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言>
본 장은 앞 장에 이어지는 응답 형식으로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으며 말미에는 종의 사역을 짧게 첨부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하나님의 세번째 응답(1-10절), 임박한 출발 명령(11-12절), 종의 독특한 사역(13-15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하나님의 세번째 응답 (1-10절)
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2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시온 곧 거룩한 예루살렘성은 깨어 힘을 내고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들어옴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절). '시온'과 '예루살렘'은 동의어로서 언약 백성에 대한 대표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메세지에 합당한 반응을 일으켜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기쁨과 번영이 있게 할 것이고 자시는 이방 군대가 침략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티끌을 털어 버려 일어나 앉으라고 했고 사로잡힌 딸 시온은 목의 줄을 스스로 풀라고 했습니다 (2절). 하나님의 계획은 언약 백성의 바벨론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회복이지만 하나님의 개입에 언약 백성이 합당한 반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저 앉았던 곳에서 스스로 일어나 티끌을 털고 목 불을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스스로 귀환과 회복을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표적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 백성에게 합당한 반응을 요구하십니다.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표적을 일으킨 것을 보아도 먼저 예수님이 자신을 계시하기 위한 의지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목적을 이루기에 합당한 신앙적 반응을 일으킨 자를 표적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서 구하기만 하지 말고 우리 자신이 바로 서야 할 바를 바로 서고 가져야 할 바를 바로 가져야 합니다. 중생과 칭의와 구원 등은 성령의 단독적인 역사로 이루어지지만 성화와 사역은 우리의 협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에 합당한 믿음의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4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5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하나님은 언약 백성이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팔린다는 것은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는 말이며 속량한다는 말은 소유권을 다시 찾아옵니다. 일반적으로 돈을 받고 소유권을 넘기고 다시 찾아올 때는 돈을 주고 찾아옵니다. 하지만 돈을 받지 않고 넘겼기 때문에 돈을 주지 않고 되찾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제국에 넘길 때는 어떤 대가를 받고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가를 주지 않고도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했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했다고 했습니다 (4절). 언약 백성이 값없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 유사한 예들을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 처음에 야곱과 그 후손이 애굽으로 이주해서 값없이 노예생활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값없이 그들을 출애굽시켰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북이스라엘 사마리아를 앗수르 제국에 붙였는데 앗수르 왕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소유주인양 행사하다가 결국 남유다 예루살렘까지 치려다가 패퇴하여 멸망당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값없이 맡겼는데 값을 받으려 하다가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이 까닭없이 잡혀 갔으니 하나님이 여기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하나님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힌다고 했습니다 (5절). 남유다 예루살렘 백성들도 값없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으니 마땅히 값없이 돌아오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방의 압제를 받는 이스라엘의 관원들이 슬픔의 비명을 지른다는 것입니다. 이방의 압제에 시달리는 언약 백성의 모습을 보면서 세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여 조롱했을 것입니다. 고통 중에 부르짖는 언약 백성의 관원들의 비참한 광경은 세인들의 눈에 마치 여호와 신앙의 실패를 자인하며 원통해 하는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는 그들이 말을 하는 자가 하나님인 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여기있느니라'고 했습니다 (6절).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그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시려는 목적은 부분적으로 보면 언약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회개시키기 위함이었고 연단시켜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하는 자격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좀더 큰 목적은 하나님이 세상의 존재에서 주관자이며 능력에서 전능자이며 언약에서 불변자임을 계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구원을 받으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경험을 통해 확실히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과 영예와 영광을 지키시고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해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유다) 백성을 구원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한 것을 구약의 전쟁상황 이미지로 묘사했습니다. 성 안의 거민들은 대적과 싸우러 간 군대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대적과 싸우러 간 군대가 패배하면 성 안의 사람들도 파멸하게 되고 승리하면 성 안의 사람들도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멀리서 전령이 승리의 소식을 가지고 산을 넘어 달려옵니다. 파수꾼들은 그 모습을 가장 먼저 보고 즐거워 하며 온 성에 그 소식을 전합니다. 그 때 그 승리의 소식을 가지고 삼을 넘어오는 발은 정말로 아름답고 귀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좋은 소식, 평화, 복된 좋은 소식, 구원을 가져와 예루살렘 성을 향해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고 공포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답냐고 했습니다 (7절). 하나님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복된(בשר) 좋은(טוב) 평화의(שלום) 구원의(ישועה)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언약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구원하고 통치하신다는 것처럼 좋은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파수꾼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보리라고 했습니다 (8절). 파수꾼들은 전령의 달려오는 모습을 제일 먼저 보고 전쟁 결과의 메세지가 어떠한 것일지 짐작하고 가장 먼저 환호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40:3,9-10). 전령의 눈은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올 곳을 확신하게 하고 그것은 하나님이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돌아오는 하나님과 파수꾼들과의 눈이 마주친다는 것은 파수꾼들이 승리의 메세지를 가져오는 전령과 눈이 마주치므로 승리의 확신을 가진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올 것을 예견하여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은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9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이 전령과 파수꾼들의 즐거운 외침에 동참하도록 초청을 받았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때 성곽과 왕궁과 성전이 불탔고 황폐화된 채로 방치되었습니다 (왕하25:9).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고 예루살렘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것이니 그 기쁨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10절).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을 온 열방이 다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귀환시키고 예루살렘성을 회복시키므로 온 열방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사역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의 대속 사역을 통해 택함 받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실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평안과 좋은 소식이 전해지므로 온 세상에서 택함 받은 백성들이 즐거워 하게 될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마10:1-7, 롬10:15).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도 전령의 모습과 눈, 하나님의 눈을 보고 즐거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승리하고 돌아오실 것,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통치하실 것을 바라보고 즐거워 해야 합니다.
