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序言>  

  53장은 종의 구속사역을, 54장은 구속사역을 근거로 회복될 이스라엘의 영광을, 55장은 구원으로의 초청을 다루었고, 본 장은 구원받은 대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기자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구원의 여러 가지 측면을 다각적으로 드러내며 궁극적으로 이방인의 구원을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10:11-13). 내용구조는 구원의 도래에 따른 인간의 반응(1-2절), 구원의 우주적 성격(3-8절), 불의한 지도자들의 실상(9-12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구원의 도래에 따른 인간의 반응 (1-2절)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고 했습니다 (1절). 하나님이 구원과 공의를 베풀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은 정의와 의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정의'과 '의'는 자주 짝을 이루어 나타나는데 그 뜻을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구분한다면 '의'(צדקה)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올바른 원칙을 뜻하고 '정의'(משפט)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올바른 원칙의 구체적인 적용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 백성에게 구원을 베풀어 하나님의 의로움을 드러낼 때가 가까울수록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베푸실 구원을 얻기 위해 구원의 조건으로서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대상자들의 당연한 반응으로서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바벨론에서 구원에 대한 당연한 반응으로 요구된 것이고 멀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에 대한 반응으로 요구된 것이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이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했습니다 (마3:1-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으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 그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2절). 1절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를 나타낼 때가 가까울수록 정의와 의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원칙 곧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복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지키는 것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악행을 근절하려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안식일 준수로 들고 있습니다. 둘째는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20:8-10).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념하는 날로서(출20:11) 안식일은 일주일 중 7일째되는 날(토요일, 정확히 말하면 금요일 저녁 해잘 때부터 다음날 토요일 해질 때까지)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언약적 표징입니다. 출애굽기31:13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적 관계에 속한 자인 증거였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도 유대인들의 신앙에 합류하려면 안식일 준수해야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에 참여할 자라는 표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서 일주일 중 첫째 날(월요일)입니다.


  우리에게 안식교로 알려진 '제 칠일 안식일 재림교회(화이트)'에서는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근 우리 나라에 '신천지교회(이만희)'와 함께 극성인 '하나님의 교회'(장길자)에서도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 증인회'라고도 합니다. 안상홍은 안식교에서 나와 자신을 보혜사 성령님이라고 주장했고 1985년에 죽었습니다. 그 후 그의 네번째 아내였던 장길자가 안상홍은 남자 하나님이었고 자신은 여자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일곱째 날인 안식일이 아니라 첫째날인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에는 문자적 진술로 일요일(첫째날)로 바꾸어 지키라는 구절이 없지만 역사적 섭리로 날짜를 바꾸어 지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첫째, 성경의 약속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전의 계명을 폐하고 다른 날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호2:11, 히4:7, 7:18-19). 둘째,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본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친히 주일에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일요일인 주일을 구속사(救贖史)의 중심으로 여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일은 예수님께서 주일에 부활하신 날입니다 (마28:1-6). '안식 후 첫날'은 토요일인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인 주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일은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입니다 (행2:1-4).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했는데 오순절은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고 유월절 다음날로부터 하면 49일째 되는 날입니다. 유월절이 안식일로서 토요일이니 유월절 다음날은 일요일인 주일입니다. 그 날로부터 49일째인 오순절도 일요일인 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일에 계시를 주셨습니다 (계1:10). '주의 날'은 일요일인 주일을 말합니다. 셋째, 사도들이 모범을 보였습니다. 예수님 제자였던 초대교회 사도들도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를 느끼고 일요일인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행20:7, 고전16:2, 요19:20-25). 사도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것은 당시 유대교인들이었던 유대인들이 토요일인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 때 회당에 들어간 것이지 토요일인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회당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넷째, 교부들도 모범을 보였습니다. 'The Ante-Nicence Fathers'(교부시대부터 AD325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를 보면 사도들의 제자들이었던 교부들도 토요일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요일인 주일을 지켰습니다. 1세기 말경 안디옥 교회 감독이었던 교부 신학자 익나티우스(Ignatius, A.D. 35-107년 경)이 주장했고, 2세기 후반 고린도교회 감독이었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A.D. 170년 경)은 그의 편지에서 주의 날을 지켰다고 했고, 3세기 초 교부 신학자 터툴리안(Tertullian, A.D.150-220년 경)은 주의 날을 지키기 위해 일상적인 일을 중단한 크리스찬도 있다고 했습니다. 4세기 초 321년에 로마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주일을 지키는 것을 돕기 위해 일요일을 공식적인 휴일로 선포했습니다.


  구약시대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자기를 위한 일을 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육신도 일주일 중 하루는 쉬어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하는 생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일주일을 7일 주기에서 10일 주기로 바꾸었다가 여러 차례 실패했습니다. 근대에 프랑스가 1793년에, 러시아가 1929년에 7일 주기를 10일 주기로 변경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7일 주기로 돌아갔습니다. 일 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마음도 회복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주일에 하루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를 되새기고 하나님께 소망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공동체에 대한 정체성과 비전을 확인하고 성도들을 위로와 격려와 축복을 하면서 교제하고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통해 힘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구약의 안식일 준수 명령이 신약에는 주일 성수 명령으로 바뀌어서 날자는 바뀌었지만 의미는 같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증거였던 것처럼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예수 믿는 자인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는 주일을 지키는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이 언약적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대속으로 구원해 주신 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자임에 대한 표인 것입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자가 예수님께 속한 자로서 복있는 자인 것입니다.

