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序言>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되자 온 이스라엘 지파들이 다윗의 환궁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19:9-10). 그 때 다윗은 자신이 환궁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과 혈통이 같은 유다지파의 소외를 돕기 위해 선도적인 역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19:11-12). 그래서 유다지파가 요단강까지 마중나와 호위하며 길갈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지파들은 다윗의 편애와 유다지파의 불손한 행동에 대해 크게 반발했습니다 (19:40-43). 그 와중에 세바가 다윗에 대해 반기를 들며 나오게 되고 그로인한 혼란이 있게 됩니다. 1~3절에는 세바 난의 발발, 4~13절에는 아마사의 피살, 14~26절에는 세바 난의 진압에 대해 나옵니다.  

 

<本論>

          1. 세바 난의 발발 (1~3)

 

  1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3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그들에게 관계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

 

  다윗의 환궁에 대한 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 간에 갈등이 있을 때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세바'라는 사람이 반란을 꾀하였습니다. '세바'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베냐민 지파의 족장급에 있는 듯 하고 혈통적으로 사울 왕가와 가까운 듯 하고 사울 왕가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선동가인 듯 합니다. 그를 '난류'라고 했는데 '난류'(亂類)의 히브리어 '이쉬 벨리야알'는 '무익한 사람' '무가치한 사람' 파괴적인 사람'의 뜻으로서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나 아무런 도움도 끼칠 수 없는 아무 쓸모없는 무익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고후6:15 참조). 다른 성경에서 '비류'로 번역되기도 했고 (삿19:22, 삼상10:27, 30:22, 왕상21:10, 대하13:7) '불량자'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삼상2:12, 25:17, 25, 잠6:12, 16:27).

 

  세바는 나팔을 불어 다윗의 파문과 자신의 반란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함께 할 분의가 없으며 함께 할 업이 없다고 했습니다. '분의'(分誼)의 히브리어 '헬레크'는 '기업' '분깃'을 의미하며, '업'(業)의 히브리어 '나할라'는 '유산' '소유물'을 의미합니다. 곧 자신들의 지파 땅과 사람들이 다윗의 지배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에게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은 길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돌이켜 세바를 따라 에브라임 산지로 올라갔습니다. 오직 유다 지파 사람들만 다윗을 쫓아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세바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보다는 정치적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야욕을 이루려는 선동자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언약적 목적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 자입니다 (삼상16장). 온 이스라엘이 기름부어 왕으로 세운자였습니다 (삼하 5장).그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온 이스라엘을 하나되게 했고 주변국들을 정복하므로 이스라엘의 위상을 높인 통치자였습니다. 그러나 실수로 범죄한 이후 여러 정치적 역경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간의 갈등 표출되었습니다. 세바는 그 정황을 이용하여 자신이 지도자가 되려고 꾀하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사울 지파로서 유다 지파와 경쟁 관계에 있었고 에브라임 지파를 주축으로 한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은 유다 지파와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십분 활용하여 다윗에 대한 반기를 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욕망을 따라 움직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마6:33). 그리고 나누기보다는 서로 연합하여 하나되게 하려 해야 합니다 (엡4:3).

 

