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열왕기상 13:1-34

<題目> 유다의 선지자와 여로보암


<序言>  

  솔로몬 왕이 죽은 후 남왕국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이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유다로 넘어갈 것을 염려하여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했고 누구든지 원하면 일반 사람이라도 제사장으로 삼았고 7월 15일 초막절 절기를 8월 15일로 고쳤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남왕국 유다에서 익명의 선지자가 북왕국 이스라엘의 벧엘에 찾아가 벧엘 제단의 파멸을 예언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회개치 않고 계속 완악함을 보입니다. 본 장의 내용은 유다의 선지자의 경고 (1-10절), 유다의 선지자와 벧엘의 늙은 전지자 (11-32절), 여로보암의 완악함 (33-34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유다의 선지자의 경고 (1-10절).

 

  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3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5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징조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

  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8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9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10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아니하니라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8월 15일 절기 때 벧엘에서 직접 제의(祭儀)를 집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남왕국 유다에 있던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록된 익명의 한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벧엘까지 와서 여로보암이 단의 곁에 서서 분향을 하고 있는 단을 향해 예언을 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윗의 집에서 요시야가 태어나 그 단에서 분향하는 제사장들을 죽이고 그 단에 뼈를 사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왕하23:20). 그 예조(豫兆) 곧 전조(前兆)로 단이 갈라지고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 여로보암은 그 선지자를 향해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고 했으나 그 편 손이 말라 거주지 못했고 단이 갈라지며 재가 쏟아졌습니다. 여로보암은 그 선지자에게 회복시켜 줄 것을 구했고 몸이 성하게 되자 선지자를 집으로 청하여 대접을 하려고 회유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왕의 집 절반을 준다고 해도 왕과 함께 가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다의 선지자의 행동을 보면 단호하면서도 급박한 예언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벧엘은 20km정도 됩니다. 여로보암이 모든 일이 잘되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 그것도 제사의 절정에 갑자기 나타나 멸망을 예고합니다. 그 멸망의 예조까지 보입니다. 여로보암이 손을 펴 저를 잡으라고 하자 손이 말라 거두지 못하게 합니다. 여로보암의 초대와 식사와 예물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유다로 곧장 오되 가던 길로 오지 않고 다른 길로 왔습니다. 교제와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의 메세지가 긍휼을 베풀지 않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경고 메세지 임을 보여 주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이 선지자에게 이렇게 하도록 특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얼마나 분노하셨는지를 엿보게 합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 심각하게 상처를 입히는 죄입니다 (출20:1-7). 우상을 섬기는 자는 3~4대까지 저주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출34:14). 하나님은 우상 섬기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오늘날 우상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전과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보다 더 집착하는 것, 더 의지하는 것, 더 신뢰하는 것, 더 사랑하는 것, 더 지배받는 것들입니다.

 

  여로보암이 이토록 우상을 심각하게 섬기게 된 시작은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정치적 목적에 신앙을 이용한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을 자기 목적에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십계명중 제 1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이고, 제 2계명은 우상을 만들거나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는 것이고, 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입니다. 1계명이 하나님 만을 섬겨야 할 것을 말하고 2계명이 하나님을 우상 섬기듯이 섬기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한다면 3계명은 하나님을 자기 목적에 이용해서는 안될 것을 가리키는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3계명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원래 자음으로만 된 자음 'YHWH'(야웨)로만 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이름을 '4글자'(Tetragrammaton)으로 부르거나 '주'(主,Lord)의 개념인 '아도나이'(Adonay)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여호와'(Yehowah)라는 명칭은 5~6세기에 히브리어에 모음을 붙이는 작업이 일어난 후 4글자 'YHWH'에 'Adonay'의 모음을 합쳐서 생긴 명칭입니다 (첫번제 모음 a는 e로 변형 사용되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 하나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3계명에서 '망령되이'(히.나사)는 '헛되다' '가치없다' '속이다'는 등의 뜻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전과 하나님이 맡긴 사역을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하면 결국 여로보암 같은 진노를 쌓게 됩니다.


 

          2. 유다의 선지자와 벧엘의 늙은 전지자 (11-32절)

 

  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의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하고 또 그가 왕에게 드린 말씀도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말한지라

  12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의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13 그가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그가 타고

  14 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15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9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20 그들이 상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21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23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25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와 그 시체 곁에 선 사자를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가서 말한지라

  26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넘기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하고

