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열왕기상 21:1-29

<題目> 아합의 포도원 탈취 사건


<序言>  

  17~19장에서 북이스라엘왕 아합의 악한 행위에 대해 지적해왔습니다. 20장에서 아람왕 벤하닷과의 전쟁 기사를 삽입했습니다. 그러다가 21장에서 다시 아합에 대한 악행을 드러냅니다. 17~19장이 종교적인 면을 중점적으로 드러냈다면 21장은 사회적인 면을 드러내게 됩니다. 내용 구조는 나봇의 포도원을 탐한 아합(1-4절), 이세벨의 간계(5-10절), 나봇의 죽음(11-16절), 엘리야의 아합과 이세벨에 대한 심판 경고(17-26절), 아합의 회개(27-29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나봇의 포도원을 탐한 아합 (1-4절)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북이스라엘왕 아합이 아람왕 벤하닷과 2번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스르엘이라는 성읍에 별궁을 짓고 휴양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르엘 사람 나봇(Naboth)에게 아합의 궁에서 가까운에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아합은 그 포도원이 욕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나봇에게 그 포도원을 나물 밭으로 쓸 수 있도록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대신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겠다고 했고 원하면 값으로 쳐서 준다고 했습니다. '나물 밭'(히. 간 얄라크)은 푸른 정원을 의미합니다. 그런 곳은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때론 우상 숭배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아합은 궁의 휴식처를 확장하기 위해 나봇의 포도원을 값을 주고라도 사려고 했습니다.

 

  아합은 2번에 걸쳐 전승하게 해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지 않고 자기 왕권을 확장하기 위해 토지 사유화에 열을 올렸습니다. 아합은 가장 많이 가지고도 더 많이 가지려고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의 포도원을 탐냈습니다. 그것을 얻지 못하자 식사도 하지 않고 심상에 누웠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잠언30:15-16에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음부와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고 했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골3:5).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이겨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쳐 복종시키지 않으면 욕심이 일어나 범죄하게 됩니다 (고전9:27). 날마다 자신을 죽여 합니다 (고전15:31).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것을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히13:5, 딤전6:8).

 

  한편 나봇은 아합의 제의에 대해 비록 왕이지만 하나님께서 열조의 유업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3절). 하나님이 분배한 땅은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율법적 규례를 따른 말입니다. 혹 부득이 하게 팔 수 밖에 없게 될 경우 근족이 되찾아 기업을 이어야 하며 그도 안될 때는 희년에 돌려 받아야 합니다 (레25:23-28).

 

  나봇은 포도원을 요구한 자가 비록 왕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옳지 못하고 율법에 옳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결국 그 이유 때문에 죽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과 신앙 양심에 옳지 않는 것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옳은 것을 세워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딤전1:19). 초대교회에서는 사도들이 성령과 함께 세운 규례를 철저히 지키므로 날마다 수가 더해가고 부흥했습니다 (행16:4). 구약시대에 레갑족속은 평생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렘35:1-10).   

 


          2. 이세벨의 간계 (5-10절)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아합왕은 나봇이 포도원을 주지 않는다는 말에 심상하여 침상에 누웠습니다.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이유를 묻자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얻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이세벨은 자신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나봇을 죽이려는 간계(奸計)를 사용합니다. 아합왕의 이름과 인(印)을 사용하여 나봇이 사는 성읍의 장로와 유지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통해 성읍에 금식을 선포하게 하고, 나봇을 재판정에 세우게 하고, 비류 두 사람을 거짓 증인으로 세우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증언하게 하고, 나봇을 성읍에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봇이 아합왕에게 포도원을 팔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아합왕이 이스라엘 왕이지만 백성들의 이목이 있기 때문에 쉽게 빼앗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세벨은 두로왕의 딸로서 군주가 백성에 대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합이 왕이면서도 포도원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근심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무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취한 방법은 모두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 백성의 관념을 역이용했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선포하게 한 것은 이스르엘 성읍이 알 수 없는 죄를 지어 하나님께서 공동체적으로 저주하실 것이므로 죄를 찾아 회개하는 의미에서 죄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삼상7:6, 14:24, 에4:1-3). 악행을 일삼는 건달 두 사람을 포섭하여 증인으로 세운 것은 사형에 처하려면 두세 사람의 증인을 세워야 한다는 율법의 최소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함입니다 (신17:6). 죄목을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정한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거나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를 저주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따른 것입니다 (출20:7, 22:28, 레24:10-16).

 

  나봇을 죽이려는 것은 물론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과 율법을 이용한 것도 나쁜 행위입니다. 의인을 죽이는데 의로운 말씀을 이용하는 격입니다.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범죄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명을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은사와 사역을 이용해서도 안됩니다. 예전을 이용해서도 안됩니다. 자기의 육욕을 따라 행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빙자하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밖에 없는 악한 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롬1:23).  