  한편 3절에 보면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예루살렘에서 피난길에 오를 때 후궁 10명을 궁에 남겨두었습니다 (15:16). 그것은 압살롬과 그의 군대가 여인들이기 때문에 살해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로 하여금 궁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남겨 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궁에 들어온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따라 자신의 왕권 탈취를 과시하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힘있게 하기 위해 10명의 후궁을 대낮에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서 강간을 했습니다 (16:21-22). 후에 다윗이 압살롬의 군대를 진압하고 다시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 후궁들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어 죽을 때까지 생과부로 지내게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다윗이 율법 정신에 근거하여 행한 조치로 보고 있습니다. 후궁들이 율법적으로 불결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율법 조항에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자는 다시 받아들이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고 (신24:1-4), 더욱이 아들과 동침한 경우는 근친상간에 해당하는 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레18:6-8). 오히려 그들을 율법대로 치리 하려면 죽이거나 성 밖으로 내어 쫓아야 하는데 다윗이 자신의 실수를 생각하여 가혹한 형벌을 내리지 않고 긍휼을 베푼 처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꼭 율법적 정신을 가지고 행한 처사 같지는 않습니다. 혹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아들이 강간한 후궁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더 클 것입니다. 그 추측이 맞다면 그것은 다윗의 실수입니다. 왜냐하면 다윗도 그 일로 크게 상처를 받았을 것이지만, 압살롬의 난이 근본적으로 자기의 잘못 때문에 일어나 난이었고 다윗 자신이 피난길에 오르면서 후궁들에게 궁을 지키라고 명했고, 그 후궁들은 궁에 있다가 압살롬에게 강제로 능욕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궁들에게는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후궁들도 상당한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오히려 그들을 위로했어야 하는데 자신이 받은 상처와 분노로 그들을 미워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아내가 강간을 당했을 때 남편이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누가 잘못했든지 남편이 심리적으로 받는 충격은 클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아내의 인격을 귀하게 생각하나다면 오히려 아내를 위로하여 상처를 회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생활에서 자신이 상처받은 것만 생각하고 상대가 상처받은 것은 생각하지 못하여 상처를 더욱 깊게 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 아마사의 피살 (4~13)

 

  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5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가더니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

  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7 요압을 따르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

  8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그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맸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을새

  11 요압의 청년 중 하나가 아마사 곁에 서서 이르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가 누구이며 요압을 따라 다윗을 위하는 자는 누구냐 하니

  12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놓여 있는지라 그 청년이 모든 백성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에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13 아마사를 큰길에서 옮겨가매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아가니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때 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간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그 틈을 타 베냐민 지파 사람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그 난을 진압하기 위해 요압을 경질하고 아마사를 군장으로 세워 유다 사람들을 소집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소집이 늦어졌고 세바의 무리가 견고한 성에 도착하여 진지를 구축할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비새를 불러 그의 군사로 하여금 급히 세바를 쫓게 했습니다.

 

  아비새의 일군이 세바를 쫓을 때 아비새의 군열에 요압도 함께 했습니다. 다윗의 명과 상관없이 아마사가 아비새 군열과 합류할 것을 알고 그를 살해할 목적을 가지고 함께 갔던 것 같습니다. 결국 세바를 쫓는 아비새 군이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렀을 때 아마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압은 자기의 차고 있던 칼을 느슨하게 매어 고의적으로 떨어지게 하므로 아마사가 경계심을 갖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형은 평안하뇨'하면서 입을 맞추려는 체 하다가 품고 있던 칼로 배를 찔러 죽였습니다.   

 

  요압은 아마사를 죽인 후 아비새와 함께 세바를 쫓았습니다. 그런데 아마사에 의해 모집된 국민병들은 아마사의 죽음을 보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 때 요압의 정예부대원 가운데 한 사람이 시체 곁에서 요압을 좋아하고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아마사의 시체를 밭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국민병들이 지나가면서 길에 있는 피와 시체를 보기 위해 머뭇거리자 아마사 시체를 옷으로 덮었습니다. 그제서야 병사들이 요압과 아비새를 따라 세바를 쫓았습니다.   

 

