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잠언26:1-28

<題目>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序言>

  본 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반드시 버려야 할 속성들을 제시하는 동시에 타인과의 교제에 있어서 잘못된 습성들을 지니고 있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미련하고 게으른 자들에 대한 경고를 통해 지혜자의 건전한 삶의 양식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1-12절), 게으른 자에 대한 경계(13-16절), 거짓된 말을 하는 자에 대한 경계(17-28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1-12절)

 

  1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4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5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6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7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8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10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1절에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부지하고 인정하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원리를 부정하고 자기의 지식과 지혜와 경험으로 판단하고 행하는 자입니다. 자기의 죄적 완고함과 욕망을 따라 행하는 자입니다. 여름에 눈이 오는 것과 추수할 때에 비가 오는 것은 아무 유익이 안되고 오히려 해만 될 뿐입니다. 미련한 자에게 높은 지위와 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미련한 자는 영예가 주어져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권세를 남용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는 데 사용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도 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막대한 손해를 끼칩니다. 8절에도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물매는 돌을 던지는 기구입니다. 미련한 자에게 돌과 물매가 주어지면 많은 생명을 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미련한 자는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를 내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련한 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절에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참새는 흔하게 보이지만 이유없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먼 나라로 이동하는 제비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유없는 저주는 임하지 않습니다. 참새와 제비처럼 잠깐 보이다가 이내 없어지고 맙니다. 저주한다고 해서 저주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저주받을 일을 해야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까닭없이 악평할 때는 하나님께 맡기고 대항하지 않아야 합니다. 축복을 빌면 대상자가 복을 받을 자격이 없으면 빈 사람에게 오듯이 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3절에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자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고 했습니다. 말과 나귀는 말을 알아듣지 않습니다. 자기 고집대로 합니다. 그러므로 물리적인 힘을 가하여 다스립니다. 어리석은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련한 자는 매를 때려서라도 바로 인도해야 합니다. 속된 말 가운데 미련한 자에게는 약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징계로 다스립니다.

 

  4-5절에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옛말에 언불청도불행(言不聽道不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 아니면 듣지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미련한 자에게 맞장구를 치며 미련한 자와 같이 됩니다. 미련한 자의 미련한 말에 호응하면 미련한 상황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와 논쟁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미련한 자가 해를 가하는 공격을 할 때는 단호하게 옳은 말을 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고 죄에 대해 찬양할 때는 단호히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미련한 자에게 휩쓸리지 않는 길입니다.

 

  6절에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이라 해를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두 발이 잘리면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것처럼 미련한 자에게 소식을 전하게 하면 자신이 전달하려고 하는 소식을 전하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미련한 자는 중요한 소식을 전달하는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의 완고한 고집에 의해 움직이는 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낸 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사명받은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일을 시키는 데 있어서 미련한 자를 시키는 것은 곧 자신의 두 발을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큰 고통이 따릅니다. 10절에도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자를 고용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장인'(匠人)은 중요한 것을 만드는 기술자입니다. 장인이 만들려고 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만들 수 없고 그 부분에 숙련된 사람이어야 가능합니다. 장인이 중요한 작품을 만들면서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고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마디로 미련한 자는 중요한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이고 그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면 일을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른 고통이 따라올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7절에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절름발이의 다리는 부조화와 무기력함에 대한 비유입니다. 잠언의 내용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 해도 미련한 자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바로 적용하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밟고 물고 찢습니다. 마태복음7:6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고 했습니다. 9절에는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술 취한 자는 지적 분별력이 없고 행동을 제어할 수 없고 도구를 바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가시나무가 쥐어진다면 그는 자기에게 상처를 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줍니다. 미련한 자에게 잠언의 말씀이 주어지면 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과 남에게 손해를 줍니다.

 

  11절에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개는 자신이 토한 것을 도로 먹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실패하면 깨닫고 다음에는 실패할 수 있는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죄의 고통을 경험했으면 다시 그 죄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실패할 선택을 하고 여전히 돌이키지 않습니다 (벧후2:20-22). 호세아4:14에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고 했습니다.  

 

  12절에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미련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 자는 미련한 자만도 못합니다. 자신의 무지함과 무력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와 실수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자가 소망이 있습니다.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했고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는 세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눅18:9-14). 바울은 자신의 약한 점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고후12:5-9).

