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여호수아 5:1-15
<題目> 가나안 입성 준비
<序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도하하고 길갈에 진을 쳤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무엇보다도 가나안 전쟁이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인 것을 알고 모든 백성을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으로 정결케 하려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명령(1:7-8)을 따라 율법 준행으로 성결케 하려 했습니다. 율법 중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두 의식 곧 할례와 유월절 의식을 행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행하고 나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께서 앞서서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시고 가나안 족속을 물리치게 해 주실 것이라는 암시였습니다. 본 장의 내용구조는 두려워 떠는 가나안 족속(1절), 할례를 받는 이스라엘(2-9절), 유월절을 지키는 이스라엘(10-12절),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군대 대장(13-15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두려워 떠는 가나안 족속 (1절)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단 강을 능력으로 말리우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곳으로 마른 땅처럼 건너게 했습니다. 요단 강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그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1절). '아모리 사람'은 산지에 사는 족속이고 '가나안 사람'은 평지에 사는 족속으로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은 가나안 족속 전체를 가리켜 말 말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도하 사실을 알고 두려워 한 것입니다 (2:9-11참조).
성도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할 때 영적인 대적들이 두려워 합니다. 야곱의 일행이 벧엘로 올라가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세겜성에 머물렀을 때 디나가 세겜성 추장 아들로부터 강간을 당했고 야곱의 아들들은 그 사건을 보복하기 위해 디나의 결혼을 빙자로 세겜성 장정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타 칼로 살륙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야곱의 일행이 세겜 성에서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이방신상을 버리고 몸의 장신구들을 버리고 의복을 바꾸어 입고 벧엘로 올라갈 때 사면 고을들이 떨어 추격하지 못했습니다 (창35:1-5).
2. 할례를 받는 이스라엘 (2-9절)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 강을 건너 길갈이라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 그 때는 종교력으로 정월(1월)이었습니다. 이제 여리고 성을 비롯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군사적 준비를 시키지 않고 영적인 준비를 시켰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해야 했고 그것은 그들이 신앙적인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2-3절).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의 할례 산에서 부싯돌로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구약의 성례는 할례와 유월절이 있습니다. 그 중 '할례'의 히브리어 '몰'(מול)은 '잘라내다'는 뜻입니다 (circumcise 포피를 자르다, 割禮 벨할 예도예). 할례는 난지 8일된 남자아이에게 돌(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생식기의 끝 포피(양피)를 베는 의식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창세기12:1-3, 13:14-17, 15:5-7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부르시고 언약(약속)을 맺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어 주셔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고 그들을 번성하게 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17:1-12에 보면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이 그 언약을 다시 확신해 주시면서 그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곧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맺은 언약에 참여한 언약 백성임을 확인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할례를 받았는데 애굽에서 나온 이후 광야생활 40여 년 동안에 새로 태어난 자들은 할례를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할례를 행하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 성공과 실패의 요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느냐 함께 하지 않느냐가 중요했고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40여 년 동안 그들은 불신앙으로 일관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분명히 하여 하나님의 언약 언약 백성임을 분명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 곳에서 할례를 받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는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를 지나 2년째 되어서 가나안 땅 앞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도달했습니다. 거기서 모세가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12정탐꾼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 모두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낙담하여 다른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되돌아가려고 다시 광야 길로 들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광야에서 38년 동안이나 길을 잃고 유리하다가 우상숭배와 간음과 원망과 시험 등 범죄로 말미암아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민14:29-35, 신2:14-16, 고전10:7-11). 곧 애굽에서 나온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온지 40년이 지난 다음에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온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죽은 자들은 이미 할례를 받은 자들이지만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자들은 광야 노중에서 할례를 받을 기회가 없어서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다 통과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으니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4-8절).
둘째,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새롭게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이 가나안 땅 산지로 들어가라 할 때 그들 스스로가 두려워서 가지 않고 원망하여 애굽으로 간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에게 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포기입니다. 곧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은 언약의 파기 행동이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표인데 그들이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할례를 받는 것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고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여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언약관계를 성립하기 위해서 할례를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본격적으로 들어가야 할 시점,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정복해야 할 시점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비록 할례를 받으면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하지만(창34:25)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새롭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할례를 받은 것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준비이며 가나안 일곱 족속을 물리칠 준비이며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할 준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가나안 땅에 대해 출애굽기3:8에는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고, 신명기11:12에는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 세초부터 세말까지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8:7-10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 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구속받은 우리도 영적인 축복의 세계가 허락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취해가면 다 얻을 수 있습니다 (수1:3, 마11:12). 그렇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 여리고 성과 가나안 족속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견고한 진이 있습니다 (고후10:4-5). 악령과 죄와 부패성이 있습니다 (벧전5:8, 히12:4, 고전9:27, 마16:23). 그것들을 이기고 축복의 세계를 취하려면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행했던 것처럼 말씀으로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바로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무장인 것입니다. 그럴 때 과거의 믿음없는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8-9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행하고 낫기를 기다릴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길갈이라고 불렀습니다. '길갈'(גלגל)은 '굴러간다'(roll)는 뜻입니다. 애굽에서 나와 다시 애굽을 동경하고 돌아가려던 불순종의 사람들은 다 죽었고,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모든 생활, 광야에서 하나님 대적하고 불신앙으로 행하던 수치스런 과거가 다 제거된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수치스런 생활을 청산하고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3. 유월절을 지키는 이스라엘 (10-12절)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넌 후 길갈에 유숙하면서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10절).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킨 것은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애굽에서 출애굽 직전에 한번 지켰고 시내광야 시내 산을 떠나기 직전에 한 번 드렸고 이번 요단 강을 건넌 후 길갈에서 한 번 지키게 된 것입니다.
