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출애굽기23:1-33
<題目> 재판,안식,절기 등에 관한 법
<序言>
전 장에서 생활규범에 따른 각종 규례들이 언급되어 있었는데 본 장에서도 계속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 규례들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비현실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의 실 생활과는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율법의 조항들 자체보다는 그 정신과 의미들을 보고 우리에게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본 장의 내용 구조는 법정 문제에 관한 규례들 (1-9절), 확대된 안식일 (10-13절), 새로운 신앙문화 (14-19절), 하나님의 사자 (20-23절), 축복의 조건 (24-33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법정 문제에 관한 규례들 (1-9절)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힘은 혈연이나 정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공동체의 성장은 서로에 대한 신뢰 증가입니다. 그것은 진실과 책임입니다. 우리는 흔히 진실에 대해 말할 때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진실과 정직은 그것이 아닙니다. 속에 있는 것을 여과없이 그대로 털어놓는 것은 더러운 죄성을 배설하는 행동입니다. 진실은 진리를 알아 감에 따라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는 노력 속에서 서로 이해하고 책임지는 능력입니다.
1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4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7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①풍속을 퍼뜨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풍속을 퍼뜨리지 말고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1절). 다른 사람을 모독하는 떠돌아 다니는 말은 악인들에게서 시작됩니다. 의도되었든지 의도되지 않았든지 다른 사람을 정죄하여 망하게 하고 자기를 높이려는 사람들 속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허망한 풍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그대로 믿거나 옮겨 전파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람을 매장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억울하게 될 때 공범이 되고 맙니다. 진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루머가 사탄에게서 시작되거나 악인의 목적있는 의도에서 시작되거나 죄성에 의해 시작된 것임을 알고 믿지 않습니다 (요8:44, 잠26:22, 18:8). 그 루머가 얼마나 치명적으로 고통스럽게 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알고 적극적으로 진압합니다. 그것을 들으려고 하거나 퍼트리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②다수를 따라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다수의 의사라 해도 부정한 일에나 악한 일에는 동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수의 분위기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해서는 안됩니다 (2절). 민주주의 의사 결정은 항상 다수결 원칙입니다. 장로교회에서도 의사 결정을 다수결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보편적인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에 채택한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의견을 나눔으로서 한 두 사람의 주관적인 성급한 결정, 개인의 독선에 의한 결정,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결정이 걸러지고 보편 타당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각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섭리, 주장하시는지 확인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믿음으로 행하지 않을 때는 다수의 담합으로 사람보기에도 보편 타당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과도 다른 방향으로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아무리 많은 사람이 결정을 해도 성경말씀과 신앙양심에 합당하지 않는 것은 따르지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뜻은 항상 다수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주장해도 그 내용이 성경과 신앙양심에 맞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하는 것이 씨족이나 혈통이나 절친 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온 정과 관계성이 있어서 그 다수가 진리에 서지 않을 때 진리에 서는 진실을 택하게 되면 그 집단에 손해가 오고 자기에게도 불이익이 올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진리의 말씀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서야 합니다 (마5:37). 기생 라합처럼 하나님 앞에 옳은 편을 선택해야 합니다 (수2:1-12). 베드로처럼 사람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행4:19-20). 바울처럼 범사에 신앙양심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행23:1).
③감정으로 치우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법정에서 가난한 자라고 해서 불쌍한 마음 때문에 그를 판벽되게 두둔하면 안됩니다. 재판에서 가난한 자라고 해서 판결을 잘못해서도 안됩니다 (3,6절). 부자와 가난한 자를 송사하거나 판결할 때 공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 유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은 것을 보면 그 사람에게 찾아 주라고 했습니다.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지는 것을 보면 도와서 짐을 부려 주라고 했습니다 (4-5절). 자기에게 잘못해준 사람에 대한 미운 감정 때문에 자기의 행동이 잘못 결정되면 안됩니다. 또 좋은 감정 때문에 자기의 행동이 잘못 결정되어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뇌물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뇌물은 눈을 어둡게 하고 말을 굽게 합니다 (5절). 미운 사람에 대해 유익한 결정을 하기가 힘들고 좋은 사람에 대해 나쁜 결정을 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감정에 치우치면 안됩니다. 사실을 바로 보고 바로 결정하고 분명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자와 가난한자, 사랑하는 자와 미워하는 자, 냉담한 자와 뇌물을 준 자에 대해 공정하게 그리해야 합니다. 사사로운 감정과 주관적인 생각에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어떻게 보이겠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다니엘5:25-28에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고 했습니다.
