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에스라 3:1-13
<題目> 성전건축 착수
<序言>
1장에서는 유다 백성이 바사(페르시아)에서 귀환하게 된 원인과 경과를, 2장에서는 귀환자들의 수와 그들이 바친 예물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3~6장은 성전 재건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기록했는데 그 중에 3장은 성전 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신실하게 시행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전 재건을 위한 제반 준비 사항과 기초작업을 진행하는 과정과 그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성전 재건을 위한 준비(1-7절), 성전 재건의 기초작업(8-13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성전 재건을 위한 준비 (1-7절)
1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3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5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6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유다 백성이 바사(페르시아)에서 귀환하여 각 본성에 거하다가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백성들은 주변 열국 백성들을 두려워 했습니다.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초막절을 지키며 그에 따른 번제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 드리는 상번제도 드렸습니다. 또한 즐거움으로 예물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 지대(기초)를 놓기 위해 시돈과 두로 사람들의 기술자를 고용하여 그들을 통해 레바논 백향목 같은 재료들을 욥바까지 운송하도록 했습니다. 그 대가로 그들에게 필요한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었습니다 (1-7절).
유다 백성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므로 사로 잡혀 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통해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성전이 없었습니다. 3차로 포로잡혀 간 자를 기준하면 지금은 1차 귀환 때이므로 약 50년만에 귀환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단을 쌓고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초막절(草幕節)은 일주일 동안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지내는 절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하게 해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조상이 광야에서 고난받는 생활 한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바사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킨 것은 바사에서 고난 받은 것을 기억하고 바사에게 돌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미를 가지는데 유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제사를 지속적으로 드리기 원했고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불타버린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불탔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 재건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날도 외부적 성전 건축과 사역은 핵심이 아닐지라도 그 사역을 할 때에 공동체의 정체성이 생기고 그에 따른 은혜가 따릅니다. 자기 평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신앙의 열정과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2. 성전 재건의 기초작업 (8-13절)
8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9 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11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13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를 시작한지 6개월 정도 지나서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이 총감독을 하고 20세 이상 레위인들이 성전 공장(사역)을 감독하여 성전 지대가 놓였습니다. 그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레위인들은 제금(지금의 심벌즈와 비슷한 악기)을 들고 다윗의 규례대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큰 소리로 즐거이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인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들이 사로잡혀 가기 전에 있었던 첫 성전 곧 솔로몬 성전을 보았는고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 통곡은 백성들이 즐거워 찬송하는 소리와 섞여서 찬송하는 소리인지 통곡하는 소리인지 분별하기 힘들었습니다 (8-13절).
준비했던 성전 기초가 놓일 때 대부분 젊은 사람들을 즐거워 했습니다. 약 70여년 동안 고대하던 성전이 지어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스러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통곡했습니다. 그들도 성전이 지어지기를 고대하다가 성전이 지어지는 것을 보고 감격스러워 하는 마음도 있었겠으나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자 실망한 것입니다. 그것은 포로 잡혀 가기 전에 있었던 솔로몬 성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볼 때 스룹바벨 성전을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크기, 재료, 의미가 형편없었습니다. 학개2:3에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 하냐"고 했습니다. 실제로 스룹바벨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해 보잘 것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으로 여기던 법궤(언약궤)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통곡한 노인들은 스룹바벨 성전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지 못한 까닭에 성전의 외적인 부분만 보고 실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학개2:9에서 "이 전(殿)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고, 조금 있으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만한 만국의 보배가 이르게 하므로 영광이 충만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학2:4-8). 그 의미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가진 말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에 솔로몬 성전은 화려했으나 유다 백성이 범죄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성전 제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외부적 성전은 화려했고 제사는 많이 드려 졌지만 하나님과 유다 백성들 사이에 진정한 교제가 없었습니다. 그 증거로 성전이 불타게 하고 백성이 사로잡혀 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다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화려하지 못하고 법궤가 없을지라도 진정으로 드리는 제사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므로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다는 암시입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므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려서 하나님이 징계하여 사로잡혀 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어 언약을 완성하므로 하나님과 유다 백성 간의 영원한 그리고 완전한 교제를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매일 제사를 드려도 불완전한 교제를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완전한 연합적 교제를 하는 성전으로, 눈에 보이는 한정된 성전이 아닌 상호 내주하는 성전으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스루바벨 성전은 그런 미래적, 구속사적 의미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런 점을 본다면 스룹바벨 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훨씬 영광스러운 성전인 것입니다.
<結言>
오늘날 우리는 스룹바벨 성전에 부여한 미래적 의미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그 안에서 모든 죄를 사함받아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므로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성령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고전 3:16). 그러므로 우리는 외부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영광스런 의미를 보고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하므로 진정한 교제가 유지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고전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