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言>
22장 내용은 다윗이 왕권 초기 내용으로 추정된 찬송시였습니다. 23장은 인생 말기로 추정되는 내용으로서,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자신의 소원과 자신이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는데 활약했던 용사들의 활약상을 기록했습니다. 이 내용을 통해 다윗이 평생에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진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 구조는 다윗의 마지막 말(1-7절), 첫 3인의 활약상(8-12절), 둘째 3인의 활약상(13-23절), 30인 용사들(24-39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다윗의 마지막 말 (1-7절)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
다윗은 임종을 앞두고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되어 자신의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의로 다스리는 왕이 나와 하나님의 나라가 견고하고 풍성한 나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원은 이미 과거에 주어진 언약의 확인이었고 미래에 대한 언약적 예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과 그 후손에 대한 축복을 했습니다. 7:12-16에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으로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선지자로 말씀하셨던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공의로운 왕이 나와 이스라엘을 공평과 진리로 다스리므로 이스라엘이 견고한 나라가 되길 원했습니다. 다윗은 나단의 신탁 예언이 다음에 일어날 아들 솔로몬만 의식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메시야가 도래하여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까지 내다보고 노래한 것입니다. 그 메시야의 사역과 메시야의 나라에 대해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구체적으로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가운데 자신이 누구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자라는 사실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강조합니다. 자신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자에게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복음서 기자들 특히 마태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음을 족보와 표적을 통해 많이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저자도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음을 조금 다른 신학적 용어로 나타냅니다. '인자'(人子; τον υιοs του ανθρωπου; the son of man)는 직역하면 '그 사람의 아들'로서 (요1:51), 구약 성경에서 오시리라 예언한 그리스도(메시야)를 말합니다 (창28:12, 겔1:26-28, 단7:9-14, 삼하7:12-14). 요한복음 9장에서 소경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네가 인자(하나님의 아들)를 믿느냐?"고 질문했고 소경이 믿는다고 하자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고 했습니다 (요9:36-38).
우리의 인생에서 소원이 가시적이든 영적이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보낸 성령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견고히 세워지고 확장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언약적, 구속사적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2. 첫 3인의 활약상 (8-12절)
8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단번에 팔백 명을 쳐죽였더라
9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10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다윗은 20여년 동안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광야생활을 하였고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된 이후 7년 6개월 동안 내전을 치르고 비로소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어 여호수아 이후 400년 동안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으므로 이스라엘 국가를 견고하게 세웠습니다. 이 일에는 다윗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충성된 많은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존 단락에서는 첫번째 3인의 용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들은 다윗의 군사들의 지휘관들인 30인의 지휘관인 군대 장관들이었습니다.
첫째는 아디노(Adino)입니다. 요셉밧세벳은 '밧세벳에 거주하는 자'라는 뜻으로서 고유한 이름이 아닙니다. 아디노를 역대상11:11에는 야소브암(Jashobeam)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아디노는 야소브암의 별명인 것 같습니다. 아디노는 블레셋 사람을 800명이나 죽인 사람입니다. 둘째는 엘르아살(Eleazar)입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을 손이 칼에 붙도록 친 사람입니다. 셋째는 삼마(Shammah)입니다. 그도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친 자입니다.
