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에서 나와 도망하는 길이었습니다. 다윗의 피난 길에 그를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에게 큰 아픔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5장에서는 잇대, 사독과 아비아달, 후새 등이 다윗을 위해 헌신하므로 다윗으로 하여금 환난 중에 위로를 받게 했습니다. 그러나 16장에는 시바, 시므이, 아히도벨 등이 다윗으로 하여금 고통스럽게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1-4절에는 시바의 위증이, 5-14절에는 시므이의 저주가, 15-23절에는 후새의 거짓 투항과 아히도벨의 모략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本論>
1. 시바의 위증 (1-4절)
1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2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3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4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시바가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사울왕에게 아들이 4명이 있었습니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와 이스보셋이었습니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는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쟁에서 사울왕과 함께 전사하고 이스보셋만 남았습니다 (삼상31:1-6, 대상8:33, 9:39). 이스보셋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된 후 마하나임에서 아브넬의 공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넬이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스보셋도 신하 레갑과 바아나에게 암살 당하여 죽고 맙니다 (삼하4:1-6).
사울왕의 아들들은 모두 죽고 없습니다. 그런데 사울왕가의 유일한 후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왕과 세 아들이 길보아 전쟁에서 죽을 당시 기브아에서는 전쟁의 패배 소식에 도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므비보셋의 나이는 5세였는데 유모가 안고 급히 도망하다가 떨어뜨린 바람에 절뚝발이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다음에 사울의 후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예루살렘으로 오게 했고 지위와 재산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왕자들과 함께 하게 했고, 사울의 재산을 돌려 주었고, 시바라는 종과 그를 따르는 종들을 붙여 섬기며 재산을 관리하게 해주었습니다. 시바는 사울왕이 살았을 때 사울왕의 재산을 관리하던 종이었고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붙일 당시 시바의 아들은 15명 종은 20명이었습니다 (삼하9:1-13).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삼상20:14-15,42).
그런데 다윗왕이 압살롬을 피해 감람산 비탈길을 갈 때에 므비보셋이 다윗을 찾아와 위로하고 싶어 했습니다 (19:26). 그런데 므비보셋이 스스로 나귀에 안장을 채울 수 없는 약점을 이용하여 므비보셋을 따돌리고 혼자 다윗에게로 왔습니다. 두 나귀에 떡 200덩이와 건포도 100송이와 여름실과 100뭉치와 포도주 1부대를 싣고 와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2절). '여름실과'는 열대 야자수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70인역에는 '대추야자'(φοινιξ)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시바의 가져온 음식물은 피난길에 있는 다윗 일행에 요긴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시바는 음식물을 다윗에게 주고 자신이 섬기는 므비보셋에 대해 거짓으로 참소했습니다.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3절). 시바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가는 때를 좋은 기회로 여기고 므비보셋에 대해 고발하고 자신이 관리하던 그의 재산을 얻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어느 때에나 어려운 때를 틈타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주인을 은혜를 잊고 배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잠29:21).
시바의 말을 들은 다윗은 시바에게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4절). 다윗은 압살롬에게 피해 가면서 마음이 예민해진 데다가 자신이 은혜를 베푼 므비보셋이 왕이 되기를 꾀한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였습니다. 반하여 그런 사실을 알려 주는 동시에 피난길에 필요한 식물을 제공해 준 시바에 대해서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윗이 여기에서 시바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채 너무 급하게 판단을 했습니다. 우리는 뇌물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23:8, 잠21:4). 그리고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해야 합니다 (약1:19).
