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열왕기상 12:1-33
<題目> 르호보암과 이스라엘의 결별
<序言>
솔로몬이 말년에 호색과 우상숭배에 빠졌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기를 이스라엘 나라를 신하에게 주고 예루살렘만 남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 장에서는 솔로몬이 죽은 후에 하나님의 경고가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을 보여 줍니다. 특히 르호보암의 우둔함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내용 구조는 르호보암의 압제 정책 표방 (1-15절), 르호보암과 이스라엘의 분열 심화 (16-24절),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 (25-33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르호보암의 압제 정책 표방 (1-15절)
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3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6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9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11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12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솔로몬이 죽게 되자 그 외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르호보암(Rehoboam)은 솔로몬왕이 암몬여인 나아마에게 낳은 아들(14:31)로서 성경에서 유일하게 언급한 솔로몬왕의 아들입니다. 솔로몬왕에게는 아내가 많이 있었으므로 그의 아들들도 수없이 많았을 것이나 그 아들들 중 르호보암이 왕이 된 것은 르호보암이 장남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수많은 아들들 가운데 솔로몬왕에게 지목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여간 르호보암은 북부에 있는 10지파의 동의를 얻어 왕권을 굳히려고 세겜으로 갔습니다. 세겜(Shechem)은 예루살렘에서 약 60km정도 떨어진 곳으로서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에 있는 성읍입니다. 세겜은 북부 지파들의 중심 역할을 하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해 있는 성읍으로서 세겜은 옛부터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입니다.
르호보암이 세겜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북부 10자파 사람들은 애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여로보암을 데리고 함께 르호보암에게로 나아갔습니다. 여로보암(Jeroboam)은 에브라임 사람으로서 북부 10지파의 왕국을 세운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솔로몬왕의 신복이었던 부친과 '스루야'라는 이름을 가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1:26). 그는 젊었을 때 솔로몬왕에게 인정을 받아 요셉 족속의 노동 감독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에서 실로 사람인 선지자 아히야(Ahijah)를 만났습니다. 아히야는 입고있던 옷을 12조각으로 나누어 10조각을 여로보암에게 가지게 하고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10지파를 지배하는 왕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 솔로몬왕이 그 사실을 알고 여로보암을 죽이려 했고 여로보암은 애굽으로 도망을 가 애굽왕 시삭(Shishak)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다가 솔로몬왕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11:26-40).
여로보암을 중심한 북부 지파 사람들은 르호보암과 회담을 했습니다. 솔로몬이 멍에를 무겁게 했는데 르호보암이 그 멍에를 가볍게 해 주면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솔로몬 때의 고된 부역과 과중한 세금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3일 기한을 정한 다음 그 제안에 대해 솔로몬왕을 섬겼던 원로들과도 의논하고 자신을 섬기는 젊은 신하들과도 의논했습니다. 그런데 원로들은 그들의 제안대로 멍에를 가볍게 한다고 하면 그들이 충성할 것이라고 한 반면, 젊은 신하들은 솔로몬 때보다 더 무겁게 한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왕의 새끼 손가락이 부왕의 허리보다 굵고 부왕은 채찍으로 다스렸으나 왕은 전갈로 다스리겠다고 말하게 한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교도를 따르지 않고 젊은이들의 교도를 따랐습니다. 3일 후에 르호보암은 그에게 나아온 여로보암과 북부 10지파 사람들에게 젊은 신하들의 교도를 제시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세겜 회담은 결렬되고 결국 북부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나라를 갈라서 세우게 됩니다.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교도를 버리고 젊은 신하들의 교도를 따른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노인들은 참된 권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었고 젊은이들은 참된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몰랐습니다. 젊은이들은 오히려 외부적 강한 힘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참된 지도력은 섬기는 정신에 있습니다 (Servant Leadership). 오늘날 교회에서 분열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직분의 권위를 세우려 하고 서로 헤게모니를 잡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사역자들은 섬기는 정신과 함께 통합 조정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직접적으로는 르호보암의 젊은 신하들의 교도를 따랐기 때문이고 근본적으로는 솔로몬왕이 말년에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대로 된 것이라는 표현은 그것은 그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일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15절, 대하10:15). 그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범죄를 아들에게 징계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난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겔18:1-4). 물론 죄얼이나 죄의 영향력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는 나타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부모의 죄 때문에 자녀가 그 대가로 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자녀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 결정을 하나님께서 무한한 지혜로 아시고 말씀하신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라를 쪼개기 위해 르호보암에게 실수하도록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르보호암이 그런 실수를 한 결과 나라가 분열되고 보니 하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인간의 자유 의지의 조화는 하나님의 비밀에 속한 것입니다.
