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言>
본 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는 자들을 향해 격려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소망을 잃은 성도들이 지금 비록 흑암 중에 거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을 지킨다면 반드시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역설합니다. 내용구조는 영원한 의의 구원(1-8절), 이스라엘의 탄원과 응답(9-23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영원한 의의 구원 (1-8절)
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로 돌아간 것 같은 상황과 하나님의 약속이 지연되는 것 같은 상황은 시련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위로의 메세지를 들려 주십니다. 의를 따르며 하나님을 찾아 구하는 자들에게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1절).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 생활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귀환을 고대하던 '남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예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큰 바위에서 돌을 떠 내고 땅에서 흙을 파 냅니다. 그 돌을 떠낸 바위는 움푹 패였고 흙을 파낸 땅도 움푹 패였습니다. 그 움푹 패인 바위와 땅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조상에게서 떨어져 나온 자들로서 후손들을 있게 한 조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 조상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연두에 둔 표현입니다. 그래서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2절).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부르시고 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약속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믿었고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창12:1-3, 13:16-17, 15:5-7, 17:5-8 등). 이제 바벨론에 사로 잡힌 자들을 귀환시켜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이스라엘을 번영케 할 것이라는 약속도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의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하나님의 동산 같게 했느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예루살렘이 폐허 상태가 되었을지라도 에덴 동산처럼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들어 (창2:8-9) 감사와 기쁨과 찬송이 넘치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적인 이스라엘을 귀환시켜 하나님 나라를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이 하나님께로부터 나가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울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4절). '율법'과 '공의'는 평행을 이룬 말로서 하나님의 법칙과 원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법을 만민에게 드러내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가깝고 하나님의 구원이 나갔은즉 하나님의 팔이 만민을 심판하므로 섬들이 하나님을 앙망하여 하나님의 팔을 의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5절). 하나님의 공의의 현시로 구원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을 받아 들이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은혜로 나타나지만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만민에게까지 나타나 온 세상에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하나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6절).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 하늘과 땅이 사라지더라도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은 영원히 있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는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마24:35).
하나님의 의를 아는 자들 하나님의 율법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 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했습니다 (7절). 하나님의 법을 따라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로 결단한 자들은 타락한 세상과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자들을 싫어하고 비방하고 대적하기까지 합니다. 죄악된 세상의 조롱과 증오에 직면할 때 놀라거나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좀이 옷 같이 그들을 먹을 것이고 좀 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하나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8절). 그들은 좀이 옷을 먹어 해어지게 한 것이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잠깐 득세하는 것 같아도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이 영원할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13:41-43).
이 말씀들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과 회복에 관한 것이지만 신약시대와 종말에 해당된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도 개별적으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옳게 살아가려 한다면 핍박이 있을 것인데 그럴 때에 놀라거나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41:10).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은 영원합니다.
