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창세기47:1-31

<題目> 야곱 족속의 애굽 정착

 

<序言>

  본장은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과 그 가속이 바로왕의 배려로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된 내용과 애굽이 요셉의 선정으로 인해 점점 부강한 나라가 된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저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섭리하시는 지를 증거해 주는 일례가 됩니다. 내용구조는 야곱 일가의 바로 왕 알현(1-12), 대기근과 요셉의 치세(13-26), 죽을 기간이 가까워진 야곱의 당부(27-31)로 되어 있습니다.

 

<本文>

       1. 야곱 일가의 바로 왕 알현 (1-12)

 

  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야곱의 가속이 애굽의 고센 땅에 도착한 이후 요셉이 바로 왕에게 자기의 가족이 고센 땅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형들 중 5명을 택하여 바로 왕에게 보였습니다. '5'라는 수는 애굽인들이 완전수로 여겨서 좋아하는 수였습니다. 바로 왕은 요셉의 형들에게 생업이 무엇인지 물었고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은 목자이며 선조 때부터 그러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양 떼를 칠 곳이 없어서 애굽에 거하기 위해 왔으니 고센 땅에 살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바로왕은 요셉에게 그들을 고센 땅에 거하도록 하게 했고 혹 가축을 잘 관리할 능력이 있는 자는 궁중 가축도 돌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아버지 야곱도 바로왕 앞에 인도했습니다. 야곱은 바로 왕을 축복했습니다. 바로왕은 야곱에게 나이를 물었습니다. 야곱은 나이가 130세인데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또 축복하고 나왔습니다. 요셉은 바로왕의 명대로 가속을 고센 땅 라암셋(Rameses)에 거하게 했고 식구 수를 따라 양식을 주어 봉양했습니다.

 

  바로 앞에선 야곱은 바로 왕이 나이를 물었을 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고 했습니다 (9). 야곱은 130세를 살았는데 나그네처럼 오랫동안 정처없이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그것도 참으로 험악한 역경의 연속이었습니다. 유년시절에 가정에서의 갈등과 피난이 있었습니다. 청년시절에는 외삼촌댁에서 20년 타향살이와 갈등과 피난이 있었습니다. 장년시절에는 딸 디나의 강간, 아들 레위와 시므온의 살인, 아들 시므온의 이방 결혼, 요셉과 베냐민으로 인한 고통 등 자녀들로 인한 고통이 컸습니다. 노년시절에 식량문제로 인한 가속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야곱은 참으로 많은 역경 속에서 인생의 황혼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은 만족과 행복으로 끝납니다. 노년에 식량 문제로 가속이 위기에 있을 때 애굽의 고센 땅에서 풍족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기에게 약속해 준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조상 때부터 자기에게 이어진 언약적 축복이 요셉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었던바 요셉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으나 그가 살아서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언약적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왕 앞에 갔을 때 바로 왕을 축복했고 나올 때도 바로왕을 축복했습니다. 사실 바로 왕이 야곱을 축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야곱이 바로 왕을 축복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때부터 주신 축복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확신하고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인생의 마지막에서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을 정도로 만족을 누렸습니다 (46:30).

 

