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잠언24:1-34

<題目>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序言>

  전 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쾌락주의자들에 대한 결론을 서술했습니다. 본 장에서는 의인으로 하여금 악인들의 외적인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의인들에게 실망치 말고 지혜를 따라 행동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영적으로 무장할 것(1-22절), 후회없는 삶을 추구할 것(23-34절)로 구성되었습니다.

  

<本論>

          1. 영적으로 무장할 것 (1-22절)

 

  1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2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3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4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5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6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7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8 악행하기를 꾀하는 자를 일컬어 사악한 자라 하느니라

  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13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14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5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18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19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21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

  22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그 둘의 멸망을 누가 알랴

 

  1-2절에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 입술은 잔해를 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악인의 물질적 형통과 번영을 부러워 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의 결과는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20절에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고 했습니다. 시편1:4-6절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악인이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2절에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 입술은 잔해를 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그들의 마음은 파괴를 연구하고 그 입술은 해악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려는 음모를 생각하고 그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거짓과 중상모략을 한다는 것입니다. 곧 악인은 물질적인 부가 있을 지라고 그 부가 악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고 그 인격이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고 가치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4절에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의인화 되고 있는데 건축가에 비하고 있습니다. 사전적으로 지혜는 지식을 근거로 일과 사건을 처리하는 해결 능력이라면 지식은 사물을 아는 인식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능력이라면 지식은 인생에 필요한 지적 정보를 얻는 능력입니다.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는 인생일 살아가는 능력이라면 지식은 하나님 말씀을 아는 능력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혜는 범위가 크고 지식은 작습니다. 그래서 건축가로 볼 때 지혜는 집을 세우고 지식은 방의 물건들을 채웁니다. 한마디로 지혜와 지식은 생명과 행복과 번영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인이 파괴와 멸망을 가져오는 것과 반대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5-7절에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의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있는 자는 깉이 뿌리박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견고합니다. '모략'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세운 전략이고 '모사'는 전략을 짜는 전략가를 말합니다. 싸움에서 무기의 화력도 중요하고 군사의 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지휘관들의 전략이 중요합니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은 외부적으로 물질과 힘이 없을지라도 그것들만 있고 미련한 자들을 능가합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가 너무 높아서 얻지를 못합니다. '너무 높아서'(히.라모트)는 문자적으로 바다에서 나는 산호를 뜻합니다 (욥28:18, 겔27:16). 지혜는 미련한 자에게 있어서 값이 비사서 구할 수 없는 산호와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의 수준과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아예 얻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얻으려 해도 얻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혜는 지혜자의 것입니다. 그러니 미련한 자는 항상 지혜로운 자를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들은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합니다. 당시 성문은 재판하는 곳으로서 성문에 앉은 자는 권세자입니다. 지혜자가 권세를 가지고 재판하는 자리에 있게 되고 그 재판에 미련한 자는 입을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혜자의 지혜에 답하지 못하거나 권세자의 판결에 반항하지 못한다는 뜻도 있지만 지혜자는 재판하는 위치에 있고 미련한 자는 재판을 받는 자리에 있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곧 결국은 지혜자가 잘되고 미련한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인의 일시적인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아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8-9절에 "악을 행하기를 꾀하는 자를 일컬어 사특한 자라 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사특한 자는 무법하고 거짓되고 음란한 자로서 늘 악만 생각하는 자입니다. 그런 자는 당장에는 수완있는 사람처럼 보여서 사람들이 속기도 하지만 결국은 마음에 숨은 음모가 드러나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10절에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직역하면 "만일 재앙의 날에 연약함을 보인다면 너의 힘은 작다"입니다. 모든 일이 잘되고 평탄할 때는 누구나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강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심각한 역경을 만나게 되면 무기력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신앙의 수준은 여기에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사역자에게 일이 사역이 잘될 때보다 안될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영적 실력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형통할 때보다 환난 때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욥처럼 말할 수 없는 총체적인 환난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욥기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11-12절에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전쟁, 기근, 질병, 실패 등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는 자를 구해야 합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돕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심정입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보면 강도만난 자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지나쳤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눅10:30-36). 이는 유대교의 전통과 권위가 생명을 살리지 못하고 그들이 멸시하는 예수님이 진정한 생명을 줄 것을 말하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우리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도와야 합니다. 요한일서3:17-19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근동 지역에 진정한 그리스도인들로 칭찬을 받았는데 그들이 칭찬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랑의 수고'였습니다. 사랑을 나타내는 데에는 수고가 따르고 희생이 다릅니다 (살전1:3). 혹시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노라' 곧 심각한 어려움에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할지라도 그 책임을 면치 못합니다. 그만큼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주님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말도 됩니다 (마25:31-46). 주님이 오셔서 심판하실 때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풀지 않는 것을 자신에게 베풀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책망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주의 심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의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2:13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13-14절에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꿀과 꿀송이는 달고 맛있는 식물이지만 무엇보다도 육체의 힘을 주는 식물입니다. 사울왕 때에 블레셋이 이스라엘 영내에 수비군을 두었는데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이 그들을 쳤습니다. 그 때문에 블레셋 본토에서 대군이 쳐들어와 믹마스에 진쳤습니다. 병거가 30,000 마병이 6,000 그리고 보병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그 보병들은 모두 투구와 갑옷과 칼과 창으로 무장했습니다. 이스라엘 상비군은 3,000명이었는데 블레셋 군대의 수와 화력에 두려워 한 나머지 다 도망하고 600명만 남았습니다. 남은 군사들도 사울과 요나단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칼 조차도 없었습니다. 요나단이 병기 든 한 소년을 데리고 블레셋 진영으로 적전상륙하여 반일경 동안 20명을 죽였습니다. 블레셋 진영은 요동했습니다. 블레셋군에 징집되어 온 히브리인 출신 군사들이 합세했습니다. 두려워서 숨었던 이스라엘 군사들도 나와서 싸웠습니다. 급기야 블레셋 군대는 도망했고 이스라엘 군대는 계속 추격하였습니다. 그때 사울왕은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치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군사들은 피곤했습니다. 그러던 중 수풀에 들어갔을 때에 땅에 꿀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이 견디지 못하고 꿀을 지팡이로 찍어 먹었습니다. 그러자 눈이 밝아졌습니다 (삼상14:27). 밝아졌더라'의 기본 어근(히.올)은 '빛나다'입니다. 요나단의 육체에 힘이 불끈 난 것입니다. 이것이 꿀의 효과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꿀과 같아서 우리의 영혼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힘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자는 영육간에 복을 누리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시119:103).