2. 확대된 안식일 (10-13절)
10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12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13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
안식일이 지켜지고 있는 가운데 안식년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일곱째 날인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않고 쉬어야 했습니다. 일곱째 해인 안식년에는 농사를 하지 않고 쉬어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강조된 것은 안식일에 자식과 종과 나그네와 소와 나귀가 쉬고 숨을 돌리는데 두었습니다. 안식년에 농사하지 않는 것도 저절로 난 식물을 가난한 자들을 먹게 하는데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것을 들짐승도 먹게 하는데 두었습니다. 귀한 포도원이나 감람원이라도 그렇게 해서 가난한 자들도 삶을 누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은 안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기만 행복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행복도 생각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만 풍성이 먹고 다른 사람이 굶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다른 것입니다. 말세에 참된 경건은 환난 때에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입니다 (약1:17). 룻이 모압 지방에서 베들레헴에 와서 먹을 것이 없을 때 추수 밭에서 이삭을 주었는데 보아스가 이삭 줍는 룻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곡식을 한줌씩 흘려 버리라고 했습니다. 보아스는 가난하여 이삭을 줍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되 그들의 자존심까지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도운 것입니다 (룻2:16).
안식일에 대한 계명을 주신 근거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입니다 (출20:11).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념하고 하나님이 주신 안식에 참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신명기5:15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시켜 인도해낸 것을 기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노예가 된 상태였습니다. 이제 육체는 해방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정신은 여전히 노예상태에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줄 압니다. 무엇이든지 해야 편안하고 할 일이 없으면 흉내라도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 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왜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사는 줄 알고 있고 그것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의식에 얽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쉬어도 굶어 죽지 않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6년 동안 농사를 하고 7년째에 한 해 동안 농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50년째에 돌아오는 희년이 겹칠 때는 희년까지 농사를 쉬면 두 해 동안이나 농사를 쉬어야 합니다 (레25:11).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려면 하나님이 주권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이 인도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육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현대인들도 크리스챤이 된 다음에도 여전히 돈을 벌고 공부를 하는 것에 얽매야 삽니다. 어떤 목적도 비전도 없이 그것이 있어야 사는 줄 알고 그것 자체에만 얽매여 삽니다. 그 카테고리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4:4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에 대한 계명을 주신 또 하나의 이유는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실 참된 안식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골로새서2:14-17에서는 의문은 도말했다고 했습니다. 의식은 그림자로서 그 몸은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의 규례는 모조품이고 그 실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12:8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관한 계명이 자신을 통해 줄 참된 안식에 대한 지시라고 인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빛은 인식을 가능하게 하므로 평안을 제공합니다. 인간은 어둠 가운데 있었습니다. 인간이 죄와 고난과 죽음과 영원한 형벌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할 길을 알지 못해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므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그 길을 제시하고 그 길로 인도하시므로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 빛으로 오신 자라는 것을 계시하기 위해 여러 표적을 보였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연인과의 대화에서,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친 사건에서, 6장에 나오는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5,000명 이상을 먹이신 사건에서, 11장에 나오는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에서 알 수 있습니다. 표적을 행하시고 자신이 참 생명을 주는 자라는 선언했습니다. 안식은 구속사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주실 영적 평안과 안식을 예표하지만 종말적 의미까지 예표한 계명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만물의 구속과 몸의 구속으로 참된 안식이 완성되며 (롬9:19-23), 영원한 천국에서 그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계14:13, 7:15-17, 21:3-4).
