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사무엘상 15:1-35
<題目> 사울의 불순종
<序言>
사사시대에 하나님은 사사(士師)를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면서 선지자 역할까지 했던 사무엘이 사사로 있을 때 백성들이 사사제도를 부정하고 왕제도를 구했습니다. 그것은 사무엘의 지도를 거부한 것이었고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다스리는 것을 거부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서 왕을 세우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의 지시를 온전히 받는 왕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울을 택하고 그가 사무엘을 하나님의 참선지자로 인정하고 자신이 그를 전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위치에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들을 거치게 하여 왕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아말렉 진멸을 명할 지시할 때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합니다 (1절) 그런데 왕이 된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만해지기 시작하여 사무엘의 지시를 소홀히 하게 되고 불순종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 왕으로 세운 목적과 그 위치에서 점점 떠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13장에서는 그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의 7일 동안 기다리라는 지시를 어기고 제사를 자기 의도대로 드렸습니다. 15장에서는 그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사무엘의 명령을 어기므로 그가 하나님의 통치를 떠났다는 사실을 부각시킵니다.
본장의 구조는 아말렉 진멸에 대한 명령(1-3절), 사울의 불순종(4-9절), 하나님의 탄식(10-11절), 사울의 위선과 사무엘의 책망(12-23절), 사울의 왕권 유지 노력(24-31절), 사울과 결별하는 사무엘(32-35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아말렉 진멸에 대한 명령 (1-3절)
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은 왕이 된 다음에 왕권을 강화하고 국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상비군 3,000명을 두었습니다. 그 후에도 용맹하거나 힘이 있는 자를 보면 계속 등용시키므로 군세를 확장시켰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남녀노소 무론하고 짐승까지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을 생각해서라고 했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들로서 이스라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창36:12-16, 대상1:36).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갖기 위해 광야를 통과할 때에 대적한 족속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할 때 힘없는 틈을 타서 대열의 후미를 치므로 그들을 물리칠 수 없는 상황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하나님께서도 아말렉 족속을 반드시 세상에서 멸절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17:14, 민24:20, 신25:19). 아말렉은 그 후에도 이스라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했고 (민14:43),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사사시대에 남방으로부터 자주 침입을 했습니다 (삿3:13, 5:14, 6:3,33, 7:12, 10:12, 12:15).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고 하나님 백성을 괴롭게 한 것을 심판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열방에 알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거룩이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진멸하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람'은 '바치다' '금지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진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헤렘'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되었습니다. 산 것은 죽이고 물건은 불태우고 타지 않는 금속은 성소에 귀속시켜야 했습니다 (레27:28, 신13:17, 수6:17). 즉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것은 악을 제하여 하나님의 거룩성을 만족케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들에서 본다면 아말렉 진멸은 군사적인 명령이라기 보다 종교적인 명령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을 진멸하는 것은 하나님께 하나님만을 위한다고 하는 헌신적 결단을 나타내는 행동이 됩니다. 아말렉을 진멸한다고 하는 것은 우상을 미워하고 우상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것에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아말렉 족속에 대해 인정사정을 봐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기지 말고'에서 '남기다'에 해당하는 '하말'은 '동정하다' '아까워 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들을 심판하므로 하나님이 공의를 나타내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주위에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영적인 대적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므로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결단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2. 사울의 불순종 (4-9절)
4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5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사울왕이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고 210,000명의 백성들을 군사로 소집하여 아말렉 성을 공략하기 위해 성 주변 골짜기에 숨었습니다. 사울왕이 아말렉을 공격하기 전에 그들 가운데 거하는 겐 사람들을 피하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겐 사람들이 피한 다음에 아말렉을 하윌라에서 술까지 쳐서 아말렉 족속이 흩어져 사는 거의 전 영역을 점령했습니다. 사울왕이 아말렉 족속을 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할 때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있도록 길 안내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에 그 선대함에 대한 배려입니다 (민10:29-32).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나님 백성을 괴롭힌 족속을 진멸해야 합니다. 하지만 선대한 족속에게는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사울왕이 겐 사람들을 선대한 것은 뒤에 하나님이 책망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적자들에 대해서는 400년 후에라도 원수를 갚되 선대자들에 대해서는 긍휼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울왕이 아말렉을 칠 때에 모두 진멸하지 않고 아각왕은 사로잡고 살진 짐승들은 살려왔습니다. '아각'(Agag)은 애굽왕들을 '바로'라고 하듯이 아말렉 왕들은 '아각'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짐승까지 진멸하라고 했는데 아각 왕과 기름진 짐승들은 살려온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행동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하나님이 아말렉 족속을 모두 진멸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고 하나님 백성을 괴롭힌 족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할 때 힘없는 틈을 타 공격하여 약탈했고, 하나님이 멸절시킨다는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 후에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괴롭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능멸하는 족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 대한 심판으로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고 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진멸하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람'은 '바치다' '금지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의 진멸은 아말렉 족속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아말렉 족속은 우상을 섬기며 우상의 풍습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언약백성을 약탈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진노하시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과 그들을 심판하여 완전이 제하므로 하나님의 거룩성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무릇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이고 물건은 불태우고 타지 않은 것은 성소에 귀속시키므로 하나님의 거룩함이 만족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아말렉을 진멸하는 것은 군사적 사명이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말렉 족속을 진멸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 됩니다. 곧 이스라엘이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진멸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이 됩니다. 자신들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부인하고 우상 섬기는 자들을 경멸하고 우상 섬기는 풍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그 안에서 산다고 하는 헌신된 의지를 나타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명령을 순종하려면 자기를 위한 마음이 있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아각왕을 사로잡아 왔고 살진 짐승들을 살려 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만을 위해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하나님 안에서 살려는 신앙이 약해진 것입니다.