2. 임박한 출발 명령 (11-12절)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
언약 백성은 바벨론에서 떠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고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은 스스로 정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언약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때가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언약 백성은 바벨론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우상과 풍속과 습관에 젖은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기구를 멘 자들은 스스로 정결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가져가 자신의 축제 때 사용했는데 이제 그 성전 기구들을 함께 가지고 나올 것이기 때문에 성전기구를 멘 자들은 정결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벨론에서 구원될 때가 확실히 오며 그 때가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그 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 표현입니다. 그 때에는 여호와께서 언약 백성 앞에서 행하시며 뒤에서 호위하실 것이니 황급히 나오거나 도망하듯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2절). 바벨론에서 나올 때 앞 길을 인도하고 뒤에서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서 황급히 도망치듯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죄와 형벌에서 구원하실 그를 믿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나아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을 예언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죄와 세상을 떠나 나오고 정결케 하라고 한 것은 그 일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시사하는 표현입니다. 오늘날 개별적으로 세상 가운데 억눌려 사는 우리도 날마다 세상을 떠나 하나님이 원하는 상태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실 때 나와야 합니다. 기회는 하나님이 조성해 주시지만 나오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스스로 정결케 하고 나와야 합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실패를 경험한 후 하나님의 만났던 벧엘로 올라갔고, 올라갈 때에 우상과 세속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올라갔습니다 (창35:1-5). 그럴 때에 하나님이 주변 족속들에게 두려움을 가지게 하여 야곱 족속을 뒤쫓지 못하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6:17-17에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18:2,4에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3. 종의 독특한 사역 (13-15절)
1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42:1에서처럼 하나님은 종에 대해 다시금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13절). '형통하리니'의 기본형 '사칼'(שכל)은 '신중하다' '숙고하다' '현명하다' '성공하다' 등의 뜻입니다. 종은 자신이 부름받은 목적과 수행해야 할 사명을 정확히 알고 그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높이 들려서 존귀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들림받는 것은 하나님 백성을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게 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받으신 대속적 수난과 죽음을 말합니다. 전에는 그의 모양과 모습이 다른 사람들보다 상했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해 놀랐다고 했습니다 (14절). 종의 모습이 너무 상하여 사람의 모습이 아닐 정도로 되었기 때문에 놀란 것입니다.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할 것이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고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5절). 종의 사역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열왕들이 놀라 입을 다문다는 것입니다. 종의 사역의 내용과 방법과 결과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것으로서 열왕들이 깨달아 놀란다는 것입니다.
종에 대한 예언은 오실 그리스도를 염두에 둔 예언입니다. 그는 들림받아 존귀하게 될 것이고 그의 대속 사역으로 온 세상의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것임을 암시적으로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구원자로서 대속의 죽음으로 하나님 백성에게 죄사와 구원과 영생을 줄 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3:14-15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인자(人子)는 구약에서 오시리라 약속한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인 '그 사람의 아들'(ο υιοs του ανθρωπου; the Son of Man)입니다 (창28:10-14, 삼하7:12-14, 겔1:26-28, 단7:13-14). 예수님은 자신이 대속을 위한 십자가 죽음이 지표면에서 들림받는 동시에 그것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임이 증명되는 것일 뿐 아니라 높임을 받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2:9-11에서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結言>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과 원하시는 사역을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 내용이 손해와 고난과 희생이 요구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신중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로 높아지는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다 보면 낮아질 수 있으나 하나님이 높여 놓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