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序言>

  15~18장까지는 다윗 왕국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으로 환궁을 하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손해를 주었던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풂으로 온 이스라엘을 화합시켜 왕국을 굳게 해 나갑니다. 내용은 요압의 충고 (1-8절),  다윗의 환궁 추진 (9-15절), 시므이와 시바의 아첨 (16-23절), 므비보셋의 영접 (24-30절), 바르실래의 배웅 (31-39절), 이스라엘과 유다의 격론 (40-43절) 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요압의 충고 (1-8절)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다윗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길르앗 들 에브라임 수풀에서 전투를 했는데 다윗의 군대가 승리했습니다. 압살롬은 도망하다가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려 매달린 바람에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마하나임 성읍에서 전령을 통해 아들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심히 마음이 아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면서 울었습니다 (18:33). 그것은 부성의 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들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2:10-12).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 때문에 비탄에 빠져 있다는 말이 군사들에게 퍼져 모든 군사들이 슬퍼했습니다. 그래서 승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패잔병들처럼 가만히 성읍에 들어갔습니다. 다윗은 계속 얼굴을 가리고 큰소리로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불렀습니다. 그로 인해 다윗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요압이 다윗에게 찾아가 사기가 저하된 신하들과 군사들을 위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윗의 비탄에 빠진 모습은 다윗과 그 자녀들과 처첩들을 생명 내놓고 구한 신복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왕의 지나친 비탄의 모습은 왕을 사랑하는 신복들은 미워하고 왕을 미워하는 원수 압살롬은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신복들이 모두 죽고 압살롬이 살았으면 더 좋았을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어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신복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당장 한 사람도 왕과 함께 하지 않고 다 떠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윗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모든 환난보다 더 큰 환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압이 비탄함에 오랫동안 빠져 잇는 다윗에게 직언(直言)을 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만일 그런 직언이 없었더라면 다윗은 신복과 백성들로부터 더 큰 불만에 부딪히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압의 거침없는 직언은 자신이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인 잘못을 덮으려는 심사가 작용한 것 같습니다 (18:9-15). 그리고 그의 직언에는 다윗의 상한 심정을 생각지 않고 상한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다른 사람에게 바른 말을 해 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행위를 지적해 줄 때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유하게 권면해야 합니다 (빌2:1-4). 갈라디아서6:1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웃 사람에게 잘못을 간할 때에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어 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 없이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독을 내 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없이 지적하면 아무리 그 지적이 옳을지라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설사 자기를 위해 옳은 판단을 하여 돌이킬 때에라도 그 상처는 오래도록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마7:1-5).

 


          2. 다윗의 환궁 추진 (9-15절)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다윗의 군대가 압살롬의 군대를 진압하고 압살롬이 죽은 후 유다지파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지파가 다윗의 환궁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이 압살롬을 왕으로 추대했지만 압살롬이 죽었으므로 떠난 다윗을 돌아오게 하여 다시 왕으로 모시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다시 왕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정작 앞장서야 할 유다지파는 잠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유다지파 장로들을 찾아가 유다지파가 다윗 자신을 왕으로 모시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그리고 요압을 대신하여 아마사를 군장으로 세우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유다지파 사람들이 다윗과 그 신복들의 환궁을 환영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다윗의 환궁을 환영하는 줄 알면서도 유다 지파가 앞장을 서지 않은 것을 보고 유다 지파에 회유정책을 사용하여 유다 지파가 앞장서게 한 것을 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유다 지파는 다윗이 속한 지파로서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기도 했지만 후에 압살롬을 왕으로 지지하는 일에 앞장서므로 다윗을 반역하였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다윗의 환궁을 서두를 수 없는 입장이고 이스라엘 지파들이 다윗의 환궁을 서두를 경우 유다지파와 이스라엘 지파들간의 관계가 소원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관용으로 유다 지파를 끌어 안으므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화합시키려는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유다지파를 회유하는 중에 요압 군장 대신 아마사를 군장으로 세우겠다고 한 것은 지나친 처사였습니다. 그가 압살롬의 군장 아마사를 통합 이스라엘의 군장으로 세우겠다고 한 것은 압살롬의 반역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관용으로 포용하는 면을 보여 갈라진 민심을 화합시키려는 차원에서 결단한 조처였을 것입니다. 또 압살롬의 군사들을 규합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처는 요압의 분노를 사 아마사를 죽이는 비극을 불러옵니다 (20:9-10). 요압이 다윗 편에 서서 압살롬 군대를 진압하고 왕으로 돌아올 수 있게 했는데 그에 대한 공을 인정받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과 아마사에 대한 분노와 경쟁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다윗이 요압을 실각시키고 아마사를 등용시키는 또 다른 심리적 요인이 있다면 다윗이 요압을 좋지 못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 대치할 때 다윗의 허락없이 이스보셋의 군장 아브넬을 죽여 다윗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3:27,39). 또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는데 어기고 죽였습니다 (18:14-15). 또 압살롬으로 인해 비탄해 있을 때 정치적 압박을 가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19:1-8). 다윗이 그런 상황에 있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요압의 의도를 묵인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 때마다 마음에 상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요압을 대신하여 아마사를 세우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그런 감정이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상함 감정을 가지고 있게 되면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4:26-27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3. 시므이와 시바의 아첨 (16-23절)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다윗이 신복들과 함께 유다지파의 환대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환궁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려던 차에 바후림에 있던 베냐민사람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1,000명을 데리고 함께 마중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사환 시바도 15명의 아들과 20명의 종을 데리고 함께 왔습니다.  