  27 이에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안장을 지우매

  28 그가 가서 본즉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서 있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29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들어 나귀에 실어 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30 곧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그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유다에서 특명을 받은 한 익명의 선지자가 벧엘에서 벧엘의 단과 사마라아의 모든 산당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여로보암의 회의를 뿌리치며 유다로 내려왔습니다 (1-10절). 그런데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가 아들들로부터 그 사실을 듣고 유다의 선지자를 뒤 좇아가다가 상수리 나무 아래서 만났습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그에게 벧엘로 돌아가 떡을 먹자고 했으나 유다의 선지자는 하나님이 '돌아오는 길에 다시 돌아가지도 말고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고 한 말씀을 근거하여 호의에 응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자신도 하나님의 선지자인데 자기에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그를 데리고 돌아가 떡을 먹게 하고 물을 마시우게 하라'고 했으니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것은 속임이었습니다. 유다의 선지자는 그 말을 듣고 그 늙은 선지자를 따라가 그 집에서 떡과 물을 먹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늙은 선지자에게 임하여 유다의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으니 시체가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못하리라'고 예언하게 했습니다. 유다의 선지자가 그 집에서 먹기를 마치고 나귀를 타고 유다로 돌아오는 길에 사자를 만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늙은 선지자가 그 말을 듣고 그 시체를 가져다가 자기 묘실에 두고 심히 슬퍼하며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자신도 죽으면 그 묘실에 함께 있게 해 달라고 말했고, 유다의 선지자가 한 예언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11-32절).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타락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정책에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산당에서 제사를 하고 아무나 원하는 자를 제사장으로 인정하고 절기를 8월 15일로 변경한 사실에 침묵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야기 전체 볼 때 그가 유다의 선지자를 참 선지자로 생각하고 그가 한 예언이 다 이루어질 것을 선포했고 자신이 죽은 다음에 그와 함께 묻히기를 원했던 사실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침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름대로 갈등하며 가책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점들을 덜어 보려고 유다의 선지자를 미혹했는지도 모릅니다. 갈등을 느끼고 있는 차에 유다의 선지자가 벧엘과 사마리아의 단에 대해 멸망을 선포하자 그를 대접하므로 자신의 가책에 대한 짐을 덜고 자신의 옳게 행함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자기 유익을 위해 행동한 것이 결국 하나님의 참 선지자를 미혹하는 것이 되었고 그를 죽게 했습니다.   

 

  어느 때에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는 타락한 선지자는 말씀대로 하는 선지자를 미혹합니다. 마치 범죄하면서 혼자 지으면 불안하므로 옆의 사람도 같이 짓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합니다 (렘28:1-4). 그러나 대부분 자기 마음에서 나온 생각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선지자를 주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꾸준히 거짓된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말씀에서 떠나 범죄하게 했습니다. 발람과 이세벨과 니골라당이 그들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도 일제시대와 공산정권시대에 타락한 목사들이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말세에도 거짓선지자가 많이 나와 미혹할 것입니다 (마24:4-5). 종말에 성도를 짐승(적그리스도)이 만든 우상을 숭배하게 하는 주체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첫번째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나오고 두번째 땅에서 나온 새끼양 같이 생긴 짐승이 나오는데, 첫번째 짐승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첫번째 짐승의 표 666을 받도록 강요하는 자는 두번째 나온 짐승입니다. 두번째 나온 짐승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혹은 타락한 기독교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미혹하는 자가 많으므로 미혹에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번 미혹되면 일생 사명 감당했던 것이 일시에 무너지고 맙니다. 미혹하는 자들을 분별하려면 '교훈'이 성경적인지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열매'가 거룩한지 보아야 합니다.

 


          3. 여로보암의 완악함 (33-34절)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여로보암은 북왕국 이스라엘 왕이 되어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12:28-29),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12:31, 13:33), 마음대로 절기를  바꾸었습니다 (12:32-33). 유다에서 올라온 선지자의 심판 경고를 듣고 그 예조를 경험했습니다.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우상의 단과 우상을 섬기는 자가 멸절될 것을 예언했고, 그 전조로 단이 갈라지고 재가 쏟아지게 했고, 여로보암의 손을 마르게 했고, 여로보암에게 타협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은채 단호히 돌아갔습니다 (13:1-10).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와 예조와 선지자의 단호한 모습을 보고도 그 길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여로보암의 완악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자기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타락하게 한 자로서 그 왕조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여로보암 왕조는 그 아들 나답이 즉위하여 왕권을 잇기는 하나 2년 만에 살해 당하여 멸절되고 맙니다 (15:25-30).  

 

  여로보암이 하나님께 아주 버림받은 것은 범죄한 다음 회개할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완고한 고집으로 그 길을 계속 갔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범죄할 수 있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도 여전히 완악하게 나가는 것은 망할 수 밖에 없는 죄입니다. 유다왕 웃시야도 제사장을 무시하고 직접 분향하다가 제사장의 책망과 경고를 듣지 않고 노를 발하여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로 살았습니다 (대하26:18-19). 초대 왕 사울도 아말렉 족속을 남녀노유를 모두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살찐 소는 잡아 오고 아각 왕을 사로잡아 왔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책망했으나 여전히 완고하게 나가므로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삼상15:12-23). 그러나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인 다음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즉시 회개하고 돌이켰습니다 (삼하12:1-14, 시32:1-5, 51:1-5). 사울의 죄와 다윗의 죄의 차이점을 말한다면, 사울의 죄는 용서받지 못했고 다윗의 죄는 용서받았으며, 사울의 죄는 공적인 죄이고 다윗의 죄는 사적인 죄이며, 사울의 죄는 책망을 받고 더욱 완고해졌고, 다윗의 죄는 책망을 받고 즉시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간섭이 나날 때 하나님이 기회주시는 때인 줄 알고 즉시 돌이켜야 합니다. 그 때가 은혜받을 만한 때입니다 (고후6:2). 오늘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감동시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할 때 소멸하지 말고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結言>

  북왕국 초대왕 여로보암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상을 섬기고 아무나 제사장을 세우고 마음대로 절기를 옮겼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과 율법을 떠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으므로 그 왕조가 멸절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나 혹 범죄했을 지라도 즉시 돌이키는 자가 용서받고 긍휼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