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열왕기상 16:1-34
<題目> 이스라엘의 패역한 왕조들
<序言>
남왕국 유다의 왕은 르호보암과 아비얌을 거쳐 아사가 3대 왕이 되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과 나답을 거쳐 바아사가 3대 왕이 되었습니다. 16장은 남 유다의 아사가 왕으로 있는 동안에 즉위했던 북 이스라엘의 왕들을 기록했습니다. 남 유다의 아사왕 한 명이 즉위해 있는 동안 북 이스라엘은 3왕조 6왕의 교체가 있었습니다. 사실 왕국 전체를 보아도 남 유다는 400여년 동안 다윗 왕조가 계속되지만 북 이스라엘은 250여년 동안 수없는 왕과 왕조가 바뀌고 그것도 유혈 쿠데타로 바뀝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율법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본 장의 내용도 그런 부분들을 보여 줍니다. 본 장의 내용 구조는 이스라엘왕 바아사의 통치(1-7절), 이스라엘왕 엘라의 통치(8-14절), 이스라엘왕 시므리의 통치(15-20절), 이스라엘왕 오므리의 통 (21-28절), 이스라엘왕 아합의 통치(29-34절)입니다.
<本論>
1. 이스라엘왕 바아사의 통치 (1-7절)
1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이르시되
2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3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4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그에게 속한 자가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
5 바아사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6 바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디르사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엘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7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선지자 예후에게도 임하사 바아사와 그의 집을 꾸짖으심은 그가 여로보암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며 그의 손의 행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음이며 또 그의 집을 쳤음이더라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이 죽고 나답이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된지 2년째에 바아사(Baasha)가 그를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나답이 블레셋에 속한 깁브돈을 공격할 때에 군대장관으로 추측되는 바아사가 쿠데타를 일으켜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될 때 보복이 두려워 자신의 안전을 위해 나답이 속한 여로보암 집안을 진멸하되 생명있는 자는 모두 죽였습니다 (15:25-29). 바아사가 왕이 된 다음에 24년 동안 통치했는데, 여로보암처럼 범죄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하게 했습니다 (15:33-34).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후(Jehu; 10대왕 예후와 동명이인임)를 통해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여로보암 집이 범죄하여 진멸당함 같이 바아사의 집안도 진멸당하되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는다고 했습니다. 집안이 진멸당하되 비참하게 죽을 것과 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장례를 치루어 주는 자가 없을 정도로 버림받게 될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사실 바아사 뿐 아니라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은 대부분 여로보암의 길을 걷다가 심판을 당합니다. 16장은 남왕국 유다의 아사가 왕으로 있는 동안에 즉위했던 북 이스라엘의 왕들을 기록한 장인데, 남 유다의 아사왕 한 명이 즉위해 있는 동안 북 이스라엘은 3왕조 6왕의 교체가 있었습니다. 왕국 전체를 보아도 남 유다는 400여년 동안 다윗 왕조가 계속되지만 북 이스라엘은 250여년 동안 수없는 왕과 왕조가 바뀌고 그것도 유혈 쿠데타로 바뀝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따라 산 왕조의 결국이자,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왕조의 결국입니다.
시편90:10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인생을 복되게 살아야 하고 죽은 다음에도 우리의 생애가 남아 있어야 하고 우리의 자손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속적으로 살아가면서 일시적으로 잘되는 것 부러워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 하나 얻기 위해 일생을 허비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2. 이스라엘왕 엘라의 통치 (8-14절)
8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그 왕위에 있으니라
9 엘라가 디르사에 있어 왕궁 맡은 자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 그 신하 곧 병거 절반을 통솔한 지휘관 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
10 시므리가 들어가서 그를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이라
11 시므리가 왕이 되어 왕위에 오를 때에 바아사의 온 집안 사람들을 죽이되 남자는 그의 친족이든지 그의 친구든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12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선지자 예후를 통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여호와의 말씀 같이 되었으니
13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의 아들 엘라의 죄 때문이라 그들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14 엘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죽은 후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고 나답을 바아사가 살해하고 왕이 되었고 바아사가 죽은 후 엘라가 왕이 되었습니다. 엘라에게는 두 군대장관이 있었습니다. 시므리(Zimri)와 오므리(Omri)였습니다. 시므리 군대는 수도 디스사에 거하며 수비하고 오므리 군대는 블레셋에 속한 깁브온을 공격하기 위해 깁브온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라 왕이 왕된지 2년째에 디르사에서 궁내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베푼 연회에 참여하여 만취하여 있을 때 시므리가 살해하고 왕이 되었습니다. 시므리가 왕이 되면서 바아사와 엘라의 집안 혈족을 모두 죽였을 뿐 아니라 친구들까지 죽였습니다.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바아사가 쿠데타를 하면서 여로보암과 나답의 집안을 학살한 것보다 더 잔인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선지자 예후가 바아사에게 예언했던 내용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바아사와 엘라가 여로보암을 본받아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온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했기 때문이고 경고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얻은 것 같으나 잃을 수 있는 것이고 안전한 것 같으나 불안한 것이고 성공한 것 같으나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시편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3. 이스라엘왕 시므리의 통치 (15-20절)
15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 일 동안 왕이 되니라 그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16 진 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매
17 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 쌌더라
18 시므리가 성읍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에서 죽었으니
19 이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니라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20 시므리의 남은 행위와 그가 반역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바아사왕의 뒤를 이은 엘라왕에게는 군대장관 시므리와 오므리가 있었습니다. 시므리는 수도 디르사와 왕궁을 수비하고 오므리는 블레셋 깁브온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엘라왕이 궁내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대접을 받고 만취하였습니다. 수도 경비를 맡은 시므리가 모반을 일으켜 엘라왕을 살해했습니다. 깁브온을 포위하고 있던 오므리가 그 소식을 듣고 철군하여 수도 디르사를 에워싸고 공격하였습니다. 시므리는 성이 함락되는 것을 보고 자기 처소로 들어가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었습니다. 시므리 군대를 물리친 오므리는 새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15-22절).