 

  시바는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준 재산을 가로챈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왕의 아들들은 모두 죽고 없습니다. 그런데 사울왕가의 유일한 후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큰아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왕과 세 아들이 길보아 전쟁에서 죽을 당시 기브아에서는 전쟁의 패배 소식에 도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므비보셋의 나이는 5세였는데 유모가 안고 급히 도망하다가 떨어뜨린 바람에 절뚝발이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다음에 사울의 후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예루살렘으로 오게 했고 지위와 재산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왕자들과 함께 하게 했고, 사울의 재산을 돌려 주었고, 시바라는 종과 그를 따르는 종들을 붙여 섬기며 재산을 관리하게 해주었습니다. 시바는 사울왕이 살았을 때 사울왕의 재산을 관리하던 종이었고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붙일 당시 시바의 아들은 15명 종은 20명이었습니다 (9:1-13).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삼상20:14-15,42). 그런데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감람산 비탈길을 내려올 때에 므비보셋이 스스로 나귀에 안장을 채울 수 없는 약점을 이용하여 다윗을 위로하고 싶어 했던 므비보셋을 따돌리고 혼자 다윗에게로 왔습니다 (19:26). 두 나귀에 떡 200덩이와 건포도 100송이와 여름실과 100뭉치와 포도주 1부대를 싣고 와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2절). 그리고는 자신이 섬기는 므비보셋에 대해 거짓으로 참소했습니다.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3절). 시바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가는 때를 좋은 기회로 여기고 므비보셋에 대해 고발하고 자신이 관리하던 그의 재산을 얻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분노하여 므비보셋의 재산을 다 시바에게 주었습니다 (16:1-4). 그런데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므비보셋이 사실을 다 밝히므로 시바가 재산을 자시 빼앗기게 됩니다 (19:24-30).

 

  시므이 다윗이 피난 나올 때 저주를 한 사람입니다. 다윗과 일행이  압살롬을 피해 감람산을 넘어 요단강으로 내려가는 길목 바후림(Bahurim)에  이르렀을 때 시므이가 나와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며 저주를 했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16:5-8). '비루한 자'는 히브리어로 '이쉬 하 벨리야알'로서 직역하면 '벨리알의 사람아'하는 말입니다. 벨리알(Belial)은 무가치하고 무익하고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비루한 자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파괴를 일삼는 놈이라는 말입니다 (고후6:15참조). '가거라 가거라'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떠나 이방인의 땅으로 가라는 말로서 히브리인에게는 저주의 말입니다. 시므이는 베냐민지파 사람으로서 베냐민지파의 사울이 죽고나서 유다지파의 다윗이 왕이 되자 이에 대한 시기심을 가지고 다윗이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을 반기며 저주를 한 것입니다. 아마 사울의 왕권을 이은 이스보셋과 그의 장수 아브넬을 다윗이 죽여서 사울왕가의 왕권이 이어지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압살롬의 난을 사울왕가에 대한 보응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브넬 장군은 요압에 의해 살해되었고 이스보셋은 두 신하 신하 레갑과 바아나에게 암살 당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당한 것은 다윗의 사적인 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12:10-11). 그런데 이제 다윗이 다시 환궁하니 자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베냐민지파 1,000명을 데리고 와서 다윗에게 아첨을 한 것입니다.