2. 르호보암과 이스라엘의 분열 심화 (16-24절)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18 르호보암 왕이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르호보암이 세겜에서 여로보암을 중심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강압 정책을 펼 것을 선언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기기를 거부하고 각기 자가 장막으로 돌아갔습니다. 르호보암은 역군의 감독 아도니람을 그들에게 보냈으나 그들은 아도니람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아도니람은 원문에 '아도람'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도니람은 역군의 감독이었기 때문에 르호보암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그를 파견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노역과 세금 징수에 이골이 난 자들로서 그 일에 앞장섰던 아도니람이 오자 분노하여 아도니람을 죽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르호보암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16-19절).
결국 북부에 있는 10지파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공회를 영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게 되고 르호보암은 남부에 있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왕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아직 강압 정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군사 18만 명을 모집하여 북부 10지파의 이스라엘을 쳐서 돌아오게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스마야 선지자를 보내어 군사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상황이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니 이스라엘과 싸우지 말고 돌아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사들이 그 말씀을 듣고 각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20-24절). 스마야(Shemaiah) 선지자는 르호보암 때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인데 당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아히야 선지자와 같은 내용을 전한 것입니다 (11:31-33).
연합과 통일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상 차이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는 갈라질지언정 혈족끼리 싸워서 죽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분열이 영구적으로 고착되는 길입니다. 20세기 후반에 소련이 무너지고 동구라파가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되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죽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우리 나라가 곧 통일될 것 같이 생각했습니다. 저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동서독은 자기끼리 전쟁을 하지 않았으나 미.소에 의해 분단되었던 국가이기 때문에 통일이 쉽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같은 민족끼리 3년 동안 6.25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전쟁의 상황이 여러번 바뀌면서 한 동네에서도 좌익과 우익이 나누어져 피비린내 나는 보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 전쟁 1세대들이 살아 있는 한 통일은 어렵습니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사회의 주축을 이룰 때 가능할 것입니다. 한번 싸우게 되면 연합은 어렵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구 고착될 정도로 싸워서는 안 됩니다.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같이 사역을 하다가 마가의 동행문제로 불가불 나누어서 사역을 했습니다. 다녀왔던 각 성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 갈 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고 바울은 한번 밤빌리아에서 떠났던 사실을 근거로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 교회를 굳세게 했습니다 (행15:36-41). 마산 문창교회 사건도 총회측 목회자와 고신측 교인 간의 재판이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 사건으로 고신측 경기노회 목회자들이 고신측에서 분리(행정보류)하게 되는 게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도 교단이 나뉘면서 한 예배당에서 두 강대상을 각기 양 진영의 인도자가 나와 예배를 동시에 인도했습니다. 예배가 아니라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일부 교인들과 함께 교회를 양보하고 나와서 천막을 치고 새로 개척을 했습니다. 싸우는 것보다는 갈라지는 것이 낫습니다.
3.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 (25-33절)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북부 10지파를 중심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 마음이 르호보암에게로 기울어져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7월 15일 절기를 8월 15일로 바꾸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지정한 곳에서 예배하도록 했고 (신12:5, 왕상11:13,36), 하나님을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고 (출20:4-5), 레위인들만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했고 (출28:1-4), 초막절(장막절,수장절)은 7월 15일에 지키도록 했습니다 (레23:34, 왕상8:2,65, 9:25). 이는 변질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을 비교해 볼 때 정치적으로는 여로보암이 르호보암보다 훌륭합니다.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로서 솔로몬이 죽자 전통에 의해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부역과 세금으로 고통당한 백성들이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는 호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멍에를 가볍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강공법을 사용하여 역군의 감독 아도니람에게 흩어지는 백성을 수습하게 했고 심지어는 18만 명의 군사를 모집하여 군사행동으로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압제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르보보암에게서 마음이 떠나 여로보암을 왕을 세운 것입니다. 반면 여로보암은 북 이스라엘 사람들의 추대에 의해 왕이 되었고 그들의 호소를 잘 듣고 정치를 했습니다. 여로보암이 훨씬 민주적이고 윤리적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신앙적인 면에서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백성들을 범죄케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 있어서 윤리적으로 옳은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윤리적 의를 세우고도 하나님의 의를 세우지 못한다면 안 됩니다. 윤리적 의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의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여로보암과 북 이스라엘의 신앙적 타락은 결국 여로보암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견고히 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타락의 시작입니다. 교회생활과 선교활동을 자기의 이익 목적에 활용해서는 안 됩니다.
<結言>
르호보암은 언약적으로 정통성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정치적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정치적으로는 백성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민주적 지도자였으나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선 신앙적으로 하나님 앞에 정통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윤리적인 면에서도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정통성을 빙자하여 윤리적인 면을 무시하므로 사람들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