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창세기49:1-33

<題目> 야곱의 아들들에 대한 예언

 

<序言>

  야곱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12아들들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이룰 12아들들에 대한 예언을 한 사람 한 사람 해주고, 자신에 대한 장례 문제를 언급하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내용구조는 야곱의 12지파를 향한 예언(1-28), 야곱의 유언과 죽음 (29-33)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文>

       1. 야곱의 12지파를 향한 예언 (1-28)

 

  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야곱은 2손자 므낫세와 에브라임에 대한 축복을 하고 이어서 12아들들과 그 후손에 대한 예언을 하기 위해 12아들들에게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고 축복예언을 경청할 것을 용종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자신이 축복 예언을 하면서 자신에 대해 3인칭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야곱 자신이 축복을 하지만 그 축복이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 되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유언적 축복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통해 장차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신 계획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상적인 삶에서 개인이 의식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 속에 관여하고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삶이 외부적으로 평범해 보일지라도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성경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나타내십니다. 특히 선지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삼상15:22-23, 대하25:16).

 

   ①르우벤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3-4).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은 야곱 자신의 장자이며 능력이며 기력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르우벤이 젊었을 때 처음으로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었고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르우벤은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가지고 부족의 지도자가 될 사람으로 인식하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장자로서의 책임의식이 강했습니다. 동생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 르우벤은 아버지 야곱을 위해 요셉을 살려 데려갈 의도를 가지고 구덩이에 빠트리자고 하였습니다. 또한 동생 시므온을 애굽에 인질로 두고 돌아와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할 상황에서 아버지 야곱이 반대할 때 베냐민을 살려서 데려오지 못하면 자기 2아들의 목숨을 내어 놓겠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르우벤을 태생도 장자로 태어났고 성품도 장자에게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은 그런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장자권은 요셉에게 넘어가고, 지도권은 유다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7:5-8). 역대상5:1-2"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르우벤이 장자 위치에 맞는 탁월한 성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탁월함을 상실한 이유는 그 성품이 물 끓듯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4). 그는 장자로서의 책임의식이 있었지만 그 성품이 물의 끓어오름같이 조급하고 충동적이어서 불안정했습니다. 동생 시므온을 애굽에 인질로 두고 돌아와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할 상황에서 아버지 야곱이 반대할 때 아버지를 설득한 모습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는 베냐민을 살려서 데려오지 못하면 자기 2아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후에 아버지를 설득한 유다가 베냐민을 살려 데려오지 못하면 자기 2아들을 상속에서 제외시키라고 한 것을 보면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제안을 한 것입니다. 지극히 다혈질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는 조심성과 자제력과 통제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일어나는 욕정을 통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아내() 빌하를 범하므로 아버지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습니다. 그것은 장자로서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는 그 때문에 장자의 위치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임을 입증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아버지로부터 장자축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의 후손들도 그런 성향을 많이 보였습니다. 그의 자손인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권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16, 11:6, 106:17), 갓지파와 더불어 먼저 정복한 요단강 동편 땅을 유업으로 달라고 했고 (32:1-5), 다른 지파와 함께 요단강 동편으로 이동하면서 조급하게 단을 쌓다가 내란이 일어날 뻔 하기도 했습니다 (22). 그래서 그 후손도 언약적으로는 물론 자연적으로도 위치에 걸맞는 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신명기33:6에 보면 모세가 르우벤 지파를 축복할 때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고 한 것을 보면 그 후손도 그 수가 적어 겨우 지탱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르우벤과 그 후손은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 조건에 맞는 언약적 축복은 물론 자연적 축복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쓰임을 받고 하나님이 주실 복을 받는 사람이 되려면 환경 좋은 것으로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단히 자신의 기질과 성품을 통제하는 인격적 훈련을 해야 합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자제하여 속에 있는 죄적 기운과 욕망이 표출되지 않도록 해야 탁월함이 유지되고 성공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있던 탁월함도 잃게 되고 언약적 축복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자손들도 그런 삶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 그렇게 살다가 똑같은 생애를 반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

 

