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잠언27:1-27

<題目>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묵상


<序言>

  본 장은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깊이 묵상하여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인간 능력의 제한성과 가변성을 언급하고 하나님의 불가해적 섭리를 언급하므로 결국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내용구조는 인생에서 필요한 지혜(1-16절), 인간의 만족 추구(17-27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인생에서 필요한 지혜 (1-16절)

 

  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2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3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

  4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5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6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7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8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

  9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10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11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으리라

  12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13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14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15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16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1절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는 지혜가 없고 또한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원하는 대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때에 죽음이나 질병이나 사고가 임할 수도 있고 그것들이 들이닥칠 때에 해결할 능력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전도서12:3-5에는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사고와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서4:13-14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12:17-20에는 부자가 밭의 소출의 큼을 보고 곡간을 더 크게 짓고 곡식을 쌓아 주고 스스로 '이제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영혼을 거두어 가면 그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고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에 충성해야 합니다. 마태복음6:34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했습니다. 좀더 가치있고 생명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6:27에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2절에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칭찬하거나 자랑을 하게 될 경우 객관적인 사실이 아닐 경우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고 객관적인 사실일 경우 교만하다는 인식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또 그 객관적인 판단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판단하도록 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려 해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요12:43).

 

  3-4절에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고 했습니다. 돌과 모래무더기는 무겁습니다. 분노는 그것들처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분과 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홍수처럼 힘들게 합니다. '분'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 강조된 말이고 '노'는 외부로 나타난 행동을 강조한 말입니다. 투기는 그보다 더 합니다. '투기' 마음 속의 시기와 질투가 행위로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아벨을 시기 질투하여 증오했고 급기야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고 자기 제사는 받지 않았는데 자기의 잘못을 생각하여 고쳤으면 되었을 텐데 하나님에 대한 분노를 아벨에게 투사하여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그 결과 정신적으로 두려움이 있었고 영적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창4:1-15). 투기는 정신적인 고통과 영적인 고통을 불러 일으킵니다. 분노와 투기는 우리의 부패한 죄성이고 사단과 마귀와 귀신의 성품이기도 합니다. 마귀는 분을 내어 이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 (계12:12). 욥이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욥만 사랑하는 것을 투기하여 하나님 하시는 일을 방해했습니다 (욥1:21). 분노와 투기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5-6절에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친구가 잘못된 길로 가는 데도 꾸짖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근거한 꾸지람은 당시에는 상처가 될 수 있지만 그 꾸지람은 인생을 바로 살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잘못 나가는 데도 여전히 달콤한 말만 해주는 것은 친구가 아니라 망하기를 원하는 원수의 행동과 같은 것입니다.

 

  7절에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고 했습니다.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꿀처럼 단 것이라도 싫어하지만 절실한 필요를 가진 사람은 쓴 것이라도 좋아합니다. 인생의 허무함 속에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다음에도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하고 멸시받고 천대받고 미련한 자를 부르십니다 (고전1:27-28). 그래서 복음 초청의 메세지를 보면 이사야55:1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자 가운데서도 영혼의 곤고함을 느끼는 자가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감동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습니다. 시편42:1-2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고 했습니다. 마태복음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고 했습니다. 우리는 의를 행하기에 갈급해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5:6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고 했습니다.

 

  8절에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공동체를 떠나게 되면 생존에 심각한 위험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가장 혹독한 징벌 중 하나가 공동체에서 축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를 떠난 자는 생명의 위협과 곤고함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집을 떠난 탕자가 이방 도시에서 탕진하게 된 다음에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돼지 치는 일을 하여 연명하게 되고 먹을 것이 없어서 쥐엄열매를 먹었고 그것 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집을 떠난 자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비참하게 됩니다 (눅15:11-16). 물을 떠난 물고기는 살 수 있어도 성도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17:5-8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9-10절에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사람이 방문하기 전에 집안에 뿌려 놓은 기름과 향은 더운 날씨에도 기분을 상쾌하게 했습니다. 친구의 진실한 권면은 결국 인생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진실한 친구는 친구가 잘못 나갈 때에 권면해 줍니다. 그런 친구의 권고를 잘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런 친구를 만들고 그런 친구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런 친구를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성품이나 욕망 때문에 혹은 의견 차이 때문에 버려서는 안됩니다. 그 친구는 나이 차이가 나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처럼 믿음의 친구는 인생 길에서 넘어질 때에 일으켜 줄 자이며 힘들 때에 같이 가 줄 자입니다. 형제나 친척이 우릴 위하지만 환난 때에는 거절하기도 합니다. 진실한 믿음의 친구는 혈족보다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시편133:1에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했습니다.

 

  11절에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잘 살면 아버지에게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되고 아들이 잘 못살면 아버지가 고통을 당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혜롭게 살아서 자기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말할 것이 있게 하라고 합니다. 시편127:4-5에는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뿐 아니라 스승과 제자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대로 바로 살면 스승에게 기쁨이 되고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자랑을 하게 됩니다. 혹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됩니다. 바울은 조롱과 비난 속에서도 자기에게 복음을 받은 자들이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을 볼 때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살전2:17-20). 성도가 믿음 생활을 잘 할 때 목회자가 기뻐하며 담대한 것과 같을 것입니다.    