3. 새로운 신앙문화 (14-19절)
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18 너는 네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
19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애굽의 풍속습관의 장신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에도 애굽과 같은 이교적 문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문화를 버리고 새로운 질서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매년 3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①유월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유월절은 무교절이 이어져 있습니다. 유월절(逾越節, passover, 히.페사흐)은 '면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12:13).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장자의 재앙에서 죽음의 사자가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넘어가므로 죽음의 재앙을 면제 받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시기는 정월 14일(민간력은 7월 14일)이고 그 다음날부터 일주일 동안은 무교절(無酵節)입니다. 방법은 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무교병(無酵餠)을 먹고, 쓴 나물을 먹고,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합니다 (출12:7-11, 레23:4-8).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된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형태로 지킨 것은 애굽에서 죽을 상황에 있었으나 양의 피로 죽음을 면제 받은 것, 애굽에서 종살이로 고통 중에 있었으나 거기에서 해방된 것, 거기에서 급하게 나오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자기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을 베푸셨는지를 생각하고 하나님이 구원하신 목적을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유월절 사건은 구속사적으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그를 통해 죄와 그 결과들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을 예표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속적인 문화와 문명 속에 살고 있지만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는지 하나님이 왜 구원을 했는지 그 목적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②맥추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맥추절은 칠칠절이라 하기도 하고 오순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맥추절(麥秋節, 하그 하카치르)은 첫 모맥을 수학하여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에 맥추절이라고 한 것입니다 (16절). 이 모맥은 밀을 말합니다. 한문을 보면 보리 추수와 관련된 절기 같지만 사실은 초실절이 보리 추수와 관련된 절기이고 맥추절은 소맥(밀) 추수와 관련된 절기입니다. 시기는 유월절 다음날로부터 7안식일(49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칠칠절(七七節, 히.솨브오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날은 유월절부터 5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순절(五旬節, 히. 솨비오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레23:15-21). 맥추절은 첫 모맥을 거두어 들이고 그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지켰는데 후에는 시내산 언약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율법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의미가 있었고 오순절 성령강림과 관련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는 방법은 자원하는 예물을 드립니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와 속죄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노동을 쉬고 성회로 모입니다. 이 날은 안식일이 아니더라도 쉽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맥추절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살 때에도 모맥을 주신 것 감사하는 동시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을 삼사하며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도 주신 물질에 대해 감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 주시고 성령 주신 것 감사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③수장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수장절(收藏節, fest of ingathering)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 때가 가을에 수확한 곡식을 저장해 두고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수장절은 초막절(草幕節)이라 하기도 하고 장막절(帳幕節)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초막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시기는 종교력으로 7월 15일(태양력으로는 10월)부터 일주일간입니다. 방법은 성회로 모이고, 7일 동안 화제(번제, 소제, 전제)를 드리고 7일 동안 초막(종려가지, 무성한가지, 시내버들)에 거하면서 즐거워 합니다 (출23:16, 34:22, 레23:33-44, 민29:13-16). 수장절은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의미와 같습니다. 수장절이 가나안 시대에는 하나님이 추수하여 저장하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는 동시에 광야에서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포로귀환기에는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해 주신 것 감사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아메리카까지 인도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의미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이 물질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 욕심대로가 아닐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딤전6:8, 살전5:18). 그리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것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앞으로도 인도해 주실 것을 감사하는 의미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롬5:3-5, 8:28, 30). 곧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사자 (20-23절)
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21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22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23 내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①사자를 보내어 보호해 준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위험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광야를 지내야 합니다. 광야는 물과 양식이 없는 곳이고 불뱀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에돔 족속과 아말렉 족속같은 자들의 공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곳은 기골이 장대한 7족속이 진을 치고 있는 곳입니다. 그들이 순수하게 땅을 내 놓지 않습니다. 그 부족들은 몇 백년 동안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거친 광야를 거쳐서 그 땅에 들어간다는 방상 자체가 정신 나간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자(使者)를 보내어 앞서가며 보호해 주시고 가나안 7족속을 멸절시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여 부르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과 영예를 위해 친히 돌봐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달라진 것이 없으나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호와의 사자가 항상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인 하나님이 세초부터 세말까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11:10-12, 14-15). 오늘날 우리가 어떤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단6:22, 행12:7-10, 합3:17-19, 시23:1-6).