 

  한편 시므이가 용서를 구할 때 아비새와 다윗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요압의 동생 아비새는 시므이가 저주를 할 때에도 당장에 가서 목을 베게 해 달라고 했었는데(16:9) 이번에도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를 저주했으니 죽여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21절). 그러나 다윗은 그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뙤었는데 이스라엘 가운데 사람을 죽이면 되겠느냐며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22-23절). 다윗은 이 맹세를 지켜 자신이 통치하는 동안 시므이를 처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죽을 때 아들 솔로몬에 시므이를 처단할 것을 명령하여 솔로몬이 부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처형하게 됩니다 (왕상2:8-9, 46). 그것을 보면 다윗이 시므이를 사면해 준 것은 그를 죄를 용서한다는 의미로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서 사면해 준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한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다윗은 분열된 민심을 수습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고 지파간의 갈등을 해소시킬 필요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서 유력한 시므이를 처형할 경우 베냐민 지파의 원성을 살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스라엘 전체의 화합을 위해 시므이를 사면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므이와 시바는 동일하게 기회주의자들입니다. 환난을 틈타서 자기 분을 풀거나 탐심을 채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잘못이 정죄받게 될 상황이 되자 다시 아부 아첨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이 다시 환궁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영원히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유익을 따라 기회주의로 나가는 자는  조급하고 두렵고 피곤한 생애를 살게 됩니다. 결국 좋은 결과를 볼 수 없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기회주의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잘될 때 충성하고 안될 때 저주하고 회복할 때 아첨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신의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진리를 세우는데 있어서도 기회주의로 나가서는 안되겠습니다.

 


         4. 므비보셋의 영접 (24-30절)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29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이 환궁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려 할 때 므비보셋이 내려와 맞았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의 아들입니다. 사울왕에게 아들이 4명이 있었습니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와 이스보셋이었습니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는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쟁에서 사울왕과 함께 전사하고 이스보셋만 남았습니다 (삼상31:1-6, 대상8:33, 9:39). 이스보셋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된 후 마하나임에서 아브넬의 공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하 레갑과 바아나에게 암살 당하여 죽고 맙니다 (삼하4:1-6).

 

  사울왕의 아들들은 모두 죽고 없습니다. 그런데 사울왕가의 유일한 후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왕과 세 아들이 길보아 전쟁에서 죽을 당시 기브아에서는 전쟁의 패배 소식에 도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므비보셋의 나이는 5세였는데 유모가 안고 급히 도망하다가 떨어뜨린 바람에 절뚝발이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다음에 사울의 후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예루살렘으로 오게 했고 지위와 재산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왕자들과 함께 하게 했고, 사울의 재산을 돌려 주었고, 시바라는 종과 그를 따르는 종들을 붙여 섬기며 재산을 관리하게 해주었습니다 (9:1-13).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삼상20:14-15,42).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감격하여 충성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윗왕이 압살롬을 피해 감람산 비탈길을 갈 때에 다윗을 찾아와 위로하고 싶어 했습니다 (19:26). 그런데 종 시바가 므비보셋이 스스로 나귀에 안장을 채울 수 없는 약점을 이용하여 므비보셋을 따돌리고 혼자 다윗에게로 왔습니다. 두 나귀에 떡 200덩이와 건포도 100송이와 여름실과 100뭉치와 포도주 1부대를 싣고 와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서 모반을 꾀한다고 거짓으로 참소했습니다. 다윗이 분노하여 므비보셋의 재산을 다 시바에게 주었습니다 (16:1-4).

 

  므비보셋은 그 이후로 발에 맵시를 내지 않고 수염을 깎지 않고 옷을 빨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기 부모가 상을 당한 것 같은 행동입니다. 다윗왕이 압살롬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여 쫓겨 가는 고통을 생각하며 그 고통에 동참하려는 충성입니다. 당시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진주해 있을 때인데 그 곳에서 다윗을 위해 충성심을 보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나 므비보셋은 결연한 태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 사람들이 환궁하려는 다윗을 맞기 위해 환영 나왔을 때 함께 나온 것입니다. 다윗은 환영 나온 므비보셋에게 과거 시바의 참소 내용을 기억하여 함께 따라 나서지 않은 일에 대해 추궁했습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의 당시 처지와 상황을 설명하고 시바의 궤계와 거짓 참소를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윗에게 받은 은총을 기억시키며 그 은혜만으로도 만족한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다윗은 의문이 풀린 듯 시바에게 준 재산을 절반씩 나누게 했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모든 재산을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마 성경이 그 결론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별 이론없이 므비보셋 청대로 된 것 같습니다. 므비보셋은 그 재산 자체에 욕심이 있었다고 하기 보다는 다윗과의 원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해서 그런 요구를 한 것 같습니다.    

 

  잠언11:19-21에 "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26:3에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고 했습니다.