 

  15-16절에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악인에게 의인의 가정을 공격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은 완전수입니다. 의인은 사람들이 보기에 완전히 멸망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다시 회복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도와 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한 번 파멸에 이르면 다시 일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돕지 않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한 번 망하면 자신에게 다시 회복할 힘이 없거니와 하나님이 의인을 공격한 죄 때문에 일으켜 주지 않기 때문에 다시 회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의인은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도우셔서 다시 회복시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고 영광받으시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의인의 집을 공격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멸망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집' '처소'는 개인의 가정뿐 아니라 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이 의인들을 통해 세웠습니다 (마16:18). 교회는 하나님이 친히 구속사역을 위해 세운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친히 영광을 받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어서지 못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과 섭리와 경륜과 목적이 있는 교회에 손해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이 사역자들을 통해 세우신 것입니다 (엡2:20). 그리고 사역자를 세워 운영해 가십니다 (계2:1, 1:20). 그러므로 사역자를 공격하는 것은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경륜을 거슬리는 행위입니다. 엘리사가 벧엘로 갈 때에 그를 조롱하던 아이들 40명은 암콤에 찢겨 죽었고 (왕하2:23-24),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을 때 숙식을 제공하므로 못 낳던 아들을 낳게 되었으며 아들이 죽었을 때에 살게 되었던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왕하4:8-37). 예수님이 대신 진 구레네 사람 시몬은 그 가정이 신앙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막15:21, 롬16:13). 바울을 도왔던 뵈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은 그 선행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롬16:1, 롬16:3,19).

