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욥기 27:1-23
<題目> 욥의 결론적 항변
<序言>
전 장은 세친구들의 세번째 주기 가운데 빌닷의 상투적인 변론에 욥의 대답이 있었습니다. 세번째 주기에서는 소발이 변론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빌닷의 변론과 욥의 대답이 마지막에 해당했습니다. 이제 본 장에서는 욥이 세 친구 모두를 향해 결론적인 항변을 하게 됩니다. 그 항변은 31장까지 엘리후가 등장하기 까지 계속됩니다. 내용 구조는 무죄함에 대한 주장(1-6절), 대적자들을 향한 저주(7-12절), 악인들의 미래에 대한 예견(13-23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무죄함에 대한 주장 (1-6절)
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욥이 비사를 들어 말을 시작했습니다 (1절). '비사'(히.마솰)은 격언, 속담, 비유, 잠언 등을 말합니다. 시적 잠언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욥은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2절).
히브리어 원문에는 첫 문장이 '하나님은 살아계시다!'(히. 하이 엘, As God liveth -KJV)는 감탄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자기의 무죄함이 증명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한 말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자신이 진실만을 말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은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해 주시 않은 것에 대한 표현으로서 하나님과 논쟁을 불러 일으키려는 의도로 한 말입니다.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무죄함을 밝혀 주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맹세하노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수단으로 한 맹세를 말합니다.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하나님의 법정에서 판단받기를 원했고 (13:22), 하나님의 계속되는 징벌을 탄식하며 (16:9-17), 하나님 뵙기를 갈망하는 심경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23:3). 그러나 욥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소송의 기회를 주지 않았고 따라서 욥은 마지막 단계로 맹세를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자기 속에 생명이 있는 한 반드시 그 맹세를 지키겠다고 한 것입니다.
욥은 이어서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자신이 입술에는 궤사가 없고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6:29-30).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순전을 지키고 무죄성을 주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정에서 자신의 결백을 포기하지 안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평생 자기 마음이 자기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양심이 사는 날 동안 하루라도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죄함이 공의로운 하나님이 판결해 주실 것을 믿는 동시에 자기의 양심에 떳떳함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 양심에 떳떳함을 가져야 합니다.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공회에 붙들렸을 때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했습니다 (행23:1). 물론 양심이 더렵혀지고 화인 맞은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딛1:15, 딤전4:2). 그러나 선한 양심은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벧전3:21). 범사에 선한 양심을 따라 살고 선한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사역을 감당해야겠습니다.
2. 대적자들을 향한 저주 (7-12절)
7 나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8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
9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10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부르짖겠느냐
11 하나님의 솜씨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에게 있는 것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12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무익한 사람이 되었는고
욥은 "나의 대적은 악인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같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7절). '대적'은 욥 자신을 무조건 비난했던 친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신의 순전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비난했던 친구들을 악인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결말이 사악한 자들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이어서 "사곡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무슨 소망이 있으랴 환난이 그에게 임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고 했습니다 (8-10절). 악인은 약탈이나 폭력으로 어떤 이익을 얻었을지라도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할 때에는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환난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그 부르짖음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환난 때에도 하나님의 위로와 도움을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환난이 하나님께 온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도 않는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의 뜻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주 허탄한 사람이 되었는고" 라고 했습니다 (11-12절). 욥이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욥 자신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면 더욱 온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오히려 헛된 지식으로 헛되게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3. 악인들의 미래에 대한 예견 (13-23절)
13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14 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15 그 남은 자들은 죽음의 병이 돌 때에 묻히리니 그들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16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17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18 그가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을 것이며
19 부자로 누우려니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
20 두려움이 물 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앗아갈 것이며
21 동풍이 그를 들어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 그를 몰아내리라
22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던져 버릴 것이니 그의 손에서 도망치려고 힘쓰리라
23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
욥은 악인의 결말에 대해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강포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그 자손이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 후에는 식물에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그 남은 자는 염병으로 묻히리니 그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그가 비록 은을 티끌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같이 예비할지라도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그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상직군의 초막 같을 것이며 부자로 누우나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없어졌으리라"고 했습니다 (13-19절).
악인은 하나님께 받은 소유물은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자손이 아무리 번성하여도 전쟁이나 복수로 인한 살상을 위함이고, 그 재앙에 살아남은 자라 하더라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마저도 구할 길리 없는 기근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기근에 살아남은 자라 해도 악한 질병으로 인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자손들의 아내들은 과부가 되는데, 무서운 형벌로 남편과 자식들이 연달아 죽으므로 장례를 관습대로 치루지 못하고 타격이 너무 커서 망연자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비록 은이나 의복을 티끌이나 진흙같이 많이 쌓아 놓았을지라도 그 탐욕과 약탈로 부당하게 축적한 부를 모두 무죄한 의인이 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집은 궁궐집 같을지라도 좀이 먹어 썩어 없어질 것이고 아무리 견고한 방비를 할지라도 상직군(파수꾼)이 세운 오두막 같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부자였지만 죽으면 그 동안 누렸던 온갖 부귀와 명성과 찬란한 삶을 다시는 누릴 수 없고 다시 돌아올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간밤에 갑자기 죽어 아침에 보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욥은 이어서 "두려움이 물같이 그를 따라 미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빼앗아 갈 것이며 동풍이 그를 날려 보내며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나니 그가 그 손에서 피하려 하여도 못할 것이라 사람들이 박장하며 비소하고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고 했습니다 (20-23절).
악인에게는 공포가 물같이 따라 미친다는 것입니다. 밤에 폭풍처럼 그를 채간다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동풍처럼 파멸에 이르게 하고 거주지로부터 급히 쫓아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은총의 영역에서 아끼지 않고 쫓아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분노와 조소로 손뼉을 치며 경멸과 조롱의 소리를 하면서 그 처소에서 쫓아낸다는 것입니다.
<結言>
욥은 세 친구의 인과응보 논리가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진리로 인정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하고 반드시 멸망합니다. 일시적으로 잘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악인들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 하지 말고 힘들어도 여전히 주께서 원하는 길을 가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