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에스라 5:1-17

<題目> 성전건축 재개

 

<序言>

  성전재건을 위한 기초작업이 순전하게 진행되었으나 사마리아인들의 훼방으로 성전재건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자신들의 이권문제 때문에 바사 정부에 로비를 하고 고소를 한 것 때문에 중단되었습니다. 성전 재건 중단이 B.C.537년이었다면 중단된지 16년 동안이나 지났습니다 (4:24). 그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유다 백성이 성전재건을 재개하도록 했습니다. 내용구조는 선지자들의 출현(1-2절), 사마리아 총독의 호의(3-5절), 사마리아 총독의 상서(6-17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선지자들의 출현 (1-2절)

 

  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시작하다가 중단된 것은 사마리아인들이 자신들의 이권문제로 바사 정부에 로비를 하고 고소를 한 것 때문에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개서와 스사랴서의 내용을 보면 내적으로는 신앙적 해이 때문이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공작을 핑계 삼아 아직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의 개인 생활에 몰두하여 재산을 늘리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깨닫게 하려고 기근과 흉년을 주어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들 곧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고 성전재건의 의미를 전하고 성전재건을 위해 일어날 것을 독려했습니다. 그 결과 유다 사람들이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일어나 성전 재건을 재개했습니다 (1-2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신앙적인 열정을 가지다가도 외부적 어려움이 생기면 낙심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와 함께 마음이 물질과 육체와 세상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기 위해 여러 방편을 사용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회개를 촉구하기도 하고 위로와 격려를 하기도 하고 소망을 가지게도 합니다. 말씀을 통해 영적 신앙을 회복시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있는 것이 복이고 말씀이 전해지는 것이 복입니다. 그것이 없는 것은 큰 징계입니다. 하나님이 아주 버릴 때에는 참 선지자를 보내지 않습니다. 그 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신앙적 회복과 열정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말라기 시대에는 선지자를 보내어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이후에는 선지자들을 보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수백년 동안 신앙적 암흑기를 당했습니다. 종말에도 참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므로 영적인 기근과 기갈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6:5-6에 보면 일곱인(印) 재앙에서 세번째 인을 뗄 때에 검은 말이 나오는데 저울을 가졌고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검은 말은 흉년과 기근에 대한 상징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기근을 당하여 양식을 저울에 달아서 사야 하고 하루 품삯으로 고급 양식은 한되 저급 양식은 두되 밖에 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육체적 기근을 말하는 동시에 영적 기근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그런 날에 대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했습니다 (암8:11-13).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영적인 양식이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힘든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깨닫게 되므로 소망 가운데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없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망하는 날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마24:20). 환난의 때가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면 도망할 수 없지만 영적으로 얼어붙고 말씀을 어겨야 하는 때이면 도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때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바로 전해줄 사역자가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 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마13:52). 옛부터 세워 온 말씀과 시대적으로 적용하는 말씀을 전해 주는 사역자가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지자가 말씀을 전해 줄 때에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사울왕은 하나님 말씀을 전해 줄 때 듣지 않았습니다. 아말렉 족속을 남녀노소 무론하고 진멸하라고 했는데 아각왕을 사로잡아 오고 살찐 짐승을 살려 왔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책망을 하니 돌이키지 않고 백성들이 제사드릴 명목으로 살려 왔다고 핑계했습니다. 그 때 사무엘 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났다고 했습니다. 거역하는 것이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이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사울왕은 그 때로부터 하나님께로 버림받고  악신이 그를 다스리게 됩니다 (삼상15:22-23). 아마샤왕도 우상을 섬기므로 한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으나 듣지 않자 왕이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안다고 선언했습니다 (대하25:15-16). 하지만 다윗왕은 그 반대입니다. 다윗왕은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인 죄를 지었을 때 나단 선지자가 책망했습니다. 칼이 집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다른 사람이 처를 백주에 동침할 것이고 아이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삼하12:7-15).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었습니다. 선지자가 전해주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과 듣지 않는  자의 차이점입니다. 사역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듣고 책망을 달게 받고 위로와 격려와 비전을 제시할 때 합당하게 받아들이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하나님께 복받을 자입니다.    