2. 시므이의 저주 (5-14절)
5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10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13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14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죽은 후 다윗(David)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왔습니다. 다윗왕은 아들과 전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밤에 신하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빠져 나왔습니다. 다윗왕은 눈물을 흘리며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 마루턱을 지나 바후림(Bahurim)이라는 곳의 산비탈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사울 왕가에 속해 있던 시므이(Shimei)라는 사람이 나와 티끌을 날리며 돌을 던지면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피를 흘린 자여 가거라 가거라! 네가 피를 흘리더니 화를 자초하였구나! 네가 사울 왕가의 피를 흘리고 왕이 되더니 하나님이 그 피 값을 갚으려고 나라를 네 아들 알살롬에게 넘겼구나!" (5-8절). 피난 가는 왕에게 티끌을 날리며 돌을 던진다는 것은 심히 모욕적인 행동입니다. '사악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 하벨리야알'(הבליעל איש)은 직역하면 '벨리알의 사람'으로서 무익한 사람 혹은 파괴를 일삼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벨리알'이라는 말은 사탄을 지칭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고후6:15). '가거라 가거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한 가나안 땅에서 떠나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땅에서 살 자격이 없으니 가나안 땅에서 떠나라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경멸하는 대상에게 사용하는 말로서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충격적인 독설에 해당합니다. 백성이 왕에게 이런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왕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모욕입니다. 더욱이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고 한 것은 사울왕에게 속한 자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들 압살롬을 통해 심판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왕이 사울왕에게 속한 자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다윗왕이 아들 압살롬으로 인하여 당하고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은 큰 고통이 주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일에 고통을 당할 때 사실이 아닌 내용을 들어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라는 비난과 비방이 있을 때는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다윗왕에게는 이복누이 스루야가 있었는데 그 스루야의 두 아들은 요압과 아비새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왕의 충성스런 신하로서 용맹스런 장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는 행동을 보면서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아비새(Abishai)는 다윗왕에게 자신이 그를 처단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저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도록 내버려 주겠습니까? 내가 가서 저 시므이의 머리를 베게 해 주십시오! 제가 단칼에 그의 목을 베겠습니다!" (9절). 다윗왕의 신하들은 시므이의 저주에 대해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충성하는 왕을 저주하는 행동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시므이가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다윗왕을 모욕했기 때문에 더했을 것입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 이유가 있습니다.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사울왕의 친척입니다. 그로서는 다윗이 사울의 아들과 장수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울왕에게는 아들이 4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쟁에서 사울왕과 3아들이 죽게 됩니다 (삼상31:1-6). 그래서 사울왕의 장수 아브넬이 사울왕의 남은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님에서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요압 장군이 아브넬 장군에 대해 자기 동생을 죽인 것에 대한 악심을 품고 있다가 다윗과 협약을 맺기 위해 헤브론으로 왔을 때 긴밀한 말을 하려는 척 하다가 배를 찔러 살해했습니다 (3:27). 그리고 이스보셋의 신하 레갑과 바아나는 아브넬이 죽었기 때문에 이스보셋이 왕권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다윗에게 공을 세우려는 영욕으로 이스보셋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4:7). 이는 다윗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었습니다. 사울왕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었는데 한 아말렉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자기가 죽였다고 하자 그를 사형시켰고 (1:1-16), 요압 장군이 아브넬 장군을 죽였을 때에도 요압을 심히 책망하고 아브넬 장군의 죽음에 대해 심히 애통해 했고 (3:28-32), 레갑과 바아나가 이스보셋을 죽인 후 머리를 베어 와서 공을 인정받으려 할 때도 그들을 사형시켰습니다 (4:8-12). 곧 다윗은 왕이 되기 위해 그들을 죽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므이는 다윗왕이 그들을 사주하여 죽였다고 생각하고 다윗왕을 저주한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왕을 따르던 신하들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당장 시므이를 잡아 죽이려 한 것입니다.