   ②시므온과 레위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5-7).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서는 저주를 받아 야곱 중에서 나누이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시므온 지파는 첫 인구조사에서 50,000명이었는데 두번째 인구조사에서는 12지파 중에 제일 적은 수인 22,200명이었습니다 (26:12). 가나안 정착 이후에는 유다 지파에 흡수되어 유다의 영내에 있는 몇 개의 성읍만 받았습니다 (19:1-9, 15:32-34, 대상4:27). 레위지파도 자기들 지파의 기업을 얻지 못하고 다른 지파들에게 분산되어 각 지역의 48개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됩니다 (21:1-40). 물론 제사장 지파로 선택되어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흩어지게 한 것이지만 본문에서는 그런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그들이 흩어져 살 것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저주를 받아 흩어져 살게 된 것은 야곱이 그렇게 예언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야곱이 보기에 그들은 망할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예언한 것이고 그들은 그런 기질로 살다가 그 예언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들에 대해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5-7). 시므온과 레위는 레아의 소생입니다. 레아의 소생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입니다. 르우벤은 장자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고 유다는 막내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았지만 시므온과 레위는 중간에 있어서 그처럼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공통점 때문에 마음이 서로 맞았고 함께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야곱 족속이 세겜에 거할 때 동생 디나가 세겜성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자 세겜성 추장이 디나와 결혼하도록 허락을 요구하자 성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을 것을 요구해서 그들이 할례를 받자 아버지 야곱에게 말하지도 않고 세겜성을 공격하여 모든 남자들을 도륙했습니다. 뒤에 다른 형제들도 합세해서 세겜성의 부녀들과 아이들을 사로잡고 귀금속을 노략하고 가축을 노략했습니다. 노략하지 못한 소는 부릴 수 없도록 발목 힘줄을 끊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주변 족속들의 연합공격을 두려워 한 야곱은 모든 가속을 데리고 급히 세겜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원인제공은 디나와 세겜성 추장이었지만 시므온과 레위는 혈기와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를 지은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그들의 통제되지 않은 혈기와 분노 때문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가문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을 보면서 그들을 심히 책망했고 야곱이 죽을 때까지 그들의 성품을 걱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일에 연합을 도모하지 말고 선한 일에 연합을 도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혈기와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잠언12: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했습니다 (15:18, 16:32, 29:22, 4:26-27, 1:19-20). 이를 현대어 성경에서는 "미련한 자는 모욕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화를 벌컥 내지만 어진 사람은 모욕을 받아도 마음을 억누른다."고 번역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죄성을 잘 다스려야합니다. 그 죄성을 다스리려면 부단히 기도하면서 성령을 좇아 행해야합니다 (5:16).

 

   ③유다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8-12).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유다는 다른 형제들에게 찬송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그 앞에 절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유다가 다른 아들들의 지도자 역할을 할 것이고 그 후손이 통치권을 가질 것을 의미합니다. 짐승의 왕인 사자 같아서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손 가운데서 규가 떠나지 않고 통치자의 지팡이가 발 사이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통치자의 지팡이'는 왕권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홀규)는 개정판에서는 ''이라고 했습니다. 유다의 후손 가운데 왕이 이어졌고 다윗왕과 솔로몬왕 때에는 주변 국가들이 대적할 나라가 없을 정도로 강성했습니다. 그 권세는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로'(שילה)는 가나안 땅 중앙에 있는 도시였으나 '실로'가 문자적으로 '그에게(לה) 찬사가(שי) 돌려지기까지(יבא)'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상징어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에게는 왕권뿐 아니라 그 나라가 경제적으로도 번영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고 옷을 포도주에 빨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귀는 잡목에 매는 것인데 포도나무에 매고 옷은 물에 빠는 것인데 포도주에 빤다는 것은 그 만큼 풍성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눈이 포도주로 붉겠다는 것도 포도가 풍성할 것을 말하고 이가 우유로 흴 것이라는 표현도 농사와 목축으로 풍요롭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아들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블론입니다. 르우벤은 장자였으나 그 성품이 물 끓듯 해서 욕정을 절제하지 못하므로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했고 시므온과 레위는 분노와 잔인함을 제어하지 못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언약적으로 내려오는 장자의 축복 가운데 지도력에 관한 복을 받았습니다. 유다는 넷째였지만 지도력에서 탁월함을 보였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자고 모의했을 때 그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상인에게 팔자고 합리적으로 설득해서 그의 목숨을 구했고, 애굽에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할 상황에서 아버지 야곱이 결사적으로 반대하자 아버지를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리고 갔고, 애굽에서 총리 요셉이 베냐민을 두고 가게 할 때 그의 앞에서 자기의 아버지 사정을 이야기 하여 요셉을 감동시켰고, 나이 많았을 때 실수로 다말을 범했을 때 다말이 부당함을 말하자 자신의 옳지 못함을 인정하고 다말을 죽음에서 건졌습니다. 그런 점들을 볼 때 인격적인 지도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그 지도력 때문에 언제나 가족을 살리는 일을 하고 모든 형제가 그를 따르게 됩니다. 그 후손들 가운데서도 왕들이 나오게 되고 그리스도가 나게 됩니다. 실제로 그 후손들 가운데서 20명의 왕이 나왔고 다윗과 솔로몬 때에는 주변국이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과 부요를 누렸고 그 후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났습니다 (3:16, 65:12-25, 5:5).