다윗의 첫번째 3인의 용사는 야소브암과 엘르아살과 삼마입니다. 역대상과 사무엘하의 기사를 종합해서 보면 블레셋이 바스담밈에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군사들이 다 도망한 상황에서 이 3인의 용사가 함께 물리친 것 같습니다. 본문에 보면 아디노(야소브암)이 800명을 쳐 죽였다고 했고, 블레셋 군사들을 두려워 한 이스라엘 군사들이 다 도망했을 때 3인의 용사(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었다고 했고, 삼마도 블레셋 사람들을 쳤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블레셋 군사들이 쳐들어왔을 때 이스라엘 군사들이 두려워 도망하는 가운데서 이 3인의 용사가 도망하지 않고 그들을 물리친 것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군사들이 블레셋 국경에 가까운 바스담밈에 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바스담밈(Pasdammim)은 그 곳은 블레셋 사람들이 자주 그 곳으로 침략을 해와 그 곳에서 전투를 많이 벌인 곳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을 '피의 경계선'이라는 의미로 바스담밈이라고 한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 월맹군과 미군이 고지를 탈환하려고 반복적으로 전투를 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고지가 시체로 가득 차자 그 곳을 '햄버거 힐'이라고 부른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추수 때가 가까워 지자 블레셋 군사들이 곡식을 약탈하기 위해 그 곳의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침략해 온 것입니다. 역대상11:13에는 '보리가 많이 난 밭'이라고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많은 수가 무장을 하고 빠르게 돌진해 오자 이스라엘 군사들이 모두 겁에 질려 도망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기가 극도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3인의 군대장관 아디노(야소브암)와 엘르아살과 삼마는 그 밭 가운데 서서 그들과 싸웠습니다. 아디노(야소브암)는 창으로 싸웠는데 그들을 800명이나 죽였습니다. 엘르아살은 칼을 가지고 싸웠는데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군사들을 쳤습니다. 손이 칼에 붙었다는 것은 손의 근육이 풀려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많은 군사들을 쳤다는 것입니다. 삼마도 밭 가운데 서서 그들을 쳤습니다. 그러자 도망간 이스라엘 군사들도 용기를 얻어 다시 돌아왔으나 3인의 용사 뒤를 따라가며 죽은 블레셋 군사들을 노략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3인의 용사의 무용이 블레셋 군사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바스담밈 지역과 곡물을 지켰습니다. 3인의 용사는 다른 사람들이 다 도망하더라도 혼자서라도 생명 내놓고 싸운 사람들입니다. 결국 다윗에게 그런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살아남아 왕이 되고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용사를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기적을 베풀어 배불리 먹여 줄 때 모여든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 도리를 가르치자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다 떠나갔습니다 (요6:66). 예수님이 붙잡히니 다수의 제자들도 도망했습니다 (마14:51-52).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니 모두 흩어져 낙향했습니다 (마26:31, 요21:3). 자신들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때, 자신이 함께 받아야 할 고난이 두려울 때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쓰임 받을 자는 모두 도망하는 가운데서도 생명 내놓고 하나님, 진리, 공동체를 지킵니다. 존재의 목적이 그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둘째 3인의 활약상 (13-23절)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18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이니 그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라 그가 그의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세 사람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19 그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20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이니 그는 용맹스런 일을 행한 자라 일찍이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이 올 때에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쳐죽였으며
21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그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려가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그를 죽였더라
22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3 삼십 명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그를 세워 시위대 대장을 삼았더라
앞 부분에서 3군장 요셉밧세벳(아디노)과 엘르아살과 삼마에 대해 기록하고 13-23절에는 그들에 비해 능력은 다소 떨어지나 충성도에는 그들 못지 않은 30인 두목중 3용사의 무용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용사의 이름은 아비새(Abishai)와 브나야(Benaiah)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비새는 300명을 죽인 자입니다. 브나야는 모압 아리엘의 두 아들을 죽이고 애굽 사람들을 그들의 창을 빼앗아 죽인 자이고 눈 올 때 함정에 내려가 사자를 죽인 자입니다 (18-23절). 3용사의 능력을 보여 주는 면입니다.
3용사는 무용도 있었지만 다윗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습니다. 다윗이 통합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 왕권의 확장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을 선재 공격을 하려고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습니다 (5:17-25).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입니다. 그 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고 아둘람 근처 산성에 있었고 블레셋 사람들의 영채(군부대)는 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 먹기를 사모하여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하여금 먹게 할꼬' 했습니다. 당시 아둘람 근처 물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그 물은 시원한 냉수였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으로서(16:2,18), 다윗은 어렸을 때 그 우물물을 먹고 자랐을 것이기 때문에 그 물을 먹고 싶어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3용사가 블레셋 사람들을 충돌하고 가서 물을 길어 다윗에게로 왔습니다. 다윗은 그 물을 그들이 생명 내놓고 길어온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피와 같이 생각했고 그 피같은 물을 하나님께 전제물(奠祭物)로 부어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어떻게 길어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다시는 그와 같은 부하를 생명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무모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13-17절).
3용사는 다윗의 무모한 요구에도 다윗의 소망을 자발적으로 헌신적으로 이루려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다윗을 선택한 줄 알았기 때문에 다윗을 위하는 것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생각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를 위해 이와 같이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기드온의 300명 용사가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외친 것을 되새겨야 합니다 (삿7:18). 엘리야에게 떡 하나 해준 사렙다 과부를 기억해야 합니다 (왕상17:9-16). 예수님께 한 여인의 한 옥합 희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26:7-13). 바울에게 눈이라도 빼어 주려 했던 교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갈4:15).