 

  12절에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재앙'(히.라아)는 문자적으로 '나쁜' '악한'의 뜻입니다 (evil -KJV,NASB). 본 절을 현대어 성경에서는 "슬기로운 이는 나쁜 일을 만나면 그 자리를 피해 가도 어리석은 숙맥은 제 발로 걸어가 화를 입는다."고 번역했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악을 분별하여 악한 일을 보면 참여하지 않고 피하므로 악행의 결과로 오는 나쁜 결과를 피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악에 대한 분별력을 가지지 못하여 악행을 하므로 해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옳지 않게 생각하는 일을 분별력을 가지고 쳐다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런 자가 지혜로운 자이고 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13절에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 잡힐지니라"고 했습니다. 현대어 성경에서는 "다른 사람 대신 보증 선 사람에게는 겉옷을 담보로 잡아 놓아라. 생면부지일 때에는 안됐기는 하지만 그 사람까지도 담보로 잡아 두어야 한다."고 번역했습니다. 확실하게 믿음이 가지 않은 사람에게 보증을 설 때에는 옷을 담보로 잡아 두어야 하고 그것이 없을 때에는 몸이라도 담보로 잡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나쁜 마음을 먹기라도 한다면 그가 입힌 손해를 다 갚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 그가 나쁜 마음을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불가항력적인 잘못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 때에는 대신 갚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빚 보증은 기본적으로 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6:1, 20:16, 22:26). 그것은 그 사람이 진실한 사람일지라도 일이 상황에 따라 실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꼭 보증을 서 주어야 한다면 담보를 잡고 있어야 같이 망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불가불 보증을 서 주어야 할 때가 있다면 그가 잘못되어도 대신 갚아 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땐 시험에 들게 되어 돈 때문에 사람까지 잃게 되고 신앙까지 잃을 수도 있습니다.

 

  14절에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축복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침에는 고요한 상태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고요한 때에 지나치게 큰소리로 요란스럽게 축복하면 오히려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목적이 좋을지라도 방법이 상황을 고려하지 않거나 상대방의 의중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면 오히려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23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아야 하며 자기 중심이 아닌 대상 중심으로 행해야 합니다.

 

  15-16절에 "다투는 부녀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은 집안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지붕이 새는 집에서는 비가 계속 오게 되면 천정에서 물이 계속 떨어집니다. 그런 경우엔 집안에 있는 사람은 방 안에 있는 것이 괴로울 것입니다. 결국 집에서 나가게 될 것입니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인과 사는 남편도 같은 처지입니다 (19:13, 27:25). 그래서 25:24에는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사는 남편은 집 안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고 집에서 나가려 할 것입니다. 말싸움하기를 좋아하는 아내의 말을 제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의 기질과 성품과 행동을 억제하기란 마치 바람을 제어하려는 것같이 힘들고 기름을 움킨 손에서 냄새를 숨기려는 것처럼 힘듭니다. 그러므로 기질적으로 온순하고 성품적으로 온순한 여인과 사는 자가 복된 자이며 분노를 오히려 쉬게 하는 지혜로운 여인과 사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15:1). 그래서 여인들은 속 사람을 단장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3:3-4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서로 다른 기질, 성품, 환경, 교육,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싸움을 줄이려면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마음이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고 섬기는 마음입니다 (빌2:5-8).

 


          2. 인간의 만족 추구 (17-27절)

 

  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18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19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20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24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5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26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27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17절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철이 철을 부딪혀 더 날카롭게 되는 것 같이 친구끼리의 인격적 관계는 더욱 발전하게 합니다. 진실한 친구가 같은 비전을 향해 토론하고 의논하는 것은 더욱 성장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탈무드에서 " 두 생도는 토라 연구 중에 서로를 예리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토론하고 연구하게 하는 방식을 종교교육을 위한 효과적인 방식 중의 하나로 소개한 것입니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두 사람이 할 때 힘도 덜 들고 효과도 가속됩니다. 시너지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너지(synergy)효과란 쉽게 표현하면 1+1=2가 아니라 3,4,5...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능력과 한 사람의 능력이 합쳐져서 이전에 전혀 바라지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때에 시너지가 생성되었다고 말합니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륙과 대륙을 이동하는 철새들, 특히 기러기와 같은 조류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것이 시너지와 관련이 있음을 밝혀 냈습니다. 기러기는 혼자 날아가는 때보다 V자와 같은 모양으로 날 때에 71%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 이유는 기러기들이 무리 지어 날갯짓할 때에 발생하는 상승기류 때문입니다. 이것이 뒤로 갈수록 커져서 뒤에 나는 기러기는 그만큼 에너지를 덜 소비하게 되며 더 멀리 날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너지가 생성된다는 것은 인간의 잠재 능력을 끌어내어 극대화 한다는 의미와 함께 이전에 없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흡사 가속도 법칙과 유사합니다. 혼자서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와는 전혀 다른 환경과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생산성이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18절에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무화과 농사를 하는 사람은 무화과나무를 보살필 때는 힘들지만 잘 보살핀 만큼 수확을 얻게 됩니다. 그와 같이 종은 주인을 섬기는 것이 힘겹지만 잘 섬긴 만큼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심는 대로 거두고 수고한대로 얻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에도 노력하고 수고한 대로 은혜를 받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과 기도하는 자가 얻게 되고 은사도 사용하는 자가 계발되게 되고 인정도 섬기는 자세로 봉사하는 자가 받게 됩니다.   