  아마사가 죽게 된 원인은 아마사 무능력함에도 있을 수 있고, 다윗의 성급한 인사에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요압의 정치적 야욕에 있습니다. 다윗 왕권 초기에 이스보셋 왕권과 대치했을 때 이스보셋의 군장 아브넬과 회담을 통해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하려 했을 때 요압이 자신의 입지를 생각하여 아브넬을 속여서 살해했습니다 (3:27). 또 다윗 왕이 압살롬 난으로 대치했을 때도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했는데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의해 죽이고 말았습니다 (18:14-15). 뿐만 아니라 다윗이 압살롬으로 인해 심히 고통스러워 할 때 찾아와 압살롬의 난을 진압한 군사들을 위로해 주지 않으면 모두 왕을 떠나겠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상당히 상했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다시 환궁하려 할 때 압살롬을 따르던 군사와 백성들을 끌어 안으려는 목적과 요압을 견제는 목적에서 압살롬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를 군장으로 삼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다윗은 세바의 난을 진압하는데 있어서 아마사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약속도 지키고, 요압을 견제시키는 역할도 하게 할겸 세바 진압을 그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위기 의식을 느낀 요압은 정적을 없애고 2인자 위치를 굳히기 위해 다윗이 세운 아마사를 살해하고 만 것입니다. 다윗은 요압이 아마사를 죽인 사건으로 요압에 대한 마음이 더욱 부정적으로 굳어집니다. 그래서 다윗이 임종할 때에 아마사 죽인 사건을 들어 요압을 죽일 것을 유언하게 되고(왕상2:5) 결국 요압은 브나야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왕상2:34).   

 

  언제나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게 됩니다 (마26:52). 완력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지위를 지키려는 자는 완력에 의해 제거될 날이 오고 맙니다. 결국 세상적 욕망이 어떤 방법으로라도 그 목적을 이루려 하고 그 목적을 이루려 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못하게 됩니다.

 


          3. 세바 난의 진압 (14~26)

 

  14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20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던지리이다 하고

  22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23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고

  24 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25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세바는 다윗에게 대항하기 위해 이스라엘 땅 북부에 위치한 '아벨'(Abel)에 들어가 진지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한편 국민병을 모집한 아마사를 죽인 요압은 아비새와 함께 군사들을 이끌고 추격하여 아벨 성을 에워 쌌습니다. 그리고 아벨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해자 언덕'(성 주변에 방어용으로 만들어 놓은 참호) 위에 토성(土城)을 쌓았습니다. 성벽 앞에 토성을 쌓는 것은 고대 전쟁에서 성내에서 공격하는 것을 방어하는 동시에 성을 공격해 들어가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요압이 토성을 쌓고 쳐서 무너뜨리려고 했다는 것은 아벨 성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려 했다는 것입니다 (15절).

 

  그 때에 아벨 성에 사는 한 지혜로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요압 군대가 세바 군사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아벨 성이 함락될 것을 알았습니다. 아벨 성이 함락되면 성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아벨 성을 구하고 성읍 백성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요압과 대화를 청하고 요압과 협상을 합니다. 요압이 대화에 응하자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어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미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18-19절). 옛부터 아벨 성은 지혜로운 자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분쟁을 많이 해결해 주는 어머니 같은 성인데 어찌 성을 공격하기 전에  상의하여 화해를 시도하지도 않고 전면적으로 공격하려 하느냐는 것입니다 (신20:10-15).  

 

  그 여인의 말을 들은 요압은 납득하여 세바를 잡기 위해 성읍을 공격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세바만 내어 놓는다면 공격하지 않겠다고 답합니다. 여인은 지혜로 곧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게 되고 성읍 사람들은 세바를 죽여 머리를 요압에게 던지게 됩니다. 요압은 세바가 죽었으니 나팔을 불어 국민병을 해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윗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은 세바의 난이 진압되자 행정 조직을 재정비하게 되고 요압을  다시 군대장관으로 임명합니다.

 

  아벨 성읍의 지혜로운 한 여인이 위기에서 성읍 전체를 살리고 성읍 백성들을 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내용을 전도서9:13-16의 배경으로 보기도 합니다. 전도서9:13-16에 "내가 또 해 아래서 지혜를 보고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곧 어떤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성읍에 큰 임금이 와서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그 성읍 가운데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것이라 그러나 이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낫다마는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 말이 신청되지 아니한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몰살 당할 위기에 처한 가정을 살린 지혜로운 아비가일에 못지 않은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삼상25:23-31).

 

<結言>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왕권을 확립하려는 순간 세바의 난이 일어나 곤욕을 치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다윗의 왕권은 회복되었습니다. 다윗이 범죄하여 하나님이 징계하는 가운데서도 그와 맺은 언약을 이루기 위해 그를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시련은 있을지라도 결코 패망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