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잠언31:1-31
<題目> 르무엘의 잠언
<序言>
본 장은 르무엘의 잠언으로서 지혜자가 추구해야할 공의의 모습과 지혜자가 소유해야 할 이상적인 아내상을 언급하므로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규정짓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통치자가 경계해야 할 대상(1-9절),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10-31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통치자가 경계해야 할 대상 (1-9절)
1 르무엘 왕이 말씀한 바 곧 그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
2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3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
4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5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6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7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8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9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
1-2절에 "르무엘 왕의 말씀한 바 곧 그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고 했습니다. '르무엘 왕'은 솔로몬 왕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이방의 왕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이상적인 왕에 대한 상징적 이름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국사(國事)를 수행중인 젊은 왕이거나 방백인 것 같고, 르무엘은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뜻이라는 점을 볼 때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성별된 자인 것 같습니다.
3절에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지어다"고 했습니다. 왕이 조심해야 될 것에 대한 권면입니다. 여자들에게 힘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지어다"은 '여자'와 '일'을 동격으로 보아 한 문장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여자에게 관심을 갖고 빠지게 되는 것은 결국 왕이 망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많은 왕이 여자로 인하여 멸망 길을 들게 된 예들을 근거로 한 말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물욕과 정욕과 사욕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요일2:16).
4-7절에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그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포도로 만든 술이고 '독주'는 보리나 대추야자나 꿀로 만든 술입니다. 왕이 술에 취하게 되면 분별력을 상실하여 백성들을 공의로 재판할 수도 없고 다스릴 수도 없습니다. 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죽게 된 자, 마음에 근심하는 자입니다. '죽게 된 자'는 병들어 고통스러워 하는 자를 말하고 '마음에 근심하는 자'는 마음이 고뇌로 고통스러워 하는 자를 말합니다. 독주가 고통을 덜어 준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마27:34). 디모데전서5:23에도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했습니다.
※ 성경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한 이유
술은 알코올 성분이 있어서 먹으면 취하게 하는 모든 음료수를 통틀어 한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일반 민중에게는 취하지 말라고 했으나 성별되어야 할 나실인이나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아예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민6;3, 잠31:4-5, 사28:7, 레10:9). 나실인에게는 생포도든 건포도든 포도 씨든 포도 껍질이든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민6:3-4).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술은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잠23:31). 술에 즐기는 자와는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23:20). 그 결과가 패망이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23:21, 사5:11). 신약성경에도 감독(목사)이나 집사 등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들은 술을 즐기거나 인 박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딛1:7, 딤전3:8). 누구든지 술에 취하는 자와는 사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고전5:11, 15:33). 유대 사회에서 일반인들 가운데서도 레갑 족속같이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포도주를 먹지 않았습니다 (렘35:5-8).
성경이 술을 무조건 못 먹게 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배경 당시 팔레스틴 상황에서는 음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고뇌 가운데 있는 자에게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잠언31:6-7에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그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죽게 된 자'는 병들어 고통스러워 하는 자를 말하고 '마음에 근심하는 자'는 마음이 고뇌로 고통스러워 하는 자를 말합니다. 독주가 고통을 덜어 준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마27:34). 디모데전서5:23에도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술을 멀리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음주의 동기와 목적과 방법과 양 등에 대한 논란을 벌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 이유를 알게 되면 자연히 변론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①영적 타락을 가져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술은 분별력이 없어지게 합니다. 만일 제사장이 술을 먹게 되면 제사 규례를 잊어버려 제사를 바로 드릴 수 없게 됩니다 (레10:8-11). 혹 왕이 마시게 되면 하나님의 율법을 잊어 버리고 재판을 공의롭게 할 수 없게 됩니다 (잠31:4-5). 선지자가 먹게 되면 하나님의 이상을 바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사28:7). 호세아서에는 술이 마음을 빼앗아 음행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했다고 했습니다 (호4:11-13). 결국 술이 분별력을 없이 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만듭니다.
②정신적 타락을 가져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술은 방탕하게 하고 덕을 상실하게 합니다. 로마서13:13에는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라고 했고 에베소서 5:18에는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노아는 술에 취하여 장막에서 벌거벗고 있게 되었고, 아들 함이 그것을 보고 누설했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9:20-23). 롯은 소돔성에서 나와 굴에 있을 때 술취한 것 때문에 두 딸과 행음하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대적인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창19:30-38). 술이 도덕적으로 타락을 가져오게 한 예입니다. 술로 인한 타락은 종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마24:38-39).
