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序言>  

  본 장부터는 새로운 단락이 시작됩니다. 사로잡힘과 구원에 대한 내용은 계속 이어지지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세움 받은 고레스를 언급하지 않고 새로운 사역을 위해 세움 받은 새로운 인물인 '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종은 지금까지 다른 신들의 무력함을 입증하는 역할 정도에 그치는 소극적인 종이 아니라 적극적인 종으로 부각시킵니다. 내용구조는 종의 신분과 사역 및 그 결과(1-13절), 이스라엘에 주는 구원의 확신(14-26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종의 신분과 사역 및 그 결과 (1-13절)

 

  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섬들, 먼 곳 백성들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1절上). '섬들'은 땅 끝 먼 곳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한 말입니다. 화자(話者)가 종입니다. 종은 역사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궁극적으로 오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합니다. 종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태에서부터 부르셨고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이름을 기억하셨다고 했습니다 (1절下). 하나님이 처음부터 구속 사역을 위해 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또한 자기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자기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자기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들어 그의 화살통에 감추셨다고 했습니다 (2절). 하나님께서 자기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들어 화살통에 두고 자기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들어 간직하셨다는 것입니다. 종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했음을 나타낸 표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종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3절). 이는 종의 역할을 말씀한 것입니다. 종이 이스라엘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영광을 두었습니다. '영광'은 좋은 평판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위치에 있었습니다. 열방이 하나님에 대한 좋은 인식과 평가를 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제사장적 역할을 잘 감당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적 역할은 하나님의 은혜를 열방에 나타내고 열방이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배역의 길을 걷으므로 그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주 멸절시키지 않으시고 다른 방도 곧 종을 보내어 그 역할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은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4절上). 이 종의 퉁명스러운 투정은 연약성과 패배감을 나타냅니다. 종은 외부적으로 볼 때 무력한 모습이고 실패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은 참으로 자기에 대한 판단이 하나님께 있고 자기의 보응이 자기의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4절下).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보응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옳은 길을 가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얻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연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우리 삶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에서는 가치없이 평가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9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12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하나님은 종을 태에서부터 지으시고 그를 통해 야곱 곧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여 모이게 하시고 그러므로 종이 하나님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고 하나님이 그의 힘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5절). 하나님의 종은 역사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궁극적으로 메시야를 가리킨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종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의지하여 언약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명을 감당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종을 자기의 종으로 삼아 야곱 지파들을 일으켜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가 돌아오게 한다고 했고 또 이방의 빛으로 삼아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어 땅 끝까지 이르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6절). 고레스에게 이스라엘 백성 귀환이 맡겨진 것보다 훨씬 위대한 일이 맡겨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은 이스라엘  중에 남겨 둔 자가 다 돌아오게 하고 이방인들까지 땅 끝에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8:5-13, 15:15:21-28).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한다고 했습니다 (7절). 종은 무가치하여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혐오하여 거부의 대상이 되고 하찮게 여겨 핍박하는 대상과 동일하게 되어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이방 권세자들까지도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종에게 이르기를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8절).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은 구약시대에 희년에 팔렸던 종이 돌아오는 것이 반영된 표현으로서 (레25:8~),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베풀어 지는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종에게 함께 하여 그를 통해 자기 백성들을 구원을 받게 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창12:2-3).