 

  17-20절에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 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고 했습니다. 악한 자가 잘될 때에 분을 품고 그들이 망하기를 원하고 그들이 망할 때에 웃고 그들이 고통당할 때에 마음의 희열과 만족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바입니다. 잘못된 사람에 대해 판단하고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판단하고 심판하려는 는 심리를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악함에 대한 분노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리를 침해 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암몬 족속은 유다 백성이 멸망할 때 '아하 좋다'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겔25:2). 악한 자는 우리가 심판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때가 되면 그들을 심판합니다. 더욱이 내세에서는 그들의 악함을 절대로 간과하지 않습니다. 로마서12:19"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을 나타낼 의무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로마서12:20-21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5:44-45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21-22절에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이 두 자의 멸망을 누가 알랴"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세운 왕을 경외해야 합니다. 로마서13:1-2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했습니다. 왕뿐 아니라 모든 공동체의 리더도 하나님이 세운 줄 알고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공동체를 세워 가시기 때문입니다. 사회 공동체이든 교회 공동체이든 그 리더가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그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세운 자이고 하나님이 사용하는 자인 줄 알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자는 통합적 시각이 없어서 성공할 수 없는 자이고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모르거나 부정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사건건 불평만 하고 지도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를 사귀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큰 해를 자초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범죄에 관한 일까지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2. 후회없는 삶을 추구할 것 (23-34절)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24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25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28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29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30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31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32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33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34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23-26절에 "이것도 지혜로운 자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무릇 악인더러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낯은 보아 주는 것'은 편애하는 것을 말합니다. 재판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어느 한쪽은 편애하여 불공정하게 재판을 하므로 악인을 옳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싫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공정한 판결을 선고하는 자를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입맞춤'은 신뢰와 존경의 표현입니다. 공적인 재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생활에서도 진실된 말을 하므로 진실된 교제를 할 때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와 애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7절에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고 했습니다. 문자적 직역은 "밖에서 너의 일을 하되 밭에서 준비하라 그 후에 네 집을 세우라"입니다. '밖에서 밭 일을 하는 것'은 소득을 위한 일이고, '집을 세우는 것'을 가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당시 혼인 풍습을 보면 남자가 아내를 맞기 위해서는 그 아내될 사람의 보호자에게 사의로 상당 분량의 빙폐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창34:12, 출22:16-17, 룻4:5, 삼상18:25). 본문이 그런 점이 반영된 말씀이라면 본문은 아내를 얻어 가정을 이루려면 먼저 빙폐를 준비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에도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떤 목적을 가졌으면 그것에 대한 기도만 하지 말고 그것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 한다면 그것을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28-29절에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너는 그가 내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법정에서 거짓증인이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법정 뿐 아니라 개인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을 근거없이 비판하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이 있어도 반드시 보복해야겠다는 생각은 옳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기도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5:43-45).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롬12:19). 우리는 원수 갚는 일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여전히 우리의 가야할 길을 가야 합니다.

 

  30-34절에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증왕(曾往)에' 라는 말은 일찌기 지나간 적이 있다는 말입니다.전에 게으르고 미련한 자의 밭과 포도원을 지나면서 보니 지면에 가시덤불과 거친 풀이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스스로 생각이 깊어지고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궁핍이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좀더 자자' 하면서 일하기를 싫어하고 미루는 자는 가난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잠언26:13-15절에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게으르면 생각지 않은 때에 가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結言>

  일반 생황에서도 게으르면 궁핍하게 되지만 신앙생활에서도 게으르면 금방 죄성이 세력을 확장하고 세속적인 생각이 퍼져서 순식간에 영적 침체가 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보면 곡식 밭에 가라지가 생긴 이유는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덧뿌리고 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13:24-30) 이 비유는 종말에 관한 비유이지만 일반 신앙생활의 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게으름을 피면 그 사이에 악령들이 악한 생각들을 넣게 됩니다. 사역에서도 잠시 게으름을 피면 악령들이 금방 악한 자들을 그러므로 만들어 놓고 맙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6에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