 


         5. 바르실래의 배웅 (31-39절)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이 황궁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바르실래의 배웅을 합니다. 바르실래(Barzillai)는 길르앗의 한 성읍 로글림의 거부(巨富)였습니다. 길르앗 땅은 북쪽 아람국의 침략을 자주 받았던 곳인데 다윗의 강력한 군사 행동으로 이 지역이 평화롭게 되었었습니다 (8장). 바르실래는 평소에 다윗의 정책과 행동을 보면서 그 인격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길르앗 지방 위에 있는 마하나임으로 급히 도망했을 때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 등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 식량 조달은 허기에 지친 다윗의 군사들을 회복하게 했고 압살롬 군대와 전투할 수 있는 사기를 높여 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 이후에도 바르실래가 계속 다윗을 도운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를 배웅하기 위해 요단강까지 함께 나왔습니다.

 

  다윗이 여단강을 건너기 직전 배웅 나온 바르실래에게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서 계속 공궤하라고 했습니다. 바르실래는 자신의 나이가 80이나 되어 왕을 더 이상 제대로 모시기 힘들다고 했고 말년을 고향에서 지내다가 묻히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배웅 나온 것은 요단강을 건네 드리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다만 원한다면 아들 김함을 데려가 공궤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기로 했고 요나강을 건넌 후 바르실래와 인사하고 바르실래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바르실래는 부자였습니다. 부자인 것 때문에 교만하거나 허랑방탕하지 않았습니다. 재물을 하나님의 언약적 뜻이 있는 다윗을 돕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행에 대해 어떤 보상의 기대도 없었습니다. 다만 옳은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나이가 많아 죽을 때가 되어서도 끝까지 다윗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배웅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추한 모습이 아니라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사랑을 그 아들에게 베풀었습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재물을 가치있는 일에 사용하고 어려움 당한 사람들에게 순수한 사랑을 베풀고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는 아름다운 인생을 산 것입니다.  

 


          6. 이스라엘과 유다의 격론 (40-43절)  

 

  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42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다윗이 압살롬 군대를 파한 후 마하나임에서 예루살렘으로 환궁해야 할 때, 유다 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11지파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모시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외될 가능성이 큰  유다 지파를 끌어 안기 위해 요단강에 먼저 나와 환영하라고 했습니다 (9-15절). 그래서 유다 지파 사람들이 앞장서서 요단강까지 나와 환영했고 길갈까지 호위하였습니다. 뒤늦게 다윗을 맞은 이스라엘 온 지파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자신들과 의논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다윗의 환궁을 추진한 데 대한 분노였습니다. 자신들이 이스라엘 대부분에 해당하는데 한 부분에 해당하는 유다 지파가 독자적으로 행동한 데 대해 옳지 못하다고 분을 터뜨렸습니다. 그에 대해 유다 지파 사람들도 다윗이 자기들의 지친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모셔 오는 것이 합당하고 또 다윗에게 아무 배려도 받지 않았다고 맞섰습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가 주축이 된 듯 합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사사시대부터 이스라엘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지파입니다. 그에 반해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는 베냐민 지파가 주도권을 가지려 했고 다윗이 왕된 다음에는 유다 지파가 주도권을 가지려 했습니다. 그런데 현 상황에서는 다윗이 정권을 장악할 때이므로 유다 지파가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고 나머지 지파는 모두 에브라임 지파를 주축으로 하나가 되어 유다 지파를 견제했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위하기 보다는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격론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격론은 결국 세바의 난을 초래하게 되고 (20장), 훗날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나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맙니다 (왕상12:21).   

 

  한국교회 역사를 보면 처절한 격론과 분열이 있어 왔습니다. 물론 교리상 이견으로 바른 진리를 세우기 위해 갈라진 경우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외견상으로는 교리문제를 표방하지만 이면에는 교권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에 따라 곳곳에서 많은 개 교회들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했고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오늘날에 와서 교단간 화해와 통합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개 교회들에서는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대립하고 갈라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잘되는 데에는 누가 앞서든지 좋아해야 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되고 앞선 자들은 그 것으로 자세하거나 힘을 남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다투는 것은 공동체를 사단에게 내어 주는 결과를 가져오고 맙니다. 갈라디아서5:15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結言>

  다윗은 압살롬의 난으로 인하여 맨발로 눈물 흘리며 도망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군대와 전투하는 과정에서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해 비탄에 빠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에게 고통을 가하는 자들도 있었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환궁이 확실시 되므로 고통을 가했던 자들을 심판하고 위로했던 자들을 후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환난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진실하게 행하면 반드시 회복하게 될 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