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잠언28:1-28

<題目> 지혜자의 현명과 탐심 경계


<序言>

  본 장은 악인의 특성과 본질에 관한 최종적인 진술을 담고 있습니다. 악인과 의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그 본래적 특성 및 표출되는 현상을 연속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통해 악인과 의인의 성격과 행위, 그리고 그 행위에 따르는 결과의 차이를 대조해 가면서 다양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구조는 의인의 현명함과 복된 삶(1-18절), 탐심에 대한 주의와 지혜로운 선택(19-28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의인의 현명함과 복된 삶 (1-18절)

 

  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2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3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5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6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8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9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10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

  11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12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15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16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17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18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1절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로서 악행에 따르는 죄책감과 초조함과 불안함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한 다음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동산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창세기3:10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고 했습니다. 또한 범죄자는 보복의 공포로 인하여 항상 그 마음이 눌려 있고 두려워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에 대해 두려워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 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4:13-14에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죄를 짓기는 하나 회개를 통한 용서의 기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담대히 행합니다. 그리고 5절에는 "악인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고 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과 심판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선악에 대한 분별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쉽게 범죄하고 스스로 고통에 빠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기 때문에 그에 맞게 살아갑니다.

 

  2절에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죄'는 '페솨'(פשע)로서 반역과 모반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나라가 반역이 많아져서 혼란스러워지면 통치자가 자주 바뀌어집니다. 그 때 지혜로운 통치자가 있다면 그런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문제가 일어났을 때 잘 해결하므로 나라가 오래도록 안정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떠난 북이스라엘의 왕조는 2세기 남짓의 기간에 9번이나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남유다의 왕조는 하나님 말씀대로 통치하는 지혜로운 왕조들이 나와서 3세기가 넘는 기간에도 한 왕조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지혜로운 자가 지도자가 되어야 공동체가 안전하고 번영하게 됩니다. 28절에는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악한 권력자가 나오면 사람들이 두려워 하여 통치 행위에 협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로운 권력자가 나오면 지혜롭 덕망있는 사람들이 일어나 돕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됩니다.

 

  3절에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면 동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가난을 경험한 자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가난한 처지를 잘 알기 때문에 잘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처지를 잘 알만한 사람이 학대를 하게 되면 더 큰 성처를 받고 고통을 느낍니다. 마치 폭우가 곡식을 남기지 않고 싹 쓸어버렸을 때에 느끼는 좌절감을 느끼게 합니다. 15절에는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권세자는 가난한 자들에게 굶주린 사자나 곰처럼 느껴집니다. 8절에는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많아지게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고리대금으로 착취하는 재물은 결국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위해 쓸 수 있는 자에게 돌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도 하나님이 내셨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이고 하나님이 부르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물질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부족한 사람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27-29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27절에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본 체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도 하나님이 내셨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긍휼히 여겨 구제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혹시 가난한 자가 자기에게 구걸이라도 할까 봐, 행여 자신이 그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낄까 봐 가난한 자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합니다.  

 

  4절에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예민하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악인을 칭찬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예민한 자는 악인을 멀리합니다. 7절에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탐식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탐식자'는 문맥상 방탕한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예민하여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방탕한 자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믿음에 타락한 자와 함께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고 말씀대로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9절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뜻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의 기도를 외식을 받아들입니다. 예레미야14:12에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15:7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6절에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사곡히 행하는 부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가난하지만 깨끗하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자가 재물이 많으면서 비뚤어지게 살아가는 사람보다 낫습니다.  10절에는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악한 사람은 정직한 사람을 유혹합니다. 고상한 행위에 대한 증오, 자신에 대한 자만,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망, 다른 사람을 자신의 욕망에 이용하려는 욕망 등에 의해 유혹합니다. 그런 자는 정직한 자를 넘어뜨리므로 승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스스로 함정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적 심판에 의해 자신이 넘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18절에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고 했습니다. 힘들어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바른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도외시하고 비뚤어진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자는 인생에서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11절에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겨도 명철한 가난한 자는 그를 살펴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자신이 지혜로워서 재산을 많이 모은 줄 알지만 가난한 자는 그 부자의 마음 속과 행동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부자의 어리석음을 가난한 자가 아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눅12:20-21). 부자보다 가난한 자가 더 통찰력이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적인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2절에는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자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기뻐하지만 악한 사람이 일어나 정권을 잡으면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하나님도 싫어하고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13절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죄를 숨긴다는 것은 죄를 탐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가볍게 여기거나 변명하거나 부인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시편32:3-5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1:8-9에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숨기지 말고 자복하여 회개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기쁨과 자유와 담대함을 누려야 합니다. 14절에는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죄에 대해 예민하고 죄행을 두려워 하고 죄행을 멀리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강퍅하여 죄에 대한 이해가 없고 죄에 대해 둔하고 죄행을 서슴치 않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거절되어 파멸이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15-16절에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는 백성을 압제하는 관원은 백성들에게 사자와 곰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자의 입은 사자 같고 발은 곰 같습니다 (계13:2).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치리자는 욕심을 따라 신하와 백성을 부당하게 대하므로 항상 반역과 암살의 위험에 있게 됩니다. 그 자리가 영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있는 치리자는 사심을 버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기 때문에 그 위가 길고 개인적 장수도 보장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보호하고 축복하십니다. 17절에는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현대어성경에서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제 무덤 스스로 파는 자이니 아무도 그를 막지 말아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는데 주도한 치리자는 반드시 징벌을 받게 됩니다. 그 징벌받을 자를 막지 말라는 것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얼마나 확고한지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2. 탐심에 대한 주의와 지혜로운 선택 (19-28절)