 

  일의 성공과 실패는 사건 속에서의 판단력에 있다면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인격적인 지도력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 근원은 그런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격적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격적 지도력을 타고 났으면 좋거니와 그렇지 못하다면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그런 지도력을 발휘할 때 사람들이 따르게 됩니다. 그것이 권위이며 권세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 언약이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 주의 재림을 준비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앞선 자가 되게 합니다 (7:5).

 

   ④스블론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13).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스블론은 해변에 거주하고 그 경계가 시돈까지라고 했습니다. '시돈'은 페니키아의 항구도시이면서 페니키아 영토 전체를 가리킬 때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스블론지파는 신명기33:19에서도 잇사갈지파와 함께 항해 활동에서 이익을 얻어 바다의 풍요를 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스블론지파가 실제로 얻은 땅은 해변이 아니라 내륙이었습니다 (19:10-16). 그래서 스블론이 해변에 거하고 그 경계가 시돈까지라고 한 것은 그 후손이 페니키아까지 정복하여 장악했다는 의미보다는 페니키아 근처에 살면서 페니키아인들에게 고용되어 풍요를 누린 것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⑤잇사갈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14-15).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잇사갈은 건장한 나귀라고 했습니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잇사갈의 후손은 튼튼하고 힘이 센 종족입니다. 하지만 우직하고 단순하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힘든 노동을 하게 됩니다. 지배계층에 의해 육체적 고역에 시달리게 됩니다 (왕상9:21, 대하8:8).

 

   ⑥단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16-18).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단은 백성을 심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판관이 나올 것을 의미합니다. 단은 독사와 같아서 말굽을 물어 말 탄 자를 떨어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독사'에 해당하는 '쉐피폰'(שפיפן)은 맹독을 가진 뿔 달린 살무사를 말합니다. 이 뱀의 독성은 말과 같은 짐승도 한 번 물리면 즉사할 정도로 강합니다. 이는 단지파가 적은 무리이지만 강한 대적과 싸워 승리할 것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단지파에서 삼손같은 사사가 나왔고 블레셋 족속을 결멸시켰고 (15) 강한 적과 싸워 라이스 성읍을 점령한 일이 있습니다 (18). 그러나 단지파는 구속사적으로 볼 때 우상숭배의 근원지였고(18:18, 30), 구원의 반열에서 빠진 것을 보아(7:5-8) 적그리스도의 음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Augustine, Iranaeus). 야곱은 단에 대해 여언하면서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고 했습니다 앞의 맥락으로 본다면 이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부터 고통을 당할 성도들의 구원을 간구하는 탄원으로서 야곱의 메시야에 대한 무의식적 염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⑦갓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19).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라고 했습니다. 갓 지파의 용맹성에 대한 예언입니다. 갓지파는 요단강 동편에 거주하므로 지리적인 특성상 아람, 모압, 암몬을 중심한 주변 민족들과 자주 전쟁을 하게 됩니다. 갓지파는 그들과 전쟁을 하면서 많은 승리를 했고 용맹성을 떨쳤습니다 (33:20-21, 11, 대상5:18, 12:8).