시므리는 권좌에 오른지 7일만에 쿠데타(coup d'e tat)에 쫓겨 스스로 소사(燒死)하고 만 것입니다 (18절). 앞 단락에서 언급한 바에 의하면 시므리만큼 자신의 안전조치를 취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왕의 친족은 물론 친구까지 학살했습니다 (11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7일 만에 자기도 쿠데타를 당해 소사당했습니다.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시127:1, 잠16:1). 다니엘서에 보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왕이 자신을 믿고 교만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병들게 하여 왕좌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사람에게서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거하고 소처럼 풀을 먹고 몸이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털 같이 되고 손톱은 새 발톱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나라를 자기 뜻대로 다스리시며 그를 금할 자가 없음을 인정한 다음에야 회복되었습니다 (단4:1-37).
4. 이스라엘왕 오므리의 통치 (21-28절)
21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따랐더니
22 오므리를 따른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른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23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십이 년 동안 왕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24 그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읍 이름을 그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26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27 오므리가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8 오므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오므리(Omri)는 북이스라엘의 6대 왕입니다. 엘라를 죽이고 왕이 된 시므리를 제압하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정치적 경쟁자 디브니를 제압하고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겼습니다. 세벨에게서 사마리아산을 은 2달란트로 사고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왕궁을 건축했습니다. 그 성을 산 주인의 '세벨'이라는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한 것입니다. '은 2달란트'는 금 2달란트로서 68kg 정도됩니다. '사마리아'(Samaria)는 예루살렘에서 67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또한 모압 비문(Moabite stone)에 의하면 모압을 정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기까지 별다른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했습니다 (26절).
오므리는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적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가 하나님을 노를 격발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인 평가는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적 차원에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앙적 차원에서 평가합니다 (마1:1~, 계4:4-5, 20:4). 우리가 세속적인 시각으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 앞에 어떻게 평가받을 지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5. 이스라엘왕 아합의 통치 (29-34절)
29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북이스라엘왕이 여로보암과 나답과 바아사와 엘라와 시므리와 오므리에 이어 아합(Ahab)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2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왕보다도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신당을 지으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자리에 바알을 대치시켰습니다. 지금까지 왕들은 사적으로 우상을 숭배했다면 아합은 공적으로 숭배한 것입니다. 그 일에 결정적 역할을 헸던 사람은 그의 아내 이세벨이었습니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이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대외 정책은 오므리 때와 마찬가지로 북쪽으로 아람의 공격에, 동쪽으로 앗수르의 공격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아합은 우선 북쪽 아람의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 두로와 시돈과 동맹관계를 취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시돈의 엣바알(바알이 그와 함께 있다는 뜻)의 딸 이세벨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엣바알은 원래 아스다롯 신전 제사장으로서 팔레스왕(히람의 후손)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라 왕노릇하다가 68세에 죽었다고 합니다. 이세벨은 그런 우상적 성향이 강한 집안에서 자라 북이스라엘의 왕비가 된 다음에도 우상을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정권을 이용해 온 이스라엘에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국신으로 만든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을 심히 진노케 하여 그 결과가 비참해집니다. 엘리야의 예언대로 아합의 피는 개들의 먹이가 되고 이세벨은 예후의 창에 찔려 머리와 손과 발을 제외하고 전부 개들의 먹이가 됩니다 (21:23-24, 22:25,38, 왕하9:33-37). 신약시대에 주님께서도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 교훈을 용납한 것을 아시고 회개하지 않으면 침상에 던지고 환난이 있게 하고 자녀가 죽게 되리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계2:20-23). 이세벨 교훈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과 일치하게 행음케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음행과 제물 먹는 것은 우상숭배 습관에서 나온 행위들이었습니다 (imitative magic).
한편 아합이 잘못한 것 가운데 또 하나는 여리고를 재건한 것입니다. 여리고(Jericho)는 본래 베냐민 지파 땅으로 배분 되었으나 10지파 분리 때 북이스라엘 왕국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위치는 예루살렘에서 30여km 떨어진 국경 성읍이었습니다. 이 성을 건축한 것은 아마 요단강을 가로지르는 길목을 장악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성읍은 아합의 명령에 의해 히엘(Hiel)이 주도하여 건축되었습니다. 그런데 성 터를 쌓을 때 히엘의 맏아들 아비람이 죽었고 성(城) 문을 세울 때 막내 아들 스굽이 죽었습니다. 이는 가나안 정복기에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경고한 내용대로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6:26에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長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季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의 전쟁으로 불살라 진멸된 성은 영영히 무더기가 되어 자시 건축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신13:16). 하나님이 자기 계시와 영광을 위해 행하신 증거는 없애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믿는 자에게나 믿지 않는 자에게나 영원히 나타나야 합니다. 공동체적이든 개인적이든 하나님의 능력과 믿음으로 행한 일을 다시 원 상태로 회복해서는 안 됩니다.
<結言>
아합 때의 여리고 건축 사건은 500여년 전에 한 말씀이 유효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없이 이루어집니다 (삼상5:29, 마5:18). 하나님의 저주와 축복의 말씀은 지금도 이루어집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종말과 관련한 말씀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