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序言>

  40장부터 계속된 내용의 줄거리는 앞으로 유다 백성이 바벨론(Babylonia)에 사로잡혀 갈 것인데 하나님이 바사(Persia)의 고레스(Cyrus)를 일으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유다 백성을 유다로 귀환시키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본 장에서는 그 바벨론 멸망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내용구조는 바벨론 멸망에 대한 선포(1-4절), 바벨론 멸망의 이유(5-11절), 바벨론의 불가항력성(12-15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바벨론 멸망에 대한 선포 (1-4절)

 

  1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임이라

  2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3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4 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

 

  바벨론(Babylonia)은 유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다 백성을 사로잡아 가게 됩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처녀 딸 바벨론, 딸 갈대아는 보좌가 없어졌으니 내려와 땅과 티끌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는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절). '바벨론'은 바벨론 제국을 말합니다. '갈대아'는 처음엔 바벨론 남부 지역을 가리켜 한 말이었으나 후에는 바벨론 제국 전체 지역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바벨론을 '처녀 딸'이라고 한 것은 바벨론이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은 여인처럼 한 번도 외국 군대에 의해 정복당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Kimchi, Whybray). 그는 마치 곱고도 아리따운 모습을 한 여황이 보좌에 앉아 있는 것 같으나 땅에 앉아 티끌을 무릅쓴 여자 같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티끌에 앉으라'는 것은 땅 위에 앉아 재를 머리에 뒤집어 쓰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극도의 슬픔과 수치를 상징하는 바 바벨론이 가장 비참한 상황으로 떨어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맷돌로 가루를 갈고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고 했습니다 (2절). 맷돌로 가루를 가는 것은 당시 여자 노예들의 전유물로서 여왕이 노예로 전락하는 것처럼 바벨론이 비참한 상태에 이를 것을 말합니다. 여인이 머리에 쓰는 너울을 벗고 치마를 걷고 강을 건너는 것도 포로로 잡혀 가는 것을 말하는 바 바벨론이 비참한 상태에 빠질 것을 말합니다. 또한 속살이 드러나고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이는 능욕을 당하는 수치스러움을 말하는 바 그 동안 어떤 나라 군대에도 점령당한 적이 없는 바벨론이 다른 나라 군대에 의해 정복을 당하여 수치를 당할 것을 말합니다. 이어서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않으리라고 했습니다 (3절下). 하나님이 공의를 세우기 위해 바벨론을 심판하되 단호하게 벌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고 했습니다 (4절). 하나님은 구원자(גאל)로서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자기 백성을 구해내실 것이며, 그는 그렇게 할 능력을 가지신 분이며, 그가 하는 일은 거룩한 일이라는 것을 동시에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2. 바벨론 멸망의 이유 (5-11절)

 

  5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여러 왕국의 여주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리라

  6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7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들의 종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도다

  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9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11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

 

  선지자는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여러 왕국의 여주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5절). 왕궁의 보좌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여황이 감옥에 들어가 잠잠히 있는 것처럼, 자존성과 불멸성을 자랑하며 기고만장했던 바벨론이 멸망하여 절망감과 수치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자기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기 위해 바사의 고레스를 통해 멸망시킬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심판하시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언약 백성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죄가 있어서 심판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기 위해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내게 한 것은 가나안 원주민이 그 땅에서 애매하게 쫓겨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우상을 극렬히 숭배한 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바사를 통해 바벨론을 멸망시키지만 바벨론이 애매하게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이 죄가 있기 때문에 멸망하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바벨론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첫째는 언약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않은 죄입니다. 하나님이 전에 자기 기업인 자기 백성에 대해 노하여 그들을 바벨론 손에 넘겨 주었는데 바벨론이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늙은이에게 멍에를 무겁게 메웠다고 했습니다 (6절). 그러면서도 그 일에 대해 전혀 마음에 두지도 않고 그들의 종말도 생각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7절下). 바벨론은 자신들의 야욕과 능력으로 유다를 정복하고 그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그에 대해서는 가책도 가지지 않았고 자기들이 멸망당할 것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기업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한 것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고로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법을 떠나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징계하여 바로 세우기 위해 바벨론이 팽창하여 유다까지 점령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삼하7:14). 그런데 바벨론이 유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유다 백성을 자기들이 숭배한 신의 도움과 자기들의 힘으로 정복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욕망을 따라 무자비하게 대했습니다. 성과 집을 불태워 파괴하고 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많은 사람을 사로잡아 가 고역을 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징계의 수단으로 유다 정복을 허락한 것인데 그들이 긍휼을 베풀지 않고 지나치게 대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훈계하려고 매로 초달을 하고 난 후 마음이 아파서 매를 부러뜨린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언약 백성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둘째는 교만한 죄입니다. 바벨론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7절). 바벨론은 견고한 성과 성문, 강한 군대, 풍부한 부, 넓은 영토 때문에 교만하여 그 제국이 영원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한다고 했습니다 (8절下). 영원히 자존하시며 세상을 주관하는 이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자기 위에 아무도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단4:28-30). 어떤 나라나 어떤 신보다도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자부한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위치에 있는 자로 혹은 하나님 보다 위에 있는 자로 여긴 것입니다. 당시에 여인이 남편을 잃어 과부가 되고 자녀를 잃게 되는 것은 여인의 삶에서 가장 비참한 상황입니다. 바벨론이 스스로 과부가 되지 않고 자녀를 잃지 않는다고 한 것은 절대로 망하여 비참한 상태로 전락하지 않는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니 자기 지혜와 지식이 유혹하였음이라고 했고 자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10절). 바벨론이 천문학 점성학 마법 등의 학문으로 교만했고, 자기의 판단과 행위를 선악의 기준으로 삼을 정도였고, 자기의 악을 볼 자가 없고, 자기 외에는 절대적인 존재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을 모든 나라 위에 있는 존재로 생각할 정도를 넘어 하나님보다 뛰어난 존재로 여긴 것입니다.