 

   ⑧아셀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20).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아셀은 기름진 것을 먹을 것이라고 했고 왕의 수라상을 차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셀지파는 갈멜 산맥에서 북쪽으로 달리는 좁고 기름진 평야지대에 거주했습니다. 그들은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하므로 농산물로 이스라엘 왕에게 진수를 할 뿐 아니라 주변 왕들에게까지 진수를 합니다. 솔로몬왕은 거기에서 나는 농산물로 두로 왕 히람에게 양식을 공급하기도 합니다 (33:24, 왕상5:11).

 

   ⑨납달리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21).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납달리는 암사슴과 같아 아름다운 소리를 발한다고 했습니다. 납달리지파는 사슴처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데 있어서 매우 민첩하고 능숙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의 후손은 남쪽으로 갈릴리 호수까지, 북쪽으로 훌레 호수 너머까지, 서쪽으로 아셀지파의 영역까지 영토를 확장하게 됩니다. 가나안왕 야빈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에도 납달리지파가 성공적으로 격퇴를 합니다 (19:32-39, 4). 그리고 납달리지파 사람인 바락이 시스라에게 이긴 것을 드보라에게 전하므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됩니다 (4-5).

 

   ⑩요셉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22-26).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요셉에 대해서는 많은 축복을 예언했습니다. 첫째, 샘 곁에 있는 나무처럼 가지가 무성하여 담을 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샘 곁의 나무는 가뭄에도 걱정없이 물을 공급받아 가지가 계속 뻗어 나가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요셉은 많은 고난 중에서도 형통했고 창성했습니다. 그의 후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지파도 창성하게 됩니다 (26:28-37). 둘째, 활 쏘는 대적이 활을 쏘나 전능자를 힘입어 더욱 굳셀 것이라고 했습니다. 적대 세력이 공격을 할지라도 전능자의 도움을 받은 목자가 나와 더욱 강해지고 그들을 물리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공격하는 자들로부터 많은 시련을 겪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극복했습니다. 그의 후손인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은 활을 잘 쏘는 미디안 족속과 대접전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6-7). 더 후에는 여호수아가 나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13:8-16, 1:1-2). 셋째,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위로 햇빛과 비와 이슬의 혜택을 누리고 아래로 샘물의 혜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유목민에게 있어서 이런 환경은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많은 자손의 복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손을 많이 낳게 될 뿐 아니라 잘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자손은 전투력과 노동력의 절대적인 요소로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1:28, 127:3-4). 요셉은 평생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결국 풍요롭게 되었습니다. 넷째, 축복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 그의 머리로 돌아오고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선조가 받은 복보다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인데 그 복이 산의 변함 없음 같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형제들 가운데 뛰어난 자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후손은 므낫세지파와 에브라임지파를 통해 창성함을 보여 주게 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보다 뛰어난 지파가 됩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지만 장자 역할을 해서 장자가 받을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지파는 두몫을 받아 에브라임(요셉)지파와 므낫세지파를 이루게 됩니다. 지도권은 유다에게로 돌아갔지만 장자의 축복은 요셉에게 돌아간 것입니다. 역대상5:1-2"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생활 가운데 그런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에게는 언약적 신앙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통해 받은 계시로 자신이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언약적 축복을 비전으로 삼고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대해 가진 계획에 관심을 가졌고 그 일에 자신이 어떻게 쓰임 받아야 할지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 사고는 일상 생활에서 나타났습니다. 고난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형들을 용서하여 회개시키고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문안하고 자신이 죽을 때 해골을 애굽에서 가져나가라는 유언을 한 것 등에서 알 수 있습니다.

