만이 할 수 있는 가치있는 일에 쓰임 받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자녀를 보내 주신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고 자녀에게 행복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고 결국 부모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 마크 쥬크스의 논문에 보고된 청교도 신학자 죠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의 7대 후손을 보면 729명 중 복음전도자가 300명, 교수가 65명, 부통령과 국회의원이 16명, 대학학장이 13명이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 세상적 목적으로 살아가는 한 가정의 7대손은 1200명 중 300명이 일찍 죽었고 대부분 감옥 생활자나 알코올 중독자나 창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죠나단 에드워드 가속은 영국에서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던 청교도들의 후손입니다. 청교도인들은 알파벳 A를 가르치면서 아담을, B를 가르치면서 바벨탑을, C를 가르치면서 가인을, D를 가르치면서 다윗을 가르쳤던 자들입니다. 현재 미국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 이른바 WASP (White, Anglo, Saxon, Protestants) 그룹도 그들의 후예입니다. 한국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년 전에 불교 조계종의 기관지인 '불교신문'에서 최고위층 인사들의 종교 현황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독교 42명, 천주교 20명, 불교 9명 순이었습니다. 1998년 인구센서스에 나타난 종교 인구 현황이 불교 23.2%, 기독교 19.7%, 천주교 9% 순이었던데 비하면 신앙 교육을 받은 자가 비교할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세계관이 된 사람은 훌륭한 리더가 됩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니엘이 그런 지도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언약적인 신앙을 가진 야곱에게서 자랐기 때문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 자기 가족과 민족을 흉년 가운데서 살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어렸을 때 이집트 궁정에서 신앙이 좋은 유모(어머니)에게서 자랐기 때문에 민족을 구원한 자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성전에서 엘리 제사장에게서 자랐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구한 사사가 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어렸을 때부터 성전에서 여호야다 제사장의 교훈을 받았기 때문에 유다의 선한 왕이 되어 40년 동안 치리했습니다. 에스더는 부모가 일찍 죽고 이방 땅에서 살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신앙이 투철한 외삼촌 모르드개에게서 자랐기 때문에 페르시아 왕후가 되었고 페르시아에서 일시에 학살을 당할 위기에 처한 유다인을 구한 자가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어렸을 때부터 믿음 좋은 어머니 유니게에게서 자랐기 때문에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교회 교육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딤후3:4-17).
7절에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삽니다. 그런데 부자가 가난한 자를 주장하게 됩니다.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됩니다. 가난이 죄는 아닙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해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하게 되면 물질 때문에 부요한 자들의 종이 될 수 밖에 없어서 위축되고 비굴해 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제재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성실히 일하여 자신의 필요를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꾸어 주고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을 만큼 벌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8절에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고 했습니다.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분노의 막대기로 무고한 자들을 억압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고통의 재앙을 만나게 되고 그 분노의 도구들이 힘을 잃게 됩니다. 무엇으로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둡니다. 욥기4:8-9에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악을 심는 자는 악한 결과를 얻게 되고 선을 심는 자는 선한 결과를 보게 됩니다. 갈라디아서6:7-9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당장에 힘들어도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시편126:6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했습니다.
9절에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고 했습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그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살지 않지만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신15:9-10).
10절에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고 했습니다. 거만한 자는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지 않는 자입니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에 대해 생각지 않는 자입니다. 그런 자는 모든 사고가 자기 중심적이고 세속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사고를 가진 자들과 항상 의견이 대립되며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쫓아내면 공동체가 평안하고 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집에서 화합치 못하므로 쫓겨 났습니다 (창21:9-14). 11절에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부정하고 비툴어진 자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공동체에 덕을 끼치지 못합니다. 허나 마음이 정결한 자는 자른 사람을 배려하고 덕스러운 말을 합니다. 그런 자는 신분이 높은 자의 호감이 됩니다. 12절에 "여호와께서는 지식 있는 자를 그 눈으로 지키시나 궤사한 자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지식'은 진리를, '궤사한 자의 말'은 비진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진리 지식을 가지고 말하는 자는 지켜 보호하시고 비진리를 말하는 자는 폐하십니다.