  종이 잡혀 있는 자에게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리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9절上).   종의 사역은 감옥에 갇힌 자 흑암에 있는 자를 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의 대속적 죽음으로 물리적인 의미를 뛰어 넘어 영적 무지와 영적 황폐와 영적 감금 상태에 있는 자들을 구원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헐벗은 산에서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下). 또한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고 더위와 볕이 상하지 않을 것이니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0절). 출애굽과 시편23편 이미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광야와 자산과 사막 등을 지날 것입니다. 그 때 목마름과 허기짐과 햇볕으로 인한 더위는 심히 고통스럽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친히 보호하며 필요를 채우며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종이 영적인 흑암 가운데 갇힌 자들을 구원하여 마치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출애굽 때에 하나님이 인도하셨듯이 하나님의 절대 후원 가운데 보호와 인도와 풍요와 기쁨과 안식으로 인도할 것을 말합니다 (계7:16). 또한 종이 자기 모든 산을 길로 삼고 자기 대로를 돋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고 했습니다 (11-12절). '시님'(Sinim)은 팔레스타인 남부나 페르시아나 이집트 남부나 중국 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종이 대속적 죽음으로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확실한 길을 내니 사방 곧 원방에서 만민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과 산들은 기뻐하며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로했으니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13절). 종의 구속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난 당한 자기 백성을 위로했으니 계속적으로 긍휼을 베풀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죽음에 있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영적 흑암에서 구속하셨습니다. 늘 배반하는 우리를 지금까지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듯이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천국에 갈 때까지 계속적으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했기 때문이고 우리에게 영광 받으시려는 목적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신실하게 인도해주실 것을 인하여 항상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2. 이스라엘에 주는 구원의 확신 (14-26절)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14절). 앞으로 이루어질 일이지만 완료형을 사용하여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시온'(ציון)은 유다 예루살렘의 별명이나 여기에서는 넓게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시고 잊으셨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많은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오랫동안 예루살렘에 황폐화되고 사로잡혀 자들이 돌아오지 못하게 될 때 그런 불평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외적으로 저버리고 내적으로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5절).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고 잊지 않으셨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애착심을 나타내는 이미지들 중 가장 강한 것으로 사용했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젖먹이 아이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 엄마는 아들을 잊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자기 백성을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27:10).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손바닥에 새겼고 그들의 성벽이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고 했습니다 (16절).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는 것은 항상 가장 가까이서 원할 때마다 즉시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잊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선이 항상 예루살렘을 향하고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로잡혀 간 다음에도 그들을 잊지 않고 예루살렘 성이 황폐한 다음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자녀들이 빨리 걸으며 그들이 예루살렘을 헐며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하던 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17절).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져 황폐한 예루살렘성을 서둘러 중건하게 될 것이고 예루살렘성이 황폐한 틈을 타 정기적으로 약탈을 일삼았던 민족들이나 예루살렘성 중건 때에 방해공작을 하는 주변 민족들이 다 떠나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오게 하고 예루살렘성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백성을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시17:8). 성도를 절대로 잊지 않고 버리지 않고 반드시 회복시켜 영광 받으십니다. 시편27:10에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고 했고, 아모스9:9에 "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예레미야24:6-7에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19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21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22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23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2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26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하나님은 시온에게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다 모여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온이 반드시 그들을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8절). 시온은 예루살렘의 별칭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 황폐화 되어 거민들이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방에서 모여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온이 사방에서 모여드는 자들을 신부가 장식품을 장식하듯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시온을 흔히 신부에 비유하고 개심자들을 신부의 장식품에 비유하곤 합니다 (62:3, 말3:17). 그 모여드는 자들은 일차적으로 포로귀환자들을 이차적으로는 개심할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킬 것입니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파멸을 당했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고 예루살렘을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19절). 가시덤불만 가득한 황폐한 성읍이 이제는 대적들이 모두 떠나고 다시 모여든 자들로 인하여 거민이 차고 넘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말하기를 '이 곳이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절). 자녀를 다 잃고 새로 낳은 자녀가 거주할 곳이 좁으니 넓혀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전쟁과 기근으로 많은 자녀들을 잃고 미래가 암담한 상황에서 이제는 각처에서 돌아온 백성들로 가득하여 붐비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시온이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아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아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고 했습니다 (21절). 자녀를 거의 잃고 거의 불임상태에 있는 여인이 자기 주위에 몰려든 수많은 자녀들로 인하여 놀라서 하는 말입니다. 시온이 스스로 보기에도 예전의 영광을 모조리 상실하고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는데 거민으로 가득하여 활기찬 성읍으로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놀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뭇 나라를 향해 손을 들고 기치(깃대, 깃발)를 세우므로 그들이 시온의 아들들과 딸들을 품에 품고 어깨에 메고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22절).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과거 압제했던 이방세력들이 사로잡혀 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스1:4, 3:7). 왕들은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3절上). 열방의 가장 고귀한 권세자들까지도 언약 백성을 존경하여 복종하고 헌신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복종과 헌신을 궁극적으로 시온에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이는 시온의 회복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열방에 전해지고 열방이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로 인하여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23절下). 시온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위대한 일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는 자가 수치를 당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가진 분으로서 언약 백성과의 약속을 절대로 헛되게 하지 않는 신실한 자임을 알고 그분을 절대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이 자기 영광을 위해 영광되게 해 주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 낼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24절). 용사가 빼앗긴 것을 순순히 내놓을 리가 없고 승리자가 사로잡은 자를 순순히 내놓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복자가 포로를 스스로 포기할 리는 없는 것입니다. 당시 현실적 시각으로 보면 사로잡힌 가운데서 돌아오려면 바벨론을 멸망시켜야 했는데 그 강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돌아올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고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 낼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그 자녀를 구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5절). 상황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주권과 능력을 가지고 이미 약속한 대로 반드시 정복자들을 대적하여 그들에게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낼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여 모든 육체가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구속자요 전능자인 줄 알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6절). 언약 백성의 살과 피로 향연을 벌였던 이제는 자기들의 살과 피를 먹게 한다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에게 가한 잔혹한 고통이 자기들에게 돌아가게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언약 백성을 압제한 제국을 멸망시키므로 모든 열방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한 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언약 백성들을 사로 잡아간 바벨론을 심판하여 보복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약 백성이 이방 세력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황량한 예루살렘이 언약 백성으로 가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언약 백성은 하나님만이 진정 신뢰해야 할 자인 것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방 백성은 하나님이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서 이스라엘의 구원자임을 알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목적입니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택한 백성들을 세상에서 구원하시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될 것이고 온 세상은 하나님이 전능자로서 믿는 자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結言>

  시온에 있는 백성이나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백성이나 예루살렘의 황폐한 상황이나 사로잡혀 간 자들의 무력한 상황을 볼 때 하나님이 시온을 버리고 언약백성을 잊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온과 언약 백성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사 왕을 통해 귀환하게 했고 시온은 예전의 영광을 되찾게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으로 되어진 것이었습니다 (슥4:6).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신 것은 언약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기 위함이고 열방도 하나님의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멀리 신약시대에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역사를 예언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늘날 성도들에게 개별적으로도 적용되는 원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