 

   ⑪베냐민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27).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고 했습니다. 그의 호전성을 근거하여 그의 후손이 군사적 용맹성을 나타낼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매우 작은 지파이지만 전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할 정도로 호전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20). 에훗과 사울과 요나단 같은 용맹한 용사가 베냐민 지파에서 나왔습니다 (3:15-30, 대상12:2, 삼상10-14).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은 12아들들에 대해 축복했습니다. 그 축복은 12아들뿐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까지 행한 예언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분량대로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12아들의 성격과 인성과 생활과 처세 등을 보면서 그들에게서 느낀 점을 근거로 그 연장선상에서 축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 가진 계획과 일치하는 섭리를 보였습니다. 그 조화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에 속한 부분입니다.

 

 

       2. 야곱의 유언과 죽음 (29-33)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야곱은 노년에 침상에서 앉아 12아들들에 대해 축복을 하고 마지막 유언을 한 다음에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었다는 것은 편안히 자연사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야곱은 일생 동안 힘들게 살았지만 노년에 행복을 맛보며 편안하게 일생을 마쳤습니다. 이는 평안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46:4).

 

  야곱은 죽기 전에 아들들에게 대해 각기 분량대로 축복하고 자신의 장사에 대해 지시했습니다. 이미 요셉에게 개인적으로 장사에 대해 지시했지만 죽기 직전에 또 다시 모든 아들들에게 장사에 대해 유언했습니다. 자신이 장사할 장소에 대한 유래까지 언급하면서 유언을 마쳤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죽기 전에 모든 일 처리를 하지 않고 죽게 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은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재산, 빚 문제로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과 관계가 악화되었던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남아 있는 사람은 더욱 힘들 것입니다. 문제를 풀지 못한 것 때문에 평생 심리적인 고통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죽기 전에 가족을 중심하여 모든 사람에게 상처 준 것을 풀어야 합니다. 스위스의 어느 학자가 이른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는 사람들 300여명을 인터뷰하여 기록한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여름이 되면 우리나라 여성 잡지 부록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 책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것은 죽은 다음에 일어난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싫어한다는 점과 그들의 삶이 180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은 다음에 일어난 현상을 말한 내용 가운데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자기의 영혼이 자기 육체를 이탈할 때 영혼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자기의 시체 주위에서 일어난 일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사들이 급하게 행동하는 것이나 주변 사람들이 몰려 드는 것과 관계했던 사람들이 찾아와 우는 모습을 본다고 합니다. 만일 갑자기 죽어 자신의 시체를 붙들고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면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남편과 아내에 대해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평생 잘못에 대해 용서하거나 용서해 줄 것을 비는 말도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죽기 전에 축복할 사람을 축복하고 권면할 사람을 권면하고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야곱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이 죽은 후에 가나안 땅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곳은 아브라함이 가족 묘지로 산 곳인데 (23)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의 아내 레아가 장사된 곳입니다 (25:9, 23:19, 35:29). 아브라함이 그곳을 장지로 매입하여 준비한 것은 하나님이 그 땅을 후손에게 준다는 언약을 생각해서였고 이삭이 그곳에 장사를 한 것도 그 언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그 언약을 믿었기 때문에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그 곳에 장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죽기 전에 자손에게 하나님에 대한 언약적 신앙을 남겨 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이 힘든 생애를 살면서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언약적 신앙으로 살았다는 것을 전달하고 자손들이 그렇게 살기를 권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유산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유산입니다.

 

<結言>

  야곱은 힘든 생애를 살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언약적 신앙을 가지고 살았고 자손들에게 언약적 신앙을 유언하고 평안히 죽었습니다. 그 삶이 가치있는 삶입니다. 어떤 사람의 비문에는 "낳다. 살다. 죽다"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의 비문에는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을 잠깐 멈추십시오. 나도 한 때는 당신같이 살았소. 그러나 다음에는 당신이 나와 같이 될 것이요. 오늘도 죽음을 준비하고 나를 따르시오." 아마 그 비석은 주인들이 삶을 마감 하면서 남은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남은 자들에게 그런 비문을 새기도록 유언해서 그런 비문을 새긴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