13절에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에는 게으른 자의 성격에 대해 자주 얘기 하고 있습니다. 26:14에는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고 했고, 19:24에는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본 절에서는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사자는 존재했었고 노소를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 식인 동물로서 공포의 대상이되었습니다 (렘49:19, 50:44). 하지만 사자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는 마을 밖 교외에 있는 동물입니다. 게으른 자는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 하기 위해 마치 마을 거리에 사자가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조심해야 한다는 암시까지 전합니다. 유대 격언에 "게으른 자는 선지자이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14절에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고 했습니다. 음녀의 호리는 말을 따라가게 되면 행음하게 되고 방탕하게 되고 그 인생이 망할 길로 가게 됩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구약과 신약을 무론하고 음녀는 우상숭배 행위로 끌고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우상의 신전에 신창들이 있어서 사람들을 우상숭배 가운데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그들을 따라가게 되면 우상숭배에 빠져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격노하는 죄악이고 하나님이 심판하는 죄악입니다. 끝까지 우상숭배를 하고 돌이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자입니다. 로마서1:23-24에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21:8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22:15).
15절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했습니다. 아담은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창세기8:21에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렸을 때부터 마음대로 행하도록 내버려 두면 악습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다 자라난 다음에는 그 악습을 고쳐 주려 해도 안 됩니다. 그래서 아이가 어렸을 때 잠재력을 계발시켜 주는 것이 중요한 동시에 악한 습성을 제재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일한 의미에서 13:24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16절에 "이를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부자에게 주는 자는 손해를 봅니다. 히브리어 문장 구조에서 '이' 곧 유익에 해당하는 '로'의 주격이 '가한 자를 학대하는 자'로 볼 수도 있고 '가난한 자'로 볼 수도 있습니다. 후자로 볼 경우 본 절의 문자적 의미는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자는 가난한 자의 유익이 되고~"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것은 그 억압이 오히려 가난한 자에게 유익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자에게는 그 축적된 재물이 멸망의 원인이 되게 하고, 억울하게 억압을 당하는 자에게는 억울하게 억압당하는 것이 승리하는 원인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역전된다는 것입니다.
2. 주의해야 할 사실들 (17-29절)
17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18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19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20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21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22 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23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24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25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26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27 만일 갚을 것이 네게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
28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29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17-23절에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에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내가 너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기록하여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마음에 두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말을 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찾아오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지혜롭게 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22-23절에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고 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는 힘이 없습니다. 누가 인권이나 소유를 빼앗아도 지킬 힘이 없고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 때문에 그런 사람을 만나면 탈취하고 압제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것을 탈취하지 말고 압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억울하게 한 자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24-25절에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고 했습니다. 울분과 분노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죄성입니다. 기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심리적 영향으로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부정적 감정이 많이 내재되어 있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고 울분과 분노가 많습니다. 죄성에 기질에 심리적 아킬레스까지 있다면 울분과 분노가 굉장히 많습니다. 울분과 분노를 자주하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잘 주고 어떤 사회에서도 성공하기 힘듭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면 손해를 많이 본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이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상실하게도 하고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를 잃게 하기도 합니다.
26-27절에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고대 개념에서 손을 잡는다는 것은 쌍방 중 한편이 반대편 사람의 보증인이 되는 표식을 의미합니다 (6:1, 11:15, 17:18, 20:16).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보면 "네 침대가 네 아래서 낚아챔을 당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채주가 채무자의 마지막 소유물인 침대마저 신속하게 빼앗아 갈 것을 말합니다. 율법은 이런 행위를 금하고 있지만(출22:25-27, 신24:12-13) 당시 악한 채주들은 그같은 행위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느5:5, 겔18:12).
28절에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은 조상시대 때에 정해진 경계석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선조 때부터 정해진 경계석은 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경계선을 정한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지파와 가속별로 분배해 주었기 때문에 땅의 경계석을 옮기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땅의 경계석을 옮겨 다른 사람의 땅을 취하는 것은 악한 일이었습니다. 신명기19:14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 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고 했고, 신명기27:17에도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왕상21:16-19, 사5:8, 호5:10).