하나님 나라는 어떤 사람들이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목적은 어떤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질까요? 근본적인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재물있는 자, 지식이 있는 자, 재능이 있는 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부족하더라도 오직 하나님 나라 이루는 것을 인생의 가치와 목표로 두고 그 일에 충성하는 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이 있든지 없든지 오직 충성된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세 용사가 있었습니다. 다윗왕은 20여 년 동안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망명생활과 광야생활을 하였고, 사울왕이 죽은 후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었는데 7년 6개월 동안 내전을 치른 후에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다음에 400년 동안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수도로 삼아 왕권을 견고히 하고 블레셋 암몬 모압 아람 등 주변국들을 정복하여 복종시켰습니다. 그것은 다윗 자신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한 충성된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왕 때에 이스라엘 정규군의 지휘관 조직도를 보면 다윗왕 아래에 총사령관 1인이 있었고 그 아래 군장 6인이 있었고, 그 아래에 대장 30인이 있었습니다.
*왕
*총사령관 (1인)
*군장 (6인: 3+3인)
*대장 (30인)
본문은 군장 6인 가운데 3인에 관한 언급입니다. 총 사령관 1인 아래 군장 6인이 있었는데 그 중 3인의 용사의 이름은 아비새(Abishai)와 브나야(Benaiah)와 한 사람은 이름을 알 수 없습니다.
세 용사는 충성스런 부하였습니다. 세 용사는 충성도가 뛰어난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남쪽에 있는 블레셋의 군대가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세력이 크게 확장될 것을 두려워 하여 다윗왕을 공격하기 위해 르바임 골짜기에 총 집결하여 베들레헴에 진영을 갖추었습니다. 그 때 다윗왕은 그를 대처하기 위해 아둘람 굴 근처 산성 요새로 갔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베들레헴을 바라보았습니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 땅인데다가 더욱이 자기 고향 마을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짓밟힌 것이 너무 안타까워 심히 한탄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 먹어 보았던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 물이 생각났습니다. 그 물은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온 생수였기 때문에 아주 시원했습니다. 현재 자기가 있은 아둘람 굴 근처 요새의 물은 별로 좋지 않은데다가 어렸을 때 그 물을 먹어 보았기 때문에 그 물이 더욱 생각난 것입니다. '아! 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 물을 마셔 보고 싶구나! 누가 저 물을 떠다 줄 자가 없을까!" 혼자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3인의 용사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야! 다윗 왕께서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 물을 그렇게도 드시고 싶어 하는데 우리가 떠다가 드리자!" 하면서 왕에게 갔다 오겠다고 말도 하지 않고 부하들에게 시키지도 않고 직접 베들레헴까지 내 달렸습니다. 다윗이 누군가가 블레셋 군대의 진영이 있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아비새 장수와 브나야 장수와 아무개 장수가 왕께서 베들레헴 우물 물을 드시고 싶다고 한다고 그 물을 떠오기 위해서 갔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저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고 다시 베들레헴을 탈환해서 그 물을 한번 시원히 마셔 보고 싶어서 한말이지 누가 지금 자기들보고 그 물을 떠오라는 말인가? 저것들이 미나리 먹고 미쳤나 도라지 먹고 돌았나 생강 먹고 생각 좀 해 보지!" 마음이 조마 조마 했습니다. 3인의 용사는 20km나 되는 베들레헴까지 갔습니다. 블레셋 군이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뚫고 들어가 우물 물을 길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들의 진영을 돌파하며 다시 20km를 돌아왔습니다. "왕이여! 여기 베들레헴 우물에서 길어온 물입니다. 드십시오!" "이런 미친 것들! 내가 언제 니들보고 그 물 떠오라고 했냐~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아이고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함부로 베들레헴 우물 물 먹고 싶다고 하다가 장수들 생명을 잃을 뻔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이 물을 도저히 마실 수 없습니다. 어찌 부하들이 생명을 걸고 떠온 피와 같은 물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저들이 생명을 아끼지 않고 떠왔으니 이 물은 하나님이 드셔야 합니다." 하면서 물을 자기가 마시지 않고 땅에 부었습니다. 하나님께 전제로 드린 것입니다 (삼하23:13-17, 대상11:15-19).
