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여호수아 6:1-27
<題目> 여리고성 정복
<序言>
이스라엘이 백성이 광야를 통과한 후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 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을 멸하고 그 땅을 차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이 길을 가로 막고 있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정복할 것을 명하시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순종하므로 여리고 성을 정복합니다. 내용구조는 여리고 성의 정복 명령(1-7절), 정복 명령의 수행(8-16절), 여리고 성의 함락 때의 할 일(17-27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여리고성의 정복 명령 (1-7절)
1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한 다음에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 입구에서 여리고 성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을 정복하지 않고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해 그 성을 정복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은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여리고(Jericho)성은 오늘날 텔 에스 술탄(Tell es Sultan)이란 곳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 위치는 사해에서 북쪽으로 12km, 요단에서 서쪽으로 9km, 예루살렘에서 동북 방면으로 30km 지점입니다. 당시 여리고 성은 넓이가 32㎦였습니다. 지형은 가파른 언덕이었습니다. 맨 아래 3-4m 정도가 돌로 가파른 각도로 옹벽으로 쌓아져 있었고 그 위에 진흙 벽돌로 성벽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성벽의 높이는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이 줄을 타고 내려와야 할 정도로 높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기생 라합도 그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또 성벽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비해 무기도 많고 전쟁 경험도 많고 식량도 많았습니다.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난공불락의 성을 뛰어 넘어 도무지 정복 가능성이 없는 성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역공을 당하여 전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군-제사장-언약궤-후군-백성 순으로 6일 동안 성을 매일 1바퀴씩 돌고, 7일째에는 7바퀴를 돌되 마지막 바퀴를 돌 때는 제사장이 양각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1-7절).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가나안 정복 방법은 '전군-제사장(7양각나팔)-언약궤-후군' 순으로 6일 동안 조용히 매일 한 바퀴씩 돌다가 마지막 날은 7바퀴를 도는데 7바퀴 째는 제사장이 나팔을 불고 일제히 외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술은 병법으로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은 사람의 생각으론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고전1:18, 23-25, 사55:8-9).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경험과 논리와 이성에 맞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11:30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으로 7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한편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신약의 교회 즉 성도들에 비할 수 있습니다 (행7:38).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여리고성과 같은 난공불락의 도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견고한 진(陣)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입니다 (고후10:4-5). '경고한 진'은 모든 이론(사상)과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교만과 모든 생각(불신앙적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부패한 성품인 죄성을 말합니다. 이 죄성은 미움, 원망, 불평, 시기, 질투, 욕심, 정욕, 교만 등입니다 (마15:19, 막7:21-23). 이 죄성은 우리 영혼을 거스려 싸웁니다 (벧전2:11). 그 도성을 무너뜨리는 무기는 '강력'입니다 (고후10:4). '강력'(δυνατα)의 원형은 '뒤나미스'(δυναμιs)으로서 우리 말로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영어 성경 KJV에는 '하나님이 주신 강력함'(mighty through God)로 나와 있고, NASB에는 '신(하나님)에 의한 강력함'(divinely powerful)로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속에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는 선한 마음이 있는 동시에 죄의 법을 따르려 하는 악한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항상 두 세력이 싸우는 것을 발견 했고, 결국 악한 마음이 이겨서 죄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악한 마음이 '법' 곧 세력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는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그 세력이 항상 이겨서 죄를 짓게 하는 싸이클을 벗어날 수 없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탄식했습니다 (롬7:15-24). 그런 관점에서 바울은 일평생 원수가 자기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9:26-27에서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승리의 비결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롬7,25, 8:1-2). 예수님이 이미 법적으로 이김을 주셨습니다 (고전15:57). 생활 가운데서도 성령으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김 주신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2. 정복 명령의 수행 (8-16절)
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11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12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13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
14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15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여호수아 6:2-5에 하나님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방법을 지시하고 그대로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전군-제사장-언약궤-후군-백성 순으로 6일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매일 한 바퀴씩 돌다가 7일째에는 일곱 바퀴를 돌되 일곱바퀴 돌 때에는 나팔을 불고 고함을 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그대로 행하므로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히브리서11:30에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대적이 있습니다. 그 대적은 사단과 죄와 부패성과 환경입니다 (고후10:4-5, 벧전5:8, 히12:4, 고전9:27, 마16:23). 그들을 파하고 승리하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①제사장은 여호와의 궤를 메었습니다 (12절). '여호와의 궤'는 언약궤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출25:22). 언약궤와 관련된 세가지 물품은 만나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비석입니다 (히9:4). 만나 담은 금 항아리는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양식을 제공해 주는 자로서 영생을 줄 자임을 예표하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예수님이 영적인 대제사장 오실 것을 예표하고, 언약의 두 돌 비석은 예수님이 말씀의 완성자로 오실 것을 예표합니다. 우리는 영적 제사장으로서 (벧전2:9) 하나님을 앞세워야 합니다. 영적인 전쟁은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②제사장은 양각 나팔을 불며 행진했습니다 (13절).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목적을 선포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은 양각나팔처럼 보잘 것 없어도 전도의 미련한 것 통해 구원운동을 하십니다 (고전1:21, 27-29).