'유월절'의 히브리어 '페사흐'(פסח)는 '면제'라는 뜻입니다 (passover 넘어가다, 逾越節 넘을유 넘을월 마디절). 정월 14일 저녁에 어린양을 잡아 문 설주(세로)와 인방(가로)에 바르고 무교병(누룩없는 떡)을 먹으며 쓴 나물을 먹으며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는 절기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출애굽기12:1-36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산지 430년이 지났을 때 언약을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게 했는데 애굽왕 바로가 허락해 주지 않아서 하나님이 능력을 보이기 위해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 중에 열번째 재앙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설주와 인방에 바르므로 장자를 죽이는 천사들이 문에 피가 발린 이스라엘 백성 집의 장자는 죽이지 않으므로 이스라엘의 장자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왕 바로가 그 재앙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내어 보냈습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지키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구원했음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급박한 가운데서 탈출하게 했음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12:12, 신15:15, 16:1-3). 한마디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이 애굽에서 친히 능력으로 구원해낸 사실,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려고 구원해낸 사실을 영영히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5:1, 7:16, 8:28, 출19:6).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해서 그들을 물리치고 정복해야 했습니다. 그 일의 성패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여부에 달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굽에서 능력으로 구원한 사실을 기억하여 하나님이 언약적 목적을 위해 함께 능력으로 함께 해 주시는 대상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유월절은 구원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을 예언하는 절기입니다 (요1:36, 고전5:7).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는 심정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해야 하고 그 구원의 은혜에 동참해야 합니다 (엡2:1-10, 빌2:5-11, 요6:47-58).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킨 때가 민간력으로는 아빕월이고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하지만 종교력(신앙력)으로 해의 시작인 정월(1월)로 표기한 것처럼(10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것,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이 허락한 축복을 얻기 시작한 때를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B.C.-Before Christ, A.D.-Anno Domini).
한편 정월 14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키고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무교절로 지켰습니다. 유월절 다음날 그 땅에서 나는 소산으로 만든 무교병(누룩없는 떡)과 볶은 곡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땅의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습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는 만나를 먹지 못하고 그 땅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11-12절, 출16:35). '만나'(manna)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할 때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내려 준 음식이었습니다 (출16:13-15).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와 절기를 지키고 절기에 가나안 땅 소산을 먹게 되자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초자연적으로 내려 주시던 만나가 그치게 된 것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광야에서 내린 만나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적인 섭리였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자연적으로 주신 것들이 있을 때는 스스로 취하여 먹을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셋째, 장소와 환경에 따라 방법은 달라지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우리가 처음 받은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이 불가항력적인 은총을 베푸셨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허락한 은혜를 우리가 얻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한 은혜를 얻으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적이 섭리로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마28:20, 롬8:28-39).
4.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군대 대장 (13-15절)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넌 후 여리고 성을 앞두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할례를 행했고 둘째 유월절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고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 칼을 빼 들고 마주 서 있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납니다. 이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하나님의 사자(使者) 곧 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사람의 모양으로 보낸 것입니다. 이를 신학에서는 '비의적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누구를 위하는 자냐고 묻자 자신을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란 하늘에 있는 천군천사의 대장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무장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 것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와 유월절을 통해 40년 동안 불신앙으로 나가던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싸워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6장에 보면 실제로 여리고 성을 하나님이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10장에 보면 아무리 족속의 연합군도 우박을 내려 죽게 하시고 태양을 멈추어서 도망하는 자들을 도륙하게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쟁에 하나님이 친히 싸워 주셔서 가나안 땅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 땅을 얻게 된 것은 전술과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싸워 주신 것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상징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궁극적으로 천국을 말하기도 하지만 현재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배를 받는 모든 영역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데는 불가불 방해하는 대적들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마태복음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약속된 복을 얻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준비는 학벌과 인맥과 돈이 아닙니다. 마음을 신앙적으로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2:29에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소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을 받아 성령이 내주하여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시는 대상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 안에 있는 자요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 자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2:9-10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는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기 위해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하셨던 말씀입니다 (출3:5). '거룩'(קדש)은 구별, 성별, 성결을 의미합니다. '네 선 곳이 거룩하다'는 의미는 첫째는 여호수아가 서 있는 위치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한 곳이니 거룩한 곳입니다. 둘째는 여호수아가 맡은 사명이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언약한 땅에 들어간 것이고 모세 때부터 언약한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내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제사(예배)하는 것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제사장적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출5:1, 8:28, 출19: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광을 보는 열방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목적을 행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의 언약적 목적, 이스라엘의 구원 계획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곧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야하는 사명도 거룩한 것입니다. 셋째는 여호수아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가진 자는 당연히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어야 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종은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종의 특징은 첫째, 자기 뜻대로 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명령한 대로 따릅니다. 둘째, 자기의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자기 소유를 삼지 않습니다. 셋째, 자기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온전히 주인을 위해 헌신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주인 노릇하던 의식과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종의 위치에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 방법과 수단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행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행하라는 것입니다.
성도(聖徒)의 위치는 거룩합니다. 성도는 존재 자체가 거룩합니다. 성도가 받은 사명도 거룩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신'(sandals)은 넓게는 인간의 타락한 성품과 행위를 상징합니다. 좁게는 자기의 생각과 주장과 고집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삶 '옛 사람'의 부패한 성품을 버려야 합니다. 골로새서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4:22에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자기 계획과 자기 생각과 자기 방법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의지와 욕망과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무(無)요 공(空)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고전15:31).
<結言>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가 있습니다. 영적인 성지(聖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한 성전(聖戰)이 남아 있습니다. 성전에서 승리하고 축복을 누리기 위해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는 종이 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우리 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하나님만 위하고 순종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