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묘사하는 전 장에 이어서 본 장에서도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호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 장이 자신들의 현재의 상태를 긍휼히 여길 것을 바라는 기도인 반면 본 장에서는 과거의 상태를 돌아보며 용서를 바라는 간구가 들어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주의 강림을 구하는 기도(1-2절), 주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3-9절), 시온의 회복에 대한 호소(10-12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주의 강림을 구하는 기도 (1-2절)
선지자는 앞 장에서 현재의 상황의 암담함을 하나님께서 살펴 개입해 주실 것을 간구했었습니다 (63:15). 그 상황이 유다가 앗수르의 공격을 받은 직후 상황인지 앞으로 당할 바벨론 포로 상황인지 아니면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후의 상황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여간 선지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암담한 상황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개입으로 회복되게 해 달라는 간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상황에 직접 개입해 주실 것에 대해 더욱 열정적으로 호소하였습니다.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하늘을 가르고 강림해 주실 것을 구했습니다 (1절上).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구한 것입니다.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끊임 같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1-2절上). 하나님이 임하시므로 산들이 진동하고 불이 마른나무들을 사르고 물을 끓임 같이 하해 달라는 것입니다. 마치 화산 폭발을 연상케 하는 표현인데 하나님의 강한 임재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19:18, 시18:7, 왕상19:11, 미1:3-4). 이는 하나님의 임재에 강력함에 대한 표현이지만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강력함을 포함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2절下). '이름'(שם)은 본질, 성품, 명예, 평판 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강력한 위엄으로 임재하시고 강력한 개입으로 그것을 경험한 대적들이 하나님 앞에서 떨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여 일하실 때는 그 어떤 대적도 견딜 수 없습니다. 그 대적이 악령이든 사람이든 환경이든 간담이 녹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2:9,24).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의 개입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행동을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2. 주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 (3-9절)
3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하나님이 강림하여 생각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때에 산들이 진동했다고 했습니다 (3절).
출애굽 때에 홍해에서 하나님이 권능을 나타났습니다. 그 일은 이 세상 원리에 속하지 않은 초자연적 현상으로서 인간의 통제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고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는 하나님의 현현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는 산들도 진동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해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들은 자도 없고 본 자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4절). '앙망하는 자'는 약속을 신뢰하고 기대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물론 이교의 신화들에서도 초월적인 일을 행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처럼 실재 삶에서 경험하게 하신 이는 없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지기뿐 아니라 믿음의 선조들의 모든 경험을 종합 해본 결과 참 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자기들이 범죄하므로 하나님이 노하셨으며 그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으니 자기들이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5절). 하나님은 기쁘게 의를 행하고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십니다. 언약 백성답게 능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를 하나님이 만나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이 진노했다는 것입니다. 그 현상이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자기들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자기들은 다 잎사귀 같이 시드므로 자기들의 죄악이 바람같이 자기들을 몰아간다고 했습니다 (6절). 생각이 죄로 오염되었고 행위도 죄로 오염되어 아무리 의를 행한다 해도 그것조차도 더러운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마른 나무 가지에 시든 잎사귀가 바람에 떨어져 날려 가듯이 죄에 휘날려 가게 될 처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하나님을 붙잡는 자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자기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소멸되게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7절). 죄로 인해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려는 마음도 없고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려는 마음은 더욱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관심을 거두시고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들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은 진흙이고 하나님은 토기장이니 자기들은 주의 손으로 지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8절). 토기장이 비유는 진흙은 토기장이가 귀중히 여기는 대상이라는 점과 진흙의 운명이 토기장이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점과 토기장이는 진흙의 연약함에 대해 다 아는 존재라는 점이 다 들어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가장 귀히 여기는 존재입니다. 토기장이는 자신이 어떤 토기를 만들어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그에 맞는 가장 좋은 진흙을 구합니다. 그 진흙을 누구보다도 귀히 여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와 선택과 구원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존귀히 여기는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어떤 토기를 만들지 결정합니다. 만든 토기를 쓸 수도 있고 보릴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결정에 따라 운명이 정해집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의 연약한 점은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진흙은 토기장이가 어떤 토기를 만들려는 지에 따라 선택하고 만듭니다. 그러기에 토기장이는 그 토기의 재료도 잘 알고 있고 그 재료의 약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기능에 맞지 않는 다른 부분에서는 어떤 약점을 드러내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토기를 사용할 사람에게 어떤 점은 조심하라고 주의를 줍니다. 우리가 어떤 공구나 물품이나 약을 샀을 때 보면 그 목적에 사용하기에는 가장 좋은 물품이라 할지라도 다른 부분에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의할 사항'이 필히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목적을 두고 선택했지만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압니다. 이 호소는 자기들의 범죄와 타락한 상태를 보면 하나님이 아주 떠나 구해주지 않아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자들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자들이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너무 분노하지 마시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은 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9절). 하나님께서 특별한 언약 관계를 생각하여 죄대로 분노하지 마시고 긍휼을 베풀어 용서해 달라는 호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을 상기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한 자기들에 대해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것은 당연하고 자기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생각하여 긍휼을 베풀어 용서하시고 상황에 개입하여 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언약관계를 근거하여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제사장적 목적을 가지고 선택하여 구원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나타내야 할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면 살고 죽게 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면 성공하고 쓰지 않으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무지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매 순간 붙들어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위로가 없으면 스스로는 일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 곧 아브라함, 모세, 요나, 엘리야, 베드로 등도 자기 스스로 자기 힘으로 하려 하다가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약점을 아시고 그들이 얼마나 힘들지 아시고 그들을 찾아가 위로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힘든 사건을 당할 때마다 찾아가 언약적 목적을 확인시켜 주며 위로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찾아가 위로하여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과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들을 근거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위로를 간구해야 합니다.
3. 시온의 회복에 대한 호소 (10-12절)
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11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고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에 황폐하였다고 했습니다 (10절). 예루살렘과 온 유다가 황폐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다고 했습니다 (11절).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이 불에 타고 도성과 가옥과 전토가 황폐해졌다는 것입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고 계시려 하냐고 했습니다. 아직도 잠잠하여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느냐고 했습니다 (12절).
<結言>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범죄하므로 이방 백성에게 유린하여 예루살렘과 유다 전역이 황폐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회복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암울한 고통의 상황에 개입하여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회복될 수 없는 줄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