 


          2. 구원의 우주적 성격 (3-8절)

 

  3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하나님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 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절). '하나님께 연합한 이방인'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진 개종한 자로서 유다 백성과 함께 거주했던 외국인을 말합니다 (민15:13-16). 이들은 이방인이지만 악한 길과 악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참 신앙을 가질 자들입니다 (55:6-7). 이방인은 원래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신23:1-8). '고자'는 생식 기능이 마비된 남자로서, 이들 역시도 이스라엘 회중에 들어올 수 없어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신23:2).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 중에서 갈라 내시리라고 말하지 말고 마른 막대기라고 말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인이나 고자라도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신앙을 가진 자는 언약 백성에 편입시키고 언약적 계대를 이어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에 참여하는 것은 혈통과 신분과 능력 등의 외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소유한 여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여 다윗을 거쳐 예수님에 이르는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언약한 계대였습니다 (창12,13,15,17,22장, 3:16). 그런데 마태복음1:3-6에 보면 여인 4사람이 나와 있습니다. 다말과 라합과 룻과 밧세바(우리야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밧세바를 제외한 다말과 라합과 룻은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룻을 제외한 다말과 라합과 밧세바는 수치스러운 죄인들이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여자와 이방인과 죄인은 족보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언약적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가졌고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38:1-30, 수2:1-24, 6:17, 룻1:4-22, 4:21-22, 삼하11:1-27). 성경은 그들이 윤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약적 신앙을 가진 것을 보고 언약적 혹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6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8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4-5절). '고자'는 생식 능력을 상실한 남자로서 대를 이을 수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 총회에 들 수가 없었고 당연히 언약적 계대에 참여할 수 가 없었습니다. '집'은 성전을 의미합니다. 고자는 성전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고 성 안에서도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자라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특히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는 일 그 중에서도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집과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영원한 이름을 준다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계명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된 표징이었습니다 (출31:13).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여 그의 언약적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녀가 있는 자들보다 더 존중받고 영원히 기억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하나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서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6-7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종이 되려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신앙을 보인 자들로서 그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의 안식일 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방인'들도 앞 절에서 언급한 고자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계대에 참여할 수 없고 성전에도 들어갈 수 없고 제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이라 해도 개종하여 하나님 대한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쓰임 받기를 소망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임재하신 시온산(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고 그 제사를 받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만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들어가 기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솔로몬 왕이 성전 봉헌식에서 한 기도의 성취입니다 (왕상8:41-43). 그리고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하나님이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8절). 하나님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이스라엘 백성만 예루살렘으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모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고자와 이방인에 관한 말씀은 바벨론 포로 귀환 때에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으로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구원을 위함이든 사역을 위함이든 차별이 없습니다 (롬3:22, 10:12, 고전1:26). 민족과 신분과 지위와 학벌과 능력과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진실히 사랑하고 그 증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들을 구원하여 구원사적 사역에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와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합니다. 그 영예를 세상에 어떤 사람들보다 가치있고 존중받고 영원하게 하십니다.  

 


          3. 불의한 지도자들의 실상 (9-12절)

 

  9 들의 모든 짐승들아 숲 가운데의 모든 짐승들아 와서 먹으라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들과 숲에 있는 모든 짐승들은 와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9절). 고대 근동에서는 야생동물 출현이 잦았고 그것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삼상17:34-35, 삿14:5-6). 하나님이 삼림의 짐승들을 부르는 것은 이방 바벨론 군대를 부를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징계하기 위함입니다 (렘12:7-9, 겔34:5).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으로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로서 누워 있는 자들이고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10절). '파수꾼들'은 선지자들을 가리키되 모든 지도자들을 포함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맹인이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의 역할은 성의 높은 망대에 올라가 감시하다가 적군의 침입을 감지하여 나팔을 불어 알리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적군의 침입을 빨리 간파하고 알려야 파수꾼이 소경이라면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백성들에게 알려야 할 선지자들이 무지하여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가 영적 소경이니 백성들도 영적으로 무지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벙어리 개라고 했습니다. 개의 역할은 목자가 양을 칠 때에 들짐승이나 도적이 접근하면 짖어서 알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꿈꾸고 누워 있고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는 성을 지키는 파수꾼 같이, 양을 지키는 사냥개 같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게을러서 자기 안일주의에 빠져 사명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 알지 못하는 자들이고 몰지각한 목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오래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같이 크게 넘치리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11-12절). 고대 근동의 개들은 사육도 있었지만 주로 야생으로서 무리 지어 다니면서 무엇이든지 먹어 치웠습니다. 그 개들처럼 지도자들이 탐욕에 빠져 무엇이든지 족한 줄 알지 못하고 잡아 삼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릇된 목자는 양의 필요를 느끼지도 못하고 채워 주지도 못하고 자기 이익만 구합니다. 그처럼 지도자들이 백성들의 영적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각기 자기 이익에만 몰두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포도주와 독주에 취해 유흥과 쾌락과 연락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안일주의와 탐욕주의와 이기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백성들도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9:16에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도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15:14에는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눅6:39). 그러므로 지도자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백성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목회 지도자와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주님이 언제 오셔서 책망과 징계를 하실지 모릅니다. 요한계시록3:3에 보면 주님은 소아시아에 있던 사데교회에 대해"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結言>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언약백성을 바벨론에서 반드시 구원하고 번영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실한 신앙을 가진 이방인들까지도 불러들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 장 후반부에서는 언약 백성의 지도자들이 타락하여 모든 이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바벨론 군대를 불러들여 치게 한다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메세지로 회복과 번영을 확신시키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과 약속의 말씀대로 선한 목적을 이룬다고 해서 어떤 잘못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언약 백성도 잘못하면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7:14에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