다윗왕은 시므이를 죽이겠다고 하는 아비새에게 그를 그냥 두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비새야 그냥 두어라.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하는 데 하물며 사울 왕가에 속한 사람이 저주하지 않겠느냐! 저 시므이가 나를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이 시킨 것이다! 하나님이 저를 통해 나를 정죄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저주하도록 내버려 두라! 필시 내가 이 수욕을 참으므로 하나님이 저주가 과다하다고 생각하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지 않겠느냐!" (10-12절). 다윗왕은 자신을 저주하며 모욕하며 고통을 가하는 시므이를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 왕궁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 거닐다가 건너편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보고 음욕이 발동하여 그들 데려다가 동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11:1-27). 하지만 나단 선지자가 그것을 알고 그를 책망하고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이 죽을 것과 집안에서 재앙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다윗왕은 금식하며 침상의 요가 뜨도록 회개했습니다 (12:1-14).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하나님이 그 죄에 대한 보응은 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이 죽고,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간음하고,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사건이 모두 자신의 죄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12:15-23, 13:1-29). 뿐만 아니라 현재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려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오고 그로 인해 자신이 밤에 맨발로 도망하는 일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상황에서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하며 모욕하므로 고통을 더하게 하는 상황도 하나님이 자기의 죄행에 대해 징계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그런 모욕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사울왕가 사람들의 죽음과 무관하지만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징계라 생각하고 수욕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징계를 잘 수용하는 것을 보고 긍휼을 베풀어 선한 결과를 주시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므이를 단죄하려는 신하들로 하여금 그를 저주하도록 그냥 두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다윗왕은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성까지 도망을 하게 되는데 그 곳까지 쫓아온 압살롬의 군대를 물리치고 다시 요단강을 건너와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여 왕권을 되찾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왕이 마하나임에서 압살롬의 군대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요단강을 건넜을 때 시므이가 나아와 영접하면서 용서를 구합니다. 전에 자신의 죄를 기억하지 말고 그 죄로 인해 자신을 벌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19:8-9). 다윗은 자신의 진실과 다른 악평을 들었을 때 그를 미워하거나 그에게 보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악평으로 인해 괴로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일어난 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일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하나님 앞에 긍휼을 얻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심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모욕적인 일을 당할 때 가져야 할 모범입니다. 우리에게 환난과 고난과 고통이 올 때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는지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건지시고 높이실 것입니다 (롬5:3).
3. 후새의 거짓 투항과 아히도벨의 모략 (15-23절)
15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른지라
16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갈 때에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
17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8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
19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의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하니라
20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하니
21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하니라
22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
23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다윗왕과 일행이 예루살렘성을 빠져 나가고 압살롬과 일행이 예루살렘성에 이르렀습니다. 압살롬의 일행이 성에 들어오자 다윗의 친구이자 모사였던 후새가 환대하며 전에 다윗이 지시했던 대로 압살롬을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15:32-37). 부왕 다윗을 섬겼으니 왕위 계승법상 아들 압살롬을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졌다. 물론 후새의 환대와 충성맹세는 거짓이었습니다. 압살롬은 후새를 의심하기는 했으나 승리감에 도취되어 곧 믿고 맙니다. 압살롬이 후새를 받아들인 것은 결정적인 실수입니다. 후에 압살롬은 후새의 활약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한편 압살롬은 예루살렘을 장악한 마당에 아히도벨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궁을 지키고 있는 후궁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동침할 것을 모략으로 베풀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압살롬이 다윗의 미워하는 바를 행함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20-23절). 나단 선지자의 예언에 일치하는 모략이었습니다 (12:11). 아히도벨이 그런 모략을 베푼 이유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압살롬의 왕권을 가시화하고 과시하기 위함입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왕위를 찬탈한 자가 자신의 왕권 장악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전왕의 후궁들을 취해 동침하는 관례가 있다고 합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왕권이 완전히 상실되고 압살롬에게 돌아왔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의미로 그와 같은 모략을 베푼 것입니다.
둘째는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을 따른 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압살롬을 따라 반역에 가담했던 자들에게 한가지 우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다윗과 압살롬이 화해라도 하는 날이면 자신들은 반역자로 몰려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을 욕보인다면 다윗과 압살롬은 화해할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을 욕보인다면 그를 따르던 자들도 안심하고 추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이 노린 점은 그것입니다 (21절).
셋째는 아히도벨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범했던 밧세바는 아히도벨의 손녀였습니다 (11:3, 23:34, 대상3:5). 아히도벨은 다윗이 손녀 밧세바를 범하고 손녀사위 우리아를 죽인 것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다윗을 떠나 압살롬 반역에 가담했습니다. 그가 압살롬으로 하여금 다윗의 후궁들을 대낮에 동침하게 한 것은 그 원한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結言>
아히도벨과 압살롬의 완벽한 정권 장악을 위한 모략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아히도벨은 자살하게 되고 압살롬은 요압에게 살해 당하게 됩니다 (17:23, 18:9-15).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자는 실패합니다. 윤리적인 약점을 가진 자는 실패합니다. 원한을 가진 자는 실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