 


          2. 사마리아 총독의 호의 (3-5절)

 

  3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4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

  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유브라데강의 서편을 관할하는 사마리아 총독 닷드내와 그의 서기관으로 추측되는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가 유다 백성에게 나아와 누가 성전을 건축하고 성곽을 마치게 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성전 건축을 지도하는 자의 이름을 고했습니다. 성전건축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이름을 말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총독은 성전건축 역사를 폐하지 않고 이 일을 바사왕 다리오에게 고하고 답조(答詔)를 기다렸습니다 (3-5절).

 

  사마리아 총독이 유다 백성에게 성전건축이의 합법성을 묻고 다리오왕에게 질의를 해서 다리오왕의 답신이 올 때까지 성전건축 공사를 막지 않은 것입니다. 전에 사마리아인들은 성전 건축 공사를 방해하기 위해 바사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바사왕에게 성전건축과 성곽중건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고 그 결과 왕으로부터 중단 명령이 내렸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총독은 성전 공사를 객관적으로 살펴 보려 했고 바사왕에게 올린 상서의 내용을 보면 유다 백성의 성전 건축에 대해 호의적인 글을 올리므로 왕이 성전건축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리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이었습니다 (5절).

 

  하나님은 세상 권세자들도 주관하셔서 원할 때에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로마서13:1에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했습니다. 잠언21:1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악한 자들도 사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잠언16:4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찾아올 때에 사람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좋은 때가 옵니다.  

 


          3. 사마리아 총독의 상서 (6-17절)

 

  6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인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라

  7 그 글에 일렀으되 다리오 왕은 평안하옵소서

  8 왕께 아뢰옵나이다 우리가 유다 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본즉 성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일하므로 공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에

  9 우리가 그 장로들에게 물어보기를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라고 하였느냐 하고

  10 우리가 또 그 우두머리들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아뢰고자 하여 그들의 이름을 물은즉

  11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한 것이었으나

  12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이 성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13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고

  14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금, 은 그릇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꺼내어 그가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고 부르는 자에게 내주고

  15 일러 말하되 너는 이 그릇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제자리에 건축하라 하매

  16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17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그의 동료들이 유다 백성들의 성전 건축 현장을 보고 바사왕 다리오왕에게 글로 보고하고 답신을 기다렸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유다 백성의 건축 공사에 대한 현황이었습니다. 총독 자신이 공사 현장에 방문하여 보니 공사가 한창 진행되었고 지도자가 누구인지 물으니 그들이 대답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스룹바벨과 예수아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6-10절). ②유다 백성의 건축 공사에 대한 목적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자기들은 천지의 하나님의 종으로서 오랜 옛적에 큰 왕 때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다시 지으려 한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유다왕 솔로몬 때에 건축했던 성전을 다시 건축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11절). ③유다 백성의 건축 공사의 근거였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므로 그가 성전을 헐고 사람들을 사로잡아 갔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사왕 고레스가 원년에 조서를 내려서 유다 백성이 귀환하여 성전을 짓도록 했고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성전에서 가져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금 은 기명(그릇)들을 세스바살(스룹바벨)에게 내어 주어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스바살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유다 백성과 함께 성전을 짓고 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12-16절). ④다리오왕의 판단 요구였습니다. 다리왕이 국고를 조사하여 과연 고레스왕이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하셨는지 확인해 보고 건축 공사에 대해 어떻게 할지 결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7절).

 

  유다 백성들이 총독 닷드내 질문에 대답한 내용은 닷드내의 신임을 얻고 호의를 이끌어 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일어나 성전건축 역사를 마치려 하니 하나님이 섭리하신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의 대답 속에서 그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들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했습니다. 자신들을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세상 군왕의 종이 아니라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를 위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신분적 위치와 사역의 목적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둘째, 자신들이 멸망당한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불타고 자신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것이 자신들의 죄 때문인 것을 시인하고 고백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와 성전을 짓게 된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사왕 고레스를 감동시켜 고레스가 귀환과 건축에 관한 조서를 내려서 그 근거로 건축 공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結言>

  오늘날 우리도 유다 백성들처럼 자신의 위치와 사역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이유에 대해 분명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3:15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