  시편90: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 길과 같습니다. 신속하게 지나가고 그것도 수고와 슬픔 뿐입니다. 하지만 인생 전체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을 이루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보다 가치있고 행복한 생애는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과정 속에서 환난과 역경과 고난과 고통이 있겠지만 그것들이 의미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 그것도 어차피 힘든 인생을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가지신 구속사적 목적을 이루기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야곱은 언약의 자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에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만 섬기므로 열방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제사장 국가를 세우려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구원자를 보내어 그로 인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온 세계에 전파되게 하려는 계획을 가졌습니다. 그 구속계획을 이루기 위해 B.C.4,000년경에 하란에서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약속했습니다. 그것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와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고 그 후손이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여 제사장 국가를 세우고 그 후손 가운데 구원자를 보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12:1-3, 3:16). 그 언약은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는데 그 언약을 이룰 계대가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 중 이삭에게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삭에게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이 있었는데 야곱에게로 내려갔습니다. 곧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 이은 언약의 계대를 이은 후손이었습니다. 그 언약의 계대를 이를 후손이 된 것은 자기들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었습니다. 창세기25:2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로마서9:12-13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1:2-3). 야곱은 언약의 계대를 잇는 후손으로 선택된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적 목적을 가지고 언약적 축복을 받을 자로 선택한 자였습니다. 그는 언약의 계대에 속한 후손으로 선택을 받은 자답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고 하나님의 언약적 사명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 가운데서 유다가 나고 그 후손 가운데서 다윗왕이 나고 그 후손 가운데서 구원자가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은 일평생 불행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모든 불행한 고통이 자신의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선택에 의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야곱은 언약의 계대를 잇는 자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험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창세기27-47장에 나오는 야곱이라는 인물을 보면 평생 한 곳에 정착해 살지 못하고 연속적으로 비참한 상황들을 겪었습니다. 야곱은 어렸을 때 유다의 브엘세바에서 살았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가진 장자의 위치와 명분과 재산을 탐냈습니다. 형 에서가 사냥을 하러 간 사이 팥죽을 끓여놓고 형이 사냥에서 돌아왔을 때 팥죽 한 그릇을 주면서 조건으로 장자의 명분을 달라고 해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가 늙어 눈이 어두웠을 때 아버지에게 자기를 형이라 속이고 형이 받아야 할 축복을 받았습니다. 뒤에 그것을 알고 아버지와 형이 분노하자 집에서 도망하여 하란의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집에 가서 살았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외삼촌의 양 떼를 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외삼촌의 딸들과 결혼하여 자식들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외삼촌을 속이고 외삼촌의 양 떼를 자기 양 떼로 만들었습니다. 외삼촌과 외삼촌의 아들들이 분노하자 밤에 아내와 자식들과 양 떼를 이끌고 도망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에 형이 마중을 나와 아버지가 계신 헤브론으로 가서 함께 살자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으로 이사했음). 야곱은 형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서는 자신은 숙곳을 지나 세겜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딸이 구경을 나갔다가 세겜의 추장 아들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 일로 아들들이 세겜 추장의 아들에게 여동생과 결혼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세겜의 모든 장정이 할례를 받게 해서 그들이 할례를 받자 그들을 모두 칼로 죽였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이 세겜 장정들을 죽인 일로 인해 주변 족속들이 공격해올 것이라 생각하여 온 식구를 데리고 밤에 벧엘로 도망했습니다. 벧엘을 지나 에브랏(베들레헴)을 거쳐 헤브론에 도착했습니다. 헤브론에 정착해 살 때 11번째 아들 요셉을 다른 아들들이 양치는 곳에 보냈는데 그 아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요셉이 짐승에 찢겨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어 양식을 사 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왔는데 애굽의 총리가 자기들을 도둑으로 알아 한 아들이 볼모로 잡고 막내 베냐민을 데려와야 보내 준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도 잃었는데 베냐민도 잃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베냐민을 보냈는데 아들들이 다시 돌아와서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더라고 하면서 온 식구가 애굽으로 들어오라고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모든 식구(75)를 데리고 애굽으로 들어가 요셉을 만나고 애굽왕을 만나 애굽의 고센 땅 라암셋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애굽왕을 만났을 때 애굽왕이 나이가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야곱은 자기 나이 130이라 밝히면서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일생은 그의 고백 그대로였습니다.