그와 관련되어 지파도 옮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민수기36장에 보면 가나안 땅 분배와 관련하여 슬로브핫 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앞 모압 평지에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그 주 목적은 가나안 분배였습니다. 분배 원칙 가운데 하나는 각 조상의 이름을 따라 받는 것이었습니다. 지파와 종족과 가속을 따라 20세 이상되는 남자의 수대로 분배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므낫세 지파에 속한 슬로브핫이라는 사람은 광야에서 죽었는데 그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은 인구조사에 계수되지 않아서 가나안 땅을 분배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슬로브핫이 요셉의 7대손으로서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음에도 아들이 없어서 후손에게 땅이 분배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그의 딸들이 모세와 엘르아살 제사장과 족장과 회중들 앞에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아버지 슬로브핫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기는 했으나 고라당 반역에 참여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자연사로 죽은 것인데 아들이 없다고 해서 가족에게 가나안 땅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사정을 듣고는 그 사연을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의 말이 옳으니 그 아버지에게 돌아갈 기업을 얻도록 배려해 주라고 했습니다 (민27:1-11). 그런데 슬로브핫 가정이 속한 가속의 두령들이 모세와 이스라엘 족장들에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슬로브핫 딸들이 하나님의 지시와 모세의 명령대로 가나안 땅 기업을 분깃으로 받았는데 만일 다른 지파로 시집을 가게 되면 그들이 가진 므낫세 지파 기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므낫세 지파의 기업이 삭감될 것이 아니냐는 항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들의 말을 옳게 인정하고 슬로브핫 딸들은 시집을 가되 다른 지파로 가지 말고 자기 지파 내에서 시집을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파의 기업이 이동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여성 상속법의 한 규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그 안에서도 하나님이 작은 단위로 나누어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깨달음, 성령에 대한 은혜, 사역에 대한 비젼 등이 다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계7:5-8에도 구원받은 성도의 무리 전체를 상징성을 가진 12지파로 나누어 기록했습니다. 그것들을 잘 계승 발전시켜 그 축복을 이어 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해서 믿음을 잃어버린 것도 안 되지만 (고후6:14, 고전7:39), 믿음 안에서도 같은 깨달음과 추구점을 가진 그룹에서 떠나 하나님이 원하는 사역의 축복을 잃어버려서도 안 됩니다.
예레미야 35장에 보면 남유다왕 여호야김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레갑 족속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우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레갑 족속을 데려다가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가져다 놓고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선조 레갑의 아들 요나단이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조상의 권면을 순종하여 대대로 평생 장막에 거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렘35:1-10). 당시 사람들이 모두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바침이 나실인과 왕과 제사장은 마시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당시에 포도주를 마셔도 무방했습니다. 그러나 레갑의 아들 요나단은 그와 그 후손이 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여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했고 그 후손은 대대로 그 명령을 지켜 온 것입니다. 보통 포도주를 마셔도 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 좀더 바로 살기 위해 나름대로 정한 규례를 지켰습니다. 조상이 세운 좋은 규례를 지킨 것입니다. 오늘날 개혁을 부르짖다 보면 믿음의 선진들이 세운 전통적 규례를 모두 부정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것이라 해도 믿음의 선진들이 세운 좋은 규례는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좀더 바로 살기 위해 규례를 만들어 지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상숭배와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철저히 하는 것은 좋은 규례입니다.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을 하는 것도 좋은 습관입니다.
29절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근실한'에 해당하는 '마히르'(מהיר)는 '빠른' '능숙한' 의미입니다. 어떤 일에 민첩하고 능숙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결과에만 얽매여 기대감만 잔뜩 가지고 실제로는 게으른 사람이 아닙니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기량을 연마하는 데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런 사람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結言>
본 장의 내용은 삶에서 매 순간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알게 해 주는 말씀들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므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