   


          3. 나봇의 죽음 (11-16절)

 

  11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이스르엘 장로와 귀인들이 이세벨의 밀서대로 성읍에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정에 세우고 비류 두 사람을 매수하여 거짓 증거를 하게 하고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 백성들로 하여금 돌로 쳐 죽였습니다 (11-13절). 율법에는 우상숭배자나 하나님 이름을 저주한 자나 간음한 자에 대해서는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신13:10, 레20:2,27, 레24:14, 신22:21). 투석 처형법은 사사형수의 옷을 벗기고 손을 묶고 성 밖으로 끌고 나가 처형대에 두고 한 증인이 밀치면 다른 증인이 돌로 치고 둘러선 무리가 함께 도로 쳐 죽이는 것입니다. 이 때 죽은 자를 위한 애곡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원래 이 사형법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경각심과 연대의식을 위한 방법이었는데 이세벨은 이 사형법을 악용했습니다.

 

  이세벨은 나봇이 죽었다는 통보를 받고 아합에게 나봇이 죽었으니 가서 포도원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그 말을 듣고 곧 일어나 포도원을 취하기 위해 그리로 내려갔습니다 (14-16절). 70인역(LXX)에는 '곧 일어나' 앞에 아합이 옷을 찢고 베를 두른 동작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아마 이세벨이 한 성읍이 금식을 선포하고 사형을 당하게 된 것을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거짓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세벨이 사주한 것일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간계는 완벽했습니다. 나봇을 백성들이 의심하지 못하도록 율법에 의해 사형시켰습니다. 그리고 나봇이 죽은 다음에는 당연히 그 아들들이 조상의 유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것입니다. 열왕기하9:26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한 것을 보면 시기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나봇의 아들들까지 죽인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젠 그 포도원의 권리를 주장할 사람들이 없어졌습니다. 또한 당시 율법적 관습에서 우상숭배자의 성읍이나 그 탈취물은 모두 여호와께 바쳤듯이(신13:16) 피의 정복자나 범죄자의 소유는 왕의 재산으로 귀속되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율법적 관습을 이용했습니다. '법'이라는 공동체 질서를 위해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법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법을 지키지 않고 법을 이용하여 자기 유익을 얻으려 하면 법은 오히려 악행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의로운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성경 말씀도 그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이 대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고 오히려 자기를 합리화 시키고 자기 주장을 펴고 자기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4. 엘리야의 아합과 이세벨에 대한 심판 경고 (17-26절)

 

  17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2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3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24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26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아합이 이세벨의 궈계로 나봇이 죽임을 당한 후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하기 위해 일어나 포도원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에게 보내어 아합과 이세벨을 책망했습니다.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했습니다 (19절). '네가 살인을 하고 또 탈취까지 하느냐' '나봇을 죽인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서 강도짓까지 해야 하느냐'(Living Bible)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아합과 이세벨의 심판을 경고하게 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죽임을 당하여 개들이 시체를 먹을 것이라 했습니다. 아합의 집의 모든 남자는 다 멸하되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세벨은 훗날 예후(Jehu)의 모반시 그 시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으깨지고 개에게 뜯어 먹히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왕하9:30-37). 여로보암(Jeroboam)과 바아사(Baasha)의 집처럼 멸절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20-24절). 여로보암과 바아사는 자신들의 왕조를 세웠으나 2대째에 가서는 부하들의 모반으로 멸망당한 인물들입니다 (15:25-31, 16:8-14).

 

  아합의 집이 이렇게 심판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쫓아낸 이방 족속들처럼 가증한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고 온 이스라엘로 우상을 숭배하도록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25-26). 또 의로운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탈취한 악행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율법을 이용하여 완벽하게 백성들을 속이고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악행한 것을 모른다 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17:9-10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했습니다.

 


          5. 아합의 회개 (27-29절)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아합왕이 나봇을 죽게 하고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할 때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죄를 책망하게 하고 아합의 집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선고하게 했습니다 (17-26절). 아합왕은 엘리야의 심판 예고를 듣고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을 했습니다.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를 천천히 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자기를 낮추며 자기를 부인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아합왕의 겸비함을 보고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고 선언하게 했습니다 (27-29절).

 

  물론 결과적으로 볼 때 아합왕은 지속적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는 못합니다 (22:8, 18-23, 37-40). 하지만 엘리야의 책망과 심판 경고를 듣고 즉시 회개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재앙을 아합의 시대에는 내리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린다고 했습니다. 아합의 죄값을 아들들이 치루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아합은 회개했으므로 재앙을 면하게 되고 아들들은 아합의 행위를 본받아 자기들의 죄값으로 재앙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만일 아합의 아들들도 아합의 행위를 떠나 하나님께 바로 선다면 재앙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겔18:1-4).  

 

  하나님은 회개하는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시편34:18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51:17에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징계하는 가운데서도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고린도전서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結言>

  아합왕은 이세벨의 영향으로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게한 장본인입니다. 우상의 선지자를 육성하고 우상 숭배를 장려했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봇 같은 의로운 자를 죽게 하고 자기 욕심을 채웠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고를 듣고 회개를 했고 하나님은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말씀의 경고를 들을 때, 성령의 감동으로 가책을 느낄 때 즉시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