 

  야곱의 불행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었습니다. 브엘세바의 고향 집에서 홀로 도망해야 했던 사건도 자신이 잘못한 결과였습니다. 흔히 야곱이 어렸을 때 형 에서에게 장자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사고 아버지에게 형 에서로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실을 두고 야곱의 언약의 복을 받고자 하는 언약 신앙의 열정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에서는 언약의 계대를 잇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실입니다 (25:34). 하지만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에게 장자의 명분이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야곱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야곱을 언약의 계대를 이을 자로 선택했습니다 (25:23, 1:2-3, 9:11-13). 그러므로 야곱이 술수를 서서 형에게 장자 명분을 사지 않고 거짓말로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을 받지 않았어도 야곱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 언약의 계대로서 장자의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그 술수와 거짓으로 속인 까닭에 형과 어버지의 분노를 샀고 집에서 도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홀로 하란(밧단아람)의 외삼촌 댁으로 가서 양떼를 치며 살아야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형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아버지를 속여 형의 것을 빼앗으므로 고통을 당했던 것입니다. 하란(밧단아람)의 외삼촌 댁에서 밤에 식구들을 데리고 도망해야 했던 사건도 자신이 잘못한 결과였습니다. 거기에서 품삯으로 검거나 아롱지거나 점 있는 양은 자기 것으로 달라 하여 푸른나무 가지를 꺾어 무늬를 내어 양들이 교미하는 개천에 두므로 양들이 검거나 아롱지거나 점있는 양들을 낳으므로 야곱의 양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외삼촌과 외삼촌의 아들들의 안색이 안 좋아졌고 그로 인해 야곱이 외삼촌 댁에서 밤에 식구들과 양 떼를 이끌고 도망해야 했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살 때 욕심이 많아 술수로 외삼촌의 재산을 빼앗으므로 고통을 당했던 것입니다. 세겜에서 딸이 강간당하고 아들들이 살인을 하여 도망해야 했던 사건도 자신이 잘못한 결과였습니다. 야곱이 하란(밧단아람)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 마중 나온 형을 만나 아버지가 있는 헤브론으로 가겠다고 했다가 (아버지가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으로 이사했음) 형을 먼저 보낸 후 숙곳을 거쳐 세겜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세겜 추장 아들에게 딸이 강간을 당하고 아들들이 세겜 장정들을 도륙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밤에 온 식구들을 데리고 도망해야 했습니다. 벧엘과 에브랏(베들레헴)을 거쳐 헤브론에 도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편집 현상으로 형을 오해하여 형을 속이고 세겜으로 갔기 때문에 고통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헤브론에서 요셉을 잃고 베냐민도 잃을까봐 애가 탔던 사건도 자신의 잘못 때문이었습니다. 아들들에게 양 떼를 치게 했는데 세겜까지 가서 양을 쳤습니다. 11번째 아들 요셉에게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보더니 붙잡아 구덩이 빠뜨리고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아들들이 돌아와서는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후에 흉년이 들어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어 양식을 사오게 했는데 아들들이 가운데 하나가 볼모로 잡히고 베냐민을 데려가야 한다고 해서 또 베냐민까지 잃을까 봐 고통을 당했습니다. 야곱이 자기도 아버지가 형만 사랑해서 열등감으로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도 11번째 아들인 요셉과 12번째인 베냐민만 사랑하므로 고통을 겪은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언약의 계대를 이을 자로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주권적이 섭리로 언약의 계대를 잇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는 큰 고통을 당해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도 영적으로 구속사적 목적이 있는 구속사적 계대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에베소서1:4-5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그 고통은 특별한 경우 우리의 잘못과 관계없이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의 잘못 때문에 옵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판단과 잘못된 결정과 잘못된 의지와 잘못된 행동 때문에 우리 자신이 고통을 당하고 가정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원인을 다른 사람과 환경과 사탄과 하나님께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형상대로 만들었고 지혜를 부여했고 자유의지를 허락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 가정이 행복하려면 우리가 바른 판단과 바른 결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고 우리가 양심을 따라 살고 우리가 못된 성품을 고치고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고쳐야합니다.

