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사무엘상 24:1-22
<題目> 사울을 선대한 다윗
<序言>
다윗이 사울왕 피해 기브아-라마-놉-가드-아둘람 굴-모압-헤렛 수풀-그일라-십 광야-엔게디 황무지에 이르렀습니다. 십 광야에서 십 사람들의 밀고로 붙잡힐 위기에 있었으나 블레셋이 유다를 침공하여 사울이 회군하였고 다윗은 그 틈을 타 엔게디 황무지로 피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곳까지 추적하여 밀고한 사람들이 있어서 사울왕이 다윗을 붙잡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엔게디 황무지로 가게 됩니다. 쫓기고 쫓는 상황에서 다윗이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다윗은 사울왕을 죽이지 않습니다. 다윗의 인품, 특히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는 인품이 드러나는 장(章)입니다. 1-7절은 사울을 선대(善待)한 다윗, 8-15절은 사울에게 항변하는 다윗, 16-22절은 다윗에게 사과하는 사울에 대한 내용입니다.
<本論>
1. 사울을 선대(善待)한 다윗 (1-7절)
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쌔
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4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블레셋 군대의 유다 침략 문제를 해결한 사울은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보고를 받고 정예군 3,000명을 데리고 다윗과 그 무리를 추적 수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이 들염소 바위라고 하는 곳 길가 양의 우리에 이르렀을 때 한 굴을 발견하고 발을 가리우기 위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가리우다'의 히브리어 '사카크'는 '덮다' '둘러 싸다'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을 가리운다'는 말은 잠을 잔다는 표현일 수도 있고 용변을 본다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잠을 자기 위해서 이불을 덮는 것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고 용변을 보기 위해 자세를 취할 때 겉옷이 발을 가리는 것을 두고 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그 일행이 그 굴 속에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그것도 모르고 혼자 그 굴로 들어갔습니다. 그 때 다윗의 무리들은 다윗에게 하나님이 사울을 칠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에게 다가가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베었습니다. '겉옷'(히.메일)은 땅에 끌릴 정도로 긴 통옷입니다. 사울이 그 굴에서 잠을 잤든지 용변을 보았든지 겉옷 자락을 베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잠을 잤다면 당연히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 용변을 보았다면 용변을 보기 위해 긴 겉옷을 벗어 놓고 보았을 것이니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미 굴 속에서 지낸 다윗은 굴 어두움과 지형에 익숙해 있었을 것이고 이제 들어온 사울은 익숙치 않았으리라는 점도 그것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조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찌되었거나 다윗은 사울왕의 옷자락을 베었습니다. 그것은 사울 왕이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0:1).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지도자이기 때문에 죽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옷자락을 벤 것까지도 그의 인격을 조롱하는 것으로 여겨 심히 마음 아파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므로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에 대해서도 경외심을 가진 것입니다. 비록 사울 왕이 자기 생명을 요구하는 자일지라도 자신은 하나님이 세운 질서를 존중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리더들을 하나님이 세우신 감독자로 알고 존중해야 합니다 (행10:28). 디모데전서5:17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2. 사울에게 항변하는 다윗 (8-15절)
8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가로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9 사울에게 이르되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11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찌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3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의 한 굴에 있을 때 사울 왕이 추격을 하다가 그 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윗과 함께 하는 자들이 사울 왕을 칠 좋은 기회라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 왕의 겉옷 자락만 베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이 굴에서 나갈 때에 다윗이 뒤 따라가며 사울 왕을 부르고 엎드려 절하고 항변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사울왕에게 쫓기고 죽임 당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① 다윗이 왕을 해치려 한다는 말을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쫓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이간질에 의한 것처럼 표현한 것은, 실제로 사울의 증오심을 부추긴 베냐민 사람 구시 같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시 7편) 사울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② 왕을 해칠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해칠 의도를 가졌다면 굴에서 쳤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치지 않았다는 것은 칠 의도가 없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칠 기회라고 했지만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굴 안에서 베었던 사울 왕의 겉옷 자락을 보여 주었습니다. ③ 하나님이 둘 사이를 판단하여 왕에게 보복할지라도 자신의 손으로는 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판단하여 벌하실 것이지만, 자기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름부음 받은 왕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④ 왕이 자신을 좇아 다니는 것은 위치에 걸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의 왕이 한낱 죽은 개나 벼룩에 불과한 자기를 쫓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마음을 살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내 주여' '아버지여'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도 같은 의도일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다윗은 사울의 마음을 돌리게 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 보입니다. 그 말 속에 화목하고 화해 하고 돌아서기를 원하는 마음이 잘 묻어 납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 줄 알고 자신은 악을 선으로 이기려 하는 것입니다 (히10:30, 롬12:21). 우리가 원수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마5:9). 로마서12:19-21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3. 다윗에게 사과하는 사울 (16-22절)
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
22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엔게디 황무지 굴에서 나온 사울은 다윗의 외치는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아 울면서 자기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① 자기는 다윗을 학대했으나 다윗은 자기를 선대했다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이 자기를 다윗에게 붙이셨으나 다윗이 자기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③ 사람이 원수를 만나면 가만히 가게 하지 않는 법인데 다윗은 자기를 선대했으니 하나님이 다윗에게 선으로 갚아 주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④ 다윗이 왕이 되면 자기 집과 후손을 멸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사울의 이러한 변화는 다윗이 원하는 바였을 것입니다.
사울의 심리적 변화는 다윗으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변했다면 다윗과 서로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왕궁으로 함께 갈 것을 권했을 것입니다. 감동을 받아 일시적으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자기의 행동이 옳지 못한 것을 인식하고 다윗 좇기를 그치기는 했지만 아직 응어리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다시 추적할 소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실제로 다윗을 다시 추격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그처럼 다스리기가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감동을 받아도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선한 의지를 계속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結言>
다윗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성품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를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도자가 실수를 드러내다 못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심지어 죽이려 하는 때에도 대적하지 않고 선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는 신앙이 바탕이 되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모습입니다. 오늘날 지도자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기독교 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