세 용사의 행동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왕은 누가 정말로 적진의 진영에 있는 우물 물을 떠오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 용사가 다윗왕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야말로 무모한 행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 하였습니다. 세 용사는 다윗왕이 적진의 진영에 있는 우물 물을 먹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드려서 그의 마음이 흡족해야 전쟁을 잘 지휘하고 그래야 블레셋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스라엘을 강건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그를 통해 강한 제사장 나라로 세워 이스라엘에 대한 목적을 이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위해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생명의 위험이 있더라도 그 일을 자기들이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기들의 생명도 아끼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그런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다윗의 왕권이 견고하게 된 것은 그런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이 이루어진 것은 그런 충성된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교회에 맡긴 사역과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구원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생명도 아끼지 않는 충성된 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들에게 학식과 재능 보다 더 요구되는 것은 그런 충성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4:2에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사도행전20:22-24에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인간이 가진 것 중에 가장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물질 육체 마음 재능 은사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로서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사명을 위해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과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잃더라도 그 사역과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각오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귀하게 보이는 일을 맡기도 하지만 귀하게 보이지 않는 일도 맡았습니다. 드러나는 일을 맡기도 했지만 아무리 해도 드러나지 않는 일도 맡았습니다. 하찮게 여겨지는 일을 할 때는 칭찬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하고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계속하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열등감이 생기기도 하고 좌절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귀하고 드러나는 일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인정합니다. 귀한 일을 맡았는지 천한 일을 맡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충성하는 정신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고 충성한다면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귀히 쓰실 것이고 높일 것입니다. 힘들고 지치고 상처가 나고 분노가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여 이제 어떤 일을 맡았든지 생명을 바치는 심정으로 행합시다!
4. 30인 용사들 (24-39절)
24 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명 중의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25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26 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27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28 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29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30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31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과
32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33 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34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35 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36 소바 사람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37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무기를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38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39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다윗의 30인 용사들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아사헬, 엘하난, 삼훗, 엘리가, 헬레스, 이라, 아비에셀, 므분내, 살몬, 마하래, 헬렙, 잇대, 브나야, 힛대, 아비알몬, 아스마웻, 엘리아바, 요나단, 삼마, 아히암, 엘리벨렛, 엘리암, 헤스래, 바아래, 이갈, 바니, 셀렉, 나하래, 이라, 가렙, 우리아 도합 31명입니다. 39절에 "이상 도합이 37인이었더라"고 힌 것은 아마 첫 3인과 둘째 3인의 용사 6명이 포함된 숫자일 것입니다. 이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에 세운 자들입니다. 이들은 다윗의 왕권을 세우고 견고케 하고 확장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자들입니다.
다윗의 군 조직을 보면 전군(全軍)의 총사령관 격인 군장은 요압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군을 정규군과 비정규군이 있었습니다. 비정규군은 유사시에 국민 전체에서 모병하는 국민병입니다. 아람 동맹군과 2차 전투 때와 세바의 난 때에 사용했습니다 (10:7, 20:4). 정규군은 중간 지휘관 격인 군장 첫째 3인과 두번째 3인의 용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하급 지휘관 격인 두목 30인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이 정규군은 예루살렘 정복과 아람 동맹군과의 제 1차 전투 등에서 효과적인 전략으로 운용되었습니다. 물론 다윗에게는 모사 아히도벨과 후새가 있었고 친위대장 브나야가 있었습니다. 친위대는 죄인을 처벌하는 그렛부대와 왕명을 전달하는 블렛부대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야전 전투에서 힘을 발휘하는 군은 정규군이었습니다.
이 정규군의 특징은 첫째, 다양성에 있습니다. 30인 용사는 각 지파에서 골고루 차출하였고 심지어는 개종한 이방인도 있었습니다. 차별없이 차출된 것입니다. 둘째, 통일성입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지파 심지어 이방인이었더라도 오직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다윗을 세우기 위해 생명을 내걸고 충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도 강하게 되려면 은사의 차별없는 다양성이 존중되면서도 통일성(단일성)을 가져야 합니다 (고전12장,롬15:6).
<結言>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은 자는 진정한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의 용사들과 같아야 합니다. 첫째는 싸움에 능해야 합니다. 영적 전투에서 자기가 받은 은혜를 따라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용감해야 합니다. 두려워 떠는 자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이 세운 리더에 대해 생명을 걸 정도의 충성심이 있어야 쓰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