2. 이스라엘의 탄원과 응답 (9-23절)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하나님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이스라엘 백성의 신실한 남은 자에 대한 약속을 한 바 있습니다 (1-8절). 이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어 그 약속들이 신속히 이루주실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팔이 깨어 능력을 베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9절上). '팔'은 힘을 상징하는 바 '능력'과 동의어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 믿는데 눈 앞에 펼쳐진 갑갑한 현실을 탄식하면서 하나님이 능력으로 개입해 주시기를 호소하는 것입니다.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해 달라고 했습니다.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도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는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9-10절). 과거에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신 출애굽 사건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라합'과 '용'바다에 살고 있는 괴물에 대한 표현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다에도 신이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신을 메소포타미아(바벨론)인들은 '티아맛'(Tiamat)이라 했고 그리스인(헬라)들은 '포세이돈'(Poseidon)이라 했고 로마인들은 '넵튠'(Neptune)이라 했고 유대인(히브리)들은 '얌'(Yam)이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얌'을 용, 악어, 리워야단, 라합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겔29:3, 욥26:12, 시74:13, 148:7, 사27:1, 30:7, 51:9). 이사야는 그들의 신화적 관념을 문학적 이미지로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 바다를 주관하는 신들을 제압하고 바다를 가르는 능력을 보이셨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리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라고 했습니다 (11절). 이제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는 언약 백성들도 하나님이 능력으로 돌아오게 해 주셔서 슬픔과 탄식이 아주 달아나고 기쁨이 영원하게 해 달라는 호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을 위로하는 자는 자신이라고 하면서 그들은 어떤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 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 하느냐고 했습니다 (12절). 크신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만이 진정 언약 백성의 위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에게 위로와 생명과 소망을 줄 자는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도대체 어떤 자들이기에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죽을 인생을 두려워 하느냐는 것입니다 (잠27:24, 시23:4). 어찌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지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느냐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멸하려 준비하는 학대자의 분노를 항상 종일 두려워 하느냐고 했습니다 (13절). 하나님을 잊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약해지면 조급해지고 두려워 하게 됩니다. 능력으로 천지와 인간 특히 언약 백성을 친히 지으신 하나님,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현재에 암담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담대하게 됩니다. 하나님 백성을 대적하여 핍박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않을 것이며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않을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4절). 압제자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방치해 두지 않고 건져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포로들은 땅을 파서 만든 지하 감옥에 감금되어 그 곳에서 죽기도 하고 굶기도 합니다. 바벨론에 사로 잡혀 간 자들이 지하 감옥 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바벨론 포로 생활 자체를 지하감옥 생활에 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15절). '여호와'(יהוה)는 존재와 관련하여 스스로 있는 자이고 능력과 관련하여 전능한 자이고 약속과 관련하여 변하지 않는 자임을 나타내는 명칭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나님 말을 이스라엘 백성의 입에 두고 하나님 손 그늘로 종을 덮었으니 이는 하나님이 하늘을 펴며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16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백성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암담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과 번영에 대해 회의를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 땐 환경과 사람을 두려워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생각해야 하고 과거에 행하신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지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번영케 해 주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로마서8:35,38-39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네가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닥쳤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누가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네가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에게 네가 네 허리를 땅과 같게, 길거리와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을 때 선지자는 하나님이 속히 개입해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깨시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깨어야 할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언약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은 깨어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다고 했습니다 (17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진노의 큰 잔을 다 마셔 비틀걸음을 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성이 함락되고 성전이 불타고 모든 보물을 빼앗기고 거민들은 사로잡혀 가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 상태를 마치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그를 인도할 자가 없고 그가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그를 이끌 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18절). 술 취해 비틀거리는 어머니를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가는 이미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예루살렘의 황폐와 거민의 포로 잡혀 간 상태에서 회복시킬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이 닥쳤으니 누가 그를 위해 슬퍼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곧 황폐와 멸망이며 기근과 칼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위로하겠느냐고 했습니다 (19절). '이 두 가지 일'은 황폐와 멸망, 기근과 칼(전쟁)을 말합니다. 그런 처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위로해 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었으니 그들에게 하나님의 분노와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20절). 하나님의 진노로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영양 떼가 그물에 걸려 발버둥치다가 탈진하여 자빠져 있는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는 이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21절).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들으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곧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자기의 분노의 큰 잔을 그들의 손에서 거두어서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2절). '네 주 여호와'는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적 신실하심을 보였던 하나님, 대적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신 하나님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바벨론 포로의 시련을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잔을 그들을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일찍이 그들에게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넘어가려는 자들에게 그들이 그들 허리를 땅과 같게 길거리와 같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23절). 이스라엘 백성이 마셨던 잔을 대적들에게 마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재난을 대적들이 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대적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엎드리라고 해서 땅이나 길거리처럼 밟고 지나갔는데 이제 그들에게 패배를 경험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대적이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 가운데서 구원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고 오랫동안 고통을 당할 때 진정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실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릴 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절대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結言>
사람은 누구를 사랑해도 능력이 없어서 도와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전능자이기 때문에 원하시면 언제나 위경에서 건져 주실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과거에 어떻게 행하셨는지 생각하고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절망적인 상황에서 건져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