②이스라엘 백성에게 청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를 청종하라고 했습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보호하고 대적을 물리쳐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이라는 조건절이 붙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준다는 약속이나 안식일에 관한 축복 약속이나 십일조에 대한 축복 약속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신11:8-9, 사58:13-14, 말3:10, 신28:1-7).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면 환난에서 지키시고 원수를 멸해주고 복을 주십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험과 환난과 대적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말씀을 거역하려는 기질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말씀에 붙들리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붙잡힙니다.
5. 축복의 조건 (24-33절)
①축복의 조건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24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하나님의 축복에는 항상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거나 우상숭배자들의 소위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긴다는 것은 모든 삶에서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존하고 순종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외부적 종교적 행위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66:2-3).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12:7).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갖고 있다고 해도 환경상 그들의 생활습관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고 그렇게 되면 그것이 올무가 되고 그들의 신을 숭배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다가 결국 가치관이 변하게 됩니다. 그들은 유랑민족으로서 목축을 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면 농사를 배워야 합니다. 기후, 경작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배우다 보면 농사와 기후에 얽힌 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제전의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가치관에 의해 생활방식이 결정되지만 생활방식에 의해 가치관이 바뀌기도 합니다.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환경도 같습니다. 명절, 사주, 택일, 작명 등이 그렇습니다. 교육방법이나 교육제도나 교육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적 가치관과 신념만 의존하지 말고 생활방식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 하지 말고 그들의 성공방법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새로운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②축복의 내용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27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으나 마실 것과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잠잘 곳과 농사할 곳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물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양식을 책임질 수 없는 기후입니다. 한 번 흉년이 들면 몇 년씩 비가 오지 않습니다. 질병(전염병)의 위험도 많습니다. 짐승들의 위험도 많습니다. 타민족들의 공격도 위협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복 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마실 것과 먹을 것과 농사할 땅과 잠잘 집과 자녀 출산과 이민족의 축출을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또 왕벌을 앞서 보내어 대적을 쫓아내어 준다고 했습니다. 신명기7:20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왕벌’은 사해 주변 사막을 비롯하여 팔레스틴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말벌(homet)을 가리킵니다. 이 왕벌이 상징하는 바에 대해서는 자연 재해들로 볼 수도 있고, 기적을 행하거나 전염병이 돌게 하거나 천사를 보내어 싸우게 하는 초자연적 역사들로 볼 수도 있고, 과거 출애굽 사건이나 헤스본왕 시혼과 바산왕 옥 정복 사건이 전해져 가지게 되는 공포심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수2:9,24). 어쩌면 왕벌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 민족들을 정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할 모든 요인들이나 수단들을 통틀어서 암시적으로 표현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곧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하나님의 모든 도움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적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계셔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③축복의 경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29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30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31 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32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33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신명기7:22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의 민족들을 단 시일에 정복하게 하지 않고 조금씩 정복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을 단시일에 모두 쫓아내게 되면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어서 황폐화되기도 하고 들짐승들만 많아져서 해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지 시험하기 위한 측면도 있습니다 (삿2:20-23) 사사기2:21-22에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종교적으로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그들로 인해 사회가 지탱됩니다. 모두가 믿음으로 살아가기 전에는 그들과 협력을 해야 합니다. 학교나 병원이나 자동차나 회사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세속적 관념에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신을 섬기고 그들의 가치관에 물들면 그것이 올무가 되어 붙잡혀 신앙적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세속적 관념을 가지고 신접한 자를 신뢰했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結言>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해 살아가고 있지만 세속적 가치관과 풍습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 속에서 살고 있지만 세속적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몸은 거기에 있지만 마음은 따로 나와 거룩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요한일서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고, 에베소서5:11에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했고, 요한계시록18:4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