③군인은 무장하고 앞뒤에서 행했습니다 (13절). 언약궤와 제사장과 백성들을 보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무장해야 합니다.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엡6:13-17).
④6일 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았습니다 (14절). 인내가 요구되는 행동입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지루한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11-15절에 보면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고 했습니다. 첫째날 '전군-제사장-언약궤-후군-백성' 순으로 한 바퀴씩 돌았습니다. 32㎢의 둘레를 돌았다면 얼마나 먼 거리를 돈 것입니까? 그 먼 거리를 어떤 전략도 없이 그냥 여호수아가 시키는 대로 그냥 돈 것입니다. 뜨겁고 목마르고 허기지고 지쳤을 것입니다. 불평이 나왔음직 합니다. 그래도 참고 돌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루 돌았을 때 조금이라도 성이 무너질 조짐이 있어야 다음날 또 '이 방법이 맞구나!' 하면서 다음날도 힘을 내서 돌 것인데 전여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7일간 돌아야 하는데 여섯째 날이 되어도 어떤 조짐도 없었습니다. 갈등과 회의와 갈등이 있었음직 합니다. 매일 같이 같은 방식으로 돌았을 때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하루 돈 것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합니다. 도대체 하루에 32㎢의 둘레를 일곱 바퀴 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분노가 극에 달했음직도 합니다. 하지만 일곱째 날 일곱 바퀴를 돌면서 고함을 지르니 말 그대로 기적처럼 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온갖 의심과 회의와 갈등과 분노가 있는 가운데서도 매일 같이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도니 티핑 포인트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일 동안 노력과 수고와 헌신을 하고, 기도와 말씀 순종과 사명을 감당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전이 이루어질 조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심과 회의와 불평과 낙심과 분노하여 포기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루 하루의 일상적인 신앙생활의 노력이 모두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이루는 과정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내하면서 그 무의미한 것 같은 하루 하루의 일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가 되기까지 인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10:12-13). 만사가 기한이 차야 합니다 (전9:11). 때가 차고 하나님이 일을 이루실 때까지 여전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엡6:18, 빌4:6).
⑤음성을 들레지 말고 조용히 돌았습니다 (10절). 하나님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방법을 지시하면서 관심이 가는 한 가지는 본문 6:10에 나오는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6일 동안은 매일 1바퀴씩 돌 때, 그리고 7일째에 6바퀴를 도는 동안 곧 7일째 7바퀴를 돌 때 일제히 소리를 지르는 때가 되기 전에는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7일째 7바퀴 돌 때에 일제히 소리질러 성이 무너지기 전에는 어떤 말도 하지 말고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성이 무너져 내리는 전까지는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 침묵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도 성 위에서 비웃거나 조롱할 수도 있고 스스로도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논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32㎦나 되는 성을 매일 돌아야 하며 마지막 날에는 7바퀴나 돌아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서 불평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해야 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역사를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적에게 방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혹은 내부적 분열을 막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침묵이 7일째되는 날에 7바퀴를 돌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하는 의미를 가진 외침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과 전혀 다른 상태로 뒤집어지는 지점을 말합니다. 물이 끊는 지점, 불이 붙는 지점, 성공하는 지점, 목적이 이루어지는 지점 등을 말합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시점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시점이 이에 속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에 대한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인생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어떤 부분들에 대한 티핑 포인트를 두셨습니다. 그것이 영적이든 심리적이든 육체적이든 물질적이든 하나님은 그것을 정복할 수 있는 티핑 포인트를 두셨습니다. 불평하지 말고 분쟁하지 말고 신음하지 말고 울부짖기 보다는 침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가지신 목적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침묵하기를 바랍니다. 시편62:1에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고 했습니다 (애3:26).