 

  19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21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22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23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24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

  25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28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

 

  19절에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는 소득이 풍성해지지만 자기 일을 게을리 하는 방탕한 자는 소득이 없어지게 됩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고 일한 대로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마5:45).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먹지 못하게 했지만 동산의 각종 나무 실과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창2:16). 자연은총, 일반 은총은 노력한 만큼 얻어 누리게 됩니다.

 

  20절에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충성된 자'는 맡은 일에 최선의 노력을 하는 자입니다. 환경 속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자는 하나님이 허락한 복을 많이 얻습니다. 그러나 성실히 일하기 보다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얻고자 하는 자는 심각한 죄에 빠지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됩니다. 21절에는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을 인하여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문자적인 직역은 "사람을 차별 대우하는 것을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은 한 조각의 빵을 위해서 범죄하기 때문이다."입니다. 지연, 학연, 혈연 이해관계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하는 자는 뇌물을 받는 데에까지 나아갑니다. 그것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습관화되면 양심이 둔해지고 죄를 짓게 됩니다. 22절에는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자는 재물 얻기만 급급해 합니다. 자기에게 빈궁이 임할 줄은 알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그 욕심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결국 위의 구절들은 재물에 대한 욕심에 대한 경고입니다. 탐심을 가지고 살면 ①하나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마태복음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욕심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요한일서2:16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물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모든 우상숭배자들이 재물에 대한 탐심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 자체가 우상적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3:5에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②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도 바른 기도를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지도 않습니다. 야고보서4:3에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따르면 행복할 것 같지만 도리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③다른 사람과 다툼만 일으킵니다. 25절에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탐심을 가지고 있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4:1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풍족하게 됩니다. 영적인 만족과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4:12에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부모와도 다투게 됩니다.   24절에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는 자는 억지로 고집을 부리며 횡포까지 부리면서 부모의 재산을 자신의 소유로 돌리는 행위에 대한 암시입니다. 그런 자는 누가 물으면 어차피 부모가 죽으면 자기의 재산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현재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얻는 것이 현명하지 않느냐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는 부모에 대해 존중함도, 감사함도 없는 불순종의 행위입니다. 그런 자는 부모를 고통스럽게 하는 자로서 살인자나 다름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부모공경을 비중있게 말씀하십니다 (딤전5:4). ④스스로 고통을 당합니다. 디모데전서6:9-10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 것들은 다 지나가고 마는 것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요한일서2:17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재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6:17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고 했습니다. 재물을 따라가면 하나님도 잃고 재물도 잃지만 하나님을 따라가면 하나님도 얻고 재물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물을 포함한 모든 필요를 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23절에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첨하는 말이 달콤하지만 나중에는 경책하는 말이 더 유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좋지만 망할 길로 가는 자에게 까지 아첨하는 말을 하여 망할 길로 가는 데 더욱 힘을 얻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야고보서5:19-20에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26절에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죄성의 좌소입니다. "마태복음15:19-20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고 했습니다 (막7:21, 갈5:19-21). 이 죄성은 영혼을 거스려 싸웁니다. 갈라디아서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좇아가는 영적 성향을 반대하고 대적하고 대항하여 이깁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합니다 (롬7:15-25). 그래서 베드로는 베드로전서2:11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혜롭게 행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이것을 믿지 말고 이것이 우리를 자기 소욕대로 끌고 가지 못하도록 날마다 영적 전투를 통해 제어해야 합니다.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히브리서12:4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 승리해 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롬8:1). 그리고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5:16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도움을 구하고 성령의 감동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結言>

  결국 지혜로운 삶이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소극적으로는 죄성의 대표적인 탐심을 제어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신앙으로 평안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이고 성공한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