 

  19절에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면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자신의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을 보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6:1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20절에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음부'(히.쉐올)은 죽음이나 사후의 세계를 가리키고, '유명'(히.아바도흐)는 멸망이나 파멸을 가리킵니다. 개혁개정판에서는 원어의 기본형을 음역으로 하여 '스올과 아바돈'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둘은 전 시대와 전 민족을 통틀어 모든 사람을 잡아 삼켜 왔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여 지금도 잡아 삼키고 있으며 미래에도 계속 삼킬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사람의 눈은 온 세계를 볼 수 있으며 보는 대로 취하고자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금한 것을 보고 취했던 아담과 같이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것까지도 모두 취하고자 합니다. 30:15에는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음부와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고 했습니다. '다고 다고'는 개혁개정판에서는 '다오 다오 하느니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 성경의 표현을 보면 '주십시오 주십시오 하며 운다'는 것입니다 ('Give! Give!' they cry. -NIV). 사람의 눈, 거머리의 딸, 배지 못한 태, 물로 채울 수 없는 땅, 족하다 하지 아닌한 불 등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욕심과 욕망을 두고 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욕심도 한이 없으며 아무리 취해도 만족이 없습니다. 이 욕망을 제어해야 합니다. 그 욕망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요한일서2:16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21절에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단련)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도가니는 광석을 담아 녹이는 용광로를 말하고 풀무는 불을 땔 때에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입니다. 금이나 은은 도가니와 풀무로 시련합니다. 금이나 은은 용광로에 넣어 불을 가하여 녹이므로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그래서 남은 금속물로 가치를 알게 됩니다. 분명 도가니와 풀무는 순전한 것과 불순한 것을 가려내는 도구입니다. 사람의 순전한 것과 불순한 것을 가려내는 것은 칭찬입니다. 현대어성경에는 "은은 도가니로, 금은 풀무로, 사람은 칭찬으로, 그 됨됨이를 알아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칭찬으로 인격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높여 때 되지 못한 자는 우쭐대며 교만해지고 된 자는 오히려 겸비하며 겸손해집니다.    

 

  22절에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절구'는 곡식을 빻기 위해 곡식을 넣는 통이고 '공이'는 절구통에 넣은 곡식을 내리쳐 빻는 도구입니다. 곡식은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으면 껍질이 벗겨져 알곡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어도 그 미련함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잘못된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것을 바로 가르쳐 줄 때에 듣지도 않고 완고하게 자기의 생각대로 고집을 부리는 자입니다. 미련한 자의 미련함은 정교한 작업을 통해서도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온갖 교훈과 권면과 징계를 해도 오해만 하고 더욱 완고해질 뿐입니다. 하나님이 교훈과 징계를 통해 바로 세우려 할 때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고 소망이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징계를 한다는 자체가 하나님이 소망을 가진 사랑의 대상자라는 증거입니다 (히12:8).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잘못 나갈 때에 버려 둡니다 (롬1:28). 하나님의 그같은 노력을 하실 때 고집 부리지 말고 바로 서야 합니다.  

 

  23절에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고 했습니다. 목축을 하는 사람은 마음을 항상 양떼와 소떼에 두고 그들을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죽거나 병들거나 다치지 않고 잘 자라게 되며 그에 따른 소득이 생기게 됩니다. 옛말에 돼지를 잘 치려면 돼지와 같이 살고 돼지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인도하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나 교사는 항상 마음을 그들에게 두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삼상12:23). 교육과 심방과 상담을 게을리 하지 말고 그들을 돌아보며 보살펴야 합니다. 25-27절에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 사람의 식물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히 풀이 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살펴서 좋은 꼴을 베어 양떼나 염소떼에게 주면 많은 소득을 얻게 됩니다. 목축을 하는 자는 짐승에게 좋은 꼴을 주는 것이 필요하고 영적인 사역을 하는 자도 일원들에게 필요한 신령한 양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24:45에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인도자들은 기도와 말씀 준비에 전무하여 영이 살고 힘을 얻을 만한 말씀을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신앙적인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24절에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고 했습니다.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합니다. 재물로 인한 영광도 대대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옛말에 '화무실일홍이요 세무 십녀과라'(化無十日紅 勢無十年過)는 말이 있습니다. 꽃은 10일가는 꽃이 없고 권세는 10년 가는 권세가 없다는 말입니다. 재물, 육체, 권세는 모두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약4:14). 잠언23:5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12:20-21에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재물 자체에 소망을 가지고 살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디모데전서6:7-9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잠잘 곳만 있으면 만족하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고 했습니다. 요한일서2:17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結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말씀을 잘 깨닫고 묵상하고 적용하고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길이고 영원히 남아 있는 가치를 얻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