⑥7일째는 7바퀴를 돌고 마지막으로 돌 때는 모두 외쳤습니다 (15절). 전심전력을 다해 완전 순종을 보이는 행동입니다. 여리고 성은 전심전력을 다해 순종하므로 무너뜨렸지만 아이성에서는 그렇지 못하므로 실패하게 됩니다 (7:3-5).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과 환경과 건강과 물질 등을 모두 이용하여 하나님을 순종해야 합니다. 소아시아의 빌라델비아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열린 문을 두었습니다 (계3:8).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병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전군-제사장-언약궤-후군-백성 순으로 6일 동안 성을 매일 1바퀴씩 돌고, 7일째에는 7바퀴를 돌되 마지막 바퀴를 돌 때는 제사장이 양각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운데 언약궤를 메고 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하라는 것이고, 그 앞에서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잡고 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라는 것이고, 앞 뒤로 무장한 군사가 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지키라는 것이고, 6일 동안 매일 1바퀴씩 돌다가 7일째에는 7바퀴를 돌되 7바퀴째에는 외치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최선을 다하라는 상징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는 것은 이 정복 전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한 목적에 속한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여 역사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그 방법은 사람의 병법으로 볼 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병법이므로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법대로 순종했고 그 때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여호수아6:8-21).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지진으로 무너졌다고 하는데 그것이 맞다면 하나님이 지진으로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1:30에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완전히 순종할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모든 시험과 난관과 재난을 이깁니다. 태산과 같은 환난도 이깁니다. 스가랴4:7에 "높은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뽕나무 뿌리 같이 깊이 박힌 부패성도 뽑힐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9:23에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11:30에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무너뜨렸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 믿음을 말합니다. 여리고 성은 그토록 견고한데 그 성을 매일 한 바퀴씩 돌다가 일곱째 날 7바퀴를 돌고 7바퀴 째 나팔을 불며 소릴 지른다고 해서 무너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병법이었습니다. 당시 병법으로 볼 때 그런 행동은 성을 정복하는 방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순종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여리고 성과 같은 견고한 성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얻는 데에 가로막고 있는 방해요인이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방해하는 환경과 상황들이 있습니다. 또한 내적으로 방해하는 죄적 성품과 욕망들이 있습니다. 그 요인들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진(陣)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대로 하면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과 신앙양심과 섭리를 통해 요구하는 방법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은 사람의 생각으론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고전1:18, 23-25, 사55:8-9). 하지만 그것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고린도후서10:4에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했습니다. '견고한 진'(οχυρωματων)에 해당하는 기본형 '옼쉴로마'(οχυρωμα)는 성, 성채, 요새 등의 뜻입니다 (strong holds -KJV, fortresses, strongholds -NIV). '하나님의 능력이라'(δυνατα, τω θεω -GTS)는 개역판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강력이라'고 번역했는데 개역 개정판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 곧 하나님이 가지신 능력을 의미합니다 (mighty through God -KJV, divinely powerful -NASB, divine power -NIV).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요구하시고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으로서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돌기만 하면 되고 소리지르기만 하면 되었던 것처럼 아주 쉬운 방법입니다. 그런데 왜 순종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순종하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근거로 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벼룩' 이야기처럼 우리 스스로가 안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비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데에 방해되는 요인을 정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정복하지 못하는 것은 장해요인이 너무 견고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아서나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우리에게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방해요인들을 정복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어가는 교두보로 삼아야 합니다. 반드시 우리가 바라는 비전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11:1-2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3. 여리고 성의 함락 때 할 일 (17-27절)
17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18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3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24 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①전리품은 취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17-19절). 여리고 성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므로 그 모든 것, 금은동철 모든 기구는 다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들을 취하면 화를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간은 이 말씀을 어기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7:10-26). 여리고는 첫번 싸움이기 때문에 얻은 이는 하나님께 돌리고 다음 성부터 취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십일조 정신입니다. 죄를 끊은 것, 선을 이룬 것 있으면 하나님께 용광 돌리라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교만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다가 심판받았고 헤롯 왕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서 심판받았습니다 (단4:30-33, 행12:23).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전15:10).
②기생 라합과 그 집의 가족은 살리라고 했습니다 (17절). 이 명령대로 백성들이 여리고 성 사람들을 진멸하되 라합의 가족은 살렸습니다. 라합은 죄인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고 구원 역사에 일비지력을 감당한 자였습니다 (2:11,9-13). 하나님은 성도 한 사람이라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암9:9). 그리고 하나님 구원 사역에 협력한 사람을 기억하여 환난에서 건지지고 상으로 갚으십니다 (마10:40-42, 1:5).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시37:25).
③남여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21, 24절).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성이 무너지자 성으로 들어가 남여노소와 짐승을 모두 진멸하고 성읍을 불태웠습니다. 잔인한 것 같지만 라합처럼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들은 그 기회를 거절한 자들입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대적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삼상15:1-35). 영적으로 사단의 세력과 죄의 세력과 부패성의 세력과 인본주의적인 요소는 완전히 제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방해되는 죄적 환경은 완전히 정복하고 끊어야 합니다.
④여리고 성을 재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26-27절). 누구든지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고 문을 쌓을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과 능력의 역사가 나타난 이적인데 이것을 다시 쌓으면 증거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다시 쌓는 자는 기초를 쌓을 때 맏아들을 잃고 문을 세울 때 막내 아들을 잃게 됩니다. 아합왕 때 히엘이 여리고 평지가 살기 좋아서 성을 쌓다가 이 말씀대로 심판당했습니다 (왕상16:34). 하나님의 역사를 인본주의로 바꾸거나 비하시키거나 소멸시키려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結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누리는 데에 있어서 여리고 성과 같은 난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과 비전을 감당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것들일지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해 가며 믿음으로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여리고성은 누구 무너뜨렸습니까? 하나님이 무너뜨렸습니다. 20절에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성이 나팔 불고 소리 지른다고 해서 무너지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하에 있는 대상에게 있어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는 하나님이 일으키십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목적한 티핑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이 회복되고 사업이 성공하고 신앙 인격이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진대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