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序言>  

  앞 장에서는 종의 사역을 근거로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는 메세지를 서술했습니다. 본 장에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고발과 종의 순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포로 귀환으로도 완결되지 않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해 줍니다. 내용 구조는 이스라엘의 죄(1-3절), 종의 겸손(4-11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이스라엘의 죄 (1-3절)

 

  1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거가 어디 있으며 어느 채주에게 이스라엘을 팔았느냐고 했습니다 (1절上). 구약시대에 이혼을 하면서 이혼증서를 써 보내는 일이 많았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자녀를 종으로 팔려 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신24:1, 출21:7). 그 배경을 이용하여 하나님은 남편(아버지)로, 시온(예루살렘)을 아내로, 언약 백성(이스라엘)을 자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팔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난 당한 원인과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바벨론에 함락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로잡혀 가게 된 것은 것은 하나님이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을 싫어하여 버렸거나 강력한 세력의 힘에 못 이겨 포기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어미는 그들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고 그들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팔렸다고 했습니다 (1절下).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사로잡혀 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이며 배역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배역'은 의도적인 거부와 반역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환난이 닥친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하나님이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고 했습니다 (2절上).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셔서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그들을 부르신 사실들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환난이 닥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손이 짧아 구속하지 못하거나 능력이 없어서 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꾸짖어 마르게도 하고, 강들을 사막처럼 마르게 하여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게도 하고,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는다고 했습니다 (2下-3절).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연 만물과 인간 역사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주권적 능력으로 얼마든지 출애굽 때처럼 빛을 흑암 바꿀 수도 있고 하수의 물고기를 다 죽게 할 수도 있고 바다를 마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출10:21-22, 7:21, 15:8).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수치스러운 포로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형벌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암시입니다. 그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혹은 그 기간이 길어질 때 '왜 하나님이 그와 같은 시련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합니다. 그 불평은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잘못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악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말씀을 무시한 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부인한 죄,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일보다 자기를 더 절대시하고 자기 욕망을 더 따르는 교만과 우상숭배 죄(egoism)에서 정결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인식에서 원인론(原因論)적 죄관과 목적론(目的論)적 죄관과 상관론(相關論)적 죄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땐 상관론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원인론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난과 고통의 원인은 모두 우리의 잘못됨 때문인 줄 알고 잘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인 줄 알아야 합니다.

 


          2. 종의 겸손 (4-11절)

 

  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전 대지에서 언약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하고 언약 백성의 불법과 반역에서 구원할 힘이 하나님께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이제 아무런 소개 말도 없이 여호와의 종이 말을 시작합니다. 종에 관한 내용은 42:1-9과 49:1-7에 나왔고 본문인 50:4-11에 나오고 52:13~53:12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이 종은 이사야나 이스라엘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오실 메시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종은 하나님께서 학자의 혀를 주셔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고 아침마다 깨우치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한다고 했습니다 (4절). 종은 하나님으로부터 학자의 혀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습득된 지식을 가진 자입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순종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의 사명과 사역은  그 말씀을 곤고한 자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에 눌리거나 인생의 질고를 져 견딜 수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깨달은 말씀을 전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깊은 교류를 통해 선지자적 영감을 경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꿈이나 무아지경의 환상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과 신령한 감동을 통한 깨달음이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종은 하나님께서 자기 귀를 여셨으므로 거역하지도 않으며 뒤로 물러나지도 않으며 자기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해도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5-6절). 종은 이스라엘과 달리 하나님 말씀이면 무엇이든지 순종하는 모습을 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그 지시하신 길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 죄수를 때리는 자들에게 맡기고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기고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해도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핍박과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길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 고난을 받아 들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난을 자청한다는 것입니다 (마26:39).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11 보라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걸어가며 너희가 피운 횃불 가운데로 걸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

 

  종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우시므로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기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안다고 했습니다 (7절). 종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므로 모욕을 당하는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무죄함을 선언하시므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실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종은 자기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게시니 자기와 다툴 자가 누구이며 자기를 대적할 자가 누구냐고 했습니다. 있으면 가까이 와서 함께 서라고 했습니다 (8절). 하나님께서 무죄와 의로움을 인정하고 드러내실 것이니 누가 자기를 대적하여 기소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우실 것이니 자기를 정죄할 자가 누구냐고 하면서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9절).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고 판결하시면 우가 정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종을 핍박하고 모욕하고 수치를 주는 대적들은 종이 불의하다고 판단해서 그같은 행동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종을 의롭게 인정하시고 종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그를 참소했던 대적들을 망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옷이 해어지고 좀에게 먹힌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진행되는 쇠퇴 과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처럼 종의 무죄함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고난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고난임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그의 고난이 자기 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면 대속의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52:13~53:12, 벧전2:21-24).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고 하면서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10절). 화자가 종에서 선지자가 하나님 백성에게 하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에서 '종'은 이사야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선지자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도 앞에서 언급한 종(메시야가 고난을 받은 것처럼 흑암 가운데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의뢰하라는 것입니다. '이름'은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이 반영된 칭호입니다. 선지자는 또 보라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는 다 그 불꽃 가운데로 걸어가며 피운 횃불 가운데로 걸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얻을 것이 이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고 했습니다 (11절).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는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로서 이방 주술과 같은 영적 흑암 가운데서 빛을 찾아보려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자는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結言>

  종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여 대적들이 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8:31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고난을 달게 받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