  셋째는 사치한 죄입니다. 바벨론은 사치하고 평안히 지낸다고 했습니다 (8절上). '사치'에 해당하는 '아딘'(עדין)은 '주색' '향락'을 의미합니다. 곧 쾌락과 음탕을 말합니다 (pleasures-KJV, wanton-NIV). 바벨론은 유흥과 방탕과 쾌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단5:1-4). 바벨론은 근친상간이 자연스럽게 자행될 정도로 성적으로 타락했고, 환락가가 많았고, 심지어 고레스 군대가 바벨론을 포위했을 때조차도 성 안에서는 불을 훤히 밝힌 채 주민들이 술과 향락에 취해 춤을 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Herodotus).  


  넷째는 우상숭배한 죄입니다. 바벨론이 한 날에 갑자기 과부가 되고 자녀를 잃게 될 것인데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 바벨론이 멸망하여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인데 그 땐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그 일어나는 일을 막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바벨론이 무수한 주술을 하고 많은 주문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에서 '빌릴지라도'로 번역한 '뻬'(ב)는 '...에도 불구하고'의 의미도 있지만 '...때문에'로도 번역하는 전치사입니다. 후자의 의미로 본다면 바벨론이 무수한 주문과 많은 주문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말둑'(벨)을 주신으로 숭배하기도 했지만 달신 '신'(Sin)을 숭배했고 왕을 신격화하기도 했습니다 (단3:1-12). 또한 마술을 많이 행했습니다. '아쉬푸'라는 제사장들이 붉은 옷을 입고 주문을 많이 외웠습니다 (Diodorus). 그 주문들은 신의 노여움을 풀게 하거나 악한 영을 몰아내는 것에서부터 수태를 돕거나 치통을 완화시키는 것까지 일상적인 모든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Walton, Matthews, Chavalas).


  바벨론의 죄는 모두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한 죄들입니다. 바벨론은 그와 같은 죄들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재앙의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1절). 하나님을 대적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생각지 않은 때에 재앙과 파멸을 당하면서도 그 원인을 깨닫지 못하고 그 재앙을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바벨론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생각지 않을 때에 올 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5:3에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3. 바벨론의 불가항력성 (12-15절)

 

  12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과 많은 주술을 가지고 맞서 보라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놀라게 할 수 있을는지,

  13 네가 많은 계략으로 말미암아 피곤하게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하여 보라

  14 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덥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

  15 네가 같이 힘쓰던 자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장사하던 자들이 각기 제 길로 흩어지고 너를 구원할 자가 없으리라

 

  선지자는 바벨론에 대해 이제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과 많은 주술을 가지고 맞서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놀라게 할 수 있을는지 알겠느냐고 했습니다 (12절). 바벨론은 점성술과 주술과 주문들을 신뢰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때 그것들이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벨론이 많은 계략으로 말미암아 피곤하게 되었다고 했고,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 일어나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해 보라고 했습니다 (13절). 바벨론 사람들은 어느 민족보다 지혜와 지식을 추구했습니다. 하늘을 살펴 별이나 달의 변화를 관찰하는 천문학이 발달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관찰과 연구를 하는 차원이 아니라 길흉을 점치고 심지어는 운명을 좌우하려는 숭배행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때는 그것들을 의지해보아야 아무 쓸데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탈 것이고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불은 덥게 할 숯불이나 그 앞에 앉을 만한 불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14절).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임할 때 그 주술자들은 초개같이 불타고 그러면서도 그 상황에서 자신들조차도 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불은 앞에 앉아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피우는 숯불 정도의 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같이 힘쓰던 자들이 바벨론에 이같이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함께 장사하던 자들이 각기 제 길로 흩어지고 구원해줄 자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5절). 함께 무역을 하던 자들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각기 자기 가야할 거처로 도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함께 도움을 주는 나라들도 환난을 당할 때는 도와 주기는커녕 자기들도 손해를 볼까 봐 도망하고 맙니다. 결국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사 고레스 군대에 점령을 당할 때는 우상이든 지혜든 나라든 어떤 대상도 막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길 결심하면 누구도 피하거나 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結言>

  역사적 바벨론은 멸망했습니다 (단5:25-28). 역사적 바벨론이 하나님을 대적한 죄, 곧 하나님 백성에게 무자비하게 대한 죄와 교만 죄와 사치(음란) 죄와 우상숭배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종말적 바벨론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종말에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세상 문화와 문명을 바벨론이라고 한 것입니다. 종말의 바벨론도 하나님을 대적한 죄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교만하고 사치(음행)한 죄 때문에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그 심판은 긍휼없는 심판으로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계14:7-12, 16:17-21, 17:3-6, 18:2-21). 우리는 그와 같은 죄에 참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51:6에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끊어짐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복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고 했고, 고린도후서6:17에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했고, 요한계시록18:4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