 


          2. 게으른 자에 대한 경계 (13-16절)

 

  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6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13-16절에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의 속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집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밖에 무서운 사자가 있다고 핑계하면서 자신이 일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일을 하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터로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게으른 자는 마치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도는 것처럼 잠자리에서 뒹굴고 나오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싫어할 정도입니다. 19:24에도 동일한 표현이 나왔습니다. 게으른 자는 일하기 싫어하며 일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핑계를 댑니다. 그러면서도 미련하기까지 하여 자신을 가장 지혜롭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들이 바른 말을 해주는 것을 거부합니다. 게으르고 미련하고 완고하면 인생이 고달플 수 밖에 없습니다. 6:10-11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게으른 자는 주님 오실 때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므나 비유에서처럼 게을러서 신앙인격을 성장시키지 않으면 책망을 면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19:12-27).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사명을 감당하지 않아도 책망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마25:14-30). 열 처녀 비유에서처럼 신앙 실력을 준비하지 않으면 환난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마25:1-13). 환난과 주의 재림이 도적같이 올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살전5:2, 벧후3:10). 요한계시록16:15에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3. 거짓된 말을 하는 자에 대한 경계 (17-28절)

 

  17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18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19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21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22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23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24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25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26 속임으로 그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27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28 거짓말 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17절에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개는 오늘날 가정에서 기르는 길들여진 개가 아니라 들개로서 사납기가 짝이 없습니다. 그런 개의 특성은 물고 찢는 것입니다. 그런 개가 싸우고 있을 때 귀를 잡으면 물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와 상관없는 싸움에 끼어 드는 것은 해를 자초하는 것이 됩니다. 상처를 입게 되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지도 못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평화의 사도로서 분쟁을 조정해야 합니다 (마5:9). 하지만 설득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싸움에 끼어 드는 것은 오히려 분쟁이 커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단이 틈을 타서 우리가 해야 할 길을 하지 못하도록 활용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다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18-19절에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화살에 불을 달아 사람에게 쏘는 자 곧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분명 정신없는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자기 이웃을 속이고 희롱하였다고 말하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손해를 끼치는 것인데 그렇게 해 놓고도 심심풀이로 농담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나오는 자도 미친 사람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속여 놓고 그 행위를 농담 한마디 한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의 인격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농담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인권이 유린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0-22절에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고 했습니다. '별식'에 해당하는 미틀라하밈(מתלהמים)은 '한 입 거리의 맛있는 음식'을 가리키기도 하고 '성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에 대한 말입니다. 남을 비방하고 험담하는 말은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상자에게 큰 상처를 남깁니다. 그래서 70인역(LXX)에는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자의 말은 부드러우나 그 말은 뱃속 깊은 곳을 치느니라"고 했습니다. 남의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항상 다툼을 일으킵니다. 마치 숯불에 숯을 더하고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말장이는 불을 더욱 타게 하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래서 말장이가 없어지면 마치 나무가 다 없어지면 불이 꺼지는 것처럼 다툼이 그칩니다. '말장이'에 해당하는 '니르간'(נרגן)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입니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도 악하지만 그 말에 맞장구쳐 주는 사람도 악한 사람입니다. 마치 도둑도 나쁘지만 도둑이 도둑질한 물건을 사주는 사람도 나쁜 것과 같습니다. 도둑질한 물건을 받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도둑질도 쉽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도 호응하는 사람이 없으면 힘을 잃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다툼이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23절에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입술'에 해당하는 '세파타임 돌레킴'(דלקים שפתים)은 문자적으로 '불타는 입술'로서 겉으로 애정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말을 하는 입술을 말합니다. 그런 입술을 가진 자는 악한 마음을 숨기고 겉으로만 선한 말을 하는 자입니다. 그것은 마치 낮은 은을 입힌 토기와 같습니다. '낮은 은'에 해당하는 '페세프 시김'(סיגים כסף)은 질이 낮은 찌끼 은을 가리킵니다. 위선의 말은 마치 토기에 광택을 입히려고 은을 입히지만 찌꺼기 은을 입혀서 가치를 더욱 떨어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24-25절에 "감정 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감정'(히.시느아)은 극도의 증오와 혐오를 말합니다. '일곱가지'는 완전과 충만에 대한 상징 표현입니다. 위에서 말한 위선자, 곧 마음 속에 극도의 미움을 가지고 있는 자는 겉으로 사랑스런 말을 하더라도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속에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26-28절에 "궤휼로 그 감정을 감출지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고 했습니다. 위선자는 속에 있는 혐오감을 감추고 사랑스런 말을 할지라도 그 악한 마음이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사람을 죽이기 위해 땅에 함정을 판 자가 도리어 그 곳에 빠지고 위에서 돌을 굴리려고 하는 자가 도리어 그것에 치이게 되는 것과 같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려는 자는 결국 그것이 자기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갈6:8). 바벨론에서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던 자들이 오히려 죽게 되고 바사에서 모르드개를 죽이려던 하만이 오히려 죽게 된 것과 같습니다 (단6:24-28, 에7:10).

 

<結言>

  다른 사람에게 악한 마음으로 상처를 준 사람은 반드시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추어진 마음 속의 음모가 반드시 드러납니다. 이 세상에서 감추어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때에 낱낱이 드러나게 됩니다. 마태복음12:36-37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