사울왕이 모두 진멸하지 않은 것은 자기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왕이 아말렉 백성들을 살육하면서도 아각왕을 살려 온 것은 아각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실리를 얻기 위함이었거나(왕상20:3-42)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12절). 그리고 가치가 없는 짐승은 죽이되 살지고 기름진 소나 양을 살려온 것은 고기가 욕심이 나서입니다. 만일 그가 다른 백성도 살리면서 아각왕도 살려 오고 가치없는 짐승을 살려 오면서 살진 짐승을 살려 왔다면 인도주의적인 의도라고 핑계할 수 있고 종교적인 의도라고 핑계할 수 있지만 다른 대상을 죽이면서 이용 가치가 있는 것만 살려 온 것은 그가 사욕(私慾)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요일2:16, 골3:5).
3. 하나님의 탄식 (10-11절)
10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사울은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는 가운데서도 아각 왕은 사로잡아 오고 좋은 짐승들은 살려 왔습니다. 아말렉 족속의 왕을 살려온 것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였고 좋은 짐승을 살려온 것은 물질적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나타내기 위해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는데 사울 왕은 사욕으로 행했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사울을 왕 세운 것을 후회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후회한다는 말은 작정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돌이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29절에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일을 잘못 처리하여 후회하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그가 후회한다고 사울 왕이 거역한 데 대한 극한 감정을 의인법적(擬人法的)으로 표현한 것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에 사람들의 죄가 관영한 것을 보고 사람을 지었음을 한탄했다고 하는 표현과 비슷한 표현입니다 (창6:6-7). 그러한 표현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자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좇지 않고 명령을 거역하면 하나님이 탄식합니다.
한편 사무엘은 하나님의 반응이 어떤 한 것을 알고 심히 근심했습니다. '근심하다'(히.하라)는 '(분노로) 타오르다' 사무엘이 진노했다는 말입니다. 사무엘은 간곡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이기적 충동으로 하나님 명령을 어긴 데 대하여,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근심되게 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 앞에 버림받게 된 것에 대하여 분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무엘은 사울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밤새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사울을 위한 중보기도였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참 선지자의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4. 사울의 위선과 사무엘의 책망 (12-23절)
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 왕은 아말렉 족속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갈멜에 전승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자기 이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부름받을 때는 겸손했으나 이제 교만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했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취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자 자기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행했다고 했습니다 (12-13절). 사울의 가장된 위선입니다.
사무엘이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라고 책망하자, 아말렉 사람을 진멸했고 아각은 사로 잡아 왔고 다만 양과 소를 좋은 것만 살려 왔는데 그것은 백성들이 살려 온 것이고 하나님께 길갈에서 제사의 제물로 드리기 위해 살려 왔다고 했습니다 (14-21절). 여전히 자기의 범죄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백성들 핑계를 대고, 하나님을 위한 행동이라고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켰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때의 현상과 같습니다 (창3:12-13).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딤전5:24-25, 히4:13).
한편 사울이 범죄 사실을 하나님을 위한 행동으로 정당화하자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정죄하고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고 선언했습니다 (22-23절). '사술(邪術)'은 점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신 우상'(邪神 偶像)은 거짓되고 허탄한 우상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시고,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이 표현은 제사와 제물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울이 제사와 제물이 지시하는 목적과 내용은 없는 채 외부적으로 핑계를 댓기 때문에 나온 표현입니다. 의식이 필요하지만 그 의식의 목적과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의식은 전혀 무가치한 것입니다. 오히려 범죄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예수님도 의식만 행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마23:23). 미가 선지자도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미6:6-8).