 

 

       2. 대기근과 요셉의 치세 (13-26)

 

  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17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8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21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전 애굽에 기근이 심해졌습니다. 애굽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져서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애굽 백성들은 곡식이 다 떨어지자 총리인 요셉에게 와서 곡식을 돈을 주고 사 먹었습니다. 그런데 돈도 떨어지자 가축으로 곡식을 사게 해 달라고 했고 요셉은 가축을 저당 잡고 곡식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또 가축도 떨어지자 토지()을 주고 곡식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했고 동시에 요셉이 토지를 받으면 농사를 할 사람이 없어 황폐하게 되겠으므로 자기들을 종으로 삼아 곡식 종자를 주어 그 토지에서 경작을 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백성들에게 토지를 사서 바로에게 돌리고 곡식을 주었습니다. 토지를 국유지로 삼고 곡식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곡식 종자를 주어 그 토지에서 농사를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수확물의 5분의1은 바로에게 세금으로 상납하고 5분의4는 자기들의 종자와 식량으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재직하면서 위로 왕에게 어떻게 대했으며 아래로 백성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신앙인품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 준 사례입니다.

 

  첫째, 바로 왕에게 충성했습니다. 요셉은 바로 왕에게 총리로 임명받았기 때문에 바로왕으로부터 맡은 직책을 책임감 있게 잘 수행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일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착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을 할 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하며 윗사람을 순종해야 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0"~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고, 로마서13: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했고, 고린도전서4:2"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주의 일에도 같은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5:17, 25:14-30, 19:12-27, 20:1-16).

 

  둘째, 백성들에게 선대했습니다. 요셉은 총리로서 백성들에게 어떻게든지 곡식을 주어 살게 하려 했습니다. 고리대금업자들처럼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백성들에게 무엇을 빼앗고자 하지 않고 오히려 도우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무상으로 주지 않았습니다. 대가를 지불하게 했습니다. 도움을 받는 자들로 하여금 모멸감과 수치심이 들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도움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재기할 수 있는 노력을 계속하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식사를 제공하는 자에게 최소한의 식사 값을 받고, 돕고자 하는 자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는 힘든 사람들을 도와야 하며 그 방법에 있어서도 인격적인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19:9-10, 2:6). 야고보서1: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했고, 야고보서2:15-16"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고 했고, 요한일서3:17"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고 했습니다.

 

 

       3. 죽을 기간이 가까워진 야곱의 당부 (27-31)

 

 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야곱은 일생동안 역경의 연속이었지만 인생 말년에 복을 누렸습니다. 130세에 애굽의 고센 땅에 내려와 147세가 되기까지 17년 동안 만족을 누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야곱의 가속이 애굽의 고센 땅에 거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 야곱은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요셉을 불러서 이른바 환도뼈 맹세를 통해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 땅에 장사하도록 했습니다. 환도뼈는 생명과 권위의 상징으로서 그 아래 넣고 맹세하게 한 것은 맹세의 엄숙성과 절대성을 가지는 맹세 방법이었습니다. 야곱이 그 환도뼈 맹세를 통해 자신을 가나안 땅에 장사하게 한 것은 단순히 조상들과 함께 막벨라 동굴에 묻히기를 원해서 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한 언약을 믿었기 때문에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자 침상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여기에서 야곱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29). 야곱은 나이들어 죽음이 임박하자 요셉을 불러서 유언을 했습니다. 죽기 전에 미리 중요한 유언을 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히브리서9: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고 했고, 전도서7:2"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죽음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언장, 장기기증, 장사방법 등에서 미리 유언을 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정신이 있을 때 일을 처리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도서3:1-2"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고 했습니다. 모든 삶에서 미래에 올 고난을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모스6:6에는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했습니다 (30). 야곱은 죽음이 임박하자 요셉을 불러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선영이 있는 가나안 땅에 장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귀소본능에 의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고대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모든 풍성함을 누렸지만 하나님의 언약대로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가게 될 때 뼈를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도 그와 같은 유언을 했습니다 (50:25). 마지막 유언이 하나님의 언약적 메세지를 선포하는 전도행위가 된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일평생 이 언약적 축복을 소망하고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죽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일생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죽음을 통해 언약을 선포해야 합니다.

 

<結言>

  야곱은 일생 역경 가운데 살았고 말년에 만족을 얻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본향인 내세를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5: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