③육체적 패망을 가져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술은 한 번 먹게 되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물질을 탕진하게 하고 몸이 병들게 하고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합니다. 잠언21:17에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고 했고, 23:21에는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라고 했고 호세아7:5에는 우리 왕의 날에 방백들이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나며 라고 했습니다. 술 취하는 생활은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많은 손해를 보게 합니다.
술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해악을 가져오게 하는 매개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술에 취하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술은 한 번 입에 대기 시작하면 절제하기가 힘들고 마침내는 습관화 되게 됩니다. 김유신 장군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아예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23:31-35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 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무엇이든지 세상 문화와 문명에 관한 것들을 사랑하거나 그것에 도취되면 술취하는 것과 같은 결과에 빠지게 됩니다 (계17:2, 18:3). 그러므로 무엇에든지 그것들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취하려거든 성령께 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삼상1:12-15, 행2:13-15, 엡5:18). 에베소서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8-9절에 "너는 벙어리와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간곤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벙어리'는 문자 그대로 말을 못하는 자로 보기 보다는 자신들을 위해 말할 수 없는 신분이나 위치나 형편에 있는 자로 보아야 합니다. '고독한 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혼자의 힘으로는 무엇을 해결할 수 없는 자입니다. 벙어리와 고독한 자는 이어지는 9절에서 말하는 대로 간곤한 자나 궁핍한 자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대상을 나 몰라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왕은 그런 자를 도와야 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삼하14:4-11, 왕상3:16-28).
2.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 (10-31절)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살펴 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7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0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3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24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25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 자기의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10절에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고 했습니다. 10-31절은 각절의 첫 단어 첫 자음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10절 첫 단어 첫 자음은 알파벳 첫 자인 '알렙'으로 시작되어 마지막 절인 31절 첫 단어 첫 자음은 알파벳 끝 자인 '타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답관체라고 부르는 문학 기법인데 이는 10-31절이 독립된 주제임을 암시합니다. 그 내용은 현숙한 여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진부보다 더 귀한 사람인데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11-20절에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상고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 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 힘으로 허리를 묶으며 그 팔을 강하게 하며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그는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라고 했습니다. 현숙한 여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남편에게 믿음을 줍니다. 첫째는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않습니다 (12절). 살아 있는 동안 남편을 선대하고 근심하게 하거나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을 합니다 (13절). 친히 힘든 일도 기쁨으로 해냅니다. 셋째는 상고의 배처럼 먼데서 양식을 가져옵니다 (14절). 상인의 배 곧 무역선이 먼 곳에서 상품을 가져오듯이 가속에게 진미를 먹이기 위해 먼 밭에까지 갔다 옵니다. 넷째는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 그 집사람에게 식물을 나눠 주고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깁니다 (15절). 날이 새기 전에 일찍 일어나 집안 식구들을 위해 매일의 양식을 준비하고 집안 사람들에게 임무를 분담시킵니다. 근면성과 계획성이 있습니다. 다섯째는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습니다 (16절). 밭을 사는 일에 신중히 하여 가산을 잘 관리하고 늘려 갑니다. 여섯째는 힘으로 허리를 묶으며 그 팔을 강하게 합니다 (17절). 일과 활동을 힘있게 하기 위해 허리를 묶습니다. 민첩성이 있습니다. 일곱째는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않습니다 (18절). 밤새도록 일하느라고 밤에도 등불을 끄지 않습니다. 근면성이 있습니다. 여덟째는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습니다 (19절). 이는 문자적으로 '그녀는 물레 위에 손을 두고 또 다른 손은 물레 막대기를 잡고'입니다. 이는 가사에 쓸 천을 짜기 위해 물레질을 하는 모습입니다. 아홉째는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해 손을 내밉니다 (20절). 부지런히 일하여 모은 소유를 움키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풉니다. 이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한 다비다(도르가)를 연상시킵니다 (행9:39).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이방 교회들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룻다'라는 곳에 있을 때 그 곳에서 가까운 '욥바'라는 곳에서 '다비다'라는 여인이 죽었습니다. 다비다는 헬라식으로 번역하면 '도르가'였는데 그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던 자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당시에 베드로가 욥바에서 가까운 룻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내어 욥바로 빨리 오도록 간청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들과 함께 욥바로 와서 다락으로 가보니 과부들이 서서 울고 있었고 다비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내보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죽은 다비다를 향해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뜨고 베드로 앞에 앉았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와 과부들을 불러 그의 산 것을 보였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행9:32-43). 다비다의 선행이 과부들로 하여금 감동을 받게 했고 그들로 하여금 베드로를 청하게 했고 베드로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여 살게 했고 욥바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21-22절에 "그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집 사람을 위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고 했습니다. '홍색'(히.솨님)은 원래 주홍의 뜻입니다.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에서는 이를 복수로 보고 '이중의(두겹의) 의미로 번역했습니다. 홍색 옷을 입었다는 것은 뒤에 이어지는 눈이 와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말과 연결해 볼 때 그 번역의 의미가 맞는 것 같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집 사람들에게 주홍빛깔이 나는 두터운 옷을 해 입혀서 집 사람들이 눈 추위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집안 사람들의 겨울 나기를 미리 준비하여 집안 사람들이 떨지 않게 하는 것이 강조된 것입니다.