아마샤왕도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거역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아마샤가 유다의 8대왕이 되자 다윗 때에 조공을 바치다가 속국에서 벗어난 에돔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30만 명이나 모집하고 이스라엘 군대 10만을 100달란트를 주고 샀습니다. 그런데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돌려보내면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돌려 보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기대했던 돈과 노략물을 얻지 못하게 되자 돌아가면서 유다 성읍을 공격하고 3,000명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했습니다. 아마샤왕은 유다군들만 데리고 에돔 정복에 나서 결국 승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마샤왕이 에돔 족속의 우상들을 가져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숭배했습니다. 에돔 신이 자기를 도왔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돌려보낸 이스라엘군이 약탈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불만을 가져서인지, 아니면 이스라엘군을 칠 때 에돔 신이 도와줄 것이라 생각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에돔 신을 숭배했습니다. 그 때 한 선지자가 아마샤왕에게 우상을 숭배한 것을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아마샤왕은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역대하25:16에 "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마샤왕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백성들의 모반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때 듣지 않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하나님을 버린 증거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도 버리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말씀 거역하는 행동이 하나님께서 버린 증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전하게 듣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이고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자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으로 권면하면 비록 개인적인 요구는 거절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5. 사울의 왕권 유지 노력 (24-31절)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울왕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고 아각왕과 좋은 짐들은 살려왔습니다. 사무엘의 책망을 받자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살려온 것이라고 핑계하고 합리화 했습니다. 그 때 사무엘은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고 선언했습니다 (23절). 사울은 사무엘의 엄한 책망과 왕위 박탈에 대한 경고를 듣고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어떻게든지 사무엘의 마음을 사서 돌리려고 애를 씁니다.
첫째, 죄를 회개했습니다 (24절). 사울은 자기가 백성들의 요구를 두려워 하여 하나님과 사무엘의 명령을 어겼으니 사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가 죄를 회개하고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이켰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무엘의 마음을 돌리려는 것일 뿐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청했습니다 (25절). 사무엘에게 함께 가서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강청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배하러 가는데 있어서 꼭 사무엘을 함께 가게 하려는 것은 백성과 장로들 앞에서 인정을 받기 위함입니다 (30절). 백성들과 장로들이 자신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보면 안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자신이 사무엘과 함께 경배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여전히 자기를 인정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입니다. 사무엘은 그에 대해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고 하면서 함께 가기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26절). 어떤 경우에도 왕권을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선포한 것입니다.
셋째, 사무엘의 겉옷자락을 붙잡았습니다 (27절). 사무엘이 함께 가기를 거절하고 돌이켰습니다. 폐위 사실을 행동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 때 사울은 사무엘의 겉옷자락을 붙잡았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왕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압박감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겉옷자락이 찢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고 거부했습니다 (28-29절). 인간의 생각은 가변적인데 비해 하나님의 생각은 불변적인 것을 알게 하므로 사울의 왕권 회복이 불가능하게 도리 것을 선언하는 말입니다.
결국 사무엘이 사울을 따라 함께 경배하기 위해 갑니다 (30-31절).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울에 대해 생각이 바뀌었음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마무리짓기 위함이었습니다 (32절).
6. 사울과 결별하는 사무엘 (32-35절)
32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33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34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라가니라
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사울은 사무엘에게 함께 경배하러 가자고 강청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과 장로들 앞에서 왕권을 유지시키기 위한 술책이었습니다. 사무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사울과 함께 갔습니다. 그것은 사울을 세워 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공의를 실현하고 사울을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백성들과 장로들과 사울왕이 보는 가운데 아말렉왕 아각을 끌어오게 했습니다. 아각왕은 자신이 왕의 수중에서 제사장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며 즐거이 이끌려 갔습니다 (32절). 사무엘이 아각왕에게 "네 칼이 여인들로 무자케 한 것같이 여인 중 네 어미가 무자하리라" 하고, 아각왕을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찍어 쪼갰습니다 (33절). 사무엘의 선언은 아각왕이 무죄한 백성들의 피를 흘려 그 어머니들로 무자(無子)하게 만들었으므로 그에게도 피를 흘려 그의 어머니도 무자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동해 보복법(同害報復法)에 의해 공의로운 사형을 선언한 것입니다 (레24:17-22, 출21:23-25, 신19:21). '찍어 쪼개니라'의 기본동사 '솨사프'는 여러 조각으로 토막을 낸다는 의미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고 하나님 백성을 약탈한 극악한 죄에 대한 심판인 것입니다.
아각왕의 처형은 사울왕에게 내려진 명령인데 사울왕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사무엘 선지자가 직접 하나님 앞에서 그 명령을 준행한 것입니다. 그 사건 후 사무엘과 사울은 각기 라마와 기브아로 갔습니다. 그 후로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대면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선지자로서 권고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19:24). 이는 하나님이 사울에게 더 이상 함께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사무엘은 사울에 대해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적인 임무를 다하기 위해 하나님을 순종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거역함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서 단절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해 주는 선지자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못한 다음에라도 선지자의 책망과 경고가 있을 때에 돌이키는 자가 긍휼을 얻습니다. 아마샤왕이 에돔 족속을 멸하고 돌아오면서 그들의 우상에게 분향한 연고로 선지자가 책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샤 왕은 선지자에게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 때 선지자가 그치면서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대하25:16).
<結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인 왕으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다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한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버리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