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욥기 38:1-41
<題目> 하나님의 첫번째 말씀 (1)
<序言>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의 변론이 세번의 주기를 걸쳐 있었으나 욥이 당한 고난에 대한 문제의 해결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엘리후가 등장하여 앞선 세 친구들에 비해 좀더 나은 관점에서 변론하였으나 그 역시 문제점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오랫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나타나 개입하므로 본서의 대단원이 시작됩니다. 본 장은 무한하신 하나님과 그에 대해 측량치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대비시키면서 감히 인간이 하나님께 교만할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내용구조는 욥에게 임한 하나님의 현현(1-3절), 피조된 자연계에 대한 질문(4-41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욥에게 임한 하나님의 현현 (1-3절)
1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 욥에게 말씀했다고 했습니다 (1절). 지금까지 대화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은 주로 '엘로힘'(Elohim)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이 임하여 말씀하시려는 때엔 '여호와'(Yehowah)였습니다. 엘로힘은 능력이 있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여호와는 변치않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로서 존재와 성품과 언약에 있어서 변치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출6:2-9). 본 장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나타낸 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존재하는 분으로서 욥과 변론자들 사이에 궁극적인 판결자이며 그 판결은 어떤 변론으로도 비판받을 수 없는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웨'와 '여호와'
히브리어는 원래 모음이 없고 자음만 있는 문자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기 이름을 말씀하실 때 'YHWH'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은 원래 YHWH 자음 4글자로만 되어 있었습니다. 그 4글자는 음역으로 'YaHWeH'(야웨)로 발음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 '4글자'(Tetragrammaton)로 부르거나 주(主.Lord)의 의미를 가진 'Adonay'(아도나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5~6세기에 히브리어에 모음을 붙이는 작업이 일어나면서 4글자 'YHWH'에 'Adonay'의 모음 'A(e), o, a'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YeHoWaH'(여호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을 원음대로 '야웨'라고 해도 되고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라 '여호와'라고 해도 됩니다.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1절). 팔레스틴에 폭풍은 매우 귀한 현상입니다. '폭풍'은 비를 동반하지 않은 회리바람(whirlwind or tempest)입니다. 불, 구름, 폭풍 등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현현(現顯)을 나타내기 위한 표상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고 했습니다 (2-3절). 욥이 하나님을 경외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인간의 경험과 지식에 맞추려는 태도를 가졌던 것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욥은 포학을 당하는 자신을 신원하지 않는다고 원망했고 스스스로 자기 의를 드러냈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대답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19:7, 13:18, 22). 하나님은 욥의 그러한 태도를 책망하고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묻는 말에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허리를 묶는 행위는 새로운 일을 하거나 중요한 사건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항변대로 욥과 더불어 변론할 것이기 때문에 욥에게 준비하라는 의도입니다. 하나님이 욥과 변론하려는 것은 우주 만물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위대함을 제시하고 인간인 욥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인 것을 알게 하여 교만을 꺾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 우리가 해 볼 것을 다 해보고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복종할 때 하나님이 개입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기 위해 부르시는 방법에도 그렇고(고전1:27-29) 성화 사역에서 성장시키기 위해 섭리하실 때도 그런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했다고 생각 않고 하나님이 한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교만과 고집이 꺾어지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2. 피조된 자연계에 대한 질문 (4-41절)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12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13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14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16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18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19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20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21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
22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23 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
24 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25 누가 홍수를 위하여 물길을 터 주었으며 우레와 번개 길을 내어 주었느냐
26 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며
27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28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29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30 물은 돌 같이 굳어지고 깊은 바다의 수면은 얼어붙느니라
31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32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33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34 네가 목소리를 구름에까지 높여 넘치는 물이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35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번개가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36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37 누가 지혜로 구름의 수를 세겠느냐 누가 하늘의 물주머니를 기울이겠느냐
38 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
39 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우겠느냐
40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숲에 앉아 숨어 기다리느니라
41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고 그 위에 준승을 띄우고 주초와 모퉁이 돌을 놓았다고 했습니다. '준승'(히.카우)은 척량줄(measuring line)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되 세밀한 측정과 계획에 의해 지으시므로 완전한 피조세계 형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쁘게 소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에 대한 관용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바닷물을 만들고 바닷물의 한계를 정하여 넘치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새벽과 아침 빛이 온 땅에 비취게 했다는 것입니다 (4-15절).
욥은 바다 밑에 가보지 않았고 사망의 문에 가보지 않았고 땅의 넓이를 측량해 보지 않았고 광명과 흑암의 처소를 모르고 눈이나 우박의 창고를 보지 못했고 광명과 동풍과 폭우와 우뢰와 번개와 비의 길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얼음과 이슬과 서리의 출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별자리 등 하늘의 권능과 법도와 질서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지혜와 총명도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자처럼 식물을 줄 수도 없고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16-41절).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되 광대하신 능력으로 주관하시고 오묘한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섭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능력을 가지셨으며 우리 삶의 작은 부분까지도 구체적으로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 분 앞에 순종하며 긍휼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結言>
욥은 하나님이 욥 자신의 상황에 대해 속히 개입하지 않는 것에 불평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불평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께서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제시하고 감히 인간이 당신의 하시는 일에 헤아리고 판단할 수 없는 존재임을 지적했습니다. 인간은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흉내낼 수도 없습니다. 그 분이 하시는 일을 인정하고 순복하는 삶을 살아야 은혜를 입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