23절에 "그 남편은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으며 사람의 아는 바가 되며"라고 했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의 남편은 성문에 앉은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문'은 사법상 의무를 맡았던 장로들의 회집 장소일 뿐 아니라 중요한 재판건이 처리되었던 곳입니다 (룻4:1-12). 그 남편이 성문에 앉는다는 것은 성읍에서 영향력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의 근면과 성실과 지혜는 가정을 평안하게 하고 집안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가산을 풍성케 합니다. 그 결과 남편은 그 여인(아내)를 믿고 (11절) 대외적인 일에 힘을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남편은 성읍에서 존중받는 유력한 사람이 됩니다. 현숙한 아내의 내조는 남편을 복되게 합니다. 현숙한 아내는 가산을 잘 관리하여 풍성하게 하기도 하지만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과 집안을 위기에서 건지기도 합니다.
바란광야 근처의 마온 지역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나발은 완고하고 행사가 악했습니다. 굳고 거칠고 난폭한 자였습니다. '나발'이라는 이름 자체가 '바보처럼 행동하다'는 뜻을 가진 '나벨'에서 파생된 말로서, '어리석은' '우매한' '괴악한' 등으로 번역된 말입니다. 나발은 원래 이름이 아니었던 것 같은 데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보고 붙인 별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 이름처럼 참으로 미련한 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목자들을 많이 둘 정도로 부요했습니다. 양 3,000마리였고 염소 7,000마리였습니다. 다윗이 600명의 무리와 함께 바란 광야의 마온 황무지에 거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 나발의 목자와 가축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에 대한 의무감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다윗은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팔레스틴에서 양털을 깎을 때는 음식을 많이 장만했고 그 음식을 일꾼 뿐 아니라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에도 사용했습니다. 유목민에게 양털 깎는 일은 농부에게 추수하는 날과 같았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10명의 소년을 그에게 보내어 음식을 구해오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나발에게 가서 음식을 구할 수 있는 명분을 말하고 음식을 구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나발은 다윗의 인격을 모욕하고 음식 주기를 거절했습니다. 소년들이 빈 손으로 다윗에게 보고하자 다윗이 분노하여 200명은 처소를 지키게 하고 400명을 이끌고 나발의 집을 멸하기 위해 갔습니다. 다윗의 분노가 심히 컸고 그 분노는 나발의 집을 진멸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나발에게는 아비가일이라는 지혜로운 아내가 있었습니다. 나발은 완고하고 행사가 악했지만 그 아내는 총명하고 현숙했습니다. 아비가일은 종으로부터 다윗이 보낸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러 온 사실과 나발이 모욕하여 돌려보낸 사실과 다윗이 나발의 집을 진멸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습니다. 아비가일은 급히 떡 200덩이와 포도주 2가죽부대와 양 5마리와 볶은 곡식 5세아와 건포도 100송이와 무화과 뭉치 200뭉치 취하여 나귀들에게 싣고 다윗을 행해 갔습니다 그리고 산 유벽한 곳에서 마주 오는 다윗의 일행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자 나귀에서 내려 얼굴을 땅에 대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남편 나발은 미련한 자이니 그의 행동은 개의치 말고, 자기는 다윗이 보낸 소년들을 보지 못하여 돕지 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셔서 그의 집을 견고히 할 것이고, 다윗이 친히 다른 사람을 보수하여 피를 흘릴 경우 왕이 되었을 때에 허물이 될 수도 있으니 한낱 가치없는 사람의 일로 슬퍼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분노를 참아 달라고 청했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그 말이 맞게 생각했고 자신이 직접 나발을 심판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비가일을 통해 막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발 가정을 진멸하려던 생각을 완전히 돌리고 오히려 하나님이 아비가일을 보내 주신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돌아갑니다. 다윗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이키게 한 것은 다윗이 아비가일의 말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비가일은 참으로 지혜와 총명이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삼상25:1-35).
24-27절에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고에게 맡기며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 하나니"고 했습니다. 옷이나 허리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파는 것은 근면성과 상업적 수완을 보여 줍니다. 현숙한 여인은 집안 일을 잘 보살필 뿐 아니라 사업적 소득을 올립니다. 그로 인하여 능력을 인정받고 존귀하게 됩니다. 그는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않습니다. 노력한 대가로 얻은 양식과 소득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0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한 말씀과 상통합니다. 그는 현재의 힘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기쁘게 일합니다. 그는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지혜로운 말을 하고 자비로운 말을 합니다. 에베소서4:29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28-29절에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현숙한 여인의 근면함과 지혜로운 생활은 자식과 남편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자식들은 감사하고 남편은 칭송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으면서도 정작 가족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현숙한 여인은 가족들에게 부터 인정을 받습니다 (딤전5:8).
30절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잠언 기자가 말한 현숙한 여인에 대한 결론일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이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모든 집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외모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지혜로움 때문입니다. 곧 근면한 삶 때문입니다. 집안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삶 때문입니다. 소외당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삶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말을 하는 삶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때문입니다. 사실 그가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만한 삶을 사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리고 속 사람을 가꾸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3:3-4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존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31절에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성문'은 재판 장소도 되었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서 사람들에 대한 평판이 조성되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성읍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가정 공동체에서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에서도 인정을 받아 존귀함을 받습니다. 그것은 그의 생활과 삶에 대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룻을 연상케 하는 내용입니다.
사사시대에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나오미이고 두 아들은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당시 베들레헴이 흉년이 들어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말론과 기룐이 모압 여인들과 결혼을 합니다. 그 이름은 오르바와 룻이었습니다. 10년쯤 되었을 때 가산이 기울었고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이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풍년이 들었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백성과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율법대로 사는 데서 떠난 것을 후회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하지만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은 고향 부모 친척이 모압이고 또 남편들도 죽었으니 모압에서 모압 남성과 재혼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그들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오르바는 모압에 남겠다고 하고 룻은 신앙고백을 하면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살아가기가 막막했습니다. 룻은 들에 나가 추수하는 밭에 가서 이삭을 주어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면서 연명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의 가정을 잘 아는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고 보아스는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선대합니다. 룻기3:11에 보면 보아스가 룻에게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낯선 사람들에게 해를 당하지 않도록 자기 밭에서만 이삭을 줍게 했고 일하는 종들에게 이삭을 많이 흘려 보내라고 했습니다. 보아스는 이후에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서 룻과 결혼을 합니다. 그 사이에서 오벳이 태어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룻4:21-22). 그리고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합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마1:5). 룻은 시어머니에게 인정을 받고 보아스와 베들레헴 온 성읍에서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남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순종하는 현숙한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그런 삶을 산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오미에게 고백한 내용들을 보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이 주실 축복에 참여하고자 하는 신앙적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신앙은 그의 부모, 친척, 친구, 고향, 결혼 등 젊은 여인으로서의 모든 삶을 포기할 정도로 컸었습니다. 룻기1:16-17에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고 했습니다.
<結言>
현숙한 여인은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일을 성실히 하고 소득을 올립니다. 가정을 잘 관리하여 행복하게 합니다. 남편이 잘되게 하고 자녀가 감사하게 하고 종들을 기쁘게 합니다. 모두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고 기뻐하게 합니다.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유익한 말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래서 가정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에 인정을 받아 존귀한 자가 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신부로서 현숙한 여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